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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_이 책을 펴신 이름 모를 당신께
여는 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다 사랑하니까 하는 소리야 우리가 남이가! 기축이 이놈아 내 돈 내놔라 나랏일 하기 더럽게 힘드네! 우쭈쭈, 내 새끼들 사랑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나요? 죽지 못한 아비는 눈물을 씻고 쓴다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집구석 닫는 글 참고문헌 / 도판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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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것들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역사가 됩니다. 특히, 손편지는 이미 역사가 되었죠. 이제 손편지는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바로 윗세대가 주고받았던 손편지의 역사성은 시간이 흐를 때마다 가치를 더해갑니다. 우리가 부모님,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냈던 편지를 읽을 때도 그러한 역사성이 깊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조선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더할 것입니다. 이 페이지를 넘기시면, 여러분은 너무나 낯선, 하지만 놀랄 만큼 익숙한 조선 사람의 민낯과 감정을 읽게 되실 겁니다. 우리가 배웠던 위인의 ‘꼰대적’ 감성에서부터, 아내에게는 ‘스윗(Sweet)’한 ‘찌질한 양반’의 이야기, 또 우리의 상식을 거부하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벌어진 좌충우돌 이야기도 있습니다.
--- 「여는 글」 중에서 편지에 나타난 퇴계 이황의 아들, 이준의 심정이 딱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준도 아예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일찍부터 관직에 나가 서울 생활을 오래 한 아버지 때문에 그는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고향에 서원도 짓는 등 벌린 일이 적지 않았으므로 그 뒤처리는 모조리 아들 이준의 몫이었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소작농들 관리해야지, 나라에 내는 세금 점검해야지, 집안일 챙겨야지, 게다가 퇴계가 두 번째 부인까지 깍듯이 챙기라는 명령을 내려서 의붓어머니 집안일도 챙겨야 했습니다. 이준으로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내가 지금 어차피 떨어질 시험 보러 서울까지 가서 놀다 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이황은 아들 나름의 책임감을 제대로 보지 않거나 혹은 알고도 외면한 채, ‘야망이 없다’ ‘미래 계획이 없다’라고 평가합니다. 【 아들에게 】 네가 별시(別試, 비정기 과거시험) 때엔 맞춰 와서 시험을 보겠다는 얘길 들었어. 물론 지금의 네 수준으론 합격은 택도 없겠지만, 일단 친구들하고 올라와서 시험을 보렴. 전국의 수험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어떻게 너만 시골에 콕 박혀서 분발하는 마음도 없이 눌러앉아 있는 게 옳겠니? 지난 편지에선 네가 친구들과 서울 구경하면서 겨울을 나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예 그것도 다 쓸모없는 짓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포기하려는 것은 사실 네가 야망이 없어서겠지. 아버지 말이 맞지? 다른 선비들이 “까짓것 일단 한번 시험 보라고” 네게 용기를 줘도 너는 그저 안일하게 눌러 있을 뿐이니, 아버지는 실망, 또 실망이다. 네가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공부하지 않으면 시간은 그저 흘러버릴 것이고, 그땐 이미 늦어 진도를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뭐 나중에 농부나 군대의 졸병이나 하면서 살게 되겠지. 너는 항상 농사 핑계를 대면서 공부에 소홀해진다고 말하지만, 그건 다 핑계야 핑계. ─ 『퇴계서집성』 [漢] ---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소한 다툼이 늘 그렇듯, 잔소리에는 서늘하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죠. 여기, 남편의 투정에 대해 일갈하는 아내의 편지가 있습니다. 【 당신에게 】 당신, 편지에 뭐 “날 위해 여색(女色)을 참았다”라면서 엄청 생색내더라? 아니, 군자(君子)가 행실 거지를 다스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아녀자를 위해 그랬다고 할 수 있겠어? 당신이 똑바로 배웠다면 당연히 욕심이 나지 않을 텐데, 뭘 했다고 내가 은혜 갚기를 바라? 고작 3, 4개월 동안 홀아비 노릇 좀 했다고 온갖 고결한 척하면서 생색을 낸다면 결코 담담하거나 무심한 사람이 아니지. 오히려 잡생각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어? 그런다고 내가 “아이고, 잘하셨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어? 어이구 당신 곁에 친구도 있고 부하직원들도 있어서, 당신이 행실을 곧게 한다면 자연스레 소문이 날 텐데, 굳이 편지까지 보낼 건 또 뭐래. 아무래도 당신은 겉으로 성인군자인 척은 다 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어. 당신이 그러니까 괜히 의심되는걸? 당신은 몇 달 동안 홀아비 노릇 했다고 글자마다 생색을 냈지만, 솔직히 나이 60에 홀아비 노릇 하면 오히려 건강에 득이 되는 거지, 나한테 득 될 건 하나도 없어. 뭐 당신은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이니 수개월 동안의 홀아비 노릇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건 모르지 않지만. 그리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하던 홀아비 노릇, 생색이나 내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 1570년, 아내가, 『미암일기』 [漢] --- 「다 사랑하니까 하는 소리야」 중에서 하지만 조선 사회에는 직장 선후배의 청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거절하기 어려운 일가 친척들의 청탁이었죠. 역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으나 영 께름칙한 사촌 여동생의 청탁 편지를 소개합니다. 함께 읽어보실까요? 【 사촌 오빠께 】 제가 오빠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놈을 왜 풀어줬어요? 이젠 안 잡힌 것만 못하게 됐으니 너무 억울해요. 오빠도 제 사정, 잘 알잖아요. 종도 없이 생활비는 여기저기 돌려막으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가난한 양반이라고 우릴 무시하면서 욕설과 악행만 일삼는 괘씸한 놈이었다고요. 나도 참다 참다 못해 법관인 사촌 오빠만을 믿고 고발한 건데, 진짜 서운해요. 일이 너무 커지지 않게 알아서 잘 야무지게 처리하시고, 그놈을 꼭 다시 잡아다가 감옥에 넣어주세요. 귀양을 못 보낸다면 적어도 소작인 노릇은 못 하게 해주세요. 제가 너무 보채서 오 빠가 괴로운 것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부탁할게요. ─ 1882년, 사촌 여동생 의성 김씨가 김흥락(金興洛, 1827~1899)에게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 언간』 --- 「우리가 남이가」 중에서 【 백천에 사는 노비 기축이 놈아! 】 네놈이 막무가내로 내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임대료 넉 섬이라는 게 얼마나 적은 돈인데도 한 번을 제대로 내질 않느냐! 이 천하에 나쁜 놈아. 너 그따위로 하다간 내가 가만히 안 둘 것이다. 작년에는 네놈이 임대료 두 섬을 배 째란 듯이 안 내서 내가 그 땅을 배씨에게 빌려줬지. 네 놈이 나랑 멀리 산다고 나를 만만히 보나 본데, 너 그러다 나중에 진짜 큰코다칠 것이다. 올해 임대료와 작년에 네 멋대로 안 낸 것까지 합해 여섯 섬, 똑바로 내라. 또 한 번 그런 짓을 한다면, 나도 한두 번 참은 게 아닌지라 곧 본때를 보여줄 것이야! ─ 1692년 송규렴이 ‘기축이’에게, 은진 송씨 송규렴가 『선찰』 [한] 송규렴이 살던 곳은 대전이었습니다. 어쩌다가 황해도 백천의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을 기축 씨를 비롯한 몇 명의 노비에게 소작을 주게 됩니다. 기축 씨처럼 소유자와 멀리 떨어져 사는 노비를 ‘외거노비(外居奴婢)’라 합니다. 주인집에 거주하면서 가내 노동이나 경작을 하던 ‘솔거노비(率居奴婢)’와 달리 이들은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가족도 이루고 사유재산도 모으며 살았습니다. 땅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양반은 믿을 만한 외거노비에게 중간 관리자의 임무를 부여했는데요. 따라서 노비가 노비를 고용하는 형태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기축 씨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송규렴에겐 거의 없었나 봅니다. 기축 씨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배 째’로 일관하네요. 상대가 당대의 중신이자 내로라하는 셀럽, 송규렴인데도 말이죠. 고을 수령을 넘어 관찰사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송규렴은 편지 한 통으로도 기축 씨의 배를 정말로 오픈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과연, 기축 씨는 송규렴에게 항복했을까요? --- 「기축이 이놈아 내 돈 내놔라」 중에서 애지중지 키운 자식도 언젠간 독립하게 됩니다. 그나마 주도적인 삶이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아들은 독립해도 아쉬움이 덜하죠. 하지만 시집간 딸자식은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가슴 아파도 사돈댁에 아쉬운 소리 한 번 못합니다. 딸바보 효종은 그러한 안타까움이 묻어난 편지를 보냈습니다. 숙명아, 왜 이번에 궁에 안 들어왔니? 어제 네 언니도 오고 막내 숙휘도 와서 패물들을 싹 쓸어갔는데, 너만 없으니 아빠 맘이 너무 허전했어. 요즘 너한테 계속 안 좋은 일만 생기니 마음이 아프네. 가만히 있으면 다 뺏기니까 너도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네 몫은 꼭 챙기렴. 숙명아,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건지 아니? 무슨 죄냐면, 이번에 궁에 안 들어와서 아빠를 안 보고 간 죄야. 이런 죄를 지은 이유는 사실 죄다 네 남편인 심철동(심익현의 아명: 沈益顯, 1641~1683)이 때문이니, 그 인간을 들들 볶아서 싸우기라도 하렴. ─ 17세기 후반,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숙명신한첩』 [한] --- 「우쭈쭈, 내 새끼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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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덕후의 미덕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해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역사책에서 한두 줄로 설명되는 백성의 삶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짐작하게 해주며, 한국사 교과서 주요 등장인물인 조선 선비들의 숨겨진 면을 저격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잘난 아버지 뒷바라지에 멘붕을 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야망이 없다’ ‘미래 계획이 없다’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퇴계 이황, 기러기부부로 살지만 바람 같은 건 모른다며 은근슬쩍 아내를 도발하는 남편에게 ‘솔직히 나이 60에 홀아비 노릇 하면 당신 건강에 득이 되는 거지 나한텐 1도 이로울 게 없네요’라고 당차게 응수하는 아내, 경로사상 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는지 권신 심환지에게 ‘이런 생각 없는 늙은이를 봤나’라고 핵폭탄을 날린 정조, 부부 사기단으로 활약한 집안 노비에게 당한 후 울며불며 편지를 보낸 선비의 아내…. 팩트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특장이다.
저자는 앞으로도 이러한 ‘덕질’을 이어가면서 조선 선비들이 개인 일기에 깨알 같이 담아놓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나아가 실록에 기록된 상소문을 마구 분해하여 그들의 논리 다툼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시시콜콜한 역사 산책’을 즐길 날을 기대해본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 독자는 물론 역사라면 고개부터 흔드는 학생들, 그리고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구상하는 많은 작가들에게 이 책은 멋진 독서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편지’라면 조선도 오늘이 된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쓴 편지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개인 문집이나 편지글 모음집, 두 번째는 가문 내에서 대대손손 전해진 편지들을 모은 것,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묻은 것이 느닷없이 발굴된 것이다. 뒤로 갈수록 일상을 그려볼 수 있는 선명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편집자의 필터링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받은 편지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다가 죽음 너머에까지 함께한 소장자의 편지는 그 사람의 생애 안팎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의 장점은 이 같은 팩트 체크에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상상을 뛰어 넘는 독특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려면 글을 알아야 하고, 글을 배우는 건 양반들의 몫이고, 그러니 편지 내용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겠지’ 하는 짐작을 가볍게 배신한다. 최고 권력자인 왕족, 내로라하는 가문의 주역들이 쓴 편지라고 해서 일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더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상에 우아하고 심오한 게 어디 있나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렇게 읽자 저자는 이 책에 편지들을 소개할 때 ‘전공자가 보기에 선 넘을 만큼’의 윤색과 편집을 가했다고 밝힌다. 어투 혹은 뉘앙스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요, 지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비유는 생략하거나 때론 과감히 의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세 국어 또는 한문 편지는 아무리 잘 번역해도 우리와의 시간만큼이나 거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문에 충실하겠다는 일념으로 독자의 시대와 동떨어진 글을 생산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살아 숨 쉬는 글쓰기란 ‘박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 사이에 존재하는 텐션을 고르는 일’이니 말이다. 소개하는 편지마다 원문을 같이 제공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최소한의 정보로 한글편지는 [한], 한문편지는 [漢]으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원문이 궁금한 분들은 한글 편지의 경우 한국학자료센터의 〈조선시대 한글 편지〉 페이지(http://archive.aks.ac.kr/letter/letterList.aspx)에서 확인 가능하고, 한문 편지는 책 말미에 정리한 인용 저서를 확인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