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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엔 별이 뜬다
윤원일 소설가가 쓴 북한산 산동네 이야기 양장
윤원일
도서출판도화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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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글

방학동에 둥지를 틀다 / 9
술 장로 2대 / 12
연산군묘를 개방시킨 영화 〈왕의 남자〉 / 19
발바닥공원 / 32
시련의 세월을 겪다 / 43
춤꾼이 되려했던 사나이 / 56
방학동 뻐꾸기 형님 / 79
방학능선 쉼터에서 만난 〈박사모〉 할머니 / 93
방학동 좌파 / 103
방학동 보헤미안 / 120
〈셰익스피어 연극배우〉가 되다 / 136
북한산 그 산길, 그리고 〈독립군 영토〉 / 150
칸트와 나 / 158
우리 동네 최고의 산책길. 우이천 둘레길 / 164

포토에세이 / 방학동 명소

단편소설
M / 177

저자 소개 1

1951년 서울 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06년 중편 「모래남자」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펴낸 작품집으로 『모래남자』(2009), 『거꾸로 가는 시간』(2016) 가 있고 장편소설 『헤밍웨이와 나』(2010), 『시인 노해길의 선물』(2011. 문화체육부 우수교양도서 선정)이 있다. 번역서로 『추상적 사회』(안톤 지더벨트. 종로서적 82사회과학총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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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0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32g | 132*193*21mm
ISBN13
9791190526784

책 속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지만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가 집에서 먼 바람에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동네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녔다. 당시 직장을 다녔던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귀가했다. 그러면서도 일요일은 꼬박꼬박 교회를 나갔다. 교인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성수주일을 잘 지킨 것이다. 여기엔 아내의 신실한 신앙생활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아내는 주일 학교 봉사도 열심히 했고 십일조며 감사 헌금도 나름 충실하게 헌금했다. 그때마다 모두가 내 이름으로 헌금하다 보니 나는 교인의 중요한 덕목인 헌금 생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때가 되자 안수집사 후보에도 장로 후보에도 무난히 올랐다. 평일엔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떠들고 노는 화류계(?) 생활을 몹시 좋아한다는 걸 알 리가 없는 성도들은 장로 인정 투표에서 2/3 이상이 찬성하였다. 장로가 된 지 십여 년 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자 나의 자유로운 화류 생활은 더욱 심화되었다. 남동생이 아버지에 이어 장로가 된 걸 가문의 영광이라고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던 신앙심 깊은 누님들이 반대했지만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60세에 장로직을 조기 은퇴하기로 결단하였다. 〈술 장로〉였던 나는 결국 술과 장로 중 술을 택한 셈이었다. 내가 장로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번은 아버지가 술에 만취돼 귀가하시면서 현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못 일어나셨다. 내가 부축해 일으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 장로가 뭐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나 술 좀 작작 마셔라 이놈아. 교회 장로란 녀석이 원.”
--- 「술 장로 2대」 중에서

그날 햇살이 드는 환한 거실에 앉아 아기를 하나씩 무릎 위에 안고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던 두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나는 지우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속으로 기도하였다. 오늘날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지는 〈발바닥공원〉처럼.
--- 「발다닥 공원」 중에서

보임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장로지만 소설가랍시고 목에 힘(?)이 들어가 있어 보이는 내게 신경이 쓰였는지 에둘러 말을 꺼낸다는 것이 엉뚱하게도 이런 예를 들고 만 것이다. 교회의 장로보단 소설가로서의 정체감이 더 강했던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나님 쪽에서 보면 그 우편은 좌편이 아닌가요?”

둘러앉은 십여 명의 장로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나 자신도 순간 재치 있는 답변을 한 것에 스스로 감격해서 즐겁게 웃었다. 하지만 〈좌파 장로〉에 대한 원로 장로의 반감과 적개심은 당시 MB가 부르짖어 유행어가 됐던 〈서울을 하나님께……〉라는 기독교 왕국 신앙에 힘입어 더욱 깊어졌다. 더욱이 공무원이었던 한 장로가 청와대 인사비서관으로 임명되는 일이 생기자 우리 교회는 MB의 아바타 수준까지 변모하며 곳곳에서 우파적 신앙심이 분출한다. 덩달아서 나의 좌파적인 신념도 강화된 나머지 나는 돈 많은 한 집사가 계획한 고등부 학생들의 해외 성경학교를 공개 거론하며 중단시켰다. 비록 자신이 경비의 절반을 부담한다 했지만 반은 교회가 부담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해외 문물을 보고 배우도록 돕자는 것인데요. 장로님.”
“좋긴 한데 그 경비를 왜 교회가 지불해야 합니까?”
“반은 제가 부담합니다.”
--- 「방학동 좌파」 중에서

나는 그 해(2018) 셰익스피어 영어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 Two gentlemen of Verona〉에서 돈 많은 속물 귀족 역을 맡았고 다음 해(2019)엔 〈헛소동 Much Ado〉에서 유쾌한 왕 역으로 연속 출연하여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Shakespeare Kids〉가 된다. 대학로 극장에서 공연했다 해서 〈대학로 배우〉라는 칭호(?)도 얻는다. 과장, 뻥튀기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후 연극배우인양 폼을 잡고 으스대며 지낸다. 뜬금없이 한국소설가협회에 〈소설가극단〉 창단을 제안하지 않나 박정근 교수가 창단한 시민극단의 대표직도 맡는다. 내게도 정체성 충돌이 벌어질 판.
---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되다」 중에서

십 년 전 우이령이 개방되자 나는 반대쪽인 도봉산 쪽의 방학능선이나 무수골 능선을 주요 산책 코스로 삼았다. 그러던 중 2020년 5월의 어느 날 경기도 포천 소재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인 박정근 소설가가 제자 중에 늦공부를 한 여성이 장편소설을 써서 지도교수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면서 나를 초청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나라는 없었다〉를 쓴 박명아 소설가를 처음으로 만난다. 박명아 작가는 박영선 독립군 장군의 셋째 딸이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서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 「북한산 그 산길, 그리고 〈독립군 영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방학동에 산 지 40년이 돼 간다. 누군들 자기 고향과 동네를 좋아하지 않을까만은 나는 〈내가 사는 동네 방학동〉을 몹시 좋아한다. 삼십여 년 전 부모님이 영등포구 친척집에 가셨다가 자정이 다 돼 택시를 탔는데 두 시간이 넘었는데도 도착하지 않는 거다.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던 때의 초조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통스럽다. 술 취한 아버지가 방학동 갑시다 한 말을 택시 기사가 방화동으로 듣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갔던 거다. 두 분은 택시 안에서 잠들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 아버지 어머니가 탄 택시가 너무 늦는다 싶어 길거리에 나가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가끔씩 오가는 택시를 전전긍긍 살펴보던 때의 그 초조감이라니. 이 일은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까지도 방학동이란 말을 입 밖에 낼 때마다 잠깐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확인하듯 입버릇처럼 방학동 방학동 하며 읊조리다가 급기야는 〈방학동 이야기〉란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방학동엔 별이 뜬다.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도봉산의 양팔 품 안에 자리 잡은 산동네이다 보니 어떤 날 밤엔 달이 휘영청 밝고 또 어떤 날 밤엔 별도 더 빛나 보인다. 도시와 전원과 산골의 정취가 두루두루 섞여 있는 마을이다. 내 나이 또래의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방학동엘 한번 들어와 살면 다른 곳으로 이사 못가요. 여긴 불랙홀이예요. 하하.”

방학동에서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기뻐했고 사랑했던 그리고, 때론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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