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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토니오 크뢰거 9
2부 해설 128 |
Thomas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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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난 지금의 내가 딱 좋아. 고치고 싶지도 않고, 고칠 수도 없어. 내가 이렇듯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고집스럽게, 다른 사람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있으니, 이런 나를 적어도 엄하게 꾸짖으며 벌을 주는 것이, 입맞춤이나 하며 음악 같은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보다 옳고 마땅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결코 초록 마차를 타고 다니는 집시족이 아니라, 점잖은 사람들, 크뢰거 영사의 가족들, 크뢰거 가문이니까……
--- pp.17~18 그는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지 않았다. 일밖에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일했다. 생활인으로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창작자로서만 주목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분장을 지우고 연기하지 않는 배우가 아무런 존재감 없듯,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게 돌아 다녔다. 그는 말없이 격리되어 보이지 않게 일했으며, 예술적 재능을 사교적인 장신구쯤으로 여기는 소인배들을 한없이 경멸했다. 그들은 가난하든 부유하든, 거칠고 해진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든 맞춤 제작한 나비넥타이를 매고 사치를 일삼든, 행복하고 사랑받고 예술가풍으로 사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좋은 작품은 오롯이 역경을 견디는 삶의 압박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생활인은 창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진정한 창작자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 pp.46~47 예술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초인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인간적인 것과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멀고 냉담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인간적인 것을 가지고 놀고, 그것과 함께 놀며, 그것을 효과적이고 품위 있게 표현할 수 있고,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되죠. ― 양식과 형식, 표현을 위한 재능은 이미 인간적인 것과는 상당히 차갑고 까다로운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정말이지, 그 어떤 인간적인 메마름과 황폐함을 전제로 합니다. 어쨌든 건강하고 강한 감정에 취향이 없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예술가가 인간이 되어 뭔가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예술가로는 끝장입니다. --- p.54 이 도시의 몇몇 집은 고향 도시의 낡은 집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활처럼 둥글게 휘고 사다리 모양으로 층이 진 합각지붕까지 똑같았다. 이 집들 문패에서는 그가 옛날부터 익히 잘 알고 있던 이름들도 발견했다. 그 이름들은 그에게 부드럽고 귀중한 무언가를 일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질책, 한탄, 그리움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사색에 잠긴 호흡으로 축축한 바다 공기를 마시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토니오는 어디에서나 지극히 파란 눈, 지극히 밝은 금발을 보았다. 그들 같은 유형이나 생김새는 그가 고향 도시에서 보낸, 그날 밤에 이상하게 아프도록 후회하며 꿈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넓은 거리에서 마주친 시선 하나, 단어의 울림 하나, 웃음 하나가 그의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 p.101 리자베타, 언젠가 나를 시민이라고, 길 잃은 시민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데, 아직도 기억하나요? 내가 전에 다른 고백을 하는 데 푹 빠져서, 나도 모르게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 사랑이라고 했을 때,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불렀죠.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근사하게 진실을 짚어냈는지, 얼마나 근사하게 시민성과 ‘삶’을 향한 나의 사랑이 하나이자 같은 것임을 짚어냈는지,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이번 여행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 p.124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어요. 그 어느 세계에도 안주하지 못하여, 그래서 좀 힘이 듭니다. 당신 예술가들은 나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려고 했죠…… 어느 쪽이 내 마음을 더 쓰라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은 어리석고, 당신 미의 숭배자들은 나를 무심하고 그리움이 없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당신들은 저 깊은 곳에서, 태어날 때부터 아예 운명적으로, 일상의 환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 어느 것보다 더 달콤하고 가장 많이 느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 p.125 눈을 감아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희미한 형체로 된 세계가 보여요. 그 세계는 정돈되어 다듬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 무리도 보여요. 그 형상들은 마법을 걸어 구원해 달라고 손짓합니다. 비극적인 것, 우스꽝스러운 것, 그 둘을 다 가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 나는 이 형상들을 진짜 좋아합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한 사랑은 금발과 파란 눈의 사람들, 밝고 활기찬 사람들,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리자베타, 이 사랑을 나무라지 마세요. 이는 선하여 열매를 맺는 사랑입니다. 그 속에는 갈망이 있고, 우울한 질투와 약간의 경멸, 그리고 온전하고 순결한 축복이 있답니다. --- pp.126~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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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한 소년이 성장기에 겪은 사랑과 아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예술관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20세기 위대한 소설가이자 독일 문학의 최고라 손꼽히는 토마스 만은, 26세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1929년, 5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이 28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토마스 만의 최고 작품이라 평하기도 하는데, 그의 모든 작품을 응축시켜 놓았다고 해도 될 만큼 예술관이 잘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은 1875년 독일 뤼벡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이러한 부모님의 기질 차이로 인해 그는 성장기에 고뇌와 방황을 겪었고, 특유의 예술적 기질로 인해 친구들과도 쉽게 교류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그의 고뇌와 방황은 자전적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술’과 ‘시민’이라고 하는 양 극단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존재하는 토니오를 통해 그는 ‘길 잃은 시민’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방황을 투영시키고 있다. 토마스 만이 전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세계관 길을 잃은 시민 토니오의 자아 찾기 토마스 만은 자기 성찰을 통해 예술을 추구해온 작가로, 『토니오 크뢰거』는 그의 예술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은 예술 세계와 시민의 세계 어느 세계에도 속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적인 것, 즉 시민적 사랑’ 없이는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이기도 한 ‘길을 잃은 시민’ 토니오에게 예술은 시민적 사랑에 의해 더욱 성숙해질 수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문학의 매력과 깊이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의식을 전하는 책 이 책은 독일 피셔 출판사가 출간한 Tonio Kroger/ Mario und der Zauberer 문고판 Fischer Taschenbuch Schulausgabe(1976)을 원본 삼아 번역했다. 쉽게 의역하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를 여러 각도로 고민하여 최대한 원본 그대로 번역하고자 했고, 음악적 색채와 운율감도 살리고자 애썼다. 문미선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졌던 고민과 원칙에 대한 생각을 2부 해설에서 상세히 밝혀두고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있는 그대로 전하여 독일 문학의 재미와 매력을 발견하게 하려는 역자의 노력이자 작품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2부 해설에서는 『토니오 크뢰거』를 중심으로 토마스 만의 삶과 작품 세계 대한 생각도 함께 전한다. 특히 불확실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요즘의 삶에서 독자들에게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의식을 전하며 토마스 만의 메시지가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되짚는다. 표지 사진은 구본창 작가의 『In the Beginning 02』(1991)이다. 달항아리로 유명한 구본창 사진작가는 80년대 순수 예술사진을 개척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왔다. 그 역시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고, 경계 속에서 자신만의 자아를 만들어왔다는 데에서 토마스 만의 예술관과 같은 결을 지니며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예술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의해 성숙될 수 있다 시민적 사랑을 지닌 예술가의 길 토니오 크뢰거는 유년시절 자신과 정 반대 성향의 한스 한젠이란 소년과 금발의 잉에보르크 홀름이라는 소녀를 사랑하지만 교류하지 못하고 끝이 난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토니오 크뢰거는 고향을 떠나 작가가 되고, 여자 친구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에게 문학과 예술가의 기질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토니오는 여행을 결심하게 되고 고향집에 들려 추억에 젖지만 수배자로 오해를 받는다. 여행길에서 사랑했던 한스와 잉에보르크를 마주치게 되고 토니오 크뢰거는 오래전의 감정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리자베타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은 예술 세계와 시민의 세계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예술성이 시민적 사랑에 의해 보다 성숙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옮긴이의 글 “『토니오 크뢰거』는 평생을 곁에 두고 이따금씩 열어보는 보물함처럼, 길을 잃었을 때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펼쳐 보는 동반자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중학교 2학년 때 선물로 받았고,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선물로 찾아오는 행운이 있기를, 그 축복에 천사가 미소 짓기를 기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