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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법의 역사
헌법/행정법/국제법의 과거·현재와 미래,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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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글

I. 소개, 대상 및 방법론

1. 역사적 대상으로서의 법
2. 공법Ius publicum
3. 학문의 역사
4. 방법론적 권고 및 이해를 위한 보조수단

II. 로마법으로부터의 해방 및 헌법에 관한 법원론法源論의 재구성

1. 로마법적인 출발점
2. 새로운 여건들
3. 새로운 헌법

III. 형성 중에 있는 공법의 여러 구성요소들

1. ‘정치’
2. 국내의 여러 법원法源들

IV. 제국의 출판 상황, 자연법 및 국제법 그리고 “훌륭한 치안”

1. 제국의 출판 상황
2. 자연법과 국제법
3. 자연법과 만민법ius naturae et gentium
4. 훌륭한 치안
5. 요약

Ⅴ. 혁명과 왕정복고의 틈바구니에 놓인 공법

1. 정치세계의 변혁
2. 독일동맹
3. 독일의 일반국가법
4. 개별 영방들의 국가법과 행정법

VI. 파울교회 헌법

VII. 독일제국의 국가법

1. 법치국가 그리고 법학적 방법론

VIII. 초기 산업사회의 국가와 행정법

1. 관점의 전환
2. 주요 저자들

IX. 바이마르헌법 시대의 국가법학과 행정법학

1. ‘국민주권’의 등장
2. 국가법학의 역할
3. 베르사유 조약과 제국 내부의 통합

X. 방법론 논쟁과 일반국가학

1. 저변의 동요
2. 빈 학파
3. 방법론 논쟁 및 방향성 논쟁
4. 여러 그룹들의 형성
5. 주요 저작들

XI.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행정법

1.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
2. 여러 란트들에서의 행정법
3. 교과서들
4. 개입국가에서 행정 소재들의 증가

XII. 나치 국가와 공법

1. 권력의 이양
2. 정신적 참수
3. 법률 잡지들의 현황
4. ‘헌법’의 긴급복구
5. 불거진 여러 쟁점들
6. 국제법
7. 행정법과 행정학
8. ‘생존 배려’와 그 대차대조표

XIII. 독일의 법적 상황, 전후 복구와 두 개의 나라

1. 제로의 시간?
2. 대학의 재건
3. 여러 연구기관들과 법률 잡지

XIV. 새로운 “가치질서”와 법치국가의 재건

1. 기본법에 대한 최초의 반응, 여러 논평 및 교과서
2. 연방헌법재판소
3. 법치국가와 기본권
4. 민주주의
5. 일반국가학에서 헌법학으로

XV. 사회국가이자 개입국가로서의 연방공화국

1. 사회국가와 사회법
2. 장기적인 개입
3. 행정법의 변화
4. 대학의 팽창

XVI. 동독의 국가법, 국제법 및 행정법

1. 정치의 기본구조
2. 여러 연구기관 및 정기간행물

XVII. 유럽법 및 국제법

XVIII. 독일의 재통일

1. 외부적인 경과
2. 국가법과 국제법에 주어진 여러 과제
3. 통일의 방식
4. 대학들의 개편과 신설

XIX. 세계화 그리고 국가의 미래

1. 첫 번째 세계화
2. 두 번째 세계화
3. 민족국가의 미래
4. 헌법국가의 미래

XX. 맺는말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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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2

미하엘 슈톨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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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Stolleis

1941년 독일 라인강변의 루드비히스하펜Ludwigshafen에서 출생한 미하엘 슈톨라이스 교수는 하이델베르크대학 및 뷔르츠부르크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했고, 1969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67년 뮌헨대학에서 〈18세기 후반의 철학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국가이성, 법과 도덕〉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73년 같은 대학에서 헌법, 행정법, 근대법사 및 교회법에 걸치는 연구를 통해 교수자격논문이 통과되었다. 1974년부터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부에서 줄곧 교수로 봉직해오다가 2006년에 은퇴했고, 1991년부터는 막스플랑크 유럽법역사연구소MPIER의 소장을
1941년 독일 라인강변의 루드비히스하펜Ludwigshafen에서 출생한 미하엘 슈톨라이스 교수는 하이델베르크대학 및 뷔르츠부르크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했고, 1969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67년 뮌헨대학에서 〈18세기 후반의 철학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국가이성, 법과 도덕〉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73년 같은 대학에서 헌법, 행정법, 근대법사 및 교회법에 걸치는 연구를 통해 교수자격논문이 통과되었다. 1974년부터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부에서 줄곧 교수로 봉직해오다가 2006년에 은퇴했고, 1991년부터는 막스플랑크 유럽법역사연구소MPIER의 소장을 맡아오다가 2009년에 물러났다.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법 역사에 관한 연구업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라이프니츠 학술상(1991), 스웨덴 제국은행 학술상(1994), 발잔 학술상(2000), 헤겔 학술상(2018) 및 마이어-슈트룩만 학술상(2019)을 수상했으며, 유럽 내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생전에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기념비적인 역작은 도합 4권으로 엮은 《독일 공법의 역사》 시리즈 책이다. 그는 특히 나치사법을 연구해온 대표적인 법학자로 손꼽힌다. 2021년 3월에 급환으로 타계했다.

李鍾秀

대구 태생으로 연세대 법과대학/대학원에서 수학했고, 1999년 독일 콘스탄츠대학 법학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연세대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을 공부하고 또한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사법시험출제위원,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위원, 헌법재판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중앙선관위 선거자문위원,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및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국가행정법제위원회 등에서 위원을 맡아왔다. 헌법학뿐만 아니라 정당법과 선거법 등의 정치관계법, 헌법재판제도 및 사법개혁 등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 작업을 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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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530g | 153*224*17mm
ISBN13
9791156122395

책 속으로

법을 역사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법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 이런 것들을 관찰하려면 법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과거에 여러 기록을 작성했던 이들이 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이 법을 통해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물음들은 사회가 스스로를 역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사회의 존재와 법질서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가는 시간의 화살표 위에서 어떻게 이동해 가는지를 성찰해볼 때 비로소 제기될 수 있다
--- p.23

현재 독일에서 다뤄지고 있는 법 역사는 세 개의 주요 영역을 갖는다. 첫 번째 영역은 고대의 ‘로마법’과 이로부터 발전한 ‘보통법’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는 주로 현재의 민사법 관련 소재들, 즉 인법人法, 채권법, 물권법 및 상속법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영역은 로마법과 보통법 이전 또는 그 법들과 같은 시기에 있었던 토착적인 법질서를 포함하고 있는데, 출처를 파악하기 힘든 ‘게르만법’, 중세 초기의 ‘씨족법’, 도시와 시골의 법전 및 법정에서의 기록들과 함께 중세 및 근대 초기의 법, 그리고 여러 부분적인 특수법들로 구성된 독일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연구해왔다. 세 번째 주요 영역은 ‘교회법’인데 처음에는 ‘라틴어권’의 유럽에서 동일했지만, 16세기 종교개혁 이래로 각각 분리되어 발전해왔다
--- p.27

이 입문서는 법 역사 분야에서 지금껏 등한시되어온 좁은 영역, 즉 근대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공법公法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p.31

13세기 이후 실용화되고 중세 이탈리아에서 법규화된 로마법은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시작해서 중부 및 서부 유럽의 대학들에까지 학설뿐만 아니라 법 실무에도 적용되면서 널리 확산되었다
--- p.38

모든 생활 영역에 영향을 미친 교회 개혁, 이에 따른 교단의 분열 및 종교전쟁으로 인해 …… “공동체와 정치 규범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과 구조”가 완전히 새로운 여건 속에 놓여졌다. 중세 후기 때부터 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려왔던 이 제국은 이제 더이상 로마법과 ‘보통법’으로는 통치될 수 없었다. 제국의 정당성이 허약해지자 스스로를 입법국가라고 선언하면서 등장한 근대국가가 지금까지 적용되어온 낡은 법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p.47

새로운 교과목이 1600~1620년 사이에 꽃을 피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규모 대학들에서도 ‘공법’을 대표하는 교수를 적어도 한 사람은 두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 p.55

1600년부터 구舊제국이 끝나가던 1806년까지 ‘출판업’이 번창했다. …… 제국헌법의 법적 근원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의 법률가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떠맡았다
--- p.59

17세기가 전개되면서 제국 내에서 협의의 ‘공법’인 ‘헌법’과 더불어 광의의 공법으로 분류되는 두 개의 새로운 교과목이 자리 잡는데, ‘자연법’과 ‘유럽국제법’이 그것이다
--- p.66

자연법은 국제법과 서로 얽혀 있는 가운데 16세기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번창한다. ‘자연법’은 법률가 양성 교육과 관련되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교과목으로서,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및 공동체 속에서 자신과 타인 및 신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보편적인 법 이론을 제시했다. 특히 자연법은 헌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관한 권리와 의무도 함께 다룸에 따라 그 범위가 확장되어 ‘만민법ius gentium’과도 겹쳤다
--- p.69~70

‘공법’은 근대 초기의 법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다른 분야들과는 구별되는 사고 및 논증의 표본이 되는 가운데 생겨났다. 이는 공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면서 새로운 현실이 구성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 p.82

근대 초기에 “치안 법규들”이 급증하고 대학들에서 국가학 관련 전공들이 세분화되자 18세기 후반에는 ‘치안’의 법적인 측면을 따로 관리하게 되었고, 이로써 ‘치안법Policey-Recht’이 생겨났다. 이는 ‘헌법Konsitutionsrecht’ 또는 ‘헌법Verfassungsrecht’에 대응하는 개념인데, 1800년 무렵에는 ‘관리법Administrativrecht’ 또는 독일어로 ‘행정법Verwaltungsrecht’으로 불렸다
--- p.84

1806년 나폴레옹은 치욕적인 방법으로 프로이센을 굴복시키고 프로이센으로 하여금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을 우회적으로 강제했다. …… 이 모든 사건은 공법과 공법의 학문적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문제들이었다. 구舊제국의 헌법은 사라졌고, 새롭게 형성된 중간국가는 새로운 영토를 통합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 p.87

1850년 이후의 시기에 국가법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양한 형태의 유럽적 ‘실증주의Positivismus’라는 대세 안에서 움직였다. 즉 모든 사변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전제들을 포기하고 실증적으로 존재하는 자료들만을 갖고서 작업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법학Jurisprudenz에 적용하면, 법률 또는 적어도 실정법을 지향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비실증적인 전제들로부터 해방된 법학과도 관련될 수 있다
--- p.103

좌절되고 만 “1848년 혁명”에 실망감이 뒤따르고 민족 통일의 진척 여부가 불확실해지자 상황은 다시 경직되어갔다. 자연법과 이상주의 철학이 지닌 활기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1850~1860년에 공법은 침체 상태 또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잠복기에 있었다
--- p.103~4

19세기의 전체 독일 법학은 1848년 이후로 더더욱 “현실적인 것”, “실증적으로 주어진 것”을 강조하면서 외길로 나아갔다. 아마도 ‘일반 법률einfaches Gesetz’의 확고함에 대한 믿음 때문일 수도 있고, 물질 속에 숨어 있는 개념의 본질을 보다 더 신뢰하면서 이론적으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철학적 학문실증주의의 확고함을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173

제국헌법에는 기본권 조항이 따로 없었으나 여러 개별국가의 헌법에는 기본권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고, 이밖에도 중요한 기본권 영역들(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국적)이 여러 일반 법률을 통해 보장되고 있었다. 또한 국가와 사회의 분리가 이론적으로 인정되고 있었기에 공법에서도 사법私法상의 ‘청구권’에 상응하는 등가물을 마련하라는 압박이 주어졌다. 바로 ‘주관적 공권subjektives offentliches Recht’이다. 이것은 사실상 기본권과 유사하고, 법률적 근거가 있다면 이를 앞세워서 소송의 제기도 가능했다
--- p.114

마침내 1877년에 재판과 관련한 여러 법률-‘법원조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파산법’, ‘변호사법’, ‘소송비용법’-과 함께 ‘소송절차법’에서 법적인 통일을 이뤄냈다
--- p.114~15

노동조합들과 대규모 이익단체들이 서로 대립하고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가는 19세기 중반의 자유주의국가에서 점점 더 강하게 행동하는 개입--- p.간섭)국가Interventionsstaat로 변모해갔다. 이제 국가는 사회 정책적 및 경제 정책적인 계기와 함께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계약관계에 더욱 개입했고, 금지 사항과 허가유보 사항을 규율했으며, 조세법과 회사법을 통해 조정적으로 나섰다
--- p.115~16

독일동맹이 종료되고(1866) 독일제국이 건설된(1870/1871) 이후에도 행정은 여전히 각 란트Land들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제국의 행정은 매우 느리게 형성되었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처음 설치된 제국관청들은 차츰 완전한 정부 부처로 발전해갔고, 이 정부 부처들은 입법자들을 통해 제국법을 생산해냈다
--- p.118

행정에서 법적인 요소들을 추려내면서 그 결과로 ‘치안학Polizeiwissenschaft’과 ‘헌법Verfassungsrecht’ 교과목과의 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이때부터 비법학적인 교과목인 ‘치안학’은 ‘행정학’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얻고, 헌법은 나름의 고유한 정체성 차원에서 법치국가와 권력분립에 관한 원칙만을 획득할 수 있었다
--- p.121

1918년의 혁명은 19세기의 입헌군주정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주권을 새로운 공동체의 정당성 근거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변화는 제국과 각 란트Land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기존의 것들은 모두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 p.128

1923~1929년 바이마르 공화국은 중대한 위기를 겪는다. 인플레이션, 히틀러 쿠데타 그리고 라인란트의 위기가 1923년을 내내 어지럽혔다. 1929~1932년에는 세계 경제위기와 의회제 시스템의 중단 그리고 프로이센에 대한 제국정부의 쿠데타가 잇달았다. 이에 따라 국가법학도 함께 동요했고,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찾아 나섰다. 국가를 하나로 묶어두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가 하는 물음들과 마주했다
--- p.138

1932년은 국가긴급권의 발동을 통해 공화국을 구해내려는 대통령 독재라는 최후의 수단이 행해진 해이자 프로이센을 상대로 제국정부의 쿠데타가 행해진 해로서, 당시 최고법원인 국사재판소Staatsgerichtshof의 판결로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없었다. …… 대다수가 정치적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기껏해야 법 해석을 통해 지지하는 역할 정도만 맡아온 기존의 국가법학은 1932년 가을에 종말을 고했다
--- p.160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가쁜 숨을 마지막으로 내쉬던 시기(1929~1932)에 행정의 영역에서는 소재가 확대되고 전공이 세분화하는 등 중대한 변화가 전개되었다
--- p.165

나치즘이 득세하던 동안 공법은 실제 목적, 즉 신뢰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해석 가능한 헌법 질서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 자체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중요한 학자들이 주로 “인종적인” 이유로 대학에서 면직되었고, 대다수는 추방되기까지 했다
--- p.173

나치 법률가들은 국가와 사회 간의 경계가 총통국가와 민족공동체에서 이미 극복되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총통의 의지가 국민의 진정한 의지와 동일하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주장되는 기본권과 권리 보호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우회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들은 사적 자치가 공공의 필요와 결합된 형태로써만 존재하며, 모든 법은 공동체법으로서 총통의 의지로부터 생겨나고 총통의 의지를 통해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명이 기존의 의회민주주의적인 국가상, 권력분립 및 법치국가에 맞서서 관철되는 유일한 투쟁구호였다
--- p.184

제국의 형성은 인종 투쟁을 기반으로 했으며, 우월한 인종이 ‘공간’을 지배하고, 예속된 민족에게 “자신들의” 국제법을 따르게 했다. 이것은 모든 국제법의 기본 개념인 보편성에 대한 거부였다
--- p.186

나치 국가는 국가와 사회 사이에 그어진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국가가 미리 정해둔 정치적 목적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개인은 더이상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국가가 제공하는 급부에 종속되었다. 에른스트 포르스트호프Ernst Forsthoff는 이를 ‘생존 배려’라고 불렀다
--- p.193~4

이 시스템[나치 시스템]의 행정을 구상해온 사상적 선구자들이 떠맡아온 역할은 더욱더 문제적이다. 비록 이들에게 행정명령권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저 단순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을 도모해온 행위자들Schreibtischtater이었다. 즉 이들은 기본권을 두고서 국가에 대한 부르주아들의 불신이 표현된 것이라며 비웃으면서 기본권과 결별하는가 하면, “주관적 공권에 맞서는 투쟁”을 선언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억압을 정당화하고, “민족공동체의 권리”라는 모호한 주장을 앞세워 행정 작용의 법률 구속에서 벗어나려 하고, 권력분립 원리를 “극복하고”, 정복된 지역의 관리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행정재판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교묘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정치적인” 사안들을 배제시키거나, “사법적 심사에서 배제되는 고권작용justizloser Hoheitsakt”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이 만들었다. 말과 글로써 다각도로 이것들을 정당화하고 유포한 것은 그 자체로 능동적인 행위이고, 책임져야 마땅한 행위이다
--- p.195

법적 주체로서의 독일은 과연 사멸했는가? 영토나 국가권력 또는 인민들이 없으면 국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전적인 이론에 따르면, 이는 전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다. 독일의 국가권력이 지배해온 지역은 축소되었고, 국가권력은 해체되거나 점령 세력에게 이양되었으며,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마비되어 행위 불능의 상태였다.
반면 이에 대립하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즉 나라가 강점된 것이 결코 아니고, 연합군은 ‘최고 권위supreme authority’만을 떠맡았을 뿐이며, 비록 항복은 했지만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고, 곧 실체가 없어질 위협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독일의 국제법상 의무와 아직 회수되지 않은 채권·채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주장이었다
--- p.199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Grundgesetz’은 1949년 5월 23일에 축제 분위기 속에서 공포되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이 헌법을 잠정적인 것으로 여겼다. 독일 시민들에게는 식량 상황, 화폐 개혁, 경제 그리고 난민들의 통합이 더욱 시급한 문제였다. 그들로서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게다가 헌법 자체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즉 어떤 이들에게는 기독교적인 성격이 너무 약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사회주의 성격이 약하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사법司法국가적인 방향으로 경도되어 있다고 비춰졌다
--- p.211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연방공화국의 역사에서 기본법의 건축 구조를 크게 바꿔놓았다. 즉 헌법재판소가 통제자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행위자임을 자처한 것이다. 이는 고전적인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렇듯 헌법재판소는 정치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의회로서도 불편한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을 헌법재판소에게 떠넘길 수 있어서 정치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내는 측면도 있다
--- p.217

나치 정권이 연합군에 패하고 이 정권이 자행했던 공권 박탈, 추방 및 대량학살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특히 망명이나 저항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법치국가”가 강조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법치국가가 의미하는 바는 본질적으로 명확했다. 즉 법관의 인적?물적 독립, 예외법원과 특별법원의 설치 금지, 이중처벌의 금지, 자의적인 자유 박탈로부터의 보호, 방어권의 보장, 특히 행정법원을 통한 자의적인 국가작용으로부터의 보호였다. 국가는 인권과 시민권을 존중하고, 헌법 자체에서 정당성을 도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법적 근거에 따라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라는 격정이 담긴 슬로건과 함께 국가권력을 법제화하는 거대한 프로그램이었다
--- p.218

민주주의에 입각한 여러 관행들이 정착되고, 연립정당과 정권이 교체되는 일련의 테스트를 이겨내면서, 바이마르와 나치 시절부터 전래되어 온 반민주적, 반의회주의적인 여러 유보들이 하나씩 제거되어갔다
--- p.241

독재로부터 성장해서는 전쟁에서 패하고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 한 나라가 다시 법치국가, 사회국가 그리고 민주주의에로 단계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국가이론, 일반국가학 또는 헌법학의 변화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p.242

나치 정권이 군사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붕괴하고 나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사회보장, 기초지자체 등의 생계 배려 및 여러 복지단체의 일부 기능이 큰 어려움 속에서도 각 란트의 차원에서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1948년 화폐 개혁이 실시되고, 1949년 연방공화국이 수립되고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사회보장시스템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보장시스템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갔다(먼저 특히 전쟁희생자 배려, 전쟁피해 보상, 주택시장 규제, 빈민구제, 사회법원 설치)
--- p.252

민주적으로 구성되는 법치국가의 기본모델은 헌법전에 각인된 바와 같이 국가와 사회 간의 영역 분리에 근거하고 있다. 분리된 이 두 영역 사이의 간극은 여러 기본권을 통해 결정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부의 모든 조치에는 그 제한의 동기와 정도를 정확하게 규율하고 있는 의회의 법률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한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면, 마찬가지로 법률과 법에 기속되는 독립적인 법원들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법원들은 해당 조치에 유효한 법적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행정청이 내세우는 이 법적 근거가 성문 및 불문의 상위법과 합치하는 가운데, 즉 법치국가 원리에 합당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해당 제한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적절한지, 그리고 의도하는 결과와의 관계에서 “과잉적”인지의 여부가 심사된다. 이러한 기본모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p.259~60

기본권이 강조되는 전후 시기의 법치국가 및 사회국가적 맥락 속에서 행정을 전개한다는 것은 전체 행정법이 새로운 헌법에 짜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함을 뜻했다. 이제 행정법은 …… 실제로 “구체화된 헌법konkretisiertes Verfassungsrecht”이 되었다. 이 표현은 이제 어디서든 목도되는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 원칙”을 포함해서 행정법 내부에서 기본권 보호를 보다 섬세하고 완벽하게 가다듬고, 새로운 보호법익들과 국가의 보호의무를 개발하고, 기존의 행정법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업무처리방식들과 민사법상의 계약형식들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그간 고권적 작용을 통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어온 행정이 이제는 시민들 및 시민단체들과 함께 협력하는 행정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뜻한다
--- p.266

동독의 국가법, 행정법 및 국제법은 처음부터 국가정당인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이 미리 정해둔 여러 조건에 크게 구속되어 있었다. 모든 차원에서 당의 지침을 제대로 따르는지 여부가 감시되었다. 학생의 선발뿐만 아니라 교원임용, 학사계획, 강의교재 및 시험까지 정치적으로 관리되었다. 행정재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인민의 의사와 입법 간의 (허구적인) 동일성이 전제되기 때문에 헌법재판도 이미 이데올로기적으로 배척되었다. 또한 국가법에 대한 자유로운 논평 역시 이로써 여러 분파적인 견해가 이끌어질 수 있는 까닭에 그저 낯선 일이었다
--- p.278

‘유럽법Europarecht’은 1945년 이후에 다양한 정치적 자극들을 통해 생겨난 초국가적인 법인데, 특히 “유럽적 과업들”을 갖고서 서유럽(브뤼셀, 슈트라스부르크, 룩셈부르크)에서 탄생한 여러 기구의 법이다. 이 유럽법은 미리부터 계획된 구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정치적 합의를 통해 형성되어왔다
--- p.286

국가법과 국제법은 분단된 독일 땅에서 전개되어온 그간의 변화와 발전을 상이한 관점에서 예의주시해왔다. 동독에서는 SED(독일사회주의통일당)가 정해둔 당의 지침이 있고, 그것이 모두를 구속하는 가운데 사소한 변형쯤만이 허용되었다. 서독에서는 폭넓은 논의가 검열이 없는 가운데 이뤄졌지만, 그때그때마다의 정치적 다수의 의견이라는 혼란스런 소용돌이에 휩쓸렸다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냉전 시대의 초기부터 서로 양보하지 않고 대립해온 두 진영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는 타협하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결국 기본조약의 체결로 이끌어졌다. 이때부터 서독에서도 서서히 (분단현실을 인정하는) “두 국가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접근을 통한 변화”를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 p.296

현대의 국제법에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즉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질서의 입헌화가 이뤄질 것인지, 인권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각 문화마다 다소 변형된 모습으로 달리 적용되어야 하겠는지, 정치범죄와 전쟁범죄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국제형법’이 이미 존재하는지 또는 앞으로도 더욱 손봐야 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들이 그러하다
--- p.309

미래의 세대들은 우리가 지금껏 행해온 바와는 다르게 통치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영리하게 규제적인 법을 사용할 것이고, 다양한 추상화 단계의 여러 법규범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도 갈등이 결코 없을 수 없다. 규범성과 규범의 단절은 상호 제약적이다. 이로부터 미래에 어떤 규범들이 생겨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의 법규범들도 우리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법규범들에 그동안 덧붙여온 문명화의 힘을 그대로 펼치기를 바라고 있다

--- p.321

출판사 리뷰

통시적 관점으로 본 독일 공법사
『독일 공법의 역사―헌법/행정법/국제법의 과거?현재와 미래,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Offentliches Recht in Deutschland. Eine Einfuhrung in seine


Geschichte 16.-21. Jahrhundert』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독일의 공법公法, 즉 헌법, 행정법 및 국제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저자 미하엘 슈톨라이스Michael Stolleis(1941~2021)는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독일의 시대상과 정치 상황 그리고 학계, 대학, 연구기관 및 출판시장과 법률 잡지의 동향을 중심으로 독일 공법의 역사를 매우 세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저자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살핀 독일 공법의 역사는 번듯한 시민혁명이 없었던 후발산업국가인 독일에서 어떻게 법학이 발전할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국가주권, 법주권, 국가법인설을 통해 독일적 입헌주의를 설명하다

독일 공법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동맹체와 이를 구성하는 여러 군소 영방국가들의 지위를 법적으로 해명하는 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프랑스에 비견할 만한 성공한 시민혁명이 부재했던 독일은 19세기에 국가권력을 법에 기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고 독일적인 법치국가Rechtsstaat의 원형을 완성시켰다. ‘국민주권’ 공동체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는 최종적 지위와 권위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적 원리. 을 애써 외면하면서도 전통적인 ‘군주주권’ 주권이 군주에게 있고 군주가 국가 원수가 되는 제도. 을 더 이상 고수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상황에서 독일은 ‘국가주권’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원리. 내지는 ‘법주권’ 의회가 제정하는 법 자체에 주권이 존재한다는 주장. 정치에 대한 법의 우월을 주장하는 입장과 관련되며 법치국가사상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법인설’ 국가가 개인과 같이 법적으로 법인이며, 회사와 같은 법인에 여러 기관이 있듯이 군주는 국가라는 법인의 원수元首라는 기관이라는 주장. 을 통해 입헌주의적 국가를 설명하려 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주관적 공권론’ 개인이 국가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공법적 권리. 또한 이 무렵에 등장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그리고 공법학자들의 진단과 법실증주의

후발산업국가였던 독일은 제국주의적 식민지 확보에서 뒤쳐진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불행한 선택을 했고 패배했다. 패전은 1919년 독일 땅에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남겼다. 그러나 굴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의 부산물처럼 여겨졌던 이 공화국은 헌정상의 여러 문제를 야기했고 결국 히틀러와 나치당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불과 13년 만에 막을 내렸다. 당대의 걸출한 공법학자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빚어진 여러 문제들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주권자의 결단적 의지의 부재에서, 한스 켈젠Hans Kelsen은 규범력의 부재에서, 루돌프 스멘트Rudolf Smend는 국민통합의 부재에서 제각기 그 원인과 나름의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나치의 권력 장악과 불법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히틀러 중심의 전체주의적인 통합과 수권법 및 인종차별법 등 여러 악법惡法들 앞에서 오로지 실정법의 규범성을 강조하는 법실증주의만 들먹였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분단, 그리고 분단에 대한 공법적 분석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특히 전쟁 중 벌어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홀로코스트는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으며,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치즘이 득세하던 동안 독일은 헌법질서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법학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주요 학자들은 인종적인 이유로 대학에서 면직되었고 추방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정신적 참수斬首”(173쪽)였다. 전쟁 후 독일 시민들은 분단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분단은 여러 법적 문제들을 불러왔다. “법적 주체로서의 독일은 과연 사멸했는가?”(199쪽) 저자는 이와 관련된 문제를 크게 사멸 테제(“독일(제국)의 사멸 테제”)와 존속 테제(“독일의 연속성 테제”)로 나누어 설명한다(200쪽). 역자는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나누어 “사멸 테제에서는 패전과 점령으로 인한 소멸 이론Debellationstheorie과 분할 이론Dismembrationstheorie, 그리고 존속 테제에서는 구舊독일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놓여 있는 두 나라로 설명되는 지붕 이론Dachtheorie, 핵심국가 이론Kernstaatstheorie, 동일성 이론Identitatstheorie 등이 주창되어왔다”고 말하면서 “동?서독 간의 분단과 독일의 재통일 과정을 공법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이 부분이 “독일과 함께 줄곧 같은 분단 상황을 공유해온 우리에게 이 책이 특히나 유익”한 지점이라고 강조한다(14쪽).

서독의 번영과 재통일, 긴박했던 법적 상황

분단 이후 서독은 반쪽짜리 민족국가에서 통일 시점까지 잠정적으로 적용되는 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을 중심으로 “사회적 법치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마침내 1990년 독일의 재통일을 이뤄냈다. 여기에는 특히 기본권 보장과 법치주의의 확립 및 권력 통제를 위해 전후에 처음으로 설치된 연방헌법재판소가 크게 기여했다. 독일의 재통일 상황은 극적이었다. 1989년 11월 9일에 분단과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서독은 통일과 관련해서 2+4조약의 체결을 통해 국제정치적인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동?서독 간 통일조약을 체결하여 향후의 사회통합 및 법통합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저자는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영토 편입, 즉 흡수통일로 통일이 마무리되기까지 긴박했던 당시의 법적 상황과 법학계의 동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역사 앞에 눈감은 법률가는 위험하다”

나치 체제 하에서 독일 공법 교수들은 권력에 영합했다. 단지 두 명만 결연히 저항했을 뿐 나머지 대다수는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입을 닫거나 나치의 불법 체제를 법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을 기꺼이 떠맡았다. 전후에 진행된 탈脫나치화 작업Entnatifizierung에도 불구하고 과거 나치 체제에 복무했던 대다수 공무원과 법관들은 다시 공직에 자리 잡았고, 법학 교수들도 거의 대부분 별 탈 없이 강단으로 되돌아왔다. ‘지도자원리’ 등 나치 체제를 옹호했던 일부 법리들은 지난 1970년대 우리나라의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한평생을 역사와 법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역사 앞에 눈감은 법률가는 위험하다”(21쪽)는 경고의 글을 남겼다. 역사를 애써 외면하는 법률가들이 그저 법전에서만 실정법을 끄집어낼 경우 위험한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자 또한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방 이후 말 그대로 질곡의 헌정사를 거듭해온 우리에게도 저자의 경고는 결코 예외가 아닐 듯싶다. 4?19의거,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및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오랜 독재와 군사 정권을 극복해오면서도 권위주의 정권에 협력했던 숱한 법률가들과 법학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비판과 성찰이 없었다.”(16쪽)

사법 신뢰도가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국가, ‘법꾸라지’라는 말이 횡행하는 사회다. 이 같은 현실에서 역자의 바람처럼 “독일 법학의 영욕榮辱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이 우리 법학과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미래를 새롭게 준비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한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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