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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개정판 시인의 말 최소한 두 개의 젖 / 남자와 여자, 적과 동지 / 그리움 / 풀잎에 붙어 비 맞는 달팽이처럼 / 또 하루가 간다 / 수요일에는 / 쓸쓸한 사랑 / 어느 봄부터 흙바람이 불었는가 / 저무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다가 / 집을 찾아서 / 술 없이 보내는 세모(歲暮) / 술상을 떠나며 / 새벽 술 / 희망가 / 이 영화는 끝이 없습니다 / 칼을 갈았다 / 긴 꿈에서 깨어나니 / 냉수 한 사발 / 그 하얀 입김 / 엽서 / 뻐꾸기 / 고래 / 쥐 / 람로 / 다시 새벽을 기다리며 / 엄마 냄새 / 모닥불 속에 / 새 담배 한 갑 찔러넣고 /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 빙하를 건너며 / 귀 후벼주는 남자의 노래 / 묵티나트 / 룽따가 있는 풍경 / 바람 / 옥수수 / 산에서 / 친구에게 / 그대 치마 속에 감춘 새둥지 하나 / 오대산 설경 / 어떤 봄날 / 부부 / 원산 구경 / 원산하숙(元山下宿) / 엿장수의 노래 / 복사꽃 / 입춘 / 조팝꽃 / 개밥별 / 서해 / 허망이 희망보다 더 진실하다 / 별 / 가을에 만난 스님들 / 다시 산에서 |
金泓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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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랑이 때로 쓸쓸하다면
산의 사랑은 늘 쓸쓸하기에 ---「쓸쓸한 사랑」중에서 빗소리가 좋아서 칼을 갈았다 독한 술을 마시면서 새벽까지 갈았다 칼에게도 조금씩 술을 부어주었다 술을 머금으면 말을 하고 싶어하는 칼이었다 칼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차가운 숫돌 위에 누워서 시퍼렇게 날 선 칼은 말이 없었다 빗소리에 살갗이 하얗게 벗어지도록 시퍼렇게 몸 뒤치며 야금야금 술만 머금는 칼이었다 ---「칼을 갈았다」중에서 그 하얀 입김이 생각난다 어느 겨울 새벽 대학 병원 영안실 밖에서 운구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사람들의 입김 머리칼에 하얗게 얼어붙을 만큼 추웠지 검은 코트 깃을 세우고 검은 구두 신은 발을 동동 구르며 사람들은 추위를 추워하고 있었다 영안실 냉장고 속에 이불 없이 누워서 더이상 춥지 않은 시신들 서성이는 혼령들은 얼마나 부러웠을까 같이 밥 먹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는 하얀 입김 비린내 나는 입김 ---「그 하얀 입김」중에서 먼길 떠날 양이면 슬그머니 나오소 이발소 가듯 목욕탕 가듯 인사는 말고 손짓만 하소 그냥 저기 좀 갔다 온다고 ---「새 담배 한 갑 찔러넣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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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 시인의 말 초판 시인의 말 -시가 시답지 않게 여겨질수록 스무 해도 넘은 오래전 일이다.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신청해놓고 기다리는데 목발을 짚은 외다리 사내가 들어서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시를 읊었다. 사무실 전체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음성이었다. 제목은 ‘나무’, 그리고 자작시라고 했다. 산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무꾼이 올라와 톱으로 잘랐다는 내용이었다. 짤막한 동시 형태의 단순한 시였지만 워낙 진지한 낭송이었기에 충분한 감동이 있었다. 면사무소 사회계원이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넸고, 나는 그를 근처 대폿집에 데려가서 막걸리를 받아주었다. 그는 마시기 전에 반드시 성호를 그었으며 양은 사발을 성배처럼 받들고 거룩하게 마셨다. 그는 단 한 편의 자작시를 낭송하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자였다. 나는 그 사내보다 한술 더 떠서, 내 시집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팔도강산을 떠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를 써 시집을 낸들 그게 다 소용이 닿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다리 사내처럼 단 한 편만 갖고도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얼마나 진지한가이다. 그것이 비록 일종의 앵벌이를 위한 연기일지라도 얼마나 진지하게 연기하느냐가 중요하다. 시가 시답지 않게 여겨질수록 더욱 진지하게 붙들고 있어야겠다. 2006년 6월 김홍성 개정판 시인의 말 교정지를 통해 16년 전 시를 다시 읽다보니 마음에 안 드는 시가 많았다. 어떤 시는 빼고, 그 자리에 새로 쓴 시를 넣고 싶었다. 띄어쓰기는 편집실에서 수정한 그대로 따랐다. 2022년 9월 김홍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