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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필맥 20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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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1 1942년 여름 - 운명의 아침
# 2 북대서양 항해기
# 3 적국인에서 종군기자로
# 4 1943년 봄 - 북아프리카 전선
# 5 핑키# 6 시칠리아 작전
# 7 1943년 가을 - 머나먼 로마
# 8 디데이 전야
# 9 1944년 여름 - 결전의 날
# 10 파리로 가는 길
# 11 가자, 아란 계곡으로
# 12 기다리는 연인
# 13 다시 전선으로
# 14 1945년 봄 - 최후의 병사
# 15 굿바이, 굿바이

역자후기

저자 소개 1

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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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apa,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Endre Erno Friedmann)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1932년 베를린에 있는 사진 통신사 데포트(Dephot)에서 암실 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재능을 인정받아 자잘한 취재를 맡기 시작한다. 12월, 망명 중인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코펜하겐 강연을 취재한다. 이때 찍은 사진들로 인해 정식 사진가로 인정 받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베를린을 떠나 부다페스트를 거쳐 파리로 건너가 1934년 세 살 연상의 공산주의자 게르타(Gerta Pohoryll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1932년 베를린에 있는 사진 통신사 데포트(Dephot)에서 암실 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재능을 인정받아 자잘한 취재를 맡기 시작한다. 12월, 망명 중인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코펜하겐 강연을 취재한다. 이때 찍은 사진들로 인해 정식 사진가로 인정 받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베를린을 떠나 부다페스트를 거쳐 파리로 건너가 1934년 세 살 연상의 공산주의자 게르타(Gerta Pohoryll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936년 사진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로버트 카파'라는 가공의 미국인 사진가 행세를 한다. 게르타는 엔드레가 찍은 사진을 성공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으로 위장해 언론사에 비싸게 판매한다. 그러다가 엔드레는 로버트 카파로, 게르타는 게르다 타로(Gerda Taro)로 완전히 이름을 바꾼다. 8월, 둘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공화파 측에서 스페인내전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9월, 코르도바 전선의 참호에서 뛰쳐나온 공화파 알코이 민병대원 페데레코 갈시아(Federico Borrell Garc?a)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 미국의 화보잡지 「라이프」에 소개되면서 카파의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1937년 7월, 그가 잠시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홀로 스페인에 남아 취재하던 게르다가 후퇴하던 공화파의 탱크에 치어 급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9월, 뉴욕을 방문한다. 1938년 중국에서 국민정부측의 선전영화 '4억의 민중' 촬영을 위하여 중국 한커우로 가 '4억의 민중' 촬영과 중일전쟁을 취재하였고, 1939년 스페인으로 돌아가 내전의 마지막을 취재한다. 9월, 2차대전이 발발하자 가족이 있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헤밍웨이, 카우보이, 미식축구 등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사진에 담는다. 1940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를 취재한다. 1942년 미국 잡지 「콜리어스」의 의뢰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연합군의 다양한 활약상을 취재한다. 1943년 북아프리카 공략, 시칠리아 공략, 나폴리 해방을 거쳐 이탈리아 반도 전투를 취재한다.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한다. 이때 찍은 사진은 총 106장이었으나, 「라이프」 암실직원의 실수로 건조도중 필름의 감광유제가 녹아버려 대부분 소실되고 10장 정도만 남는다. 이 사진들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라는 설명을 달고 「라이프」에 실린다. 8월, 연합군의 파리 수복을 취재한다. 1945년 미군 공수사단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독일로 침투해 연합군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을 보도한다. 6월, 파리에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만난다. 둘은 이후 2년간 연인으로 지낸다.

1946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 수개월간 할리우드에서 영화관련 일을 하지만, 결국 미국 영화산업에 회의를 느끼고 할리우드를 떠난다. 이후 2달간 터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1947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세이무어 등과 함께 보도사진 통신사인 매그넘(MAGNUM)을 설립한다. 존 스타인벡과 함께 소련을 방문했으며, 1948~1950년 중동전쟁을 취재한다. 1950년 파리로 돌아온 이후 3년간 매그넘의 대표로 활동한다. 1953년 미국 정부에 의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쓰고 몇 달간 여권을 중지당했으며, 1953년에는 미 FBI의 감시를 받기도 한다. 1954년 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던 중 「라이프」의 요청으로 베트남으로 건너가, '쓰디쓴 쌀'이라는 제목으로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취재기를 쓰려 했으나, 5월 25일 오후 2시 55분, 프랑스 군의 행군을 취재하다 지뢰를 밟아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 소개된 그의 책 『Sightly Out of Focus (1947)』는 종군기자를 꿈꾸었던 많은 젊은 사진작가들에게 바이블이 되었으며 그의 너무 이르고 극적인 죽음은 그를 종군기자의 신화로 만들었다. 이제 종군기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때라도 자신을 지배하려 드는 매스 미디어와 정부의 권력에 맞서 싸우려 들었다. 그것이 바로 카파이즘(Capaism)이다. 그의 동생 코넬 카파는 1966년 관심있는 사진을 위한 국제 기금(International Fund for Concerned Photography)'을 설립하였고, 1974년에는 카파의 사진을 보관할 목적으로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을 설립하였다. 미국의 전쟁기자 집단인 해외 취재클럽(Overseas Press Club)은 '로버트 카파상'을 제정하여 "대담한 용기와 진취적 정신이 이뤄내는 최고의 외신 사진"을 촬영한 사진기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로버트 카파의 다른 상품

역자 : 우태정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조사부를 거쳐 경남기업 홍보팀장 등을 지냈다. 공동 번역한 책으로 『이미 시작된 20년 후 』가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2쪽 | 530g | 153*224*30mm
ISBN13
9788991071308

책 속으로

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내 스튜디오는 뉴욕 9번가의 작은 3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지붕 전체가 하나의 채광창으로 돼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침대가 하나, 마룻바닥에는 전화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다. 그 밖에 가구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시계조차도. 아침 햇살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깼다. 몇 시나 됐는지 알 수 없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진 돈이라곤 25센트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점심을 먹자거나, 일거리를 준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전화가 누군가로부터 걸려오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만 울렸다. 더 이상 잠을 청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로 누워서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문틈으로 밀어 넣은 편지 세 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받은 우편물이라고는 전화회사와 전기회사에서 보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나를 침대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 p.9

귀환한 비행기들은 관제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착륙허가를 기다렸다. 그중 한 대는 착륙장치 부위의 동체가 파손된데다 기내에 심각한 부상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 병사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장면은 빠뜨린 채 그저 한가하게 비행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만 찍은 사진은 사람들에게 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전사자와 부상자까지도 여과 없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내가 감상에 빠지기 전에 그런 장면들을 한 통의 필름에 담아두길 잘했다는 판단이 섰다

--- pp.46~47

낙하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왼발을 문 밖으로 내민다는 것과, 일천 이천 삼천을 세야한다는 것과, 만약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비상 낙하산의 레버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은 생각조차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어쨌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을 청했다. 병사들이 나를 깨운 것은 녹색등에 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왼발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밀면서 몸을 던졌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몽롱한 상태였던 나는 일천, 이천, 삼천을 세는 대신 다른 말을 되풀이했다. “백수 사진기자 하강, 백수 사진기자 하강….” 갑자기 내 어깨가 확 당겨졌다. 낙하산이 펴진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혼잣말을 해댔다. “백수 사진기자 공중부양.” 그러나 하강한 지 일 분도 채 안 돼 낙하산이 숲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위에 걸려버렸다. 무수한 탄환들이 내 주위를 스쳐갔지만, 감히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헝가리 사투리 때문에 까딱하면 적군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p.93~94

출판사 리뷰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여름, 젊은 보도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뉴욕의 한 다락방에서 “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권태로운 나날을 보낸다. 주머니 속의 동전 한 닢, 전기와 전화 요금 독촉장, 카메라가 가진 것의 전부인 그는 설상가상으로 적국인(敵國人)이란 신분 때문에 생명과도 같은 카메라를 몰수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런 와중 그는 운명과도 같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미국 잡지 『콜리어스 』로부터 격전 중인 북아프리카전투를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저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치열하고도 역사적인 장면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취재의 서막이 열린다.
책은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전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북아프리카 전투, 시칠리아 작전, 나폴리 해방, 이탈리아 반도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 수복, 독일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에 이르기까지 매순간 카파는 전장의 최일선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촬영에 임한다. 그래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는 전사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이는 카파가 보도사진기자의 자세를 표현한 자신의 말, 즉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극명한 예로, 훗날 그의 이름을 따 투철한 기자정신을 가리키는 ‘카파이즘’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또 다른 전장인 베트남으로 달려가 취재 도중 지뢰를 밟고 숨지는 그의 운명을 어렵잖게 짐작해볼 수 있다.
카파라고 사진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전장을 취재하며 피가 낭자하는 사진을 찍어왔음에도 그는 처절한 전장의 장면을 볼 때마다 매번 심한 구역질을 느꼈으며, 장의사나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으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전쟁사진가라면 전사자와 부상자를 비롯한 전쟁의 참혹한 면까지도 찍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체의 왜곡이나 미화 없이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한편 그 이면에 숨은 휴머니즘을 포착했다. 카파가 죽고 난 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고 그의 기자정신에 심취했던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그를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카파의 사진은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몸짓은 물론 기쁨과 슬픔까지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생각까지도 포착해낼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담아냈다.” 카파의 이전과 이후에도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그가 훌륭한 사진기자인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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