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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강 고난, 부흥의 묘약 - 벧전1:1-2 제2강 고난의 신비 - 벧전1:3-12 제3강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벧전1:13-25 제4강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벧전2:1-10 제5강 성직자와 평신도 - 벧전2:5,9 제6강 나그네 정체성과 삶 - 벧전2:11-17 제7강 고난의 의미 - 벧전2:18-25 제8강 부부 화장의 기술 - 벧전3:1-7 제9강 고난 중의 삶 - 벧전3:8-12 제10강 고난과 믿음의 변증 - 벧전3:13-17 제11강 그리스도의 고난 - 벧전3:18-22 제12강 고난과 경건 - 벧전4:1-6 제13강 고난과 종말 성도 - 벧전4:7-11 제14강 성도의 고난 - 벧전4:12-19 제15강 말세를 사는 성도의 삶 - 벧전5:1-7 제16강 말세 성도의 자세 - 벧전5:8-14 내용 및 인명 찾아보기 저자소개 알립니다 VIEW 소개 |
梁承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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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누구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게 고난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고난이 주는 유익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고난을 직면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고난의 유익은 뭘까? 고난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죄성을 어거(馭車)하는 거의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고난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고난은 인격을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고 영혼을 정화해 영적 품격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난 가운데 다듬어진 영성이야말로 보배다. 이런 영성을 가진 사람이 세상 물결을 거슬러 가는 주님의 순결한 신부다. 고난을 통한 영혼의 단장이야말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는 최고의 신부 단장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분오열하는 것도 고난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 교회와 교회, 교단과 교단 간의 두꺼운 벽도 고난이 없으므로 생긴 것이다. 고난이 닥치면 하나가 되자는 캠페인을 벌이지 않아도 저절로 하나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중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은 고난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교회가 부흥하는 묘약(妙藥)이자, 성도를 주님의 신부로 단장시키는 묘약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종말을 묵상하며 살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주께서 다시 오십니다!)”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가 그 품에 안길 때 우리의 모든 수고를 보상해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고난 중에도 근신하고 깨어 정결한 신부의 삶을 살자!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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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유한한 실존에만 집중하면 인생은 고난 그 자체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이다. 그러나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잇대어질 때 고통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불 같은 고난은 성도에게서 죄악성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정리해서 영적 부패를 막는 소금이다. 고난을 통해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제자로 자라가고, 마침내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된다.
고난이 닥칠 때 성도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므로, 고난은 성령님을 뜨겁게 만나고 천국의 영광을 맛보는 기회가 된다. 고난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 소망을 갖게 되면 세상 고난은 잠시 잠깐임을 알기에 절망하지 않는다. 또한 선하신 하나님께서 고난조차도 결국 유익 되게 하실 것을 믿기에 죽음에서도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고난을 겪으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과 주님을 다시 만날 기대가 크고 생생해질수록, 시선을 세상과 고난에 두지 않고 자기 사명에 생명 바쳐 충성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천국 본향에 대한 ‘산 소망’으로 격려하기 위해 기록됐다. 저자는 이런 종말론적 긴장감이야말로 기독교 영성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베드로 사도의 설교와 양승훈 목사의 강해를 통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고난을 축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