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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못 간다 고려 실세의 상징, 자운선 최충헌 천하에 던진 희종의 승부수 남산리의 자운선, 활동의 송씨 최충헌에게 팔관회는 농간이었다 구실이 될까 두렵다 세상 희롱 가는 자와 남는 자 내 아비 얼굴, 잔나비 얼굴 김준의 귀환과 야별초가 된 김통정 가자, 강화도로! 마니산 참성단의 김통정과 달래 쌍봉사와 단속사 최씨 정권을 끝낸 김준 김준의 등에 꽂힌 비수 우리 죽었다 생각하고 싸우자 떠나려는 자와 붙잡는 자 별을 헤는 섬사람들 영흥도 70일과 도깨비춤 진도의 조고려, 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하다삼별초의 반간계 서남해안의 연해장성 삼별초를 찾아온 원나라 사신김통정과 아! 달래 원나라와 삼별초의 담판 분리냐 제거냐 원나라의 강공책과 김통정 구출여몽 연합군과 김통정과 달래, 진도를 향한 경주를 벌이다 힌두와 김방경, 진도 밀사 앞에서 기만하다 진도 혈전 그리고 씻김굿 혼저 옵서예 원나라와 삼별초의 전면전 악천후 속 애월포의 분투 가라 달래야, 더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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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자유를 위해 절대 고독으로 나아간 삼별초!’ 그들이 반역한 것이 아니라 고려왕 원종이 반역한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 중 삼별초만큼 장엄하면서 동시에 묻혀진 역사가 있을까? 이순신, 강감찬, 왕건, 연개소문, 광개토대왕, 주몽 등 위로 올라갈수록 왕조와 영웅 중심의 역사가 각광을 받아왔다.그러나 삼별초는 달랐다. 물론 난을 일으킨 중심은 무인이었지만 호응하는 세력은 천민들이 많았다. 당시 서남해안과 도서지방에 거주하던 향소부곡민들이 열렬히 지지했던 것이다.이 소설에서 삼별초의 핵심인 김통정도 백제 유민인 양수척의 후손으로 나온다. 그와 함께 후반기 삼별초를 주도하며 김통정과 서로 가슴에 담고 사랑한 백련사의 주승 혜성도 역시 출생이 불분명한 비구니였다.고려사에서 삼별초를 반역 세력으로 규정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고려의 건국 기조가 고구려 고토 수복이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북방을 꾸준히 개척했고, 북중국을 지배했던 거란, 여진 등의 대거 침략도 막아냈다. 이런 고려 무사의 기개는 고종 때까지 이어져, 세계 대제국을 이루어 가던 몽골도 막아냈으며, 그 선봉에 항시 삼별초가 있었다.특히 몽골 기병대는 강화해협에서 삼별초의 수군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고, 분풀이로 내지(內地)를 약탈하는 가운데 백성들의 집요한 항거에 수차례 패주해야만 했다. 그런데 고종의 아들 원종이 친몽親蒙을 결심하면서 고려의 건국 기조를 내팽겨쳤던 것이다.이에 반발한 2만여 삼별초 일행이 천여 척의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이들의 남천(南遷)은 세계 제국 원나라와 고려 건국 기조를 배신한 원종에 대한 항거였으며, 인간의 존엄한 자기 결정권에 대한 확보 의지였다.삼별초는 신분의 굴레를 거부하며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이는 일극주의(一極主義)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삶은 물론 죽음의 방식까지 스스로 선택할 주제적 자유를 갈구했으며 그렇게 살다가 갔다.특히 서남해상에서 극한의 자유와 절망감 속에 전개된 대미의 3년은 차라리 어두운 밤일수록 더 빛나는 하늘의 별처럼 서정적이었다.750여 년이 지난 삼별초 항쟁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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