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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 수영의 훈훈한 기운
제1호 일반개간허가증 한국 유일의 수영 수영과 신부산 건설 내 생애의 첫 책 정?과 정旌 뚝섬과 둑당 아버지의 도장 수영의 2선 개교 100주년 수영초등학교 어머니를 보내며 한국 호국보훈의 발상지, 수영 출신 김옥계 김옥계와 나 국제신문과 인터뷰하다 전국의 수영水營 ‘자매결연’ 하자 수영과 박홍 임진왜란과 수영 수영기로회 수영 상포계 「내영지」와 「수영유사」를 발간하자 「민락 100년」과 두 권의 책 수조처판곶전양과 포이진 수영강의 석축 석포와 석성 부사와 맞장뜬 수사 허허벌판 수영 수영의 군부대 지금도 분한 그때 그 재판 한바탕 굿마당 민락골목시장 우물 부산의 뿌리 ‘망미동’ 1 부산의 뿌리 ‘망미동’ 2 호국 단체와 나 두 번의 음악회 장애인과 함께 평화음악회 단골 메뉴 ‘비목’ 강진 농촌마을과 자매결연하다 수영의 문화재와 노규래 과장 백산과 산불 백산과 배드민턴장 세 명의 김종수 수영 사람 앉으면 잔디도 나지 않아 |
金鍾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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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훈훈한 기운
내가 사는 수영은 훈훈한 도시다. 사계절 날씨가 그렇고 사람들 심성도 그러하다. 이웃이 슬프면 함께 슬퍼하고 이웃이 기쁘면 함께 기뻐한다. 그래서 수영은 ‘우리’라는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옛날부터 그랬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도 그랬고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그때만 해도 한 집 건너 사촌이며 사돈이었고 두 집 건너 동기며 동창이었다. 그러기에 내남없이 ‘우리’였고 내남없이 훈훈했다. 그때는 토박이 일색이었다. 엔간하면 4대, 5대 토박이였다.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의 할아버지가 친구였고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였다. 친구의 아들과 친구의 딸이 백년가약을 맺어 안사돈이 되었고 바깥사돈이 되었다. 수영은 오래된 도시였다. 그러기에 토박이가 많았다. 수영엔 조선시대 수군부대가 주둔했다. 규모는 ‘어마무시’했다. 단순한 군사도시가 아니라 낙동강에서 경북 끄트머리까지 조선의 동남권 바다를 호령하던 초광역 군사 대도시였다. 현재 인근 백운포에 있는 해작사(해군작전사령부)가 그것의 한 방증이다. 수영 사람은 대체로 고집이 세다. 그리고 자부심이 강하다. 이러한 고집, 이러한 자부심은 수영이 조선을 지키던 군사도시이며 충절의 도시라는 데서 기인한다. 몇백 년 군인이 주둔하면서 군인의 반골기질이 스며들었으리라.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군인이며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군인의 아내인 집안이 수영에는 차고 넘쳤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여기 실린 글은 모두가 수영에 관한 기록이다.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글도 더러 있지만 그 또한 큰 틀에서 수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수영의 훈훈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리고 싶었고 내가 사는 수영의 훈훈함이 수영 바깥으로 번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으로 이어졌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가족과 이 책이 있게 한 수영 옛사람과 지금 사람들, 그리고 수영의 강과 바다와 산, 그 모두가 고맙고 고맙다. 2022년 봄 민락동 백산 동흥농장 있던 자리에서 김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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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芳香). 말만 들어도 기분이 향긋하다. 호국문화에 조예가 깊고 일가를 이룬 저자가 지역의 향토사를 연계해 또 하나의 역저(力著)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로써 우리의 호국문화가 더욱 향긋하고 지역의 향토사가 더욱 향긋하다. 한국 호국보훈의 발상지 수영에, 그리고 이를 밝혀낸 김종수 선생께 깊은 경의를 보낸다. - 임우근 (호국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한성기업(주)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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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의 본향인 부산 수영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국난 임진왜란 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출신 김옥계’를 비롯한 25의용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향기가 되어 짙게 피어오른다. 삶을 향기롭게 살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수영고성연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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