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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프롤로그 1장 상암동 사람들 ◆ 한국 드라마 주인공들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상암에 취직한다 ◆ 철이 좀 늦게 드는 상암동 사람들 ◆ 시스템이 없는 곳 ◆ PD 본인이 시스템이다 ◆ 장인과 기성품 ◆ 죽이든 밥이든 60분은 채워야 한다 ◆ 방송은 기다려주지 않아, 아마 인생도 ◆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일들 ◆ 우리는 모두 인정이 필요하다 ◆ “너 같은 PD도 필요하지!” ◆ 그거 다 대본 아니에요 ◆ 스물다섯 스물하나 2장 뭐라도 있으면 발을 디딘다 ◆ 끝까지 가본 경험이 바꾸는 것 ◆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그 다음은 ◆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 삶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 ◆ 새로운 맛과 아는 맛 ◆ 레퍼토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진다 ◆ 세상이 좁은 게 아니에요 ◆ 기름진 피의 겸손 ◆ 인생에는 상수가 필요하다 3장 “왜 만나서 카톡을 해요” ◆ 뭐 하나, 새로운 것 하나 ◆ ‘어떻게’가 먼저 정해진 기획 ◆ 기획의 화신, MC ◆ 인터뷰의 기술 ◆ “왜 만나서 입 놔두고 톡으로 이야기해요” ◆ 가로막히지 않는 말들 ◆ 예능이 할 수 있는 일 ◆ 어떤 자막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그냥 이렇구나, 끝. 이래도 만족이에요” ◆ 생각에도 로케이션이 필요하다 ◆ 박수칠 때 못 떠난다, 원래는 ◆ 인터뷰: 타협도 결국, 함께 하는 것 4장 본격 예능 제작 전문용어(은어) 가이드 ◆ 이 바닥 사람들만 쓰는 말 ◆ 야마(명사) ◆ 마(명사)/마가 뜨다(동사) ◆ 시바이(명사)/시바이 치다(동사) ◆ 니쥬(명사)/니쥬 깔다(동사) ◆ 오도시(명사)/오도시 터지다(동사) ◆ 니마이(명사)/쌈마이(명사), 나까(명사) ◆ 바레(명사)/바레 시키다(동사), 바레 나다(동사) ◆ 데꼬보꼬(형용사) ◆ 나래비(형용사) ◆ 와꾸(명사)/와꾸 짜다(동사)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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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상암동 사람들은 단순히 옷 입는 스타일만 젊은 게 아니라 정말로 젊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악은 따로 있겠지만 취향이 아니더라도 새로 나온 아이돌 신곡은 한 번씩 챙겨 들어야 한다. 일부러 챙겨 듣지 않더라도 방송을 만들다 보면 자연히 요즘 인기인 유행가들을 여러 차례 듣게 되고, 음반을 낸 가수가 직접 들고 찾아와 건네기도 하니 새 노래를 듣지 않기가 더 어렵다. 노래뿐이랴. 요즘엔 뭐가 제일 재미있고 인기인지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찾아다니는 것이 일이니 새로운 자극과 정보로부터 숨을 수가 없다. (물론 그걸 힘써 찾아야 한다는 점이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긴 하다. 어린 나이일수록 이런 건 본능적으로 찾아낸다.) 옷차림도 실은 한몫한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외양에 스스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후드티에 청바지만 입다가 어떤 사회적 관문에 들어서며 정장을 갖춰 입게 되었다면 화장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쇼윈도 앞을 지날 때마다 문득문득 비치는 낯선 자신의 모습에 맞춰 조금씩 태도를 수정해 갔을 텐데, 대학 시절 모습 그대로 (어쩌면 돈을 벌면서 더 과감해진 모습으로) 상암동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PD들이 정장을 입을 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혼나러 갈 때뿐이다. 그래서 ‘정장 입는다’라는 말은 학창 시절 ‘교무실 불려간다’라는 말과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출연자가 수위 높은 농담을 하면 “어우, 그러다 저 정장 입어요!” 하는 식으로
--- p.30~31 반면 주먹구구라고 할 만큼 체계 없는 방송사 예능의 제작 방식은 곧 PD 한 명 한 명이 그 자체로 시스템이라는 뜻이 된다. 극한의 ‘고신뢰체계’인 것이다. 한 프로그램 안에서는 그 어떤 결정 사항도 메인 PD를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메인 MC 결정부터 사소한 자막의 디자인 하나까지 PD를 거쳐야 결정이 이루어진다. 테일러리즘의 매뉴얼과 비교하면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하지만 매뉴얼은 자동차 공장처럼 모든 공정이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예상외의 상황을 만나면 무용지물이다. 방송 제작 현장은 이야기와 사람을 다루는 곳인 만큼 모든 것이 변수이다. 심지어 예능에서는 쓰인 대로 읽는 대본도 없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매뉴얼과 시스템을 거칠 새 없이 바로 현장에서 재량껏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방송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도 없다. PD는 매순간 시스템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 p.42 PD들은 대부분 연출자이기 이전에 감상자들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이 감상자로서 좋아하는 취향이 연출자로서 만드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 경력이 일천한 나 같은 PD는 내심 고민이 드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치고 크게 흥행한 경우가 거의 없고, 반대로 크게 흥행한 작품치고 딱 내 마음 같다고 느낀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시선을 좁혀 예능국 안으로 들어와도 왠지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나와는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종종 해주는 말. “너 같은 예능 PD도 필요해!” 각각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이 듣는다. 분명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텐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표현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이 말을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필요하다’는 아무리 봐도 최소의 존재다. 커트라인의 느낌이다. 돈가스 그릇 한쪽의 샐러드이고, ‘반반 무 많이’를 외치며 치킨 시킬 때의 ‘무’이다. 그렇지, 필요하지. 샐러드 필요하고 치킨 무 필요하고. 하지만 왠지 돈가스랑 치킨은 내 자리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 나도 돈가스 되고 싶은데 --- p.76~77 많은 예술가들이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자기복제’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맨날 똑같다’라는 혹평을 듣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게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슷한 색깔로 꾸준한 인기를 얻는 이들에겐 ‘○○○표’라는 브랜드가 생기기 시작한다. 브랜드란 예측 가능성의 표식이다. 사람들은 이 혼잡한 일상 속에서 약속된 즐거움을 주는 이름에 안식을 느낀다. 앉으나 서나 자기 작품만 고민하는 예술가는 지나간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바쁘게 살다가 짬날 때 잠시 그의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 비슷한 작품이 또 나와도 그럭저럭 즐겁게 누릴 것이다. 때문에 ‘자기복제’의 수렁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고통은 어떤 면에서 약간의 자의식 과잉이다. 당연한 일이다. 예술과 창작이란 원래 예술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을 꽉 채우고도 흘러넘친 자의식이 형태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점에서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한 말은 인상적이다. KBS 토크쇼 [두드림]에서 한 청중이 “부활의 노래가 계속해서 비슷하다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다른 음악을 원하면 다른 뮤지션을 찾으라”라고 답한다. 다양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내 CD 갖고 그러냐고. 자기복제의 덫을 산뜻하게 폴짝 뛰어넘는다. 어찌 보면 이쪽이 더 단단한 자의식일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다져온 내공이 느껴진다. --- p.132~133 [톡이나 할까]도 ‘어떻게’가 먼저 정해진 기획이었다. 처음 카카오TV 서비스가 오픈하기 전 방송사에서 이직해 온 PD들에게 회사가 제일 먼저 내건 슬로건은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 즉, 모바일로 볼 때 더 재미있는 콘텐츠였다. 그래서 PD들도 몇 달 동안 ‘모바일 콘텐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일해 온 TV와 달라야 했고, 당연히 재밌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새로워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무겁게 느껴졌다. ‘모바일 콘텐츠’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여러 심상을 떠오르게 한다. 짧고 가벼운 콘텐츠. 깊이나 완성도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시류를 좇아야 하고, 몸이 가벼워야 하는 만큼 제작비도 적다. 보여주는 기능뿐이었던 TV에 비해 모바일 기기는 최신기술의 집약체이고, TV가 가구 단위로 이용하는 기기였다면 모바일은 가장 개인화된 기기이다. 개인화된 시청자 정보를 활용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체험을 선사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새롭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이런저런 기능을 덕지덕지 섞어 놓으면 역시나 ‘새롭다’보다는 ‘그래서 이게 뭐야’로 빠질 위험이 크다. 어차피 TV에서 일해 온 PD들인 만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그럼 바로 그 ‘뭐 하나’, 한 포인트만 눈에 띄게 다르면 되지 않을까. --- p.170~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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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PD의 일이란, 변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을 믿고, 한 발 물러서 의심하고, 다시 확신을 불 지펴 달려가는 일의 반복이다”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이 ‘새롭다’라고 느끼는 지점은 생각보다 사소하다. 그럼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콘텐츠 제작자들이라면 다들 숙명처럼 갖고 있다. 여느 PD들처럼 이 고민을 해오며 “사람들이 ‘새롭다’라고 느끼는 지점은 생각보다 사소하다”라는 통찰을 얻은 권성민 PD는, 여태껏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방송계의 이모저모 유용한 팁들, 방송국 입사와 콘텐츠 기획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총 4장에 걸쳐 전한다. 역할이 세분화된 외국 방송계와 비교했을 때 한국 방송계에서 PD가 하는 일의 폭은 매우 넓다. 대부분이 한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진다. 좋게 말하면 PD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는 ‘장인적 시스템’이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주먹구구’다. PD의 고락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권성민 작가는 1장 〈상암동 사람들〉에서 PD 본인이 시스템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한다. 더불어 꼭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이고,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인지, 자신에게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화무쌍한 방송계에서 살아남도록 힘을 주었는지 등을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로 전한다. “수많은 한국인들의 삶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고작 이 한 움큼 사람들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고, 그 사이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일을 하면서 방송이 단순히 PD 한 사람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은 금세 배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책임과 평가를 오롯이 받으면서,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 것’이라 생각하며 임하는 사람은 PD다.” - 본문 중에서 2장 〈뭐라도 있으면 발을 디딘다〉에서는 PD 초년생, 지망생 및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도움이 되는 창의성과 기획력,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구성력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평소 콘텐츠 기획과 연출, 제작에 관해 많은 질문과 기고, 강연 요청을 받아온 작가의 흥미로운 경험담과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풀어낸 장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영감을 얻는 방법, 새로운 맛에서 아는 맛이 되어도 계속 인기 있는 ‘아는 맛’이 되는 비결, 24시간 생각이 멈추지 않는 직업 특성상 육체적, 정신적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등등 현장을 경험한 사람만이 체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팁들을 밝힌다. “우리가 뜻대로 파악하고 조율할 수 있는 것은 불수의근인 감성이나 영감이 아니라, 진짜 수의근인 대둔근이나 외복사근에 해당하는 독서량이나 식단 같은 것들일 테다. 그러니까 영감을 얻는 비결보다는 영감을 만났을 때 그걸 단단히 붙잡고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한 몸과 환경, 그리고 거기서 여러 갈래의 가지를 쳐 나갈 수 있도록 어휘와 지식들을 쌓아놓는 것만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아닐까. 씨앗이 날아와 자리를 잡았을 때 충분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다져두는 것.” - 본문 중에서 “예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우리에겐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3장 〈왜 만나서 카톡을 해요?〉에서는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의 선구자적인 방송이자 세로형 화면에 채팅형 토크쇼라는 기발한 포맷을 가진 〈톡이나 할까?〉의 기획의도부터 제작 때 특별히 고민한 부분, ‘언어의 마술사’ 김이나 작사가를 진행자로 섭외하게 된 이야기, 기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A to Z로 담겼다. 다른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게스트들의 속마음이, 카카오톡이라는 ‘일상’의 장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도록 한 기획과 연출 장치의 힘, 인터뷰의 비결, 예능만이 가진 힘 등을 풀어냈다. 콘텐츠 포맷의 다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한 권성민 PD만의 ‘다른 방식’과 ‘다른 방법’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공감과 위로를 주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김이나 작사가와의 대담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간의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비화들뿐 아니라 ‘타협에 대해’ ‘좋은 인터뷰에 대해’ 진지하게 논한 대화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한다. “하지만 새롭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이런저런 기능을 덕지덕지 섞어 놓으면 역시나 ‘새롭다’보다는 ‘그래서 이게 뭐야’로 빠질 위험이 크다. 어차피 TV에서 일해 온 PD들인 만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그럼 바로 그 ‘뭐 하나’, 한 포인트만 눈에 띄게 다르면 되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4장 〈본격 예능 제작 전문용어(은어) 가이드〉에서는 방송국에 모르고 입사하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싶은, “정확한 정의는 모른 채 그저 ‘느낌’으로 소통하게 되는” 방송 은어들을 권성민 PD만의 위트 있는 정리와 해석으로 담았다. 현장에서 때론 고민스럽고 모호하게 터득해야 했던 정보가 깔끔하게 요약돼 있어, 방송국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요모조모 알짜배기 같은 정보다. 그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들이 매체의 경계 없이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이때에, 자신이 만든 결과물로 시험대에 오르는 미디어 업종의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보탬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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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제작진, 특히 메인 PD가 어떤 사람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직 스스로 프로 예능인이라는 믿음이 없는 나는 왜곡되거나 오해받을 만한 말 또는 부적절한 말을 걸러가며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이 없기 때문에, PD의 출연자에 대한 애정이 재미를 위한 욕구를 앞서는 사람인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정글 같은 예능판에서 혼자 정한 생존원칙이다. 더불어 혼자만의 나름 까다로운 기준들이 있는데 이걸 다 열거하면 이 책을 보는 업계 관계자들이 나를 재수 없게 볼 수 있으므로 비밀에 부치겠다. 아무튼 그 모든 요소는 보통 이전의 연출작들을 보며 유추하거나 평판을 수소문하여 알아보는데 권성민 PD는 아쉽게도(...) 그런 것을 유추할 만한 전작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와의 첫 만남의 자리는 충분히 그를 유추해볼 만한 연출작이었다. 말끔한 옷차림과 기획안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미감. 너무 절여지지도, 차갑지도 않은 정제된 말투.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나를 파악한 듯한 선물. 거절하면 나쁜 사람 되는 것처럼 감정에 호소하지 않되 자신감과 절실함이 적절히 믹스되어 있던 설득의 발언들. 시간을 오래 빼앗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던 짧은 미팅 안에 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제법 괜찮은 진행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그만큼 하나의 프로그램은, 특히 한국 예능계의 특성상 메인 PD의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가 즐겨한다는 필라테스는 내게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유연하되 탄탄한 코어를 기르는 데 특화된 운동은 내가 상상하는 그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면하는 마음』에서 그 상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는 참으로 피곤한 PD였고 나는 못지않게 피곤한 MC였다. 서로 체크할 것도 많았고 나눌 소회도 넘쳤으며 바라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피곤함을 서로 결과를 통해 입을 틀어막을 수 있어 행복했고, 대체로 이런 관계일 때 인간적으로나 프로그램으로나 결과가 좋기에 감사한다. 이 책에서 그의 지독한 디테일의 근본이 보이고 내가 볼 수 없었던 편집 과정에서의 노고가 느껴져 조금은 숙연해지긴 했다. 그를 닮은 후배 PD가 예능계에 많아진다면 나도 조금 덜 겁을 먹는 방송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김이나 (작사가,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