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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에 부쳐 6
서론: 신족과 거인족 11 I. 이데아와 시뮬라크르 25 1. 분할술의 의미 35 2. 시뮬라크르, 거짓, 비존재 60 3. 신족과 거인족 사이: 역능으로서의 실재 94 4. ‘koinonia’의 문제 124 5. 타자로서의 비존재 133 II. 시간, 생명, 창조 149 1. 생성의 무죄 153 2. 영원회귀와 역능의지 195 3. 초인에의 길 227 4. 존재와 시간 254 5. 생명의 약동 300 6. 창조하는 삶 336 결론: 생성에서 존재로 361 보론1: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367 보론2: 플라톤과 원근법의 문제 381 찾아보기 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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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는 정확히 이 이데아의 대척점에 존재한다. 그것은 이데아로부터의 일정한 거리에 있는 존재로서 측정할 수가 없는, 그러한 측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생성 자체이다. 소피스트들이야말로 바로 이 시뮬라크르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플라톤의 가치(-존재)론에는 이렇게 진짜와 가짜를 둘러싼 문제의식이 중핵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톤은 서구 철학사의 이데아로서 존재했다. 철학자들은 그를 독창적으로 모방함으로써만 철학사의 봉우리들이 될 수 있었다. 근대 철학자들이 고중세의 전통을 넘어 새롭게 사유를 정초했을 때에도 그의 그림자는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절대 생성을 긍정할 수 있는 사유의 출현만이 시뮬라크르의 출현을, 드디어 플라톤이라는 이데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철학사적 인물의 출현을 고지(告知)할 수 있었다. 니체라는 시뮬라크르의 출현만이. (148쪽) 플라톤에게 ‘시뮬라크르’는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두 가지 상이한 맥락에서 등장한다. 생성하는 것으로서의 이미지와 모방물로서의 이미지. 생성하는 것으로서의 이미지/시뮬라크르는 니체에 의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베르그송에 의해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모방물로서의 이미지는 오늘날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느 경우든 시뮬라크르는 반플라톤주의의 요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생성존재론’의 사유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생성이 일차적인 존재론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성존재론의 시대는 또한 시뮬라크르의 시대이기도 하다.
--- pp.361~362 생성존재론의 토대 위에서 실천철학의 물음을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던 대표적인 경우는 들뢰즈와 가타리이다. 이들이 전개한 ‘되기’의 윤리학/정치학은 베르그송적 생성존재론을 근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극히 다채로운 영역들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생산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경우이다. 때문에 이들의 시도를 단지 제도를 부정하거나 해체하려는 저작으로 읽는 것은 얄궂게도 이들의 사유를 그들이 극복하려고 했던 사유로 즉 베르그송적 실천철학으로 회귀시켜서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되기’의 실천철학은 확고하고 수준 높은 생성존재론의 바탕 위에서 구체적인 윤리학적-정치학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던 최초의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아직은 밑그림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 ‘되기’의 실천철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일 것이다. --- pp.364~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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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 시대의 새로운 존재론
― 서구 존재론사를 살피며 21세기의 철학을 생각한다 철학자 이정우가 탐구한 21세기 존재론에 대한 2008년의 저작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 개정증보되어 〈소운 이정우 철학 대계〉 1권으로 출간되었다. 현대 사유에서 종종 단순화된 형태로만 다루어지던 플라톤주의를 헬라스로 옮겨옴으로써, 한편으로 단순화된 플라톤 상(像)을 깨고서 이데아론의 보다 심층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책은 우선 『소피스테스』 편을 읽어 가면서 새로운 논의의 지형을 짜고 있다. “실재를 둘러싼 논쟁이 너무나도 격렬해서 사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마치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라도 벌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구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철학사를 정리하며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라는 은유를 사용한다. 그리고 철학자 이정우는 이를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신족과 니체에서 데리다에 이르는 거인족의 싸움, 즉 서양철학사 전체의 근본적인 투쟁으로 확장한다. 서구 존재론의 두 축을 살펴본다 플라톤, 그리고 니체와 베르그송 플라톤 사유는 선별에의 의지를 깔고 있으며, 그 의지를 근거 짓는 것은 이데아론이라는 존재론이다. 이데아가 존재하면 선별이 가능해지므로 플라톤 사유의 이해와 평가의 초점도 이데아론에 맞추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진리와 시뮬라크르에 대한 플라톤의 이분법은 니체에 이르러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니체에게 모든 해석은 이 세계의 시뮬라크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하나의 해석이자 관점이 된다. 니체와 더불어 베르그송은 생성존재론의 형태를 정립함으로써 현대 철학을 가능케 했고, 니체와 베르그송의 존재론사 해체를 통해 비로소 시간의 의미가 현대 철학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전환을 “존재에서 생성으로”라고 일컬으며, 이 사유의 전환은 후에 화이트헤드와 하이데거, 들뢰즈에까지 이어진다. 기존의 선악 개념을 해체한 니체와 달리 베르그송은 사랑의 약동을 외치면서 열린 사회를 지향했다. 물론 둘 모두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지평에서 실천철학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품고 있으나, 그럼에도 플라톤주의의 형태를 띠고서 흘러온 서구 존재론사를 근본에서 해체하고 생성의 존재론과 윤리학의 근본 형태를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현대 존재론의 초석을 놓았다 할 수 있는 이들, 니체와 베르그송과 플라톤의 사유를 대비시키면서 우리는 서구 존재론의 핵심적인 두 축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 시뮬라크르 시대, 지금을 이해하기 위하여 들뢰즈와 보드리야르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된 시뮬라크르나 시뮬라시옹. 전자는 사건, 운동, 이미지 등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들을 다루는 존재론이고, 후자는 가상현실, 인터넷, 모조품 등등 인공물들의 시대를 다루는 문화 이론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 두 개념이 플라톤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개념적이고 원리적 기초를 통해 검토해야 함을 주장한다. SNS와 메타버스로 가상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일상으로 깊게 침투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현대철학의 주요 개념 ‘시뮬라크르’의 원천으로서의 플라톤과 『소피스테스』를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유용하다. 그리고 서구 존재론사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만큼 이 책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우리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또한 저자는 반(反)플라톤적 존재들인 시뮬라크르들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내고 있는 현대를 살면서 우리가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플라톤과 니체, 베르그송의 대결이 가능하게 한, 보다 성숙한 구도의 존재론을 기반으로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21세기의 철학, 새로운 시대를 위한 존재론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