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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저널
러시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여행 반양장
미행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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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세계문화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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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1 여행 준비
2 러시아 입국
3 모스크바 체류
4 우크라이나 여행
5 우크라이나 집단농장
6 스탈린그라드 방문
정당한 불평―로버트 카파
7 조지아 트빌리시
8 조지아 여행
9 모스크바 마지막 여정

편집 후기

저자 소개 3

존 스타인벡

관심작가 알림신청
 

John E. Steinbeck, John Ernst Steinbeck Jr.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태어나 태평양 해안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척박한 계곡에서 자랐다. 계곡과 해안은 그가 쓴 소설들의 배경이 되었다. 1919년 스탠퍼드대학에 들어가 문학과 창작 수업을 듣다가 1925년 중퇴했다. 이후 5년간 뉴욕에서 노동자와 기자로 생계를 이어갔고 첫 소설 『황금배(Cup of Gold)』(1929)를 썼다. 결혼을 하고 1935년 『토르티야 마을(Tortilla Flat)』을 출간한 후에야 작가로서 성공과 재정적 안정이 찾아온다. 이후 스타인벡은 캘리포니아의 노동계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태어나 태평양 해안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척박한 계곡에서 자랐다. 계곡과 해안은 그가 쓴 소설들의 배경이 되었다. 1919년 스탠퍼드대학에 들어가 문학과 창작 수업을 듣다가 1925년 중퇴했다. 이후 5년간 뉴욕에서 노동자와 기자로 생계를 이어갔고 첫 소설 『황금배(Cup of Gold)』(1929)를 썼다. 결혼을 하고 1935년 『토르티야 마을(Tortilla Flat)』을 출간한 후에야 작가로서 성공과 재정적 안정이 찾아온다. 이후 스타인벡은 캘리포니아의 노동계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6),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1937), 많은 이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가 그 대표작이다. 『분노의 포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2차세계대전 중 스타인벡은 전쟁에 관련된 작품을 발표한다. 『폭탄 투하(Bombs Away)』(1942), 『통조림공장 골목(Cannery Row)』(1945), 『진주(The Pearl)』(1947), 『러시아 저널(A Russian Journal)』(1948), 그다음으로 고향을 배경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1952)을 발표했다. 스타인벡은 세 번째 부인과 함께 말년을 뉴욕 등지에서 보내며 많은 곳을 여행했고, 『찰리와 함께한 미국 여행(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1962), 『미국과 미국인(America and Americans)』(1966) 등을 발표했다.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 사망했다.

존 스타인벡의 다른 상품

사진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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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apa,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Endre Erno Friedmann)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1932년 베를린에 있는 사진 통신사 데포트(Dephot)에서 암실 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재능을 인정받아 자잘한 취재를 맡기 시작한다. 12월, 망명 중인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코펜하겐 강연을 취재한다. 이때 찍은 사진들로 인해 정식 사진가로 인정 받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베를린을 떠나 부다페스트를 거쳐 파리로 건너가 1934년 세 살 연상의 공산주의자 게르타(Gerta Pohoryll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1932년 베를린에 있는 사진 통신사 데포트(Dephot)에서 암실 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재능을 인정받아 자잘한 취재를 맡기 시작한다. 12월, 망명 중인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코펜하겐 강연을 취재한다. 이때 찍은 사진들로 인해 정식 사진가로 인정 받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베를린을 떠나 부다페스트를 거쳐 파리로 건너가 1934년 세 살 연상의 공산주의자 게르타(Gerta Pohoryll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936년 사진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로버트 카파'라는 가공의 미국인 사진가 행세를 한다. 게르타는 엔드레가 찍은 사진을 성공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으로 위장해 언론사에 비싸게 판매한다. 그러다가 엔드레는 로버트 카파로, 게르타는 게르다 타로(Gerda Taro)로 완전히 이름을 바꾼다. 8월, 둘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공화파 측에서 스페인내전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9월, 코르도바 전선의 참호에서 뛰쳐나온 공화파 알코이 민병대원 페데레코 갈시아(Federico Borrell Garc?a)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 미국의 화보잡지 「라이프」에 소개되면서 카파의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1937년 7월, 그가 잠시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홀로 스페인에 남아 취재하던 게르다가 후퇴하던 공화파의 탱크에 치어 급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9월, 뉴욕을 방문한다. 1938년 중국에서 국민정부측의 선전영화 '4억의 민중' 촬영을 위하여 중국 한커우로 가 '4억의 민중' 촬영과 중일전쟁을 취재하였고, 1939년 스페인으로 돌아가 내전의 마지막을 취재한다. 9월, 2차대전이 발발하자 가족이 있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헤밍웨이, 카우보이, 미식축구 등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사진에 담는다. 1940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를 취재한다. 1942년 미국 잡지 「콜리어스」의 의뢰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연합군의 다양한 활약상을 취재한다. 1943년 북아프리카 공략, 시칠리아 공략, 나폴리 해방을 거쳐 이탈리아 반도 전투를 취재한다.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한다. 이때 찍은 사진은 총 106장이었으나, 「라이프」 암실직원의 실수로 건조도중 필름의 감광유제가 녹아버려 대부분 소실되고 10장 정도만 남는다. 이 사진들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라는 설명을 달고 「라이프」에 실린다. 8월, 연합군의 파리 수복을 취재한다. 1945년 미군 공수사단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독일로 침투해 연합군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을 보도한다. 6월, 파리에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만난다. 둘은 이후 2년간 연인으로 지낸다.

1946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 수개월간 할리우드에서 영화관련 일을 하지만, 결국 미국 영화산업에 회의를 느끼고 할리우드를 떠난다. 이후 2달간 터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1947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세이무어 등과 함께 보도사진 통신사인 매그넘(MAGNUM)을 설립한다. 존 스타인벡과 함께 소련을 방문했으며, 1948~1950년 중동전쟁을 취재한다. 1950년 파리로 돌아온 이후 3년간 매그넘의 대표로 활동한다. 1953년 미국 정부에 의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쓰고 몇 달간 여권을 중지당했으며, 1953년에는 미 FBI의 감시를 받기도 한다. 1954년 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던 중 「라이프」의 요청으로 베트남으로 건너가, '쓰디쓴 쌀'이라는 제목으로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취재기를 쓰려 했으나, 5월 25일 오후 2시 55분, 프랑스 군의 행군을 취재하다 지뢰를 밟아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 소개된 그의 책 『Sightly Out of Focus (1947)』는 종군기자를 꿈꾸었던 많은 젊은 사진작가들에게 바이블이 되었으며 그의 너무 이르고 극적인 죽음은 그를 종군기자의 신화로 만들었다. 이제 종군기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때라도 자신을 지배하려 드는 매스 미디어와 정부의 권력에 맞서 싸우려 들었다. 그것이 바로 카파이즘(Capaism)이다. 그의 동생 코넬 카파는 1966년 관심있는 사진을 위한 국제 기금(International Fund for Concerned Photography)'을 설립하였고, 1974년에는 카파의 사진을 보관할 목적으로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을 설립하였다. 미국의 전쟁기자 집단인 해외 취재클럽(Overseas Press Club)은 '로버트 카파상'을 제정하여 "대담한 용기와 진취적 정신이 이뤄내는 최고의 외신 사진"을 촬영한 사진기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로버트 카파의 다른 상품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 한국의 대표적 슬라브·우크라이나 연구자로서, 학문과 현실 외교를 아우르는 독특한 경력을 지녔다. 고려대 졸업 후 버클리대와 브라운대에서 수학하고 198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하버드대 러시아연구소와 우크라이나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귀국 후 건국대와 고려대에서 러시아·슬라브학 연구를 이어왔으며, 1996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명예교수이다. 2006~2008년 주 우크라이나 대사(조지아·몰도바 겸임)로 활동하며 외교 현장 경험을 학문에 접목했다. 주요 저서로 『우크라이나 현대사 1914-2010』 『코카서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 한국의 대표적 슬라브·우크라이나 연구자로서, 학문과 현실 외교를 아우르는 독특한 경력을 지녔다. 고려대 졸업 후 버클리대와 브라운대에서 수학하고 198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하버드대 러시아연구소와 우크라이나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귀국 후 건국대와 고려대에서 러시아·슬라브학 연구를 이어왔으며, 1996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명예교수이다. 2006~2008년 주 우크라이나 대사(조지아·몰도바 겸임)로 활동하며 외교 현장 경험을 학문에 접목했다. 주요 저서로 『우크라이나 현대사 1914-2010』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가 있으며, 번역서 『체르노빌 히스토리』 『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 『평화를 끝낸 전쟁』 등을 통해 세계사와 국제 정치의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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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130*210*30mm
ISBN13
9791192004112

출판사 리뷰

이방인의 눈으로 포착한 전쟁의 참상과 그곳의 사람들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대표적으로 말해주듯, 러시아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광활한 땅이다. 특히 2000년대에도 가열된 2008년 그루지야(조지아) 전쟁,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 러시아 전쟁사를 뼈아프게 보여준다. 이 책 『러시아 저널』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비추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추는 특별한 기록이다. 따라서 존 스타인벡과 로버트 카파가 생생히 증언하는 전쟁의 폐해는 70여 년이 지났지만, 자연스레 지금 이곳의 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2차세계대전으로 철저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예프시와 주변 집단농장을 방문한 부분을 읽다 보면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전쟁 복구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인해 마을에 청년들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나마 살아 귀환한 젊은이도 불구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모스크바와 비교해도 낙천적인 분위기와 손님 환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탁월한 유머로 잘 묘사되어 있다.”―「옮긴이 서문」

스타인벡과 카파는 여행 취재에 앞서 원칙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주관적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적자는 것. 그 결과, 이들의 기록은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 이념적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다른 서구 보도와 달리 이념적 집착이 없는 진실된 저널리즘의 모습을 성취한다. 스타인벡과 카파는 2차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나온 공장 노동자, 공무원, 소작농의 암울한 현실을 보도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투쟁을 기록해야 하는 세상의 요구에 진지하게 답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친밀하고 우정 어린 모습을 엿보게 된다.

『러시아 저널』이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이방인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의 가해자 독일이나 피해자 소련이 아닌 제3의 눈, 미국인의 관점을 제공해준다. 특히 스타인벡과 카파가 여행 전 다짐했던 순수한 눈, 즉 “부정적이거나 호의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한 눈으로 바라본 러시아의 사회와 생활상을 전달해준다. 자신들이 만든 폐허를 지나는 독일군이나 폐허를 재건하는 일에 동원된 독일 포로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과 매일 공원의 아버지 묘지를 찾아오는 스탈린그라드의 어린 소년을 연민도, 감상도 배제하고 볼 수 있는 눈이 그것이다. 그 눈은 단지 사실을 말한다.

각각의 도시에서 목격한 참상의 광경도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독일군들이 수천 구의 시체를 갱도에 쏟아 넣어서 갱구를 열 수 없는 광산들이 있을 정도”라고 진술하는 우크라이나 여행 대목은, 2022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추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장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변변한 농기계도 없이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도시 재건을 위해 벽돌을 일일이 옮겨 건물을 짓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 가장 처참했던 격전지 스탈린그라드의 상황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집이 다 무너져 동굴 같은 돌 더미 속에 살면서도 아침이면 깨끗하게 단장하고 출근하는 스탈린그라드 사람들, 땅굴에서 기어 나와 끼닛거리를 찾는 미친 소녀, 손수 아파트를 짓는 노동자들 등 스타인벡과 카파의 시선은 한결같이 전쟁의 참상 보도와 함께 이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에 복귀하려는 그곳 사람들의 꿋꿋한 삶의 의지를 담아낸다.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던 조지아지만, 조지아 여행은 그저 행복한 시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수도 트빌리시를 경유하여 곳곳에서 발견되는 여러 고대 요새와 좁은 협곡들은 과거의 전쟁과 침략을 상기시키는 의미심장한 요소들이다. 조지아의 차밭 인근 탁아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고아는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조지아가 전쟁이 지나간 나머지 소련 지역에 책임감을 느끼고 아이들을 입양했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조지아에서 또한 전쟁의 여파를 본다.

자유롭고 진실된 저널리즘과 전쟁보다 강한 휴머니즘

“우리가 키예프에 머무는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모스크바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곳 사람들은 너무 따뜻하고, 너무 친절했고, 너무 마음이 너그러웠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적이고, 잘 웃고, 유머 감각이 있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뼈를 깎아가며 새 집을 짓고, 새 공장을 짓고, 새 기계를 만들고, 새 삶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여러 번 우리에게 말했다. “몇 년 뒤에 다시 와서 우리가 만든 것을 보세요.””―「5 우크라이나 집단농장」

이 같은 보도 외에도 모스크바 정도 800주년 행사, 볼셰비키 혁명 30주년 행사 준비와 스탈린그라드의 트랙터공장, 우크라이나의 빵공장 등 전쟁 뒤 재건을 향한 소련의 모습은 당시 시간이 깃든 귀한 역사적 사료들이다. 스타인벡과 카파를 재우고 먹이는, 하나뿐인 아들을 전쟁으로 잃은 우크라이나 가족이나 독일군의 침입을 피해 악보와 그림, 피아노를 피신시켜둔 차이콥스키 생가 박물관 관리인이자 차이콥스키 조카의 일화는 러시아인들의 삶, 다른 세계의 모든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이들의 일상을 밀착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발레를 관람하고, 학교에 가고, 클럽에서 춤을 추며, 소중한 가족 앨범을 자녀들과 같이 바라보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우리는 러시아 사람들도 세계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겠다. 나쁜 사람도 그곳에 분명히 있지만, 훨씬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인간에 중점을 둔 보도를 뒷받침한다. 미-소 관계가 첨예해지던 냉전 시기,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와 사진가의 증언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러시아 저널』에는 로버트 카파의 글 1편과 사진 70컷이 실렸다. 당시 어렵게 검열을 통과해 세상에 공개할 수 있었던 그의 사진은 여전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우크라이나의 파괴된 거리, 스탈린그라드 들판의 불발탄 등 전쟁의 유산을 추적하는 한편, 카파의 사진은 모스크바의 백화점 사람들, 강에서 노는 아이들, 우크라이나 집단농장의 여성들과 소년, 조지아에서 성대한 만찬의 연회 등 역시나 러시아 일상 모습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때의 시공간과 사람들은 그의 사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전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이자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허승철 교수의 번역이다. 구소련권 전문가의 소련 여행기 번역이라는 점에서, 소련의 실상에 정통한 원문 해석과 주석들을 자부한다. 스타인벡이 이방인의 눈으로 소련을 보았던 경험을 소련 말기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하여 똑같이 느꼈던 번역자의 문장 또한 그 공감의 깊이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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