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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42년 여름 - 운명의 아침
# 2 북대서양 항해기 # 3 적국인에서 종군기자로 # 4 1943년 봄 - 북아프리카 전선 # 5 핑키# 6 시칠리아 작전 # 7 1943년 가을 - 머나먼 로마 # 8 디데이 전야 # 9 1944년 여름 - 결전의 날 # 10 파리로 가는 길 # 11 가자, 아란 계곡으로 # 12 기다리는 연인 # 13 다시 전선으로 # 14 1945년 봄 - 최후의 병사 # 15 굿바이, 굿바이 역자후기 |
Robert Capa,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Endre Erno Friedmann)
로버트 카파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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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내 스튜디오는 뉴욕 9번가의 작은 3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지붕 전체가 하나의 채광창으로 돼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침대가 하나, 마룻바닥에는 전화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다. 그 밖에 가구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시계조차도. 아침 햇살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깼다. 몇 시나 됐는지 알 수 없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진 돈이라곤 25센트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점심을 먹자거나, 일거리를 준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전화가 누군가로부터 걸려오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만 울렸다. 더 이상 잠을 청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로 누워서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문틈으로 밀어 넣은 편지 세 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받은 우편물이라고는 전화회사와 전기회사에서 보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나를 침대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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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비행기들은 관제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착륙허가를 기다렸다. 그중 한 대는 착륙장치 부위의 동체가 파손된데다 기내에 심각한 부상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 병사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장면은 빠뜨린 채 그저 한가하게 비행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만 찍은 사진은 사람들에게 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전사자와 부상자까지도 여과 없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내가 감상에 빠지기 전에 그런 장면들을 한 통의 필름에 담아두길 잘했다는 판단이 섰다
--- pp.4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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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왼발을 문 밖으로 내민다는 것과, 일천 이천 삼천을 세야한다는 것과, 만약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비상 낙하산의 레버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은 생각조차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어쨌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을 청했다. 병사들이 나를 깨운 것은 녹색등에 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왼발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밀면서 몸을 던졌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몽롱한 상태였던 나는 일천, 이천, 삼천을 세는 대신 다른 말을 되풀이했다. “백수 사진기자 하강, 백수 사진기자 하강….” 갑자기 내 어깨가 확 당겨졌다. 낙하산이 펴진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혼잣말을 해댔다. “백수 사진기자 공중부양.” 그러나 하강한 지 일 분도 채 안 돼 낙하산이 숲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위에 걸려버렸다. 무수한 탄환들이 내 주위를 스쳐갔지만, 감히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헝가리 사투리 때문에 까딱하면 적군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p.9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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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여름, 젊은 보도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뉴욕의 한 다락방에서 “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권태로운 나날을 보낸다. 주머니 속의 동전 한 닢, 전기와 전화 요금 독촉장, 카메라가 가진 것의 전부인 그는 설상가상으로 적국인(敵國人)이란 신분 때문에 생명과도 같은 카메라를 몰수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런 와중 그는 운명과도 같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미국 잡지 『콜리어스 』로부터 격전 중인 북아프리카전투를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저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치열하고도 역사적인 장면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취재의 서막이 열린다.
책은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전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북아프리카 전투, 시칠리아 작전, 나폴리 해방, 이탈리아 반도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 수복, 독일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에 이르기까지 매순간 카파는 전장의 최일선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촬영에 임한다. 그래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는 전사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이는 카파가 보도사진기자의 자세를 표현한 자신의 말, 즉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극명한 예로, 훗날 그의 이름을 따 투철한 기자정신을 가리키는 ‘카파이즘’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또 다른 전장인 베트남으로 달려가 취재 도중 지뢰를 밟고 숨지는 그의 운명을 어렵잖게 짐작해볼 수 있다. 카파라고 사진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전장을 취재하며 피가 낭자하는 사진을 찍어왔음에도 그는 처절한 전장의 장면을 볼 때마다 매번 심한 구역질을 느꼈으며, 장의사나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으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전쟁사진가라면 전사자와 부상자를 비롯한 전쟁의 참혹한 면까지도 찍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체의 왜곡이나 미화 없이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한편 그 이면에 숨은 휴머니즘을 포착했다. 카파가 죽고 난 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고 그의 기자정신에 심취했던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그를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카파의 사진은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몸짓은 물론 기쁨과 슬픔까지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생각까지도 포착해낼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담아냈다.” 카파의 이전과 이후에도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그가 훌륭한 사진기자인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