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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51장 _ 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제52장 _ 부드러운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 제53장 _ 이것을 도둑질한 영화라고 한다 제54장 _ 천하로써 천하를 살핀다 제55장 _ 만물은 억세지면 곧 노쇠해지나니 제56장 _ 아는 자 말하지 않고 제57장 _ 천하를 취함에 있어서는 제58장 _ 화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제59장 _ 검약보다 좋은 것은 없다 제60장 _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제61장 _ 큰 나라는 강의 하류 제62장 _ 도는 만물의 가장 깊은 곳 제63장 _ 큰 것을 작게 생각하고 제64장 _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제65장 _ 그런 연후에 대순(大順)에 이른다 제66장 _바다는 모든 골짜기의 왕 제67장 _ 세 가지 보물 제68장 _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내보이지 않고 제69장 _ 주(主)가 되지 말고 객(客)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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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는 부정부패가 가득하고, 논밭은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지 오래고, 창고에는 곡식 한 톨 없이 텅텅 비어있다. 그런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쥔 위정자 계층들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번쩍거리는 칼을 허리에 차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그리고도 재물이 남아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도둑질한 영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 부정부패와 사치타락이 만연한 그 시대의 정치현실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 노자의 맨얼굴이다. 노자는 이 분노를 가다듬고 체로 걸러서 이것으로부터 자신의 ‘무위의 철학’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노자의 무위의 사상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이 때까지 노자의 무위의 철학은 그 발원지가 하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땅이다!--- p.40
『도덕경』에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 수시로 등장하는 스토리, 즉 ‘죄 지은 자는 지옥간다’는 이야기가 전무하다. 죄지은 자는 마땅히 벌겋게 타오르는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 넣어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노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노자가 관심을 보이는 일은 오히려 이런 것과는 반대되는 일이다. 즉, 노자는 세상을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 둘로 딱 갈라 흑백논리로 몰고 가서 누구는 구원해주고 누구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일체의 흑백논리를 넘어서서 선하든 선하지 않든 모든 인간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려 한다는 점이다.--- p.113 ‘세금을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한 한문 원본은 ‘식세(食稅)’이다. ‘식(食)’자는 잘 알다시피 먹을 식자이다. 그러므로 이를 직역하면 ‘세금을 너무 많이 받아먹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표현이 적나라하다. 세금은 나라를 살리라는 것이지 권력자가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문장도 첫 문장 만큼이나 날카롭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이유는 백성이 말을 안 들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지배자들이 쓸데없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지배자들이 가만있어도 될 일을 괜히 왕궁을 건립한다느니, 새로 성벽을 쌓는다느니, 운하를 판다느니, 4대강 사업을 한다느니 하면서 국민을 괴롭히고 또 한편으로는 법령과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다느니,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새정부의 면모를 일신한다느니, 구정부의 잘못된 점을 뜯어고치고 새롭게 개혁한다느니 등등 끊임없이 인위의 정치를 행하다 보니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고 결국 다스리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 노자의 말을 다시 정리해보면 지배자들의 세 가지 악덕이란 첫째 가 수탈, 둘째가 허세, 셋째가 탐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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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사회는 위대한 철학을 낳는다
격변의 시대에 태어난 인류 정신사에 빛나는 보물, 도덕경 여기 한 사상가가 있다. 세계가 온갖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져 서로 다툼이 끊이지 않던 시절, 경제 체제는 붕괴하여 서민들의 삶은 곤궁해졌고, 관리와 힘 있는 자들은 그 틈을 타 세금의 과세와 전횡을 서슴지 않는 부패한 시기이기도 했으며,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넘쳐났고, 지도자는 이를 통치에 활용했다. 국민은 민의를 대변한다는 지도자를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자기가 민의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들은 늘어만 갔다. 그와 함께 많은 사상가와 이론가들이 그들의 밑에서 자신의 정치사상을 전파하며 명멸했는데, 이들은 때로는 덕을, 때로는 예를, 때로는 정의를 내세웠고, 하나같이 부강한 국가와 복지가 넘치는 미래를 약속해댔다. 약속과 달리 사실상 나아지는 건 적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자기가 역사의 중심이며, 변화의 핵이라고 소리쳤다. 그때 그는 내리막길에 접어든 어느 제국의 도서관 사서였다. 과거와 현재를 거쳐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상과 실제 역사가 모여드는 자리였지만, 그의 사상은 끝내 주류에 서지는 못했다. 그의 사상과 통찰을 알아볼 수 있는 실질적 행적에 관해서는 불행히도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그는 뜻하지 않은 일로 나라를 떠나며 국경에서 한 권의 책을 남기고 사라지니, 그 책은 함축적이지만 단호한 진술, 시대를 넘나드는 통찰로 오늘날까지 총 3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차경남이 번역하고 해석을 달아낸 인류 정신사의 빛나는 고전, 도덕경이다. 위대한 철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위대한 통찰, 전 세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사유와 해설 그렇다면 무려 2,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도덕경이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노자의 철학은 ‘도’라는 잡힐 수 없는 것을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도’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인 ‘인간세(人間世)’에 대한 관심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은 사람이다. 때론 비유를 들어, 때론 거침없는 직설을 가하며 그는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전횡에 대해, 철학하는 사람들의 곡세에 대해, 보통 사람들의 무지에 대해 날이 선 비판을 가한다. 노자는 부드럽고, 장자는 거침없다지만 도덕경을 읽어 보면 현실을 대하는 노자의 거침없는 면에 우리가 놀라고 만다. 노자에 따르면, 도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다르지 않다. 노자는 본체계와 현상계의 구분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둘이 별개의 차원이 아니며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결국 누구든 현실 세계에서 도를 이룰 수 있지만, 도를 이루었다고 현실과 나를 구분하는 순간 이미 그 자신은 도에서 멀어져 버린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도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지 않으며 “좌”와 “우”를 가르지 않는다. 만약 구분을 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 각자가 도, 혹은 ‘정의나 대의나 민심’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일 따름이다. 이러한 사상을 담은 노자의 도덕경은 어디를 보아도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노자의 원전이랄 수 있는 도덕경을 차경남 저자는 단순한 한자의 직역이 아닌 우리말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뜻을 새겨 섬세하게 번역해냈다. 그리고 5,000자 남짓의 짧은 글 속에 숨은 뜻을 샅샅이 찾아내기 위해 전 세계의 고사와 동서양 철학, 그리고 세계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종단해낸다. 그러는 한편, 저자 자신이, 그리고 원 저자인 노자도 갖고 있었을 ‘사회를 이루고 있는 민중’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위정자에 대한 ‘강한 분노와 기대의 이중성’이 책 전체에 걸쳐 잔잔하게 묻어나고 있다. 때로는 노자가 그랬듯 직설적으로, 때로는 노자가 그랬듯 지극히 시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