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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선한용 박사)
서문 제1부 어거스틴의 고백록 1. 서론: 자서전 문학 2. 행복: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안에서 3. 원죄: 어린아이도 죄가 있는가? 4. 참 교육: 소년시절의 공부 5. 배 도둑질: 죄의 역동성 6. 영혼의 배고픔과 온전한 음식 7. 동정의 심리학 8. 눈물의 자식이 망할 리 없다 9. 친구의 죽음과 슬픔의 신학 10. 사람의 인정과 하나님의 인정 11. 하나님의 빛으로 영혼을 비추라 12. 태양의 일식과 영혼의 일식 13.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 14. 중보기도 15. 모니카: 신앙의 어머니 16. 암브로시우스와 알레고리 17. 거지의 행복과 거짓 행복 18. 알리피우스: 이성과 의지의 무력함 19. 마니교를 넘어서 20. 하나님의 선하심과 악의 유래 21. 플라톤철학과 기독교신앙 22. 읽는 대로 되어진다 23.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24. 의지와 행동, 습관과 필연 25. 말의 상인에서 말씀의 설교자로 26. 오스티아의 비전 27. 모니카의 죽음 28. 고백의 동기와 목적 29. 하나님을 찾아가는 기억의 변증법 30. 하나님 찾기와 행복 찾기 3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32. 성서: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는 길 33. 시간의 비밀 34. 태초의 천지창조 35. 성서해석의 방법 36. 행복: 영원한 안식 제2부 어거스틴의 철학 37. 배 도둑질의 심리학 38. 어거스틴의 언어철학과 성서해석학 39. 어거스틴의 정치철학 40. 어거스틴의 역사철학 41. 어거스틴의 시간과 영원의 철학 2부(어거스틴의 철학) 참고도서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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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의 목적은 어거스틴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독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서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고백록』의 모든 초점은 만물의 저자이신 하나님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어거스틴의 죄의 고백이 있고, 신앙의 고백이 있으며, 찬양의 고백이 있는 것이지요. 그 고백을 통하여 어거스틴의 목회적 관심과 교육적 관심이 달성되는 것입니다.---p.20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당위적 질서를 말해 주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서 또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창조질서라는 것이지요.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고 했지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인간에 대해서는 창조자요, 시간에 대해서는 영원이며, 유한에 대해서는 무한이요, 세상 만물에 대해서는 존재의 근원이요 존재 자체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해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욕망의 방향, 사랑의 운동이 창조자, 영원, 무한, 존재 자체를 향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당신 안에(in) 안식할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구절은 위 구절의 결론이지요. 어거스틴은 운동의 종착점을 편안함, 평안함이라고 말합니다. 돌이 높은 곳에서 굴러서 낮은 곳에 안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돌이 구른다는 것은 편안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고, 돌이 안착되었다는 것은 편안한 지점을 찾았다는 것일 테지요. 마찬가지로 사랑의 운동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참된 평안을 얻게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안에서 가장 편안한 위치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편안함이야말로 안식의 의미요 행복의 의미가 되겠지요.---p.26 어거스틴의 “슬픔이 없으면 동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슬픔을 사랑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음미해 보세요. 동정을 하기위해서 슬픔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슬픔이 깊으면 깊을수록 동정 또한 깊어지겠지요. 그리고 동정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타자의 슬픔이 더욱 강력해야겠지요. 이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연극에서 흘렸던 눈물, 타자의 슬픔을 동정하면서 또한 희열을 느꼈던 모순적 눈물이었지요. 여기에 어거스틴의 심리학적 통찰이 드러납니다. 그 눈물은 타자의 슬픔에서 유래한 것이니, 동정의 요소가 있음에는 틀림없겠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타자의 슬픔에서 기쁨을 맛보는, 또는 타자의 슬픔을 욕망하는 것이니 순수한 동정이 아니라 변질되고 왜곡된 동정이라는 것이지요.---pp.57-58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말하지요. 모든 감관 중에서 청각이나 후각 같은 기관과는 달리 시각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 3자의 매개가 필요하다고요. 눈 속에 시각이 있고, 물체에 빛깔이 있어도 제 3자의 매개인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 시각의 특성이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빛의 근원은 절대선의 아들인 태양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빛이 비춰져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빛이 바로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빛이 비쳐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조명설의 핵심입니다. 어거스틴은 그것을 몰랐을 때는 독서를 흥미롭게 하면서도 참되고 확실한 이해가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해 자체가 하나님의 빛을 받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영혼은 진리 자체가 아니니 진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빛에 조명되어야 함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여, 내 등불을 밝히시고,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어둠을 비추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당신의 충만한 데서 받았습니다. 당신은 세상에 온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십니다. 당신에겐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4.15.25). ---p.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