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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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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와 버드가 빌리의 밴드에서 연주를 하는 걸 들으니 “어랍쇼? 이게 뭐지?”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 원, 그 연주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겁이 더럭 날 지경이었다. 빌리 엑스타인은 그렇다 치고, 디지 길레스피, 찰리 ‘야드버드’ 파커, 버디 앤더슨, 진 아몬스, 럭키 톰슨, 아트 블래키가 한 밴드에서 연주하다니 말 다한 거 아닌가. 씨발, 죽여줬다. 그 미친 연주가 내 속에 확 불을 질렀다. 음악이 말이다.--- p.5
그때부터 어머니와는 심각한 의견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별 일 아니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꼭 내리막길을 내리닫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진짜 문제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지 않으려 하셨던 게 문제인 것 같다. 어머니는 나를 조그만 아기로 대하려 하셨다. 내 동생인 버논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버논이 동성애자가 된 것도 아마 그 탓이 좀 있지 않나 싶다.--- p.37 나는 디즈와 루이 ‘사치모’ 암스트롱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무대에서 관객에게 히죽대고 웃는 모습을 싫어한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는 안다. 그들은 트럼펫 주자이기도 하지만 연예인이기도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둘 다 광대짓을 즐기는 면도 있고. 그게 디즈나 루이가 하는 방식이다.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 p.109 뉴욕에 오니 52번가가 다시 문을 열었다.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의 52번가를 경험하는 일은 마치 음악의 미래에 관한 교과서를 읽는 것과 같았다. 한 클럽에 가면 콜먼 호킨스와 행크 존스가 있다. 어떨 때는 52번가 한 거리에서 아트 테이텀, 타이니 그라임스, 레드 앨런, 디즈, 버드, 버드 파월이 몽땅 하룻밤에 다 서기도 했으니. 어디를 가도 듣고 싶은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시절이었다.--- p.131 1957년 5월에는 길 에반스와 스튜디오에서 『마일스 어헤드 Miles Ahead』를 녹음했다. 길과 작업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길과 나는 『쿨의 탄생』을 만든 후에도 가끔 만났다. 그 후로 우리는 다시 모여 앨범을 낼 것을 이야기했고 『마일스 어헤드』의 음악에 관한 콘셉트를 궁리했다. 길은 너무나 세심하고 창조적이고, 또 나는 그의 편곡을 완전히 믿고 있었기에, 길과 작업하는 것은 대체로 좋았다.--- p.296 나는 그 덕분에『마일스톤스』를 대중 앞에서 다시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밴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마일스톤스』 앨범이 ‘모든 시대의 재즈 음반 중에서도 결정적인 음반’이고 거기엔 ‘모든 재즈 연주자의 정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나 기절할 듯 놀라서, “이런 제길!?”이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p.364 나는 독일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1969년 런던에서 만났던 영국 작곡가 폴 벅마스터의 음악 이론에 빠져들었다. 『온 더 코너』를 하기 전에 그 둘을 좋아하게 되었고, 사실 폴은 내가 녹음하고 있던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지냈다. 그도 스튜디오에 있었다.--- p.447 1975년부터 1980년 초까지 나는 트럼펫을 잡지 않았다. 다시 말해 4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잡지 않았다. 지나가다 트럼펫을 보면 연주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그런 일도 없어졌다. 다른 일들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이란 대개 나에게 좋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쨌든 그런 것들을 했고, 돌이켜봐도 그렇게 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죄의식도 없다.--- p.463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오늘날 음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내 생각엔 짧은 악절들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잘 들어보면,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걸 듣고 알 수 있다. 음악은 항상 변하고 있다. 강철 대신 플라스틱 자동차가 된 것처럼, 시대와 이용할 수 있는 기술, 사물을 만들어 내는 소재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다. --- p.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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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음악의 혁명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들려주는
40, 50, 60, 70, 80년대 재즈의 모든 이야기 재즈의 모든 양식의 아버지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재즈 트럼펫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인 이 책은 번역이 어려운 온갖 욕설과 반복적인 언어 구사로 이루어져 있다. 깡마른 몸매에 왜소한 체구, 퀭한 눈빛의 마일스 데이비스는 40년이 넘게 재즈계를 종횡무진했던 명실상부한 재즈의 왕중왕이었다. 그는 1926년 일리노이주 알턴에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 때인, 1944년 9월에 뉴욕으로 와 뉴욕 52번가에서 당대의 명장 찰리 파커를 만난다.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중퇴하고 난 뒤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찰리 파커 밴드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찰리 파커와의 그 유명한 애증관계가 생겨난다. 찰리 파커의 밴드를 떠난 그는 1949년 길 에반스의 편곡과 존 루이스, 맥스 로치,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을 비롯한 9중주단의 역사적 앨범 〈쿨의 탄생〉을 발표하여 50년대 쿨재즈의 길을 열어놓는다. 그 후 4년간 헤로인 중독으로 침체하였으나 1959년 3월에는 캐논볼 애덜리,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등과 함께 〈카인드 오브 블루〉를 만들어냈다. 쿨재즈의 시대를 연 〈쿨의 탄생〉은 좀더 백인적인 취향에 맞춘 것이었다면 〈카인드 오브 블루〉는 모드의 개념을 이용한 즉흥연주가 완전히 정착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그는 이 앨범 이후 필리 조 존스, 레드 갈란드, 폴 챔버스 등의 멤버들과 어울리며 수많은 걸작 음반을 내놓게 된다. 그러던 그는 1964년부터 허비 행콕, 웨인 쇼터, 토니 윌리엄스 등의 멤버들과 〈니퍼티티〉, 〈초감각적 지각〉, 〈소서러〉 등을 발표하더니 1969년에는 전세계를 풍미한 록 음악마저 받아들여 칙 코리아, 잭 니조네트, 존 맥러플린 등과 함께 재즈 사상 희대의 실험작 〈비치스 블루〉를 발표하여 퓨전재즈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는 컴퓨터로 합성한 디지털 음을 받아들인 그는 1986년의 〈투투〉와 1989년 〈아우라〉에 이르기까지, 실험적인 시도들로 가득 찬 길을 걷는다. 재즈계의 40년 독재자 마일스 데이비스를 통해 스윙, 비밥, 쿨재즈, 하드밥, 프리재즈, 퓨전재즈의 탄생사는 물론 40, 50, 60, 70, 80년대 뉴욕의 재즈계를 거울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와 찰리 파커의 애증관계, 길 에반스나 존 콜트레인 등 마일스의 음악적 동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가 밴드 멤버들을 모으게 되는 예리한 판단력, 여자 관계와 헤로인 상습 복용 기간인 4년간의 고통스런 나날들, 75년부터 80년까지의 공백기, 1981년 봄 다시 재즈계로 돌아온 이야기 등 모든 일들이 마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 읽는 이를 매료시킨다. 그가 부족한 폐활량과 기교의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모드 주법을 선보였더니 그게 모던재즈의 길을 열었다는 식의 에피소드적인 관찰은 이 책을 읽으면 말이 안 되는 얘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이성적 관찰자였으며 냉철한 실험가였다. 그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끝까지 보살피기보다는 금세 다른 아이를 낳으러 새로운 시대로 훌쩍 떠나곤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재즈의 모든 양식의 아버지가 되었다. 만약 그가 장인의 길로 걸어갔다면 재즈의 수많은 양식 가운데 절반 이상은 태어나지 않았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장인의 역할은 마일스 데이비스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의 선배격인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가 그렇고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 크리포드 브라운이 그렇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의 거의 모든 계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뿐더러 실제로는 재즈의 새로운 자식들을 낳는데 기꺼이 아비의 역할을 했다. 마일스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그의 트럼펫에 담아내려 했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뮤지션이 되길 원했다. 비밥의 출현 때부터 재즈의 중심에 있어 오면서 기존의 전통을 답습하기보다는, 재즈-스탠더드를 바탕으로 현재의 음악흐름을 늘 주시했고 거기에서 항상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롤링스톤」지는 록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간의 톱10 뮤지션(8위)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를 선정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얘기를 듣다보면 마치 재즈사를 읽는 것과 같다. 재즈사에서 모든 놀라운 사실들을 마일스를 통해 들 수 있다. 추천의 글 “우리를 황홀케 하는 책” -롤링스톤지 “클락 테리, 빌리 엑스타인,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델로니어스 몽크, 존 콜트레인, 맥스 로치, 길 에반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고 거칠며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충격적인, 재즈 애호가라면 거부할 수 없는 퍼레이드를 지나간다.” -더 디트로이트 뉴스 재즈 1백년사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사람 중의 하나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의 진보를 주도해온 선지자적인 인물이다. -중앙일보 거론될 때마다 쿨재즈의 창시자, 재즈 록-퓨전의 대중화, 모드 주법,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한 전력이 있는 엘리트 등의 말이 따라붙는 마일스 데이비스. 그는 ‘열린음악’인 재즈에 입문한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큰 이름이다. -문화일보 그가 없었다면 20세기 재즈의 역사는 씌여질 수 없다. 깡마른 몸매에 왜소한 체구, 퀭한 눈빛의 그는 40년 넘게 재즈계를 주름잡았던 재즈계의 왕중왕이었다. -동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