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에필로그 후기_폴 엘리 옮긴이의 말 |
Walker Percy
이승학의 다른 상품
|
그 일 하니까 지난달 폰차트레인 호수*에 나가서 본 영화가 생각난다. 린다와 나는 새 교외에 있는 극장에 다녀왔다. 성장이 멈춘 교외 벌판에 회칠을 한 분홍색 각설탕 같은 모습의 극장이 덩그러니 서 있다니 누군가 오판을 한 게 틀림없었다. 강풍이 파도로 방조제를 후려쳤다. 실내에서도 그 난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는 사고로 기억을 잃는 바람에 모든 걸 잃은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 친구, 돈. 그는 자기가 낯선 도시의 이방인임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그는 새 출발을 해야 했고 새로 살 곳을 마련해야 했고 새 직업, 새 여자 친구를 구해야 했다. 그 모든 상실, 영화는 비극이어야 마땅했고 그는 대단한 고통을 겪을 듯했다. 하지만 웬걸, 일은 그리 나쁘게 풀리지 않았다.
--- p.16 린다는 불행히도 잠자코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행복해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불행해했다─우리가 차도 없이 웬 벽지의 동네 극장에 와 있다는 이유로.(나는 차가 있어도 버스나 노면전차를 타는 게 더 좋다.)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시내로 차를 몰고 가 루스벨트 호텔의 블루 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드는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가끔씩 그 일을 한다. 그럴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럴 때면 린다는 지금의 나처럼 기가 산다. 눈은 초롱초롱, 입술은 촉촉, 그러고 둘이서 춤을 추면 그녀는 제 매끈하고 긴 다리를 내 다리에 문지른다. 이럴 때 그녀는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꼭 블루 룸에 대한 보답은 아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건 벽지의 극장이 아니라 이 낭만적인 곳에 와 기가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지난 일이다. 린다와 나는 깨진 사이다. 내겐 섀런 킨케이드라는 이름의 새 비서가 생겼다. --- p.17~18 물론 나야 이 끝내주는 여자들, 그러니까 내 비서들을 헌신짝 버리듯 잇따라 정복하고 버려왔다고 떠벌리고 싶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건 연애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관계들은 마샤 혹은 린다(섀런은 아직이다)와 내가 걸프 해안에 나가 거닐고, 쉽섬의 인적 없는 만에 누워 껴안고, 그러고는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세상이 이런 행운을 용납할까 의심하는 순수하고 부주의한 황홀감으로, 즉 누가 뭐래도 연애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샤의 경우든 린다의 경우든 연애는 우리의 관계가 머잖아 절정에 다다른다 싶으면 여지없이 끝나버렸다. 사무실 공기는 소리 없는 비난으로 무거워지곤 했다. 천 가지 속뜻을 담지 않고는 말 한 마디 또는 눈길 한 번 나누기가 불가능했다. 밤새도록 전화 통화도 있었는데, 내가 할 말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잔숨과 한숨 소리만 들려오는 긴 침묵이 주를 이룬 통화였다. 이런 긴 침묵의 통화는 사랑이 끝났다는 확실한 징후다. 암, 그건 정복이 아니었다. 결국엔 나의 린다들과 내가 서로 넌더리가 나서 작별이 즐거울 정도였으니까. --- p.21 줄스 고모부는 세상천지에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승리를 거머쥔 사내들 중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막대한 돈을 벌었고 수많은 친구를 두었고 마디그라에서 렉스 팀이었고 몸으로든 돈으로든 헌신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 모범적인 천주교 신자라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수고를 들이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가 사는 세상, 인간의 도시가 저리 즐거우니 하느님의 도시에는 분명 그를 위해 준비된 게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 그의 세상을 뚜렷이 보고 그가 왜 그 세상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왜 그 상태로 지키려 하는지 본다. 그의 세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백인들과 낙천적인 흑인들이 분별력 있이 서로에게 상냥하게 굴고 구세계의 매력과 신세계의 사업 수단이 공존하는 너그럽고 다정한 곳이다. 누군가 툴레인과 LSU의 지난해 경기를 들먹이지 않는 한 그의 얼굴엔 어떤 그늘도 드리우지 않는다. --- p.47~48 가끔 어머니가 하느님을 언급할 때면 그녀가 하느님을 엉터리없는 인간 세상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써먹을 수 있는, 여느 회사 직원처럼 필요에 따라 부릴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로만 여긴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오는 충격을 똘똘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선과 악 모두가 전반적으로 과소평가되었음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했던 초기에 강요당한 타협이다. 그녀는 악의 반대편에 매여 있는 것만큼이나 행운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인데 가끔 그녀의 눈에선 그것, 그 과격한 불신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하다. 경험 많고 박식한 눈빛, 이브만큼이나 오래되어 다 안다는 듯한. 가장 아끼던 듀발을 잃은 경험으로 그녀는 평범한 것을 더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 p.182 외가 사람들은 내가 신앙을 잃었다고 생각해 그걸 되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그들이 무슨 소릴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내가 책에서 본바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는 독실하다가 크면 회의적이 된다.(또는 〈내가 믿는 이것〉에 나온 말대로 된다. “때가 되니 기성종교의 신조와 교리가 몸에 안 맞더군요.”) 나는 다르다. 내 불신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나는 하느님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잘은 모르지만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들이 참일지언정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느님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더라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하느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장막이 쳐지는 느낌이다. --- p.186 |
|
1962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타임〉 선정 ‘100대 영어 소설’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20세기 100대 영어 소설 60위’ 가벼운 연애와 영화로 때우는 무목적의 삶 젊은 주식 중개인 빙크스 볼링의 늦은 성장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 『호밀밭의 파수꾼』 등 미국의 많은 성장소설이 시대를 초월한 고전 목록에 올라 있지만 그중 『영화광』의 위상은 다르다. 이것은 어려서 부모의 죽음을 겪고 커서는 결핵으로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 두어야 했던 작가 워커 퍼시가 마흔네 살에 늦깎이로 발표한 데뷔작으로, 나이가 허클베리 핀과 홀든 콜필드의 두 배가량 되는 뉴올리언스의 젊은 주식 중개인이 성인으로서 맞는 또 한 번의 성장을 그린 소설이다.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두려운 삶, 나날이 체념되고 무뎌지는 삶, 하지만 언젠가는 그 틀과 타성을 깨고 책임도 불안도 끌어안아야 할 삶을 워커 퍼시는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어느 직장인의 일상을 통해 그린다. 여기에는 일과 연애와 유머의 맛을 알되 일상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끼고 사는 외로운 빙크스 볼링이 화자로 나선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혼종인 뉴올리언스의 이색적인 풍광 속에서 일인칭 현재 시점으로 그려지는 『영화광』은 자유와 책임, 사랑과 바람, 삶과 죽음, 신과 실존, 고전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 등 여러 대립항에 대한 숙고로 영롱한 다면체를 이룬다. 이 소설은 삶이란 완성형일 수 없으며, 따라서 성인에게도 삶은 처음이고 익숙지 않음을 말하는 소설로 현대적 성장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 1961년 출간된 『영화광』이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을 때 세간에서는 여러모로 화제였다. 출간 후 1년여를 잠잠히 묻혀 있던 작품이 뒤늦은 조명을 받았던 데다, 의사에서 작가로 전향한 저자가 마흔네 살에 발표한 데뷔작이라는 점, 그리고 그해 전미도서상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J. D.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외에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와 윌리엄 맥스웰 등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이 그해 경쟁을 다투었다. 『영화광』은 2005년 〈타임〉이 선정한, 〈타임〉 창간 해인 1923년부터 선정 당해인 2005년 출간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100대 영어 소설’ 목록에 올라 있고, 아울러 모던 라이브러리가 20세기를 통틀어 선정한 ‘100대 영어 소설’ 목록에도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조지 오웰 등 필수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올라 있다. 개인과 가족, 일과 사랑, 상실과 체념과 극복 서른 살 생일을 앞둔 그에게 닥친 느닷없는 것들 “오늘 아침에 점심 먹으러 들르라는 고모의 쪽지를 받았다.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안다.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저녁을 먹으러 들르는데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진지하게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다는 것. 그녀의 의붓딸인 케이트에 관한 안 좋은 소식이든 나에 관한, 장차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심각한 얘기든 극히 엄숙한 분위기일 것이다. 누구라도 겁을 집어먹을 만한 일인데, 그래도 실토하자면 아주 불편할 일은 없을 전망이다.” -15쪽 사업가인 고모부의 배려로 뉴올리언스 외곽에서 주식 중개소 지점을 맡아 운영하는 스물아홉 살의 빙크스 볼링은 자신이 설정한 틀 안에서 무탈하게 일상을 반복하는 남자다. 자신을 키워준 고모로부터 독립해 살면서 그저 잦고 깊이 없는 연애, 영화 감상, 주식 중개가 전부인 목적 없는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서른 살 생일을 일주일 앞둔 마디그라 축제 기간 중에 일상의 균열이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한다.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뒤 정서적으로 불안해진 사촌 케이트의 일탈, 그녀를 돌봐달라는 고모의 부탁, 예기치 않게 떠맡겨진 시카고 출장, 그리고 새로 들어온 비서 섀런 킨케이드에 대한 흠모. 안정과 틀을 중시하는 그에게 닥친 일상의 동요, 그는 서른을 앞둔 지금 틀 안의 자신과 틀 밖의 자신 사이에서 이런저런 선택과 다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영화광』은 주인공 빙크스 볼링이 일과 사랑과 사람,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일인칭 현재 시점으로 숙고하는 일종의 관찰기다. 일찍부터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고 실존적 고민에 깊이 빠졌던 저자의 이력답게 이 소설은 한두 개의 개념으로 일축될 수 없는, 시시각각 변하고 지각되는,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오는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 여기엔 가족과 땅으로 대표되는 남부의 전통적 가치와 개인과 도시로 대표되는 현대적 가치의 충돌이 있고, 일과 사랑의 충돌이 있고, 이 사랑과 저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아의 충돌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의 충돌이 있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미래로 나아가야 할 자신의 충돌이 있다. 이 모든 충돌이 겉으로는 시큰둥하고 말수 없지만 속에는 다정함과 친절과 애수와 유머를 간직한 주인공 빙크스 볼링의 독백으로 서술된다. 무사안일해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소외감으로 갈대처럼 심란한 삶. 숱한 기억과 고민과 역사의 총체인 개인의 삶은 곧 보편적 우주이며, 따라서 해답도 그 안에 있을 거라는 실존주의적 믿음이 『영화광』의 더없이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미국 남부의 정서를 담되 철저히 비남부적인 소설 타성적인 남부의 관습 대신 새로운 관습을 세운 소설 “매우 남부적이면서도 포크너로부터 최대한 멀리 있는 소설. 이 전미도서상 수상작은 삶의 혼돈에서 한발 벗어나 행복과 불행의 밀접한 관계를 반추하는 것만큼 인간적인 주제는 없다는 헨리 제임스의 다그침을 완벽한 어조, 완벽한 문장으로 환기시킨다. 당신은 웃게 될 것이고, 울게 될 것이다.” -리처드 포드(퓰리처상 수상 작가) 대농장, 공동체, 전통적 가치, 인종문제와 계급 문제 등을 다뤄온 이른바 남부 소설이 미국 소설의 전부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남부 소설을 빼고는 미국 소설을 말할 수 없다. 너새니얼 호손, 에드거 앨런 포,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유도라 웰티. 후발 주자인 미국 문학을 세계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들 중 많은 이는 남부 사람이었고 그들의 작품에는 흥망성쇠와 반목과 가치관의 충돌이 가장 첨예했던 격전의 땅 남부가 담겨 있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생활을 그린 워커 퍼시의 『영화광』은 당당히 그 전통의 선상에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소설은 남부의 전통을 아예 이탈하는데, 워커 퍼시 자신보다 아홉 살 아래인 플래너리 오코너조차 남부 소설의 유산인 고딕과 그로테스크함을 물려받아 현실의 비현실성을 다뤘던 것과 달리 『영화광』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극한 개인적 시점으로 관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회 이전에 개인이 있고 비현실 이전에 현실이 먼저인 탁월한 현대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기괴함보단 경쾌함이 있다. 『영화광』은 영화와 연애와 농담을 좋아하는 젊은이조차 마음속에 품고 사는, 이해되지 않는 소외감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데 질긴 눈길을 보낸다. 『영화광』에는 주인처럼 손님처럼 찾아드는 행불행이 비관습적으로, 따뜻한 어조로 담겼다. 이전에 남부 소설 하면 떠오르던 고딕적 특징들을 과감히 떨쳐낸 덕에, 혹은 남부 소설의 어두운 분위기를 밝게 돌린 덕에 『영화광』은 사회와 구조와 이념 너머의 이야기, 즉 실존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결국 남부라는 한정된 땅에 가둘 수 없는 소설이 되어, 워커 퍼시의 열렬한 추종자임을 자처하는 리처드 포드와 그 이후의 작가들로 이어지는 일상 문학의 암묵적 계보를 이룰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