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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아무 이유가 없다 / 오래된 골목 / 가면의 고백 / 머물거나 빠져나가거나 / 벽에게 묻다 / 바람 속에서 중얼거리다 / 중독 / 진지한 때로 너무 단순한 / 가출 / 바람 속에 서다 그를 만나러 간다 인왕제색도를 찾아서 / 행복 / 아무르 / 촉루 / 101번째 모차르트 / 구멍 / 라벤더의 연인들 / 세 번의 연주회 / 우리 마음에 불이 켜질 때 / 그를 만나러 간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고흐의 창 / 멀미 / 흐름, 그 참을 수 없는 / 이중의 변 / 발칸의 장미를 만나다 / 훠어이 훠이 / 라크리모사 / 공간, 그 너머에는 그대, 바람에 스치다 꿈 속의 책상 / 내가 사는 세상에는 /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 세 번의 악수 /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 시인과 치킨, 그리고 쓸쓸함 / 한없이 기발에 가까운 상상 / 비상 그곳에 가면 그리운 사람들이 있을까 어머니의 밥상 / 골목길로 걸어가면 / 두 개의 시선 / 그 여름의 별사 / 두 아들을 위한 랩소디 / 피아노를 위한 변명 / 가을 이중주 /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겠지 / 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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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벽이다. 아니 벽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의 벽이요. 두 눈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것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안과 밖이라 말하고, 스스로의 경계선에 마음을 매달고 애 닳아 한다. 우주 저 편에서 보면 안으로 들어간 것도 밖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천지가 엄연히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숨 쉬는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벽을 넘으면, 어느 날 그 벽이 제 설움에 겨워 절로 무너져 내려 앉으면, 그 밖에 넓디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 「벽에게 묻다」 중에서 때론 산다는 일이 너무 단순해서 진지한 게 오히려 우스울 때가 있다. 오십이 되도록 진지하게 생각해왔던 삶과 죽음의 모습은 기막히리만큼 단순 명쾌해서 헛웃음만 나왔다. 물론 그 가운데도 마음의 흔들림이야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런 허망한 죽음의 과정은 생각만큼 결코 목이 졸린 듯 숨 막히지 않았다. 죽음 뒤의 일들은 수많은 세상의 일들의 사후처리처럼 단순하고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무슨 바쁜 스케줄의 일정표처럼 지나갔던 아버지의 죽음. 겨우 한 평의 땅에 묻히고 마는 한 사람의 죽음은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간단명료하다니.... 정말 이게 다예요? 이럴 순 없는데... --- 「진지한 때로 너무 단순한」 중에서 집시의 눈물 한 방울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던가. 나는 어둡고 음습하리만치 우울한 시간들을 가져야만 했지만, 육신의 거칠음으로 정신의 자유로움을 스스로 섬기는 쾌락을 얻곤 했다. 그것만으로 충족하는 영혼이 그 시절 내 속에 꼿꼿하게 살아있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다녀도 외롭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질문하고 더러 까탈스럽게 성질을 부려대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유일한 동반자를 깍듯하게 대했다. 나는 정체모를 내 안의 그를 통해 먹고, 마시고, 이 세상을 통째로 받아들이느라 함께 진통을 겪으면서 꾹꾹 자라났다. 광화문의 바람과 그 애틋한 추억의 길, 전시회의 그림, 책방에 가득한 책들은 나와 내 속의 동반자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그 시절들을 살아냈다. --- 「바람 속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영화관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가, 왜 죽을 때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에 미련을 둘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환상을 가슴 속에 남겨 두고 추억 속에서만 살 것인가 선뜻 입을 떼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사람들은 항상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를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삶이 우리에게 내미는 손길을 잡을지 말지 갈등하며 생의 한가운데서 서성이면서.... 나는 오늘 바로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상관없이 오로지 눈앞에 놓인 이 순간만을 위해 온 열정과 정성을 바치며, 눈앞의 삶을 온전히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 싶다. 삶이 아무리 지독한 허무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지라도. --- 「라벤더의 연인들」 중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문으로 들어섰다.” 느닷없는 그 방의 광경에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크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내가 보았던 그림 속의 그 방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뭔가 다정하고 따뜻해 보이던 그림 속의 방 - 고갱과 같이 지냈던 해바라기가 있는 아를르의 노란 방보다 왠지 더 다정하게 느껴지던 그 방. 나는 환상의 실체를, 그 슬프고 긴 뒷그림자를 맥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가슴 밑이 뻐근하도록 무겁게 흔들렸다. 이제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은 초라하다는 말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공허했다. --- 「고흐의 창」 중에서 저 바다에서 조지 윈스턴의 잔잔한 자연의 소리가 난다. 그의 피아노 소리가 바다 한가운데에 있고, 나는 그의 자연과 닮은 연주를 듣는다. 저 바다가 움직이지 않는 듯 하나 쉬지 않고 흐르듯이 내 삶도 흐르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쉬지 않고 지나가리라. 그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흐름이 내 곁을 매정하게 스쳐가고, 나는 떠나가는 연인의 소매 자락이라도 잡듯 순간 매달리고 싶어진다. 아, 이 바다의 모래 한 주먹만큼이라도 내 눈앞에 보여주기라도 한다면.... 파우스트만큼의 용기는 없지만 나도 용기를 내어 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리라. --- 「흐름, 그 참을 수 없는」 중에서 나는 몸이 아프거나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어머니의 음식들이 생각난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면 양지나 아롱사태 소고기에다 큰 대파 대여섯 개를 자르지 않고 그저 손으로 툭 반으로 접어 넣고, 마늘은 큰 숟가락으로 듬뿍 넣어 끓인다. 한 소끔 끓으면 물에 잠깐 불린 당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우리는 그것을 ‘분탕국’이라 부르고, 그릇에다 당면을 잔치국수처럼 넣고 뜨끈한 소고기국물과 함께 먹는다. 그렇게 땀을 내며 먹으면 대개는 아프지 않고 넘어간다. 이 음식이 어머니에게 속한 남쪽의 음식인지, 아버지에게 속한 이북의 음식인지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그야말로 나에게는 훌륭한 예방 음식이다. --- 「어머니의 밥상」 중에서 그 시간들 속에 내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세상도 그랬다. 바람이 거칠거나 서늘하게 혹은 싱그럽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때론 내가 먼저 다가가 바람을 고스란히 맞기도 했다. 삶의 긴 통로엔 언제나 짐작할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오랜 뒤에 알았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선 때론 햇빛보다 바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다음의 시간들은 또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좀 평온했으면 좋겠다. 한없이 느리고, 조용히 흘러가길.... 시간에 쫓기지 않고 책의 한 줄 한 줄을 새기며 읽고, 하루에 한 곡의 음악에게만 마음을 주고, 나지막이 생각하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가 사는 동네 길을 걷고, 그러다 아프면 길가의 작은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오래도록 창밖을 내다보거나, 바람의 향내를 맡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손 안에 담아 보고 싶다. ---「에필로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