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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철도
근대화, 수탈, 저항이 깃든 철도 이야기
김지환
책과함께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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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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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부 철도의 양면성, 근대화와 수탈

1 기차와 마주한 한국인의 첫 경험
2 철길 따라 피어난 슬픈 꽃
3 한반도에서 불붙은 철도 궤간 전쟁
4 대륙 침략의 발판, 한국 철도
5 철도,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다
6 손기정 선수의 여정 속 압록강철교
7 관부연락선과 국제철도 네트워크

2부 철도에 깃든 저항과 삶

8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안양역 의거
9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노인
11 서울의 랜드마크 경성역과 시계탑
12 시민의 발이 된 전차의 추억
13 철도 투신에 이른 고단한 삶
14 가슴 아픈 사랑의 종착점, 철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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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중국 푸단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중국경제사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과 한국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하북사범대학교 학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최대 신문사와 통신사인 《인민일보》와 《신화사》에 역사문제나 한중관계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글을 발표해 한중관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후중국경제사》, 《철도로 보는 중국역사》, 《철로가 이끌어낸 중국사회의 변화와 발전》, 《철로의 등장과 청조 봉건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중국 푸단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중국경제사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과 한국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하북사범대학교 학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최대 신문사와 통신사인 《인민일보》와 《신화사》에 역사문제나 한중관계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글을 발표해 한중관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후중국경제사》, 《철도로 보는 중국역사》, 《철로가 이끌어낸 중국사회의 변화와 발전》, 《철로의 등장과 청조 봉건체제의 붕괴》, 《중국국민정부의 공업정책》, 《棉紡之戰》, 《中國紡織建設公司硏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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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58g | 152*225*20mm
ISBN13
9791191432671

책 속으로

김기수는 전통적인 사상과 관념 속에서 서양의 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요코하마에서 도쿄 신바시에 이르는 기차를 타고 나서 이렇게 탄식했다. “사람들이 면면이 서로 보고 인사를 하자마자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 담배 한 대를 피울 사이에 벌써 신바시에 도착하니, 곧 90리 길을 온 것이다.” ‘근대’라는 압도적 힘이 잘 포착된 대목이다. 그는 기차를 통해 획기적으로 달라진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한일 관계에 드리울 어두운 그림자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하지 않았을까?
---「1 기차와 마주한 한국인의 첫 경험」중에서

철도가 부설된 후 무더운 여름밤이면 한국인들이 철도 레일이나 전차 레일을 시원한 목침으로 여겨 베고 잠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여름에 해가 지고 나면 철제 레일이나 침목, 자갈로 만든 철길은 온도가 빨리 내려가 시원하기 마련이다. 늦은 밤 열차가 끊겼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예 철길에 자리를 깔고 누워 더위를 피하곤 했다. 일정이 변경되어 늦은 시간에 기차가 운행될 경우 피서 중인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덮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정시 운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더운 여름밤 새벽 기차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레일 위에서 죽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각지의 철도국은 철도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열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용산 철도국이 배포한 전단지에는 철도를 베개 삼아 잠들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아리랑 노래 가사가 실려 있었다.
---「2 철길 따라 피어난 슬픈 꽃」중에서

일본은 어떠한 논의를 거쳐 한국 철도의 궤간을 표준궤로 결정했고, 이는 무엇을 지향했을까? 일본에게 한국에서의 철도 사업은 ‘한국 경영의 골자’였다. 일본 통치자들에게 철도는 한국의 식민지 지배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중국 대륙과 러시아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1898년 경인철도 부설 공정이 절반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부설 자금의 부족으로 곤경에 처한 모스는 12월 7일 한국 정부와 상의도 없이 180만 원에 경인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양도했다. 이미 전년도인 1897년 4월, 일본 재계의 거물인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는 모스를 도쿄로 불러들여 외무대신을 비롯해 도쿄, 요코하마 등 주요 도시의 유력 인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경인철도 부설권을 양도한다는 데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1897년 5월 4일 ‘경인철도인수조합’을 설립하고, 이후 인수조합을 합자회사로 변경하여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사장으로 세워 등기를 마쳤다. 마침내 1899년 9월 13일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철도가 완공되어 영업을 개시했다. 다음 해인 1900년 6월에 한강철교가 준공되었고, 같은 해 11월 서대문에서 경인철도 전 노선의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4 대륙 침략의 발판, 한국 철도」중에서

러일전쟁의 승패는 군대의 이동과 군수품 보급, 물류를 위한 철도 등 교통운수가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의 세력 확장에 힘을 쏟기로 결정한 후, 군대 이동과 물류 수송을 위해 철도 부설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차르는 중동철도가 완공되고 나면 10~20년 안에 만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러시아 재무상 비테도 철도야말로 중국을 평화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후 유럽으로의 팽창을 지양하고 극동에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1861년 3월 러시아의 차르인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 해방을 단행하고 4월 27일 이민법을 반포한 후 러시아 농민들을 유럽령 러시아로부터 동방으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시베리아횡단철도 부설을 적극 추진했다.
---「5 철도,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다」중에서

손기정은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가서, 관부연락선으로 부산에 이른 후 경부철도에 탑승했다. 이 철도는 경성역을 지나 경의철도를 거쳐 손기정의 고향인 신의주를 지나 압록강철교를 넘어 안동(현재의 단동)에서 봉천(현재의 심양) 간을 운행하는 중국의 안봉철도를 거쳐 남만주철도로 연결되었다. 이후 하얼빈을 지나 중·소 국경에 위치한 치타역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접속한 후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베를린에도달하는 장거리 여정이었다.

손기정이 가지고 있던 기차표에는 ‘시베리아 경유 유라시아 연계 승차선권’이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듯이 열차편과 배편을 결합시킨 국제철도의 승차표였다. 관부연락선의 본래 명칭은 ‘관부철도연락선’으로 일본철도원이 관할하고 있었다. 이 여정에서 알 수 있듯이 관부연락선과 압록강철교는 일본 본토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만주와 중국, 나아가 러시아, 유럽으로 연결되는 국제철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였다.
---「6 손기정 선수의 여정 속 압록강철교」중에서

일본의 물자 강제 징발과 노동력 착취로 기차역과 연선 지역에서 의병이나 민중의 저항이 날로 격화되자, 일제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선로를 순시하고 철도 시설을 파괴한 자들을 찾아 투옥하거나 사형에 처했다.1905년을 전후로 철도를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한 한국인은 공식적인 통계로 35명에 이른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전 해인 1904년에는 7월 29일 영등포역 부근에서 보부상들이 불에 달군 기와를 레일 위에 올려놓아 열차와의 충돌을 기도했다. 1904년 8월 27일 김성삼, 이춘군, 안순서 등 3명은 고양군에서 경의선 열차의 전복을 기도해 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같은 해 9월 20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바로 다음 날 마포 산기슭에서 총살을 당했다.
---「8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안양역 의거」중에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행정, 외교를 장악하고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평화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해 한민족에게 한 줄기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었다. 그는 ‘동양 평화’와 ‘인류 구원’이라는 염원을 실현하고자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수탈, 착취에 맞서 기꺼이 한 몸을 던진 의인이다.

안중근의 의거가 일어난 하얼빈 역에 주목해보자. 여객과 물자를 운송해주는 철도는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수탈하는 유력한 통로였다. 일본도 한반도 침략을 본격화하려고 철도 부설에 착수했다. 기차역은 식민지 지배의 거점이자 수탈의 창구였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차역이 의병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러시아 중동철도의 거점 역인 하얼빈 역이나 일본 남만주철도의 장춘 역은 바로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 지역, 나아가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수탈하기 위한 근거지였다.

---「9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중에서

출판사 리뷰

철도 르네상스의 시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철도 이야기


21세기는 철도의 시대라고 한다. 산업발전의 고도화와 전문화로 화물과 승객의 운송량이 급증하면서 도로와 항공 산업은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운송량이 방대하고, 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으며, 환경오염도 적은 철도 운수가 최근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남북한 철도 연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철의 실크로드,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일대일로 등이 국내외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만일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계하는 유라시아철도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부산이나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 함부르크까지 단번에 갈 수 있게 된다.

한데 이 유라시아철도의 구상은 엄연히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손기정 선수는 부산에서 열차에 올라 압록강 철교를 넘어 시베리아철도와 연계하여 독일 베를린까지 갈 수 있었다. 고속철도 KTX만 하더라도 과거의 철도 노선을 바탕으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실상과 미래의 구상은 모두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자산의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아시아 역사와 철도를 연구해온 김지환 교수는 철도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살펴보고자 이 책을 썼다. 조선 관료가 철도를 처음 마주하고 탑승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철도를 따라 흐르는 슬픈 식민지의 풍경, 기차역에서 일어난 저항과 독립의 열망, 고된 민초들의 삶 등을 담아냈다. 더불어 철도가 탄생하던 순간부터 철도를 두고 일어난 서양 열강들의 경쟁, 동아시아의 정세를 함께 다루어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서 우리 근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래의 어느 날, 끊어진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고 유라시아철도가 마침내 완성되어 철마가 다시 달릴 날을 상상해본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손기정 선수가 갔던 루트로 독일에 도착할 그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 「서문」에서

“양귀는 화륜선 타고 오고, 왜귀는 철차 타고 몰려든다”
철도를 따라 흐르는 식민지 근대의 풍경


철도는 산업혁명 시기 근대화의 견인차이자 상징이었다. 철도로 상징되는 근대의 문명과 이기는 서구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파급되었고, 동아시아 각국에서 철도는 근대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학과 기술의 실체로 인식되었다. 우리 근대사 역시 철도의 출현·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철도는 근대화와 자주독립이라는 양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인 동시에, 일제가 한반도와 그 북쪽을 침략하기 위한 효과적인 통로였다. 따라서 철도는 우리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다.

지은이 김지환 교수는 정치사, 군사사, 외교사, 경제사 등에 기반을 둔 전통적 역사 서술과 달리, 철도와 교통운수를 통해 근대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했다. 특히 책, 잡지, 신문기사, 편지, 보고서 등 다양한 사료들을 적극 인용하여 철도를 따라 흐르는 근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 역사의 질곡과 고된 민초들의 삶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근대화와 자주독립, 수탈과 침략의 갈림길을 걸어온 철도


1876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요코하마항까지 당도한 증기선은 조선통신사가 4개월이나 걸렸던 거리를 불과 일주일만에 주파했다. 수신사 일행은 요코하마 역에서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김기수는 이렇게 탄식했다.“기차를 타고 고작 담배 한 대를 태울 사이에 도쿄에 도착하고 말았다.” 1895년에 『서유견문』을 펴낸 유길준 역시 미국에서 대륙횡단열차에 탑승한 감상을 기록해 놓았다. “신마보다 빠르고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아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철도는 전통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근대 문명을 가르치는 학교이자 스승이었다. 정해진 시각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기차는 특히 근대적 시간의 개념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기차는 “양반이라 해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정해진 시각에는 반드시 출발”했으며, “늦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책은 철도를 통해 지방과 수도 서울의 교류가 일어나는 광경, 근대문명을 접한 민초들의 일상, 모던걸 모던보이가 거리를 활보하고 네온사인이 환하게 빛나는 경성 시내의 풍경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처럼 철도는 조선인들에게 근대적 시간과 공간을 충격적으로 선사했다. 하지만 동시에 철도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수탈의 도구이기도 했다. 러시아 재무상 비테가 강조했듯이 “철도야말로 식민지를 평화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에, 일찍이 이런 속성을 간파한 민초들은 조선땅에 발을 들인 기차에 돌을 던지고 철도역을 습격하는 등 반철도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한편 기차역은 민중들의 저항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분출시키던 장소였다. 안양역에서 달리는 기차에 돌팔매질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상처를 냈던 원태우,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던 안중근,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에게 폭탄 테러를 했던 강우규 등의 의거가 이를 증명한다. 지은이는 독립운동가들의 공판 속기록, 일본 순사들의 보고서, 의거가 일어난 현장을 상세히 묘사한 도면, 신문기사 등을 다채롭게 인용하며 마치 현장을 실제로 지켜보는 것처럼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임진각 망배단에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을 달고 여전히 멈춰 있다. 한국전쟁 중에 피폭되어 탈선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 자리로 옮겨와 전시된 기차는 분단의 상흔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전쟁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식민지의 질곡과 해방이라는 오랜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다다른 한 지점에 불과하다. 이 기차를 보면 일상의 평화로운 삶도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과거 민초들의 수많은 희생과 투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담긴 근대화와 수탈, 저항이 담긴 철도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 역시 우리 역사의 질곡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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