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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언제나 새로운 시작 1장 여정의 시작 -1978년 1월부터 6월 2장 정착과 자아 찾기 -1978년 7월부터 1980년 5월 제2부 광주항쟁 3장 두려움과 희망 -5월 16일 금요일부터 5월 17일 토요일 4장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5월 18일 일요일 5장 은밀하게 퍼져가는 소식들 -5월 19일 월요일부터 5월 20일 화요일 6장 앞에 놓인 길 -5월 21일 수요일 7장 잠깐 동안의 해방 -5월 22일 목요일 8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5월 23일 금요일 9장 도청에서 보낸 밤 -5월 24일 토요일 10장 계속되는 긴장-5월 25일 일요일 11장 장례식과 이별 -5월 26일 월요일 12장 목격 -5월 27일 화요일 13장 결과 -5월 28일 수요일부터 6월 2일 월요일 제3부 광주 이후의 삶 14장 다시 발견하기 -1980년 6월부터 8월 15장 반정부 인사와 접촉 -1980년 9월부터 1981년 7월 16장 진실 알리기 -1981년부터 현재 17장 광주항쟁에 대한 내 결론 부록 1. 팀 원버그를 추모하며-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 팀 원버그 부록 2. 세상에 알리다 - 데이비드 돌린저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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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ee Dolinger,임대운
Matt VanVolken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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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에서 하룻밤을 보낸 유일한 이방인, 임대운광주로 걸어 들어가던 대운은 환호하는 시위대가 탄 군용트럭과 버스를 만난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는데,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이들의 앞에 가고 있던 택시에서 내린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이 그에게 카메라를 요구한다. 대운은 그에게 한국말로 신분증으로 요구하며 거부하고, 그는 각목을 대운의 가슴에 들이밀며 위협한다. 겨우 상황을 모면하고, 광주로 들어간 그는 금남로에서 헬기 사격을 피하고, 잔인한 폭력의 잔해를 마주한다. 그는 친구 팀을 만나 동료 평화봉사단원들과 함께 부상자를 돕고 외신기자에게 통역하며 가능한 많은 것을 목격하고자 한다. 항쟁이 끝난 직후, 광주에 남아있던 평화봉사단원들은 모두 서울로 소집된다. 파견국의 정치적 상황에 중립을 지킨다는 평화봉사단 규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운은 해임된다. 평화봉사단 해임, 그 후더 이상 평화봉사단 신분이 아니지만 그는 어떻게든 한국에 남기로 한다. 대운이 찍은 사진은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들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가 외신에 보도되고, 그는 한국에 남아 감시를 받으면서도 반정부 인사들과 접촉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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