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권민정 제주의 색 11 / 4·3 평화공원에서 16 / 팽나무가 있는 연못가 22 / 비양도 27 / 따 라비 오름에 올라 31
권태숙 제주 단상 37 / 이제는 너희 차례야 40 / 그때 무모했지만 46 / 제주에 부는 바람 51 김경혜 할머니의 젖은 손 59 / 살아가라, 눈부실 날들이여 64 김희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케렌시아 Querencia 71 / 속 썩은 매화 梅花 79 / 말 한마디 나 누지 못한 사이지만 85 / 쇠소깍 91 박찬정 어느 해 늦가을 99 / 제주를 걷다 104 손진숙 탐나라 공화국에 다녀와서 111 / 음식, 제주 115 심규호 고사리 121 / 납읍에서 126 / 제주 사물 四物 136 / 화북동 ‘시가 있는 등대길’ 유 감 143 이경은 김녕 바다, 속울음의 꽃이 피다 151 / 바람이 걸어오다 157 / 안개 속을 헤매는 것 은 164 / 아부 오름의 숨결 170 / 막연한 불안 174 이용옥 다 좋다 183 / 우공과 선달 188 / 액자 속 두 남자 195 / 꽃이 보고 싶었네 200 전용희 동문시장에서는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207 / 거기 있더라Ⅰ 213 / 거기 있더라Ⅱ 219 한혜경 정원에서 유영하다 227 / 풍경 너머 233 / 순이삼촌과 강정심과 그리고… 237 |
권민정의 다른 상품
박찬정의 다른 상품
손진숙의 다른 상품
이경은의 다른 상품
한혜경의 다른 상품
심규호의 다른 상품
|
제주의 바람은 사람을 부른다. 지인의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편한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의 조그만 학교로 옮겼다. 오랜 친구는 퇴임하고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다가 집을 샀다. 내가 제주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1989년 8월,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맨 먼저, 하늘 속으로 높이 솟은 야자수가 먼 이국에 온 듯 설렘을 주었다. 서울처럼 끈적한 바람이 아닌 훈 훈하고 고슬한 바람, 옥빛으로 빛나던 바다, 낯설어 반가운 식물들, 푸근한 오름. 휴가를 마치 고 돌아가며 나의 최애 땅이 되었다. 제주에 부는 바람은 그냥 스러지지 않는다. 손짓을 한다, 머얼리 육지를 향해. 제주가 있다고, 제주가 있다고.
--- p.56 오목하게 들어앉은 용소(龍沼)는 끝이 확 터져서 바다로 연결되었다. 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회색의 기암괴석(奇巖怪石)은 먼 산에서부터 따라온 호위병(護衛兵) 같았다. 용소 끝에서는 거대한 몸집의 바다가 다시 들어오려는 양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미친 듯이 몸을 뒤집어 허 옇게 포말(泡沫)을 뱉어내며 몸부림쳤다. 끊임없는 바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짙은 에메랄 드색 용소는 흔들림 없이 침묵했다. 냉정해 보일 만큼 고요하고 평온했다. 보통 산이 깊은 곳 은 바다가 멀고, 파도가 치는 곳에는 계곡이 없기 마련인데 여기는 둘이 공존하고 있었다. 생 전 처음 보는 오묘한 풍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저녁해가 먼바다로 설핏 넘어가고 있었다. --- p.92~93 어찌 보면 하찮은 식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생명력을 안다면 그리 말할 수 없다. 제주어에 능통한 임 선생이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 들었다는 말, “고사린 열 두 자손이여.”에서 눈치 챌 수 있다시피 고사리는 꺾고 또 꺾어도 끊임없이 자란다. 그래서 ‘열두 형제’ 또는 ‘아홉 형제’라고도 한다는데 혹시 제사상에 고사리가 빠짐없이 들어가는 이유 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닌지 궁금하다. --- p.125 두 개의 섬에 내 섬을 얹었다. 섬은 고립된 것 같지만, 그 반대로 사방이 틔어 있는 형체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붙드니 어디로든 가지 않고 떠나지 못한다. 제주의 바다가 오키나와에 닿고, 절실한 마음에 대한 절실함이 서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두 섬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착잡해진다. 나의 섬은 어쩌랴. 그 안에 부는 미친바람을, 거세 고 거친 바람을, 소리 내지 못하는 무음의 바람을 어느 주머니에 담아야 할까. 아니 어디로 날려 보내야 할는지…. 그때 바람이, 불지 않고 걸어왔다. --- p.163 그렇게 [순이삼촌]을 안 지 44년이 지났다. 그때의 분노와 충격은 당면한 문제들에 밀려 잊혀졌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 아오는 중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의식 저 아래에 가라앉혔다. 제주 에 여러 번 갔어도 가족들, 친구들과의 일정을 소비하기 바빴다. 4·3 특별법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곧 잊었고, 4·3 평화공원 이 개관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알고는 있었으나 가 볼 생각을 못 하다가, 최근 문우들과의 여 행에서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 돌아가신 이들의 위패들을 모신 위패봉안실, 행방불명된 이 들의 표석들이 무딘 내 가슴을 툭툭 쳐댔다. --- p.240~241 |
|
프롤로그
올해 초 『계간수필』로 등단한 열한 명의 작가들이 바람처럼 제주를 다녀갔다. 그윽한 정원과 상상력이 넘치는 공간을 거쳐 크고 작은 오름과 4·3의 아픈 들녘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 다. 성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린 그림 앞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고, 더 갈 곳 없는 바다 의 끝에서 누구는 울음을 터뜨리고, 또 누구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고 서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을 되살려 바람이 걸어오는 제주를 그 렸다. 한순간도 세상이 같지 않음을 실감하지만, 그래도 혹시 멈춘 바람이 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우리의 제주 여정은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아픔을 응시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11개의 색채와 모양으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제주의 바람이 더 이상 휘몰아치지 말고 고요히 걸어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어가기를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를 부드럽게 감싸며 살아갈 수 있다고 나직하게 위무하기를 우리의 글도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기를. 제주의 바람과 우리의 바람이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