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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토마스 만 단편 전집』 제2권을 펴내면서/오청자·7
트리스탄/오청자·9
굶주리는 사람들/강미란·93
토니오 크뢰거/오청자·107
신동/이숙경·230
어떤 행복/안문영·247
예언자의 집에서/진일상·269
산고(産苦)/김효진·284
벨중족의 혈통/이신구·300
일화/조 향·357
작품 해설·367
역자 소개·390

저자 소개 9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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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토마스 만의 다른 상품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일언어문화학과 명예교수 저서로 《전후 독일문학 그룹》, 《고시 독일어》, 《독일문학과 세계문학》(공저)이 있으며, 번역서로 《240개의 크림스푼이 만든 세상》(지크프리트 렌츠), 《환상과 복종》(도로테 죌레), 《프로메테우스(외)》(요한 폴프강 폰 괴테), 《그라이펜제의 태수》(고트프리트 켈러), 《토마스 만 단편 전집 1》(공역), 《토마스 만 단편 전집 2》(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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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어교육원 선임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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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강사, 성균관대 초빙교수다.
서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릴케의 후기 시에 나타난 역설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독문학번역연구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한국괴테학회장, 한국훔볼트회장, 국제독어독문학연감(JIG)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말테의 수기』,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릴케의 편지』를 번역했고,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자들의 대화에 나타난 전일주의사상」, 「구체시의 시론적 의미」, 「생선의 언어─현대시에 나타난 언어 회의」, 「실험과 탐험─한국 독문학자의 시각에서 본 독일 자연과학자(알렉산더 폰
서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릴케의 후기 시에 나타난 역설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독문학번역연구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한국괴테학회장, 한국훔볼트회장, 국제독어독문학연감(JIG)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말테의 수기』,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릴케의 편지』를 번역했고,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자들의 대화에 나타난 전일주의사상」, 「구체시의 시론적 의미」, 「생선의 언어─현대시에 나타난 언어 회의」, 「실험과 탐험─한국 독문학자의 시각에서 본 독일 자연과학자(알렉산더 폰 훔볼트)」,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무속적 모티프」, 「판소리 적벽가의 중국 역사 수용 양상」 등 현대 독일문학과 한독 문화 교류에 관한 다수의 독문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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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등 당시 예술의 주류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하인리히 폰클라이스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연구와 강의 및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클라이스트의 단편들을 옮긴 『버려진 아이 외』로 2006년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번역서로 카프카의 『변신』, 슈니츨러의 『엘제 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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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마인츠 대학의 객원 교수를 지냈고 한국헤세학회 회장과 한국토마스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헤세와 음악』, 『독일 문학의 흐름』(공저), 『전설의 스토리텔러 토마스 만』(공저)이 있으며, 헤세와 토마스 만의 음악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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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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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94쪽 | 128*190*30mm
ISBN13
9791191758252

출판사 리뷰

작품 해설

「트리스탄」


『토마스 만 단편 전집』 제2권에 수록된 9편의 작품들을 모두 관통하는 한 가지 특징은 삶과 죽음의 대립이다, 이것은 예술성과 시민성의 갈등, 또는 예술가 기질과 시민 기질의 충돌, 삶과 예술의 대비와 갈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기본 테마는 단편 「트리스탄」에서도 나타난다. 거의 동시에 쓰인 「토니오 크뢰거」에서는 예술성이 심리적 혹은 사회적 병으로 나타나는 데 비해, 「트리스탄」에서는 육체적 질병 및 죽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패러디한 작품 「트리스탄」은 1901년 봄에 쓰여, 「토니오 크뢰거」와 함께 1903년 단편집 『트리스탄』에 발표되었다. 「트리스탄」의 중심 테마는 병과 죽음으로 기울어지는 예술성의 정신과 현실의 시민세계, 즉 넘치는 생명력으로 생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 사이의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은 작가 슈피넬과 한자동맹 도시의 시민 클뢰터얀이라는 상인을 통해 대변된다. 이 중심 테마는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 모티프’, 즉 죽음에 이르게 되는 불행한 사랑의 상징인 트리스탄 모티프를 통해 견고해진다.

「토니오 크뢰거」에서와는 달리 「트리스탄」에서는 예술가도 희화적으로 그려진다. 작가 슈피넬은 하루의 대부분을 자기 방에서 글을 쓰면서 보내는 기이한 인간으로 독자에게 소개된다. 슈피넬은 무슨 광물인가 보석인가 하는 별난 이름을 가진 작가로 요양원에서 세월을 축내고 있는 특이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는 작가이긴 하지만 책이라기보다는 노트 형식으로 써놓은, 장편소설 비슷한 것을 펴낸 것 이외에는 문학적으로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유일하게 쓴 책은 늘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 충직한 요양원의 집사 폰 오스털로 양이 일하다가 잠시 쉬면서 15분 안에 다 읽었을 정도로 폄하된다. 슈피넬이란 인간은 전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환상 속, 꿈속의 현상들만이 그에겐 현실성을 갖는다. 그는 아파서 요양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건축양식 때문에 요양원 ‘아인프리트’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주위 세계를 자기 자신의 미학적 기준에 따라 측정하며, 삶은 그에겐 모든 아름다움의 영원한 적대자요, 증오의 대상이다. 슈피넬과 대비되는 클뢰터얀은 생활력이 강하고 넘치는 생명력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거칠고 저속한 사람으로서 슈피넬이 증오하는 인물이다.

가브리엘레 클뢰터얀은 작품 시작에서는 전적으로 남편의 영향하에 있고 오로지 ‘클뢰터얀의 부인’으로 표현된다. 슈피넬은 가브리엘레라는 인물에 숨어 있는 예술가적 욕망과 동경을 발현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녀가 요양원 피아노에 앉아 슈피넬 앞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난 후 「트리스탄과 이졸데」 악보집을 발견하여 ‘그리움의 모티프’에서 출발하여 ‘사랑의 모티프’를 연주하는 동안(8장) 그녀의 본래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 신비스러운 사건은 갑자기 그녀를 지배하여 현실은 그녀의 존재에서 희미해진다. 이런 현상은 그녀를 자신감에 넘치는 남편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가브리엘레에게는 슈피넬의 냉정하고 삶에 적대적인 유미주의는 치명적 유혹이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슈피넬은 정신적, 예술적, 종국엔 육체적 몰락의 위험한 전염 균이 됨으로써 삶을 망치는 힘이 된다.

슈피넬과 클뢰터얀의 논쟁(10장~11장)에서 예술적 기질과 시민성 사이의 ‘결투’는 무승부로 끝난다. 슈피넬은 클뢰터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천박한 미식가로 표현하며 가브리엘레를 추한 세계로 데려갔다고 하면서 “고상하게 피어나는 죽음의 아름다움을 저속한 일상의 용도로 이용한다.”고 비난한다. 슈피넬이 보낸 편지를 들고 나타난 클뢰터얀은 슈피넬을 비열한 인간이라고 하고, 자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슈피넬의 주장을 반박한다. 클뢰터얀 자신도 아내가 단지 기관지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적 환상 속에 살고 있었는데, 결국 아내가 폐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서 선량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표현하면서 작가 토마스 만은 클뢰터얀에게서 일말의 인간적인 감성을 드러낸다. 이로써 이 작품의 서술자는 슈피넬이든 클뢰터얀이든,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납득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오직 가브리엘레만 순수한 예술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대가를 죽음으로 치른다.

단편 「트리스탄」에서 토마스 만은 인간적 감성이나 사고, 또 인간의 근심이나 걱정을 알려고 하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판단하는 예술가의 세계를 조야한 삶을 즐기고 기뻐하며 정신적 고민이 부재하는 시민성과 대비시켜 폭로한다. 내적으로 견고하지 못한 시민적 쾌적한 삶과 예술 사이에서 동요하는 병든 가브리엘레 클뢰터얀에게 끼치는 예술의 영향을 통해, 이 사건은 풍자로 확대되고 하나의 비극적 운명이 기본 테마에서 파생된다. 예술은 더 이상 시민적 현실의 삶에 낯선 반대 세계가 아니고 삶을 위협하는 무서운 힘이 된다. 가브리엘레 클뢰터얀이 결국 폐병으로 죽지만 그녀의 죽음은 ‘트리스탄 음악’의 신비한 마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광상 속에서 요양원의 여러 곳을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횔렌라우흐 여사의 등장에 대해 슈피넬이 “목사 부인 횔렌라우흐 여사군요.”라고 말하자 가브리엘레는 “네, 불쌍한 횔렌라우흐 여사예요.”라고 말하고 나서 악보를 넘기며 작품 전체의 마지막 부분, 즉 이졸데가 사랑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Isoldes Liebestod’을 연주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결국 자기 자신의 죽음을 부르게 된다.
― 오청자

「굶주리는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은 먼저 1902년 『미래』지에 발표되었다가 1909년에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에 실렸다. 바로 그 다음 해에 출판된 「토니오 크뢰거」의 습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애착 사이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한 아웃사이더 주인공의 정신적 갈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 데틀레프는 내향적인 사람으로서 자신의 “힘과 활기를 앗아가는 통찰”과 삶의 의미에 대한 끝임없는 예술적·정신적 추구로 인해 밝고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의 삶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동경한다. 그러던 중 어느 한 극장에서 “해맑은 파란 눈”을 가진 활달한 릴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자신은 “존재해서는 안 되고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고, 살아서는 안 되고 창조해야 하며, 사랑해서는 안 되고 인식을 해야 하는” 예술가의 과업을 안고 있기 때문에 순간을 즐기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릴리를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결국 그는 삶을 즐기는 인파와 섞여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릴리 몰래 극장을 먼저 나와 버리는데, 그 길거리에서 몰골이 누추하고 황폐한 시선을 가진 어느 한 남자와 바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화들짝 놀라게 된다. 흉측한 외모의 이 남자가 “욕구와 쓰라림, 시기와 그리움이 담긴 엄청난 경멸심을 갖고”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데틀레프를 “모피 외투에서부터 에나멜 가죽 구두까지 그의 몸을 죽 훑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데틀레프는 사고의 반전을 맞이한다. 데틀레프가 릴리를 동경했듯이, 이 낯선 남자는 데틀레프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삶과 어리석은 행복에 대한 굴욕적인 사랑에 빠져 있다.” 이렇게 자신이 속한 세계와는 반대되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에 굶주려 있고 그것을 충족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데틀레프의 말대로 “형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얘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통해 주인공이 이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비극적이고 굴욕적이며 절망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포함시키며 한계를 뛰어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강미란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1900년 12월부터 1902년 11월 까지 쓰여져 1903년 「노이에 도이체 룬트샤우」에 발표되었고, 같은 해 단편집 『트리스탄』에 실렸다. 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의 자서전으로 평가될 정도로,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의 전형적인 자전적 특징을 갖고 있다. 실제로 고향 뤼벡에서의 학창 시절 토마스 만의 동급생 아르민 마르텐스는 작품 속 한스 한젠의 모델로, 절친인 화가 파울 에렌베르크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토니오 크뢰거」는 시민적 삶을 동경하는 예술가 토니오 크뢰거가 예술성과 시민성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의 1~2장에서는 발트해에 있는 고향 뤼벡에서 체험한 토니오 크뢰거의 학창 시절이 그려진다. 토니오는 그의 모든 사랑이 푸른 눈을 가진 금발의 동성 친구 한스 한젠을 향해 있는, 시민적 세계에서의 아웃사이더다. 한스는 모든 면에서 토니오와는 상반되는 인물이다, 한스가 성찰이나 숙고와는 거리가 먼, 자연스럽고 건강한 시민의 삶을 사는 것과는 달리 토니오는 예술성과 시민성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느끼는 인물이다. 토니오는 토마스 만의 예술가상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어설픈 예술가가 아닌 진정한 예술가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렇듯 예술가가 삶과 예술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은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을 관통하는 요소이다.

이 작품의 중심 역할을 하는 부분은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와 그의 친구인 화가 리자베타와의 긴 대화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로 구성된 4장은 사실상 대화체 형식을 빌린 토니오의 독백으로서, 예술에 대한 그의 고찰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술과 삶의 관계, 그리고 그 당시의 미학에 대한, 작가 토마스 만의 독백이라고 평가된다.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는 이미 문단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고 예술적으로 매우 유능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나 관계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용기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성인인 토니오 크뢰거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통찰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아웃사이더가 되어 늘 홀로 남는다. 토니오는 예술가 사이에서도, 시민 사이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만 자신을 시민적인 것을 부정하지 않는 예술가로 본다.

토니오의 문학은 예술과 삶을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토니오 크뢰거에게 세상은 두 부분, 즉 정신과 자연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연은 시민성이고 삶이다. 그는 예술적 정서와 관련해 말하면서 “감정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따뜻한 감정이란 항상 진부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예술철학과 반대로 리자베타는 정화시키고,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문학의 효과를 토니오에게 환기시키면서 그의 사고에 반박하는 논거를 제시한다. 토니오는 사실 자신이 정신과 예술에 대한 영원한 대립 개념으로서의 삶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상적이고 예의 바르며 사랑스러운 것이 우리가 동경하는 영역이며, 그것이 바로 유혹적인 진부성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인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끊임없이 시민적 삶에 대한 사랑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리자베타는 예술가의 무가치성과 삶의 가치를 언급하는 토니오의 예술관에 대한 장황한 고백을 듣고 대화의 마지막에 이렇게 진단한다.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 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리자베타가 자신을 꿰뚫어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토니오는 “이제 난 안심하고 집으로 갈 수 있겠군요. 나는 해결되었으니까요”라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리된 입장을 표현한다.

마지막 9장에서 토니오는 리자베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새로운 예술철학을 요약해서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고, 어느 세계에서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가기가 좀 힘듭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주인공이 시민적 세계에도, 예술적 세계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예술가로서 시민적 삶을 용인하려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나로 하여금 모든 예술성 속에서, 모든 특이한 것과 모든 천재성 속에서 무엇인가 매우 모호 한 것,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알아차리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이며, 나라는 인간의 내부를 단순한 것, 진심인 것, 유쾌하고 정상적인 것, 단정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람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도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인 것입니다.”
― 오청자

「신동」

토마스 만의 단편 「신동」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간된 문학 잡지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 Neue Freie Presse』의 크리스마스 기념호(1903. 12. 25)에 발표되었다가 작품 선집 『신동』(1914)에 수록된 작품이다. 토마스 만이 자신의 단편 가운데 가장 애정했던 작품으로 전해지는 「신동」은 중편 소설 「토니오 크뢰거」(1903)의 유머러스한 후속작으로 평가받기도 하는데, 굵직굵직한 사건을 묘사한다기보다는 어린 예술가와 연주회 청중들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술하면서 반어적으로 다양한 허영심을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토마스 만의 초기 단편에 속하는 「신동」에서도 천재적인 소질과 역량을 지닌 예술가 유형이 등장한다. 비비 자켈라필라카스라는 이름의 8세 소년은 작곡도 겸하는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는 예술성과 시민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토니오 크뢰거와는 결이 다른 인물이다. 그리스 소년 비비는 시민 세계를 동경하지 않는다. 토마스 만은 그를 아기 예수나 무녀 파티아를 떠올리게 하는 예술가 유형으로 언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하늘이 주시는 재능을 지닌 비비도 오만함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섬세한 감각의 예술을 후원하는 공주와 대면한 자리에서 자신의 연주를 감탄해마지않는 공주의 질문에 맞장구를 치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바보 같은 늙은 공주’로 폄하한다. 물론 그는 청중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청중을 위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연주자이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을 때 짜릿한 행복감과 벅차오르는 은밀한 희열을 느낀다.

이 단편에서는 비비의 연주에 열광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청중들의 다양한 생각과 반응 또한 흥미롭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로는 연주를 듣기 전인데,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를 따라 박수치는 사람들, 고액의 앞쪽 자리에 착석한 고상한 사람들, 신동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최상류층 사람들, ‘꼬마 녀석’의 감미로운 연주에 감탄하는 백발의 사내, 비비의 연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중년의 피아노 여교사, 비비의 열정에 감탄하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 소녀, 성공적인 신동에게 예를 갖춰 존경을 표하는 장교, 비비를 예술가 유형으로 완성되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예술가는 어릿광대이고 비평이 최고’라는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노년의 평론가, ‘우리 모두, 창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신동’이라고 말하는 ‘머리 손질을 하지 않은 소녀’ 등이 있다. 「신동」은 ‘머리 손질을 하지 않은 소녀’가 자신이 경멸하는 세 명의 귀족 남매를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 이숙경

「어떤 행복」

토마스 만의 단편 「어떤 행복」은 ‘습작’이라는 부제와 함께 1904년 문학잡지 『노이에 룬트샤우』 첫 호에 발표되었으며, 10년 후에 간행된 작품선집 『신동』(1914)에 수록되었다. 토마스 만은 막역한 친구 쿠르트 마르텐스에게서 들은 ‘장교클럽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가 『노이에 룬트샤우』 잡지사의 위탁을 받은 단편소설에 사용하였다. 작품 서두에 일인칭 서술자가 말하는 “우리는 옛날의 피렌체에서 왔다.”는 구절은 토마스 만이 이 당시에 희곡 「피오렌차」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행 중이라 주인공의 영혼을 충분히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는 서술자의 해명은 ‘습작’이라는 부제에 대한 변명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행복」은 무도회가 열린 장교 클럽에서 기고만장한 귀족 출신 젊은 장교가 유랑합창대 ‘제비아가씨들’의 일원에게 자신의 결혼반지를 공공연히 끼워 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억누르며 자리를 박차고 홀을 떠날 때, 그녀의 남편을 단호하게 물리친 미모의 ‘제비아가씨’가 용서를 구하며 되돌려주는 남편의 반지를 받고 느끼는, 소극적이지만 뜻밖의 달콤한 ‘행복감’을 묘사하는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와 끝부분에 화자가 직접 개입하는데, 토마스 만 자신을 암시하는 이 화자는 이 소설이 다른 작품을 쓰던 도중에 잠시 집필된 작은 에피소드임을 설명하고 있다.
― 안문영

「예언자의 집에서」

「예언자의 집에서」는 1904년 빈에서 발간되는 잡지,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 Neue Freie Presse』의 의뢰를 받아 쓴 단편으로 「신동 Das Wunderkind」과 더불어 작가가 뮌헨에 체류하던 시기의 체험이 녹아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당시 뮌헨의 유명한 작가 루트비히 데를레트 Ludwig Derleth(1870-1948)와 관련된 - 문하생 블뤼멜 Rudolpf Blumel이 주최한 - 행사이다. 상징주의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 Stefan George 파에 속했던 데를레트는 1904년 예언과 전투적인 선언이 혼재하는 「선언문 Proklamationen」을 썼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서 예술이 종교의 자리에 들어서고, 예술가가 스스로 선지자, 종교적인 설교자, 성인, 심지어 새로운 예수임을 천명하는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어적인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성금요일, 인적도 드문 도시의 변두리 임대주택의 꼭대기 층에 다니엘의 선언문 낭독을 듣기 위해 열두 명의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든다.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면서 “삶과 분명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단편 소설가는 작가 토마스 만을 투영하고, 부유한 댁의 부인은 뮌헨의 메세나인 헤드비히 프링스하임 Hedwig Pringsheim, 소냐는 딸 카티아 Katia가 모델이다. 이 글이 발표된 이듬해 1905년에 카티아는 토마스 만의 부인이 된다.
― 진일상

「산고」

「산고」는 토마스 만이 1905년 프리드리히 쉴러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 서거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짐플리치씨무스』 특별호에 기고한 작품이다. 늦은 시간, 절망과 회의 속에서 홀로 깨어 치열하게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고 마침내 작품을 탄생시키는 ‘예나 작가’의 하룻밤을 토마스 만은 섬세한 내적 독백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에서 실명은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그 용모와 제스처, 집필 공간 묘사를 통해 이 작가가 쉴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이 좌절 속에 집필을 중단한 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 희곡 『발렌슈타인』(1799)이라는 사실도 ‘군대 묘사의 어려움’, ‘영웅다움의 부재’와 같은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쉴러를 ‘소박 시인과 성찰 시인’의 대립 구도에 놓고 비교하고 있다. 주인공 ‘예나 작가’ 쉴러는 ‘바이마르의 그 사람’, 곧 외적인 형식과 형상을 따라 ‘소박’한 방법으로 신처럼 수월하게 창작을 하는 괴테를 동경한다. 그럼에도 예나 작가는 내면의 순수한 추상적인 사고에서 출발하여 심상이 단어와 문장으로 표출되기까지 치열한 투쟁과 고난이 요구되는 ‘성찰 시인’의 영웅적인 창작 방법을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이 같은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고통 없이 창작하는 딜레탕트들과는 선을 긋고 진정한 예술가로서 쉴러처럼 피 흘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어렵게 창작하는 길을 택한 토마스 만의 자부심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산고」는 대중적으로 그리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토마스 만에게 갖는 중요한 의미는 25여 년 후의 자서전 『약력 Lebensabriß』(1930)과 그의 마지막 글 「쉴러 시고 Versuch uber Schiller」(195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썼던 주관적인 쉴러 연구 「산고」가 자신에게 오랫동안 공감의 느낌을 주었다”고 하면서 그가 이 작품에서 그려낸 진지한 예술가 쉴러가 평생 자신의 문학적 모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 김효진

「벨중족의 혈통」

토마스 만의 「벨중족의 혈통」은 바그너의 음악극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2부 「발퀴레」의 패러디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은 독일의 웅장한 신화의 세계와 유대계의 부유한 시민사회를 대위법적으로 연결하여 19세기 말 독일의 시민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그의 음악극 가운데서 가장 완벽하게 라이트모티프로 짜인 작품이다. 토마스 만도 「벨중족의 혈통」이란 문학 작품에다 서사적 라이트모티프를 이용함으로써 바그너의 음악극 「발퀴레」와 교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토마스 만은 「벨중족의 혈통」을 1906년에 출판하려고 했지만, 부인 카차의 가족과 분쟁에 휘말리까 봐 염려해서 출판을 보류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의 쌍둥이 남매가 근친상간을 범하는 이 소설의 내용이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부인 카차와 그녀의 쌍둥이 형제인 클라우스 간의 근친상간적인 관계로 자칫 곡해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결국 1921년에 출간되었고, 1958년이 되어서야 전집에 수록되었는데, 근친상간과 유대인 문제를 다루었다 하여 토마스 만의 작품 중 비교적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벨중족의 혈통」에서 쌍둥이 지크문트와 지클린데의 아버지 아렌홀트 씨는 독일의 아주 궁벽한 마을에서 태어나 부유한 독일 상인의 딸과 결혼하고, 대규모 광산 계획에 참여하여 “엄청난 황금 물결이 그의 계좌로 흘러들도록 조정하여” 큰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유대인 ‘시민’이다. 대저택에서 사는 그는 딸 지클린데의 결혼 일주일을 앞두고 그녀의 약혼자 폰 베케라트를 당시 상류 계층의 두 번째 아침 식사에 초대한다.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정부 청사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베케라트는 화려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예술적 둔감함으로 인해 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자 아렌홀트 씨의 자녀들로부터 무자비한 공격의 표적이 되고 ‘가장 통속적인 존재’로, 심지어는 ‘게르만인’으로 조롱을 받게 된다. “아침 식사가 끝날 때는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거의 혼이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지크문트가 베케라트에게 ‘은혜와 자비’를 바라면서 결혼식 전에 ‘단둘이서만’ 바그너의 「발퀴레」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며 허락을 요청했고, 베케라트는 그것을 공손하게 허락한다.

지크문트와 지클린데가 오페라하우스 공연장 2층 특별석에 앉자마자, 저 아래에서는 “거칠게 요동치는 전주곡이 시작된다.” 그들은 즉시 음악에 집중한다. 독일 신화에서 최고의 신인 보탄이 낳은 쌍둥이 지크문트와 지클린데의 열정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같은 이름의 쌍둥이가 2층 특별석에서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2층 특별석과 음악극이 공연되는 ‘저 아래’의 두 세계가 대위법적으로 펼쳐진다. 막이 오르면서 다른 종족과의 싸움에서 상처 입고 추적당하고 있는 지크문트가 어느 집 안으로 피신해 들어온다. 그 집에는 그의 쌍둥이 누이 지클린데가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산적에게 납치되었던 그녀는 훈딩과 강제로 결혼하여 우람한 물푸레나무가 서 있는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물푸레나무에는 보탄이 꽂은 검이 번쩍이고 있었다.

지클린데는 지친 지크문트를 보살펴주면서, 그가 “물푸레나무에 박혀 있는 검을 빼내도록 유일하게 운명 지워진 오직 그 한 사람”이길 바란다며 도취된 듯 노래한다. “둘은 곰 털가죽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며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를 서로 불러주었다.” 지크문트가 보탄이 꽂은 검을 뽑아 휘두르자, 지클린데는 극도로 도취되어 그를 향해 “자기가 바로 쌍둥이 누이 지클린데”라고 노래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긴다. 지크문트는 ”당신은 오라버니에게 신부이며 누이. 이렇게 벨중족의 혈통이 피어나기를!”이라고 노래 부르며 지클린데를 열정적으로 포옹한다. 막이 내려오면서 오케스트라는 “폭풍과 같은 맹렬한 열정을 내뿜고 날뛰면서 소용돌이치고 또 소용돌이치다가 꽝 하는 굉장한 일격과 함께 갑자기 뚝 그쳤다.” 1막이 끝나고 휴식 시간에 그들은 음악에 도취되어 체리브랜디가 든 초콜릿과 초콜릿 사탕을 빤다.

2막이 오르면서 2층 특별석에서 지크문트는 저 아래에서 열성적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지클린데의 고통스러운 노래를 들으며 “창조는 열정의 산물이고 다시금 열정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는 사실”을 통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 ‘사치와 모순’, ‘부유한 안정감과 장난스러운 증오’, “체험은 없고 단지 논리적 유희만 있으며, 어떤 감정도 없이 다만 촌철살인적인 표현만 있는 그 삶을 바라본다.”

지크문트와 지클린데는 오페라를 관람한 후 대저택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차려진 적포도주와 차를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지크문트는 침실로 들어가 침대 앞에 펼쳐진 곰 털가죽 위에 방금 본 게르만족의 무대에서처럼 몸을 눕힌다. 그때 다시 지클린데가 들어와 그들은 애무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베케라트에게 ‘복수’라도 하듯 “희망 없는 사람들처럼 서로 도취했다. 그들은 깊은 애무에 빠져들기 시작하여 그 애무가 도를 넘어섰고 성급한 몸동작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흐느낌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종족의 우월성과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아무 죄책감 없이 남매간의 근친상간을 저지른 후, 지클린데가 이제 베케라트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지크문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해. 그는 덜 통속적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이제부터는.”

토마스 만의 소설 「키 작은 프리데만 씨」, 「트리스탄」,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바그너 음악에 도취된 사랑은 죽음과 몰락을 암시하며, 이것은 베케라트와 같은 평범한 시민의 세계와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예술가의 세계이다. 하지만, 생산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는 지크문트와 같은 예술가 기질의 인간은 자신이 특별하고 고귀하다는 자부심 이외에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는 자신들의 근친상간으로 인해 이제부터 베케라트가 보다 ‘덜 통속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즉 좀 더 고귀한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에는 작가 토마스 만의 반어(反語, Ironie)가 들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생산적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화장과 외출 준비에 시간을 허비하며 예술가 흉내만 내고 있는 지크문트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베케라트라는 ‘통속적’ 시민 역시 작가 토마스 만에 의해 꽤 우스꽝스러운 인간 유형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무렵(1906년 경)의 토마스 만은 이렇게 예술가 기질과 시민 기질을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중립적, 반어적 작가였다고 하겠다.
― 이신구

「일화」

「일화 Anekdote」는 토마스 만의 초기 단편소설들 가운데 하나로, 1906년에 헤르만 헤세가 편집인으로 참여하고 있던 잡지 『3월 Marz』을 위해 쓰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부, 빛나는 외양과 다른 실제 결혼 생활의 폭로 등 등장인물의 구도와 주제상 토마스 만의 다른 초기 단편소설인 「루이스헨 Luischen」(1900)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작품의 틀 이야기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에 의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의 다양성과 개체성은 기만에 불과하다. 이를 그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아 “마야(m?y?: 산스크리트어로 망상이나 환상을 뜻함)”라고 부르며, 이 마야는 “인간의 눈을 덮고 이것을 통해 세계를 보게 하는 거짓된 베일”(『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라고 설명한다.

이 ‘표상’으로서의 세계 밑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삶을 향한 맹목적 ‘의지’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름처럼 천사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앙겔라에게 현혹된 한 소도시의 사교계 사람들 모두가 ‘마야의 베일’에 싸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서술 기법상으로 보면 틀 이야기의 화자가 어떤 친구들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모임에 참가한 누군가가 ‘진짜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한다. 대개 익명의 화자가 어떤 사람의 삶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위트 있게 묘사하며 포인트가 있는 이야기인 ‘일화(逸話, Anekdote)’라는 장르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이 단편소설에서는 이 장르의 명칭이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예술적인 관조가 삶의 본질을 잠시나마 통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듯이, ‘마야의 베일’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이 이야기는 미적 체험을 통해 독자가 환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볼 수 있다.
― 조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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