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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묶으며 5
1부 ─ 세상의 시작이고 끝인 울어라 매미 14 낯선 종점에서 15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다 16 모래시계 18 멀리서 보는 세상 20 게으른 하루 22 흔적 24 강물이 흐르는 까닭 26 가지 않은 길 28 화 30 나도 사과나무를 심겠소 32 우리의 이야기들 35 산을 오르다 36 우연의 생 38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40 이 길에도 끝이 있다면 42 나는 자유인 44 추락의 자유 46 허수아비의 춤 48 겨울비 50 꿈 52 2부 ─ 아직 피지 않은 꽃 첫사랑의 청첩장 54 파란색 꿈 56 초여름 코스모스 57 젊은 날의 초상화 58 훌쩍 떠나고 싶을 때 60 비상의 꿈 62 하루의 생 65 주왕산에 올라 66 흉터 68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70 추억은 방울방울 71 그리운 한때 72 혼자 걷는다 74 눈사람 76 새벽안개 78 하얀 눈에 비친 달빛 80 하얀 눈이 하얀 머리에 쌓인다 82 친구 집 83 겨울꽃 84 인연은 바람이 되어 85 3부 ─ 부질없어 아름다운 바람 86 근심에 담긴 작은 행복 88 홍시 90 누나 91 8호선 잠실역 할머니 92 누군가 보고 싶을 때 94 한 송이 들꽃처럼 96 아내의 코 고는 소리 100 사랑이 너무 쉬웠어요 102 기억과 추억 104 사소한 행복 106 꿈이 보입니다 108 아버지를 만납니다 109 잠 못 이루는 밤 110 아랫목 밥그릇 112 할머니의 요강 113 할머니의 고독 114 아버지의 그늘 116 김 한 조각 117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118 이제 만나러 갑니다 120 네가 있어 줘서 고마워 122 회초리의 추억 124 아버지의 차가운 손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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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노트를 펼치며 어리숙하지만 순수했고, 고달팠지만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삼십대의 순정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춘의 비망록 같은 시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옮기자니 마음에 전율이 일었다. 그 시절의 아픔과 초조함이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사에 덜 여문 탓도 있으려니와 스스로 감정의 늪에 발을 디뎠던 일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다. 어쨌거나 내 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다.
---「시집을 묶으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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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부정하지 않고 가슴속에서 삭히고 삭혀
마침내 희망의 꽃을 피워내는 화해의 언어 시집 『아주 높다란 그리움』에 수록된 시들은 대부분이 청춘의 시편들이다. 길게는 50년 가까이 된, 대학 시절부터 누런 갱지 노트에 빼곡히 담아온 시들이다. 사는 일에 경황이 없어 마음 두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튀어나온 상자 하나. 그 안에 담긴 누렇게 변색된 몇 권의 노트를 찾아내고 저자는 마치 오래된 유적을 발견한 듯 기뻤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스레 한 글자 한 글자 컴퓨터로 옮겼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젊은 날은 몸부림의 연속이다.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은 동 세대의 공통분모였던 가난, 암울한 시대의 획일적 사회 분위기, 현실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여지없이 실패하는 사랑 등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생각마저 질식시키는 무한 반복의 일상’(비상의 꿈)의 지배 속에서 ‘어둠 속에서 끄적이는 이 마음의 격랑에도 진실은 있는 것일까’(이 길에도 끝이 있다면), ‘숨통을 조여오는 이 완고한 시절/ 질주하다 보면 마침내 이륙할 수 있을까’(추락의 자유)하고 회의와 희망은 뒤섞이고 ‘모자람 없는 계절에 헐거운 육신을 움직여/ 허수아비는 고독의 춤을 춘다’(허수아비의 춤)처럼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허수아비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직장에 자리를 잡고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결혼하고 첫아이를 만나고 얼마쯤 지난 시점에 이 노트는 상자에 담긴 채 구석에서 구석으로 이어지며 어둠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중장년에 이르면서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고 약간의 여유도 누려보는 사이에 혼돈과 고난의 일기 같았던 시편들은 점차 화해와 희망으로 변해가며, 삶에 대한 관조와 통찰이 담긴다. ‘삶은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 때/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나는 홀로 피었다 지는 겨울꽃이 되련다/ 고독해도 외롭지 않은’(겨울꽃), ‘인생은 바람과 같은 것/ 스치기만 할 뿐/ 흔적 없이 사라져/ 인생은 아름답다’(바람), ‘눈물이 먼지처럼 우주를 떠돌다가/ 그리움으로 뭉치면 우박으로 쏟아집니다’(누군가 보고 싶을 때) 같은 시구 속에 불안과 갈등의 시간들을 살피고 갈무리해 ‘희망’으로 싹트게 하는 ‘긍정’의 빛이 드러난다. 무릇 시인은 눈물을 거름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눈물을 부정하지 않고 가슴속에서 삭히고 삭혀 마침내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다. 고난을 회피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여 빛으로 승화시켜 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 분노하되 저주로 기울지 않고, 상처투성이여도 불구가 되지 않으며, 끝내 희망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고독해도 외롭지 않은’(겨울꽃) 같은 역설은 그래서 가능하다. 고난의 수용과 삭힘, 승화의 여정이 담박하게 담겨 있는 시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