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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바람에 스치다
이경은
뮤진트리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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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오래된 골목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아무 이유가 없다 / 오래된 골목 / 가면의 고백 / 머물거나 빠져나가거나 / 벽에게 묻다 / 바람 속에서 중얼거리다 / 중독 / 진지한 때로 너무 단순한 / 가출 / 바람 속에 서다

그를 만나러 간다

인왕제색도를 찾아서 / 행복 / 아무르 / 촉루 / 101번째 모차르트 / 구멍 / 라벤더의 연인들 / 세 번의 연주회 / 우리 마음에 불이 켜질 때 / 그를 만나러 간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고흐의 창 / 멀미 / 흐름, 그 참을 수 없는 / 이중의 변 / 발칸의 장미를 만나다 / 훠어이 훠이 / 라크리모사 / 공간, 그 너머에는

그대, 바람에 스치다

꿈 속의 책상 / 내가 사는 세상에는 /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 세 번의 악수 /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 시인과 치킨, 그리고 쓸쓸함 / 한없이 기발에 가까운 상상 / 비상

그곳에 가면 그리운 사람들이 있을까

어머니의 밥상 / 골목길로 걸어가면 / 두 개의 시선 / 그 여름의 별사 / 두 아들을 위한 랩소디 / 피아노를 위한 변명 / 가을 이중주 /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겠지 / 봄날

저자 소개 1

수필가. 27년째 글을 쓴다.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에 이어 2023년 제16회 한국문학백년상을 수상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에세이, 포토에세이, 라디오드라마, 극본과 연재물을 쓰고 있다. 수필가, 방송작가, 극작가, 웹진 에디터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그저 글 쓰며 사는 사람일 뿐이다. 인생에 결핍의 시기가 있어 책에 집착하는 습이 붙었다. 삶에서 어떤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당장은 읽지 않을 책도 무모하게 사들이곤 하지만 결국엔 다 읽고 내 생각을 글로 남긴다. 무언가에 매혹된 가슴과 그것을 붙잡으려는 손끝에서 언어가 부풀
수필가. 27년째 글을 쓴다.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에 이어 2023년 제16회 한국문학백년상을 수상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에세이, 포토에세이, 라디오드라마, 극본과 연재물을 쓰고 있다. 수필가, 방송작가, 극작가, 웹진 에디터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그저 글 쓰며 사는 사람일 뿐이다.

인생에 결핍의 시기가 있어 책에 집착하는 습이 붙었다. 삶에서 어떤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당장은 읽지 않을 책도 무모하게 사들이곤 하지만 결국엔 다 읽고 내 생각을 글로 남긴다. 무언가에 매혹된 가슴과 그것을 붙잡으려는 손끝에서 언어가 부풀어오르는 과정을 즐긴다.

아홉 번째 책을 쓰고 있다. 사람과 무대가 함께하는 소통과 축제의 책을 쓰려고 한다. 새 책이 도착할 날을 향해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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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70g | 140*210*20mm
ISBN13
9788994015613

책 속으로

사방이 벽이다. 아니 벽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의 벽이요. 두 눈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것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안과 밖이라 말하고, 스스로의 경계선에 마음을 매달고 애 닳아 한다. 우주 저 편에서 보면 안으로 들어간 것도 밖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천지가 엄연히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숨 쉬는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벽을 넘으면, 어느 날 그 벽이 제 설움에 겨워 절로 무너져 내려 앉으면, 그 밖에 넓디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 「벽에게 묻다」 중에서

때론 산다는 일이 너무 단순해서 진지한 게 오히려 우스울 때가 있다. 오십이 되도록 진지하게 생각해왔던 삶과 죽음의 모습은 기막히리만큼 단순 명쾌해서 헛웃음만 나왔다. 물론 그 가운데도 마음의 흔들림이야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런 허망한 죽음의 과정은 생각만큼 결코 목이 졸린 듯 숨 막히지 않았다. 죽음 뒤의 일들은 수많은 세상의 일들의 사후처리처럼 단순하고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무슨 바쁜 스케줄의 일정표처럼 지나갔던 아버지의 죽음. 겨우 한 평의 땅에 묻히고 마는 한 사람의 죽음은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간단명료하다니.... 정말 이게 다예요? 이럴 순 없는데...
--- 「진지한 때로 너무 단순한」 중에서

집시의 눈물 한 방울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던가. 나는 어둡고 음습하리만치 우울한 시간들을 가져야만 했지만, 육신의 거칠음으로 정신의 자유로움을 스스로 섬기는 쾌락을 얻곤 했다. 그것만으로 충족하는 영혼이 그 시절 내 속에 꼿꼿하게 살아있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다녀도 외롭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질문하고 더러 까탈스럽게 성질을 부려대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유일한 동반자를 깍듯하게 대했다. 나는 정체모를 내 안의 그를 통해 먹고, 마시고, 이 세상을 통째로 받아들이느라 함께 진통을 겪으면서 꾹꾹 자라났다. 광화문의 바람과 그 애틋한 추억의 길, 전시회의 그림, 책방에 가득한 책들은 나와 내 속의 동반자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그 시절들을 살아냈다.
--- 「바람 속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영화관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가, 왜 죽을 때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에 미련을 둘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환상을 가슴 속에 남겨 두고 추억 속에서만 살 것인가 선뜻 입을 떼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사람들은 항상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를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삶이 우리에게 내미는 손길을 잡을지 말지 갈등하며 생의 한가운데서 서성이면서.... 나는 오늘 바로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상관없이 오로지 눈앞에 놓인 이 순간만을 위해 온 열정과 정성을 바치며, 눈앞의 삶을 온전히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 싶다. 삶이 아무리 지독한 허무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지라도.
--- 「라벤더의 연인들」 중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문으로 들어섰다.”

느닷없는 그 방의 광경에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크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내가 보았던 그림 속의 그 방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뭔가 다정하고 따뜻해 보이던 그림 속의 방 - 고갱과 같이 지냈던 해바라기가 있는 아를르의 노란 방보다 왠지 더 다정하게 느껴지던 그 방. 나는 환상의 실체를, 그 슬프고 긴 뒷그림자를 맥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가슴 밑이 뻐근하도록 무겁게 흔들렸다. 이제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은 초라하다는 말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공허했다.
--- 「고흐의 창」 중에서

저 바다에서 조지 윈스턴의 잔잔한 자연의 소리가 난다. 그의 피아노 소리가 바다 한가운데에 있고, 나는 그의 자연과 닮은 연주를 듣는다. 저 바다가 움직이지 않는 듯 하나 쉬지 않고 흐르듯이 내 삶도 흐르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쉬지 않고 지나가리라. 그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흐름이 내 곁을 매정하게 스쳐가고, 나는 떠나가는 연인의 소매 자락이라도 잡듯 순간 매달리고 싶어진다. 아, 이 바다의 모래 한 주먹만큼이라도 내 눈앞에 보여주기라도 한다면.... 파우스트만큼의 용기는 없지만 나도 용기를 내어 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리라.
--- 「흐름, 그 참을 수 없는」 중에서

나는 몸이 아프거나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어머니의 음식들이 생각난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면 양지나 아롱사태 소고기에다 큰 대파 대여섯 개를 자르지 않고 그저 손으로 툭 반으로 접어 넣고, 마늘은 큰 숟가락으로 듬뿍 넣어 끓인다. 한 소끔 끓으면 물에 잠깐 불린 당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우리는 그것을 ‘분탕국’이라 부르고, 그릇에다 당면을 잔치국수처럼 넣고 뜨끈한 소고기국물과 함께 먹는다. 그렇게 땀을 내며 먹으면 대개는 아프지 않고 넘어간다. 이 음식이 어머니에게 속한 남쪽의 음식인지, 아버지에게 속한 이북의 음식인지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그야말로 나에게는 훌륭한 예방 음식이다.
--- 「어머니의 밥상」 중에서

그 시간들 속에 내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세상도 그랬다. 바람이 거칠거나 서늘하게 혹은 싱그럽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때론 내가 먼저 다가가 바람을 고스란히 맞기도 했다. 삶의 긴 통로엔 언제나 짐작할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오랜 뒤에 알았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선 때론 햇빛보다 바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다음의 시간들은 또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좀 평온했으면 좋겠다. 한없이 느리고, 조용히 흘러가길.... 시간에 쫓기지 않고 책의 한 줄 한 줄을 새기며 읽고, 하루에 한 곡의 음악에게만 마음을 주고, 나지막이 생각하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가 사는 동네 길을 걷고, 그러다 아프면 길가의 작은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오래도록 창밖을 내다보거나, 바람의 향내를 맡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손 안에 담아 보고 싶다.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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