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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그리다
양장
박상천
나무발전소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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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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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펴내며 005
제1부 이불
이불 012
전화 014
흔적 016
햇볕 018
식탁에서 020
꾸역꾸역 022
커피 머신 024
창문 026
마트에서 길을 잃다 029
고마워요 032
프리미어 리그 034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036
아름다운 구속 039

제 2부 : 단추
단추 044
손톱을 깎으며 046
쑥갓 048
능소화 051
엄살 052
얼레 054
주례 056
정리 058
가을이 되었네요 060
밤길 062
시간은 흘러갑니다 064
찔레꽃 066
전원 068
그래도 미안해 069

제 3부 :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074
발자국 소리 076
정갈한 비행 078
담금술 080
시간의 항아리 082
겨울바람의 꼬리 084
연골 086
샤워를 하며 089
홀아비 092
성당에 나가려고요 095
딸이 내게로 왔다 098
따뜻한 이별 100
그녀를 그리다, 마지막 102

후기 106

저자 소개 1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1998년 한국시협상, 2005년 한국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 『사랑을 찾기까지』,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낮술 한잔을 권하다』, 『한일 대역 박상천 시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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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260g | 134*212*11mm
ISBN13
9791186536858

책 속으로

세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햇볕이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 없는 집안에서
난 그저 세제의 역할밖엔 할 수가 없어요.
햇볕을 쬐지 못한 집안 이곳저곳엔
계속해서 얼룩이 남아 있네요.
딸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속,
얼룩이 가시지 않듯.
--- p.19 「햇볕」 중에서

그래도 식탁에서 가장 즐거운 화제 중 하나는
이제는 빈자리가 된,
그 자리에 앉았던 아내를, 엄마를 흉보는 일이다.
자기한테 불리한 얘긴 못 들은 척한다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을 싫어한다거나,
아침잠이 많았다거나,
우린 서로 웃으며
엄마를, 아내를 따뜻하게 추억한다.
--- p.21 「식탁에서」 중에서

그러나 느껴요
가끔씩 얼레에 ‘턱 턱’ 걸리는 당신의 팽팽함.
집을 나서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술에 취해 집으로 가다가도
가끔씩이지만 내 손에 와 닿는 그 팽팽함 때문에
오늘도 난 끊임없이 얼레를 감고 있네요
--- p.55 「얼레」 중에서

피어나는 꽃들조차 그렇게 싫더니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거지 같다 정말 거지 같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속으로 욕을 하며 살았지만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p.75 「살다 보면 살아진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 인생엔 어느 날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어둠 속에 버려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인에겐 아내와의 사별이 그랬다.

“병원에서 걸려온 새벽 전화에 놀라/정신없이 달려갔을 땐, 이미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던/그 새벽 아내와의 이별,”(-〈따뜻한 이별〉 중에서)

급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시인은 ‘의미 없는 시간의 한 구석’에 버려졌다고 느낀다. 아내의 부재는 모든 곳에서 왔다. 겨울이 깊어져도 바뀔 줄 모르는 여름 이불로, 단추가 떨어진 와이셔츠 소매로, 김치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도마로, 커피 머신으로 양치 컵으로 쑥갓으로, 아내는 ‘없음’의 모습으로 시인의 곁에 내내 머문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인은 삶 곳곳에 남아 있는 아내의 흔적들에 관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시를 쓰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늘 있지만 늘 없는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쓰다가 시인은 아내의 웃음만이 아니라 도란거리는 말소리나 술 적게 마시라는 잔소리까지도 자신을 충전시키는 ‘전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내가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이어주던 ‘연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골이 점차 닳아 없어지는 퇴행성 관절염,/ 우린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지만 / 일상의 모든 관절이 갑자기 / 삐걱거리고 아프게 되어 버린 / 당신과의 이별// 일상의 관절 사이 사이에 / 숨어 있던 당신이 /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후, / 나는 뼈와 뼈가 맞닿아 / 뜨끔거리는 통증으로 다리를 삐걱거리며 / 오늘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연골〉 중에서)

그러나 시인은 아내가 없어도 뜨끔거리는 통증을 견디며 지하철 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인은 ‘내색하지 않고 참는 시간이 참 오래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가다가 길가에 세우고 한참을 울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어 한참을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살아졌다고, 피어나는 꽃들조차 그렇게 싫더니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고 말한다.

슬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보낸 시인의 지난 시간들이 이 시집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담겨 있다. 혼자 간 마트에서 몇 번씩이나 두리번거리며 떠난 아내를 찾는 시인의 황망한 뒷모습을 눈으로 본 것 같다. 홀로 백내장 수술을 하러 간 병원에서 꼿꼿이 선 채 아내와 동행한 남자들을 빈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시인의 뒷모습도 본 것만 같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시인이 안간힘을 다해 걸어온 그리움의 시간에 젖어있다 보면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란 그의 고백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아내의 부재를 통과해 걸어온 시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어둠 속에 버려진 것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아마도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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