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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꿈꾸는 사람
1장. 닥나무는 종이를 낳고 / 10 2장. 양촌과 거느리 / 32 3장. 목단이 단목이요, 단목이 목단이라 / 41 4장. 배움의 그루터기 / 51 5장.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 67 6장. 삼강성에 둥지 치다 / 79 7장. 신원 야학당 / 99 8장. 하얼빈 한글학회 / 117 9장. 태풍이 몰아치다 / 124 10장. 삼강평원의 청사진 / 135 제2부. 아버지의 추억 1장. 우리 씨할 아기씨 / 144 2장. 근보 선생의 일생 / 159 3장. 대곡고등공립학교 설립 / 167 4장. 6^25 전쟁 / 181 5장. 배움의 전당 / 194 6장. 사립에서 공립으로 / 203 7장. 가시 면류관 / 211 8장. 강변 이야기 / 227 9장. 대곡중학교 교사 신축 / 233 10장. 만화당 한약방 / 240 11장. 그래도 못다 한 말 / 271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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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 읍에서 의령으로 가는 중간 지역에 호수가 내려다보였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른 다리 위에는 말 탄 일병들이 지나쳤다. 수레 끈 민초의 허리 굽은 그림자도 물결 따라 일렁였다. 호수 둔덕에는 수양버들 가지들이 한들거렸다. 그 아래에는 홍련과 백련들이 봉오리를 틔웠다. 그 호수의 서북쪽 동네에는 집집마다 목단이 화라락 타올라 꽃향기가 진동했다. 성윤은 호수 중앙에 자리 잡은 단구정에 올랐다. 정자 안에서 기다리던 하영후가 벗을 영접했다.
“호수에도 꽃이요, 집집마다 꽃이니 별천지로다.” 성윤이 찬탄을 발하자, 연잎에 입 맞추던 나비 떼들이 연꽃 속으로 파고들었다. “옛 시인이 여기서 거문고 켜며 노랠 불렀지. 하늘의 뜬구름이 호수에 마실 나와 수중 궁궐 짓는다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단구정 주위에는 숲이 우거져 새들이 지져댔다. 호수는 엄청 커서 그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산 아래까지 이어졌다. 손님의 입에서도 시가 새어나왔다. “꽃향기에 취해 이내 몸이 보약이 되네.” 연과 목단이 한약재로도 쓰여 그 동네의 수입원임을 일깨웠다. 환대가 삼강성에 둥지 튼 것도 그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수파 안효제 선생과 백산 안희제 선생, 장인 안위상의 독립 운동과 만주 농장의 일화에 감동 받아서였다. 더구나 장인이 감방으로 드나들어 딸 혼인을 놓쳤다는 사실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눈보라 친 날, 생가 처마에 매달린 성에가 햇빛에 빤짝거린 걸 보고, 딸 이름을 설영이라 지었다던 사실도 구미에 당겼다. 안설영이라니. 환대는 아내 이름을 음미하면 온몸이 데워졌다. 1936년 가을, 일본군들은 삼강성 일대의 항일 세력 토벌에 나섰다. 그에 대항한 항일연군들이 수많은 일본군들을 사살해 승리를 거뒀다. 그 토벌 작전이 실패하자, 일본군들은 이태 지난 뒤 ‘간도 특설대’를 창설했다. 나날이 불어난 항일 세력들을 그냥 둘 순 없던 중대사였다. 특설대 대원들은 거의 조선인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만주 지역 독립군들의 소탕이었다. 조선 독립군들은 조선인이 없앤다는 목적을 둔 친일파 군인들의 양성이었다. 항일연군들은 하얼빈을 중심으로 삼강성에 주둔한 만주족과 조선 독립군 연합부대였다. 밤이 깊어가자, 별들은 샛노랗게 졸고 다홍색 반달은 뜬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야학당 교실 창을 통해 하늘바라기 하던 환길이 입을 열었다. “저 반달을 보고 창을 불렀지요. 우린 서로 서로 반달이지만 어느 땐 한데 뭉친 보름달로 우뚝 서리라고.” 그에겐 분옥이 반달이요, 점새도 반달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원에서 보낸 일천여 일이 자네 일생의 전성기였군.” 한 단장이 환길의 비위를 건드렸다. “이제 겨우 서른 넘겼는데 전성기라뇨?” “그렇다면 악몽에서 벗어나 진짜백이 꿈을 꾸어야지.” “지난 천여 일이 악몽이라 여기진 않습니다. 잠시 쉬었다 가는 앉을 방석이라 여기긴 하지만.” “그래. 우리 일생은 앉을 방석을 몇 개나 거쳐야만 온전한 삶을 사는 건지.” 성 위원장의 뼈마디에선 찬바람이 일었다. 그토록 바라던 웅지가 겨우 평년작에 머문 데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겹친 탓이었다. 인건비를 건지고 일행이 하얼빈역에서 봉평으로 가는 교통비를 제하면 손에 쥔 게 없었다. 다만 고향의 논밭을 판 그 밑천이 안 새 나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봉평에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기 위해 그 밑천을 아껴두었던 것이다. 더 보탬이 되었다면 한결 수월할 텐데. 성 위원장은 아쉬움을 달랬다. “어디 거부 되려고 하얼빈 행을 했던가. 일천여 일에 좀 안 쓴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 우리 일생은 발자취에 윤기 나든지, 거저 그런 발자취인지, 좀 쓴 건지, 세 갈래로 분류하는 거잖겠어.” “거저 그런 발자취라도 만주바람 쐬어 견문 넓히고 나라 사랑에 기여도 했으니 헛된 노릇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신원평야가 머잖아 쌀농사의 그루터기로 변할 조짐이 보인 것도요.” 성 위원장이 자성론을 펼쳤다. 봉평 호반의 갯버들 가지들이 봉오리를 터뜨리면, 덕더리 동산의 진달래가 화라락 피어오른다. 사마귀도 물결 따라 음계를 그리고 덩달아 광등산의 뻐꾸기들도 가락을 틔운다. 부녀는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고 차도를 건너 덕더리 동산 자락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곳에 고등공민학교 교사를 지으려고 해.” 님의 눈빛이 다사롭게 빛난다. “학교를 짓기엔 땅이 너무 비좁지 않은가요?” 나는 동쪽의 대곡국민학교 교사와 비교해 보았다. 공민학교 택지로선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머잖아 이곳 둘레 논밭까지 자리를 넓힐 계획이야. 덕더리 동산도 넓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실제 건물이 들어서서 보는 것 하곤 다르거든. 건물 없는 택지는 비좁아 보인단다.” 나는 님의 말뜻을 이해했다. 닥밭골 창고를 짓는데 땅이 너무 비좁아 보였지만 짓고 보니 창고 안이 꽤나 넓었다. 눈대중으로 보던 택지와 실제 지은 건물 택지와는 차이가 났다. 덕더리 동산도 그 아래 토지도 당신 소유라 교사를 짓는 덴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인근의 모시골 밭들과 야산도 큰집과 우리집 자산이었다. 당신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참 많이도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나날들이었다. 25세 때 만주로 떠나기 전부터, 정확히 14세 때 대곡국민학교 교사가 봉평에 세워졌을 때부터였다. 소년은 고등공민학교 교사 모형도를 그리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장면들을 상상 했다던가. 이미 신원에서 야학당을 운영해 기본은 익힌 터였다. 그러고 보면 조부가 대곡국민학교 토지를 희사한 건 선각자로서의 자질을 지녔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열 살 때였다. 님은 한지로 묶은 책자를 내게 건넸다. “이곳에 글을 써 보렴.” 딸이 날마다 그림일기 쓴 걸 본 님은 그 내용들이 마음에 닿아서일 게다. 그 그림일기는 국민학교 3학년 담임선생이 낸 숙제였다. 담임이 이재영 선생이라 나의 일기를 보곤, 설뫼외아재를 닮아 문장이 남다르구나, 라며 대견해 했다. 한지 책자 제목은 ‘강변 이야기’였다. 나는 강변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면 할 이야기가 많았다. -아버지가 한지 책자를 주셔서 날마다 여기에 일기를 쓸 것이다. -백로가 해오라기가 아닌 걸 처음 알았다. 백로를 두루미라 했다면 더욱 정다웠을 텐데. -아씨빨래를 삶아 주는 곳을 꼭짓집이라 부른다. 1960년대 중기까지도 진주 여인들의 빨래터는 남강이었다. 꼭짓집은 아씨빨래를 하고 나면 그걸 삶기 위해 집으로 오고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그 당시 여인들의 빨래는 면 종류가 많았다. 꼭짓집 주인은 아씨빨래를 묶어 그 꼭지에 따라 수를 받았다. 남강 강변에 대여섯 곳의 꼭짓집이 있어 수익을 올렸다. 내가 일기를 쓰고 나면 화가가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가정의 서남쪽 들에 위치한 화가의 집은 풍광이 좋았다. 초가 둘레엔 대나무와 굴참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그 집 앞엔 냇물이 흘렀다. 남강의 물줄기였다. 그 화가는 국전에 입선한 인척이라 내가 오빠라 부르며 따랐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오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글재주는 뛰어나지만 그림은 신통찮아.” “오빠가 그려 줄래?” 화가의 그림을 곁들인 나의 일기는 날로 풍성해졌다. 님은 딸의 일기를 단으로 묶었다. 그런 연유로 장래 작가가 되리란 나의 꿈이 싹을 틔웠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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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아버님의 내력을 쓰고 보니, 이제야 한이 조금 풀린 듯하다. 어떻게 아버님이 진주 대곡중학교 전신인 대곡고등공민학교 설립자란 내력이 대곡중학교 연혁에서 소멸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긴 해도 대곡중학교를 발전시킨 존함에는 들어 있어, 내가 소제 선생 내력을 밝힌 책자를 꾸미는데 보탬 되었다. 처음 아버님이 대곡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사용한 임시 교사가 대곡면 봉평 바남투에 속한 봉평 동소였다. 그곳은 나의 증조부님이 봉평 동민들의 회의 장소 겸 서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 아래 대곡초등학교 교사 부지도 성일주 조부 소유인 걸 조부께서 희사해 일제 당국자들이 지어 명문 초등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불어 소제 선생이 설립한 대곡고등공민학교 교사 부지의 덕더리 동산과 그 아래 논도 당신 소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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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작가의 아버님 小濟 成煥大 선생의 삶을 그리고 있는 장편소설 『아버지』는 고려말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배경으로 인물의 모습을 다층적이고도 촘촘하게 기워내고 있다. 아버지 삶에 대한 이해와 깊이 있는 감응의 바탕 위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애달픈 마음이 덧입혀진 이 소설의 감동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이광복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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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濟 成煥大 선생을 형상화한 장편소설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정교한 미적 체계로 연결하고 표현하는 솜씨가 각별하다. 그 각별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그 기억이 현재 자신을 어떻게 성찰하게 하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그동안 발표한 모든 소설이 장편소설 『아버지』를 낳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정도로 작가의 혼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아버지’라는 기억의 윤리를 아름답게 자각하여 음미하도록 이끈다. -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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