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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사진예술의 출현
예술로서의 사진, 그 시작 눈의 진실 마음의 거울 천재의 손 시간의 현상 빛의 인상 정물을 향한 시선 회화적 구성과 효과 남성을 담은 예술초상사진 여성을 담은 예술초상사진 자아와 자화 속도의 애상 로맨틱 살롱 플랫아이언의 밤 초기의 컬러사진 자연주의 산책 사진으로서의 예술을 향해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 미래파와 기계미학 시각 퍼즐과 현실 왜곡장 즉물의 향연 부재의 멜랑콜리 추상 표현의 세계 찰나의 미학 관능의 거울 구상과 추상 실존과 허무의 미학 시간과 삶 새로운 표현, 새로운 미학 퍼스널 도큐먼트, 퍼스널 메타포 침묵의 소리 거리의 미학 프레임 사회, 프레임 시티 뉴 도큐먼트 사진의 언어 새로운 색, 새로운 작품 뉴 토포그래픽스 내러티브 시퀀스 해체의 미학 뉴웨이브 스테이지 현대미술로서의 사진 타블로와 중성미학 퍼스널 크레도 파인아트 사진 패션스케이프 재현의 스펙터클 디지털 시뮬라크르 신표현주의와 글로벌 유형학 자연과 에콜로지 기계미학 에필로그| 두 개의 방 사진예술 연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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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루이 피에르송Pierre-Louis Pierson의 1864년 작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Comtesse de Castiglione〉은 사진에 닥칠, 혹은 사진이 당면할 ‘봄’의 문제를 암시한다. 한쪽 눈을 숨기고 프레임 속의 한쪽 눈으로 렌즈를 향한 시선은, 사진의 본질을 헤집으면서 사진에 있어 ‘본다는 것’의 문제를 제기한다. 백작부인은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 앞에서 마치 카니발에서 변장하듯이 반쪽 눈, 프레임을 씌운 눈으로 자기 자신을 은폐한다. 그래서 바라봄이 한순간에 보여짐이 되고 또 역으로 보여짐이 곧장 바라봄이 되기도 한다. 봄이 앎과 대등해지려 한다. 물론 이러한 사진의 물리적 바라봄, 그 물리적 행위들의 연속과정은 사진만의 고유한 습성이자 특징이다. 사진을 찍을 때 좀더 잘 보기 위해서 한쪽 눈을 감고, 꼭 필요한 것만 보기 위해서 검은 테두리를 친다. 1953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 비워두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지만 대개는 물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피에르송의 사진에서 주목할 것은 보는 문제이다. 전적으로 보는 행위인 사진에서, 보는 문제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p.21
‘어떤 시각적 사진이 예술사진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사진예술은 어떤 시각적 힘을 갖춰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에 대해 ‘형식적으로 심리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대단히 의미 있고 인상적인 시각 이미지여야 한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이것들을 되돌려주는 시선의 힘이다. 대상으로부터 받은(혹은 대상이 가한) 인상으로부터 다시 되돌려준 시선의 힘이 사진의 힘이다. 그래서 사진의 힘을 재현re-press/representation의 힘 혹은 표현ex-press/expression의 힘이라고 한다. 결국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에서 우리가 물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백작부인을 둘러싼 형태form와 형상shape이다. 육안으로 먼저 형태와 형상들을 보고 그것들을 종합한 결과 심리적으로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형태와 형상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그것을 포착하여 표현하여 내놓음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또한 한 번 더 이 이미지에 감탄하는 물리적, 심리적 재현 및 표현의 결과를 거두게 된다.--- p.22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고 채 20년이 안된 시점에서 사진의 최대 고민거리가 무엇이었는지를 나다르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사진이 예술이 되고자 열망했다는 것, 둘째는 있는 그대로 복제하듯이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사진가도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중에서 세 번째, 사진가의 고민에 대한 답을 나다르는 모델에 대한 ‘정신적 인지’, 사진의 ‘심리적 측면’, 그리고 ‘내면의 닮음’에서 찾으려 한 듯하다.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한 모습을 담은 〈사라 베르나르〉는 사진예술의 개념이 아직 일천한 시기에 등장한 예술적 심성의 사진이다. 모델의 직업, 성격,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그 모델을 향한 사진가 자신의 눈과 마음을 정신과 심리, 내면과 영혼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한 나다르의 예술관은, 그 시절에 가히 독보적으로 칸트E. Kant의 예술철학을 초상사진 속에서 구현해냈다고 할 만하다.--- p.30 정면사진인 〈사라 베르나르〉와 달리 〈누드 스터디〉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나다르가 정면을 통해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꿈꾸는 모습을 심미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뒤리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드모델의 뒷모습을 통해서 한 여성의 몸과 만나려 했다. 전자를 감상할 때 피사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물리적인 눈, 육안의 눈이 필요하다면, 후자에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눈,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어느 것이 더 예술적인지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사진예술에는 두 가지 눈이 모두 필요하다. 사진예술에서 마음이 중요하고, 생각이 중요하고, 내면의 깊은 심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p.32 사진은 눈으로만 말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 사진은 마음의 눈만으로는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는다. 여전히 부족하다. 손의 눈이 필요하다. 눈-마음-손이 적절히 맞잡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눈은 세상을, 사물을 보는 일을 하고, 마음은 느끼는 일을 하고, 손은 표현하는 일을 한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사진예술의 바탕이 튼실해진다. 물론 목격과 사실의 눈이 강조된 보도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이 있고, 마음과 감정의 눈이 강조된 순수예술사진이 있고, 기술적, 응용적인 눈이 강조된 상업사진, 광고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눈과 마음와 손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최적의 눈을 동시에 갖추지 못하고서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고 표현의 완성이라 할 수 없다.--- p.42 루이스 하인이 1920년에 찍은 〈발전소 기계공Power House Mechanic〉을 보자. 그는 1919~1920년 사이에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노동하는 인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동하는 인간 프로젝트는 이전에 그가 수행했던 고발 및 계도 목적의 프로젝트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사진의 의도가 노동의 신성함을 고취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이 사람들이 미국의 힘이므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찬양하자는 것이다. 그가 찍은 4천여 장의 사진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진이 〈발전소 기계공〉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연상시키는 이 사진은, 거대한 기계 앞에서 혼신을 다하는 기계공의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힘 있는 이미지로 담은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하인은 세상을 뜰 때까지 불의와 착취를 고발하는 언어로써 카메라를 활용했다. 그렇지만 그는 보도사진가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도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예술과도 전혀 무관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도 놀랍게 스티글리츠의 예언처럼 어느 순간 ‘사진으로서 예술’이 된다.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p.174 에드워드 웨스턴이 1936년에 찍은 〈누드Nude〉는, 사진의 역사에서 최고의 누드사진으로 꼽는 작품이다. 그가 이미 앞서 발표한 작품들, 〈피망〉, 〈조개껍질〉, 〈양배추〉 등에서 보여준 클로즈업 즉물 미학이 여성 누드에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웨스턴은 실제적인 관능성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대형카메라에서 최소 조리개(F64)로 구현할 수 있는 선예도, 깊이감, 여기에 완벽한 톤과 디테일까지 구현해, 사진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린 뛰어난 예술누드를 완성했다. 그의 누드사진의 특징은 정갈한 인체 형상과 절제된 감정이다. 상상으로 구현해낸 그림 같은 형상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몸과 같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여성의 누드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촬영과 인화 프로세스, 예리한 프레이밍, 완벽한 톤과 디테일의 합작품이다. 이 사진은 그의 여러 누드사진 가운데서도 단연 리얼리티의 백미이다. 배경의 깊은 어둠, 빛나는 나신, 감정이 담긴 포즈,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인체 형상과 잘 짜인 프레이밍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20세기 최고의 예술누드’라는 찬사가 결코 과하지 않다.--- p.242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에는 1955~1956년 사이 구겐하임미술관의 지원금을 받아 미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이 사진집은 불안과 소외, 우울, 고립, 단절, 암울함을 보여준다. 웃는 모습이나 행복한 표정이 없고, 희망조차 사라진 어두운 미국 사회의 뒤안길을 비춘다. ‘더 이상 결정적인 순간은 없다. 결정적이지 않은 삶이 어디 있느냐. 매 순간이 결정적이다. 이 암울한 현실에서 카메라 초점, 노출, 구도는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가’를 외치는 듯하다. 이 참혹한 고립감 앞에서 결정적 순간이란 얼마나 구차스러운가를 말한다. 그는 암울한 장막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p.281 카쉬가 1954년에 촬영한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세계 음악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특히 첼로 연주자라면 이런 사진을 한 장 가져보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패션모델들이 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의 〈뒤뷔마와 코끼리Dovima with elephants〉 앞에서 감탄하는 것처럼, 악기 연주자들도 유섭 카쉬의 〈파블로 카잘스〉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사진은 르네상스 이후 행해진 렘브란트 라이팅, 바로크 스타일의 엄숙함, 여기에 모델의 성격을 완벽히 파악하는 최적의 앵글에서 나오는 장인의 묵직한 아우라가 특징이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희망의 빛과 마주 앉아 있다. 사방으로 막힌 삭막한 돌 벽 위로 은은하게 흐르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는 전후의 쓰라린 상처를 감싸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마치 이것이 소리임을, 이것이 울림임을, 이것이 아우라임을, 그리고 이것이 사진임을 한 묶음으로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p.286 1990년대 사진예술의 특징은 일상성에의 주목과 눈여겨보지 않은 현대적 삶의 구조, 즉 유형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성은 이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하찮은, 시시껄렁한 이야기와 사건들을 말하고, 유형성은 삶의 구조가 점점 똑같이 획일화, 정형화, 규칙화되는 현상, ‘닮은 꼴(types)’에 대한 것이다. 커피 체인점에서의 환담이 일상성이라면, 커피 체인점의 똑같은 인테리어 구조는 유형성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가상실재 혹은 과도한 장식성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는 모든 백화점에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다. 또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 마네킹 같은 여성들이 서서 손짓했고, 개장과 폐장 시간에는 점원들이 일렬로 서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현대사회의 일상성, 현대문화를 지탱하는 유형성을 드러내는 모습들에는 외형 중심의 과도한 장식이 있었다.--- p.382 로레타 룩스는 독일 유형학에 회화성을 강조한 포트레이트를 선보였다. 또 앤드루 저커먼은 연극성과 영화성을 강조한 포트레이트를 선보였다. 모두 신즉물주의와 유형학에서 발원한 것이다. 회화적 평면의 ‘차원dimension’을 강조하고, 여기에 얼굴의 정면과 전면을 통해서 대상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게 한다. 대상에 온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또 힘찬 로앵글의 시선으로 대상을 강조한다. 로앵글을 통해서 감정을 새롭게 하여 대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섬세한 표면의 디테일을 추가한다. 현실성을 강화하여 대상을 실제화하는 것이다. 독일 신즉물주의와 유형학의 전통인 일정 거리, 일정 앵글, 일정 방향을 견지하고 대상의 정면성과 전면성을 강조하면서 인물의 유형을 주관화한다. 이렇듯 신즉물주의와 유형학의 방법론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글로벌 유형학이다. 강하되 차분하고, 분명하되 순수하고, 거침없되 상징적인 신표현주의의 미학을 수용한다.--- p.416 역사적으로 사진에서 기록과 사실이 강조된 때가 있었고, 반대로 표현과 예술이 강조된 때가 있었다. 인간과 현실의 문제가 강조된 때가 있었고, 대조적으로 자연과 환경이 강조된 때가 있었다. 또 도시의 문제가 강조된 때가 있었고, 농촌의 문제가 강조된 때가 있었다. 사진은 한쪽에 오래 치우치는 일 없이 시대 정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비교적 현실의 문제를 다룬 개념적인 사진들이 강세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감성-힐링-행복’의 코드로 바뀌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갈하고 담백하고 관조적인 사진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현대미술로서의 사진’이 트렌드이고, 연출, 설정, 시나리오에 입각한 뉴웨이브 사진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도 영원할 수는 없다. 2000년대 자연과 에콜로지 앞에서 아르노 라파엘 민키넨과 마이클 케나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들은 파인아트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순수사진의 자리를 지켰다. --- p.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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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의미가 아무리 시대에 따라 바뀌고 또 그 정체성이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 잡지 못하더라도 단 하나의 불변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그림, 조각, 음악, 춤, 문학 등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한 인간의 고유한 인상과 인식의 영혼이 그의 눈-마음-손에 깃들어 대상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사진도 예외가 아니다. 로저 펜튼의 〈여왕의 표적〉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진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이 표적판은 궁극적으로 사진가의 눈이면서 마음이고, 마음이면서 손이다. 그것이 사진의 표적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에서 ‘사진으로서의 예술’로, 근대사진에서 현대미술로서의 사진까지 사진예술에 필요한 세 가지는 ‘지각의 혜안’과 ‘기호의 혜안’과 ‘이미지의 혜안’이다. 그렇지 않다면 허망하다. - 롤랑 바르트 1839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식적으로 사진 발명이 알려졌을 때 화가 폴 들라로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From today, painting is dead).” 그의 말처럼 사진 때문에 회화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진의 등장과 함께 시각예술은 분명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사진예술의 풍경들』은 시각예술의 한 분야로서 ‘사진-예술’의 풍경들을 담은 책이다. 174년의 역사 속에서 사진은 시대의 변화와 요구, 기술의 진보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었다. 사진이 어떤 대상을 향하느냐, 어떤 미학으로 담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진예술 또한 얼굴을 달리해왔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사진을 통해서 예술적 미감을 발휘했던 뛰어난 사진가들과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있다. 『사진예술의 풍경들』은 그러한 전설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사진예술의 자취를 따라가보는 여정이다. 첫 번째 장 〈예술로서의 사진, 그 시작〉에서는 회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초기 사진을 살펴본다. 사진만의 미학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던 초기에는 사진에도 회화의 예술적 기준이 적용되었고, 사진가들은 회화의 관점에서 ‘예술적인 것’을 충족시키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호프마이스터 형제, 로베르 드마시는 인상파로부터 영향을 받아 인상파의 그림 같은 사진을 남겼고,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란더, 헨리 피치 로빈슨은 여러 장의 합성사진으로 회화적 효과를 선보였다. 사진예술을 신봉했던 클래런스 화이트 등 픽토리얼리스트들은 표현의 확장을 시도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사진의 시간성으로부터 자유롭다. 반면에 ‘사진으로서의 예술’은 사진의 시간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조작, 합성, 변형이 가능한 탈시간적인 사진표현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미술의 요건을 갖추고 찍은 미술적 경향의 사진을 말하며, ‘사진으로서의 예술’은 사진의 시간성을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는 사진, 즉 시간에 예속적이라 할 만큼 시간성에 충실한 사진을 말한다. ‘예술사진’과 ‘사진예술’의 개념적 차이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45쪽 두 번째 장 〈사진으로서의 예술을 향해〉에서는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로부터 시작된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 미래파와 기계미학, 특수기법, 즉물사진, 추상 표현, 찰나의 미학, 누드의 미학, 1차 대전 이후의 사진을 살펴본다. 루이스 하인의 〈발전소 기계공〉, 외젠 앗제의 〈매춘부〉, 아우구스트 잔더의 〈벽돌공〉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 시작한 스트레이트 포토의 시선을 보여준다. 모홀리나기와 만 레이는 특수광선과 반전 기법, 콜라주 등을 통해 시각 퍼즐, 현실 왜곡장을 만들면서 새로운 사진 표현을 시도했다. 빠른 셔터의 라이카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찰나의 미학’을 보여주는 〈생 라자르 역 뒤에서〉로 많은 사진가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또 사진의 역사에서 최고의 누드로 꼽히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누드〉, 추상 사진의 대가 해리 캘러한의 〈디트로이트〉,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 등이 어떤 의미를 지닌 작품들인지 살펴본다. 세 번째 장 〈새로운 표현, 새로운 미학〉에서는 마침내 현대사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프랭크의 시대로 접어든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에 실린 〈285번 국도〉가 보여주는 깊은 고독, 거장의 예술혼을 보여주는 유섭 카쉬의 〈파블로 카잘스〉, 프레임 사회를 드러내는 리 프리들랜더의 〈뉴욕〉, 사적인 다큐멘터리의 시각으로 담은 브루스 데이비슨의 〈동100번가〉, 사진의 언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에드 루샤와 베허 부부의 사진, 일상의 컬러로서 인공컬러에 주목한 조엘 메이어로위츠의 〈인테리어〉, 개발 열풍과 맞물린 풍경을 담은 뉴 토포그래픽스로서 로버트 애덤스와 니콜라스 닉슨의 사진, 듀안 마이클과 윌리엄 웨그먼의 내러티브 시퀀스 포토, 신디 셔먼을 필두로 바바라 카스텐, 베르나르 포콩, 샌디 스코글런드로 연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까지, 말 그대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미학’을 살펴본다. 마지막 장 〈현대미술로서의 사진〉에서는 지금도 여러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조망한다. 대형 타블로 사진, 무표정의 미학, 유형학적 인물사진으로 대표되는 제프 월의 〈초상〉, 랄프 깁슨과 조엘 피터 윗킨의 정신 심리학적 이미지들, 현대적 삶의 유형성을 파노라마로 담은 한 채의 아파트로 극대화시킨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파리 몽파르나스〉, 신부와 수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연출한 베네통 광고사진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패션사진, 로레타 룩스의 〈드러머〉와 앤드루 저커먼의 〈앤드루 와이어스, 위즈덤으로부터〉로 살펴보는 신표현주의,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도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순수사진의 맥을 잇는 아르노 라파엘 민키넨과 마이클 케나, 21세기 기계미학을 보여주는 스티븐 피핀과 귀도 모카피코까지 사진예술의 최신 흐름을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