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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프롤로그_에도 형장에서 1장 계기_인체 해부 참관 번의藩醫의 아들, ‘오란다 의학’에 흥미를 가지다 │ ‘후와케腑分’ 참관은 행운 │ 《타펠 아나토미아》와 인체 해부 │ 네덜란드 해부도에 감탄하다 │ 수십만 명에 이른 기독교 신자 │ 쇄국령 속 서양에 큰 관심을 둔 쇼군 2장 결의_무모한 도전 겐파쿠,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을 제안하다 │ 번역 작업의 맹주가 된 료타쿠│ 원본엔 없는 책 이름, 《타펠 아나토미아》 │ 번역을 위해 알파벳부터 3장 전진_악전고투 속 번역 남녀 나신도 │ 장벽에 부딪힌 번역 작업 │ 료타쿠 주도하에 한 발씩 전진│ 겐파쿠, 《홍모담》 사태를 걱정하다 4장 출간_수완을 발휘한 겐파쿠 막부 반응을 떠보다 │ 《해체약도》 간행 │ 《해체신서》 역자 이름 기재를 거부한 료타쿠 │ 《해체신서》, 드디어 출간 │ 한방의들의 거센 비난 5장 융성_난학의 선구자 난학의 후계자들 │ 사위가 된 양아들 │ 료타쿠와 겐파쿠의 합동 장수연 │ 돈과 명예를 한 몸에 │ 막부, 난학자들에게 번역을 명령하다 6장 대조 _ 화려한 겐파쿠, 곤궁한 료타쿠 오란다인 귀신, 란카 │ 가정적으로도 대조적인 료타쿠와 겐파쿠 │ 료타쿠의 죽음을 외면한 겐파쿠 │ 단순한 의사가 아닌 겐파쿠 │ 쇼군을 알현하다 │ 회고록 《난학사시》 집필 7장 조선의 사정 조선통신사 왕래의 의미 │ 조선에 들어온 유럽 문물 │ 소현세자와 아담 샬 │ 홍대용의 《을미연행록》 │ 아담 샬의 《주제군징》 │ 연암이 소개한 화란류 처방 │ 최한기의 인체 해부도 에필로그_겐파쿠가 죽은 뒤 맺는말 참고문헌 부록 1 스기타 겐파쿠 연보 부록 2 스기타 겐파쿠 회고록, 《난학사시》 전문 부록 3 《해체신서》 해부도 |
李鍾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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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업적, 《해체신서》와 《난학사시》
《해체신서》 출간 이후 서양 의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수학, 병학, 박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일본어로 번역돼 서양의 새로운 지식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즉 난학이 100년 가까이 일본 근대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나아가 교육, 사고방식, 관습 등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며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난학 열풍에 불을 지핀 《해체신서》를 동료들과 함께 펴낸 뒤, 스기타 겐파쿠는 본격적으로 난학에 몰두한다. 의사 일을 하면서도 난학을 가르치는 사숙인 난학주쿠를 만들어 후계자를 양성했다. 그 후 난학주쿠는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난학주쿠 출신 젊은이들은 막부 말기와 메이지유신 시대에 걸쳐 일본을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 겐파쿠는 말년에 《난학사시蘭學事始》라는 회고록을 펴냈는데, 난학을 개척한 인물이 직접 기록한 유일한 회고록이자 난학이 처음 어떻게 시작돼 점차 확산, 발전돼 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남았다. 이처럼 스기타 겐파쿠와 그가 남긴 두 권의 책은 일본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한, 일본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잘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