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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방황하는 자 혼란 그리고 선택 헤밍웨이와 나 에필로그 작가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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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첫째는‘이 세상 모두가 이기적인데 누구를 더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이고, 둘째는‘그럼에도 나는 이웃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내겐 그‘착한 이웃’이 되기가 원수를 사랑하는 일 만큼 어려워 보인다. 불이익은 못 참아도 불의는 잘 참기 때문이다. 하물며 남에게 닥친 불의쯤이야. 사회적 불의엔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누가복음」10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 상태가 된 사람을 신앙심 깊다는 사제도, 지도층인 레위인도 모두 지나쳤지 만,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은 돌봐줬다. 이 이야기는“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이었다. 하지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해서 모두 걸음을 멈추진 않았을 것 이다. 예수의 말은 천대 받는 자일지라도 걸음을 멈춘 자가 우리의 선한 이웃이란 뜻이었다. 인간 존재는 이중적인 게 숙명 같기도 하다. 소위‘아바타’란 게 자기 대신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아바타가 촛불을 들고 시청 앞 광장에 서있고 용산 남일당 근처를 기웃거리고 종교 집회에도 열심히 나가지만 결국은 자기 실존에 충실한 이해타산적인 나로 되돌아온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기’란 쉽지가 않다. 「도마복음서」에는 예수가‘너희는 방황하는 자가 되라(Be wanderers)’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도마복음서」는 전후 문맥이 나와 있지 않은 예수의 어록이지만, 나는 이 말을 ‘세상의 일부가 되어 그것을 붙들고 살지말라’는뜻으로이해한다.「 마태복음서」7장에나 오는‘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도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어떤 시인은‘방황하는 자’대신‘지나가는자’,‘ 나그네’로 번역했다. 이 번역은 실천적인 뉘앙스가 약해 보인다. 내가 믿는 예수는 사유 하는 자보다는 실천적인 행동가였다. 지식의 인간이 아니라 존재의 인 간이었다. 나쁜 지도자 밑에서 살던 시절로 되돌아 간 것 같아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만화 같은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