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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막/ 13
2막/ 43
3막/ 71
4막/ 103
5막/ 149
고골에 대하여/ 179
『감찰관』에 대하여/ 191

저자 소개 2

니콜라이 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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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i Vasilievich Gogol,알로프

1809년 폴타바 지방에서 폴란드-우크라이나계 소귀족 집안 출신으로 미르고로드 군의 작은 마을 소로친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으며, 고교 시절에는 직접 희곡을 써서 공연을 하고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본래 성인 고골리야노프스키에서 앞부분만을 따 필명으로 사용했다. 네진의 김나지움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문화 예술을 섭렵했고,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낭만주의 시와 서사시, 이야기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828년 김나지움을 마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는 관공서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나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가지고 시와 소설들을 발표했다.
1809년 폴타바 지방에서 폴란드-우크라이나계 소귀족 집안 출신으로 미르고로드 군의 작은 마을 소로친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으며, 고교 시절에는 직접 희곡을 써서 공연을 하고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본래 성인 고골리야노프스키에서 앞부분만을 따 필명으로 사용했다. 네진의 김나지움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문화 예술을 섭렵했고,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낭만주의 시와 서사시, 이야기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828년 김나지움을 마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는 관공서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나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가지고 시와 소설들을 발표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첫 소설집 『디칸카 근교의 야화』(1831~32)가 발표되면서였다.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들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고골은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푸시킨과 같은 문호들을 만났고, 1830년대 대부분을 역사, 드라마, 에세이, 픽션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실험하는 데 보냈다. 1835년에는 『아라베스크』와 『미르고로드』가 출간되었다. 『아라베스크』는 고골의 사실주의 기법이 확립된 단편 「광인일기」, 「초상화」가 포함된 글 모음집이며, 『미르고로드』는 환상성·풍자성이 도드라진 네 편의 작품을 담은 소설집이다. 「코」와 「마차」는 1836년 각각 개별적으로 문학잡지에 발표되었고, 같은 해에 『감찰관』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어 호황을 누렸다. 『감찰관』은 고골이 자신의 창작 경향을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새롭게 전향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1836년 이후로는 로마 등 주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죽은 혼』 1부를 집필하였다. 고골의 문학적 역량이 집결된 대작 『죽은 혼』 1부는 1842년 출판되어 문단에서 거의 절대적인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전집에 포함되어 발표된 「외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걸작 단편소설이다. 1840년대를 거치며 작가로서의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느낀 고골은 악에 대해 풍자한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다른, 도덕적 완성과 악에서의 부활을 그린 『죽은 혼』 2부를 집필하기 시작하나 실패한다.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단식을 단행하다 1852년 마흔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모스크바에 묻혔다. 그의 사인은 의학적으로 기아, 티푸스 혹은 우울증으로 규정되어 왔으며 그의 영혼이 유탈 이체한 상태에서 생매장되었다는 주장이 20세기 초에 제기되어 유력한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까지 그의 죽음은 출생보다 더 신비로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고골은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실주의적 묘사 기법과 풍자적 문체로 도스토옙스키를 포함한 후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니콜라이 고골의 다른 상품

최진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옮긴 책으로 『감찰관』 『유년 시절·소년 시절·청년 시절』 『첫사랑』이 있고, 지은 책으로 『은세기 러시아 예술 문화의 대화성』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공저) 『러시아 인문가이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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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268g | 127*188*20mm
ISBN13
9791190631563

책 속으로

브친스키 비상입니다!
도브친스키 예기치 못한 소식이에요!
모두 무슨, 무슨 일입니까?
도브친스키 생각도 못한 일이에요. 우리가 여관에 갔는데…….
보브친스키 (끼어든다.) 표트르 이바노비치와 여관에…….
도브친스키 (끼어든다.) 에이, 표트르 이바노비치, 내가 말할 거요.
보브친스키 에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내가 할게요, 내가……. 당신은 말도 잘 못하지 않소.
도브친스키 당신은 말하다가 늘 샛길로 빠지고, 제대로 기억도 못하잖아요.
--- p.27

흘레스타코프 훌륭한 시설입니다. 여러분이 여행객들에게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참으로 인상 깊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더군요.
시장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다른 도시의 시장과 관리들은 자기의 이득에만 신경을 쓰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당국의 방침에 따라 경계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근무하고자 하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은 안 합니다.
흘레스타코프 아침 식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배부르게 먹었어요. 여러분은 매일 그렇게 드십니까?
시장 귀하고 반가운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입니다.
흘레스타코프 나는 먹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산다는 것은 만족이라는 꽃을 꺾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생선 이름이 뭐라고요?
아르테미 필립포비치 (가까이 다가오며) 염장한 대구입니다.
흘레스타코프 아주 맛있더군요.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이 어디지요? 병원이었던가요?
아르테미 필립포비치 네, 맞습니다. 자선 병원입니다.
흘레스타코프 맞아요, 기억나요. 거기 침대들이 있었지요.
--- p.81

흘레스타코프 멍청아! 어때, 사람들이 나는 어떻게 대접하는지 봤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오시프 그럼요, 세상에!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흘레스타코프 (쓰면서) 뭐?
오시프 여길 떠야 합니다. 정말로 떠날 때가 됐다고요.
흘레스타코프 (쓰면서) 무슨 헛소리야! 왜?
오시프 그냥요. 그 사람들이야 어떻든 그냥 내버려두세요! 여기서 이틀이나 잘 놀았으니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과 오래 어울려서 뭐하겠습니까? 침이나 뱉어주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가 와서…….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좋은 말도 있으니 출발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흘레스타코프 (쓰면서) 아니, 난 아직 여기 좀 더 있고 싶어. 내일 떠나지.

--- p.123

출판사 리뷰

갑작스러운 감찰관의 출현으로 한 도시를 발칵 뒤짚는 사건이 발생한다

『감찰관』(1836)은 러시아 지방의 소도시를 프리즘으로 하여 러시아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 반영된 작품이다.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는 제사(題詞)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울 속에 훤히 드러나는 사회의 어두운 지점들은 다른 무엇도 아닌 거울이 비추는 세계 자체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나는 『감찰관』에서 당시 내가 알던 러시아의 어두운 면들을 한군데에 모아 제시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부정들,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정의가 필요한 상황들, 그것에 대고 한바탕 웃어대고 싶었다.”

라고 고골 자신이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이 희곡 작품 속의 사건은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회적이고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러시아 전체의 어두운 면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니콜라이 1세 시대(1825-1855)의 공포정치와 검열제도 하에서는 황제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간행물도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 감독권은 교육부의 중앙 검열국의 소관이었으나 실제 검열권은 황제 직속인 소위 ‘제 3부’에 있었다. 황제의 특명으로 파견된 감찰관은 이름만으로도 몹시 위협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찰관을 참칭 혹은 사칭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노브고로드 지방을 여행하던 중 그곳 유지들이 자신을 검찰관으로 오인한 일화를 푸시킨으로부터 소개받은 고골은 이 이야기를 줄거리로 『감찰관』을 집필하게 된다. 이름만으로도 우는 아이의 울음을 멎게 한다는 공포의 상징, 감찰관이 비리로 얼룩진 모 도시에 등장한다는 소문으로 이 희극은 시작되며 감찰관이 온다는 소식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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