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Ⅰ. 향파와 해양인문학
향파 이주홍과 유년의 문학 수업 12 해양문학을 통해 해양인문학에 이르는 길 19 향파 선생의 바다인식 23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자 생명을 삼키는 공간 27 죽음을 넘어선 바다에 대한 집념 32 바다를 향한 관심은 노래가사 작시로 번져 36 바다로 나아가는 청년상 40 물고기를 의인화한 동화의 세계 44 멸치 이야기 48 동화 「꼬리 긴 물고기」에 나타난 동심 52 숭어와 광어 탄생 이야기 56 동시 속의 바다 노래 60 「아침 새우」에 나타난 동화적 상상력 65 Ⅱ. 향파 문학과 인문정신 인문학으로서의 문학 72 등단작품 「배암새끼의 무도」가 지니는 의미 76 개구리와 두꺼비 이야기의 현재성 80 연극활동과 인문교육 정신 85 향파가 생각하는 문학정신이란? 89 소설 속 일상에 부대끼는 인간상 93 수필에서 확인하는 시적 감수성 97 방파제에서 펼쳐진 사랑 이야기 101 「섬에서 온 아이」 속에 숨긴 동심 106 「청어 뼈다귀」에 얽힌 가난한 이들의 삶의 실체 110 소년소설 「도둑섬과 김장군」에 나타나는 영웅담 114 소년소설 「아름다운 고향」에 나타나는 역사의식 119 「피리부는 소년」에 나타난 고통의 의미 124 역사 속 인물을 인문정신으로 재구성 128 이순신 장군을 활용한 어린이용 연극 132 「메아리」에 담긴 생태학적 사유 137 이주홍이 그려낸 어머니상 141 개미가 부지런해진 사연 146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 152 「우렁이 아내」가 주는 현재적 의미 157 소년소설 『정만서 무전여행기』에 나타난 익살들 162 Ⅲ. 향파와 매체 『갈숲』에 스민 향파의 인생 가을 내음 170 『갈숲』에 실린 향파의 일기가 지닌 문화사적 의의 (1) 175 『갈숲』에 실린 향파의 일기가 지닌 문화사적 의의 (2) 180 『갈숲』에 실린 향파의 일기가 지닌 문화사적 의의 (3) 185 『갈숲』에 실린 향파의 일기가 지닌 문화사적 의의 (4) 190 1960년대 《문학 시대》가 지닌 문예지로서의 성격 195 향파 이주홍 선생이 주관한 동인지 《윤좌》 246 《윤좌》 속에 남겨진 향파 선생의 흔적 (1) 318 《윤좌》 에 남겨진 향파 선생의 흔적 (2) 323 Ⅳ. 향파의 삶과 문학 향파 이주홍의 삶과 문학 330 향파와 요산 문학의 근저 더듬기 355 향파 이주홍과 소파 방정환 379 |
남송우의 다른 상품
|
내가 진작 이 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을 읽었더라면 바다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이란 공간개념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사방을 산으로 에워싼 두메고을 합천(陜川)에서 어린 날을 보낸 나는 바다라는 것이 큰 못만큼 밖에 안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합천에는 잉어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정양(正陽)못이 있다. 그래서 바다라는 것이 아무리 넓다하더라도 그 정양(正陽)못 몇 개쯤이나 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과의 對話者」중에서, 수대학보 75호,1966년 9월 25일)
---「향파 선생의 바다인식」중에서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열다섯 살 때 인천엘 가서다. 그러나 고학을 하느라 밥을 몇 때씩이나 굶던 때의 기아의 여행이어서 그 훤출히도 넓은 바다는 도리어 내게 고독과 절망과 두려움만 몰아다 주었다. 그러다가 정말 바다다운 바다는 몇 해 전인가 국도(國島)에 가서 실감할 수가 있었다. 내가 발을 붙이고선 그 섬 이외엔 글자 그대로 일망무제한 대공간! 바다는 영기(靈氣)를 품고서 저 장장한 하늘과 대화 하고 있는 오직 하나만인 생명체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세월의 증언자 바다! 바다는 어구(漁具)와 산호(珊瑚)의 울안이기 전에 먼저 이 지저분한 육지에 대한 냉엄한 비평자인 것 같게만 생각이 된다.(「하늘과의 對話者」중에서, 수대학보 75호,1966년 9월 25일) ---「향파 선생의 바다인식」중에서 1963년 12월30일 일어났던 사고로 어선은 침몰하고 선원 전원이 남태평양의 고혼이 되었다. 선장 강정주씨(어업학과 13기생)를 포함하여 최초로 부산수대 졸업생 4명이 바다에서 희생된 사고였다. 이 사고를 접하고 향파 이주홍은 「제2지남호의 영웅들」(1964년 1월 18일 사모아 희생자들의 위령제에서 읊은 조시, 『백경』 7집에 이 시는 게재. 1965, 1, 20)이란 시로 고혼이 된 제자들을 위무했다. 생명을 삼킨 바다를 통해 바다가 내재한 또 다른 측면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가 다음의 조시이다. 지금은 바람을 재우고 / 저 창창한 하늘을 더부러 슬픈 영혼들을 / 달래고 있는가 바다는 ... 지구의 광장, 남태평양의 사모아 / 지금은 망년된 노기를 걷고 사나이들을 오라 / 손짓하고 있는가 바다는... 1내지 2미터 / 미친 휘오리바람에 몸을 물 밑으로 감춘 / 우리의 개척자 제2지남호... 후략...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자 생명을 삼키는 공간」중에서 향파의 바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근원적으로 당시 수산대학에서 바다로 나아갈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비롯됨을 무시할 수 없다. 주로 교양국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만났다. 수업 시간마다 딱딱한 이론 강의보다는 고전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과 삶의 근원적인 사유를 학생들에게 안내한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바다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어떻게 바다에 대한 꿈과 미래에 대한 도전 정신을 키워줄 것인가가 향파 선생의 주 관심사였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수대 전체 학생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학생들을 하나로 묶어줄 매개가 많지 않았다. 운동회나 축제는 있었지만, 이때 함께 부를 노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향파 선생은 학생들이 전체로 모여 함께 행사를 할 때, 함께 할 행진곡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작시하고, 이상근 작곡자에게 의뢰하여 1966년 개교 25주년을 맞아 행진곡 〈바다의 아들〉을 창작했다. ---「바다를 향한 관심은 노래가사 작시로 번져」중에서 “여어, 한 쪽으로 두 눈을 몰아붙인 병신 납작이?” “여어, 배불뚝이 영감, 안녕하신가?” 그러다가 나중엔 꼬옹한 눈을 노려보면서 이를 악문다. “너 이놈, 내 집에 와서 깨 훔쳐 먹었지!” “너 이놈, 두고보자, 내 집에 와서 콩 훔쳐 먹은 도둑노움!”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파멸에 이르렀지만, 반성은커녕 상대를 서로 원망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끝까지 자신들의 입장을 고집하는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가자미와 복장이의 모습을 통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분명한 교훈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을 향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가자미와 복장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든 인간들의 본성을 익살과 해학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의인화한 동화의 세계」중에서 |
|
향파(香破) 이주홍(李周洪) 선생은 우리나라 해양인문학의 뿌리다. 그는 해양문학의 장을 열었다. 190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87년 부산에서 작고하기까지 80여년의 향파 생애는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삶이었고, 해방기의 좌우익의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시, 소설, 수필, 희곡, 회화, 서예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형상화시켰다.
향파의 문학활동은 60년에 이르고, 그가 남긴 작품집만도 200여 권이 넘는다.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문학적 자취를 남긴 작가이다. 그런데 향파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다양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향파가 소설문학과 아동문학 그리고 희곡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해양문학계의 거목임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향파 이주홍 선생의 다양한 편모’는 향파 선생이 남긴 다양한 편모(片貌)를 통해 해양인문학의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해양문학의 장을 열다 향파의 문학활동은 60년에 이르고, 그가 남긴 작품집만도 200여 권이 넘는다. 향파는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문학적 자취를 남긴 작가다. 그런데 향파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해방후 부산으로 근거지를 옮겨 지역에서 활동을 평생 해왔다는 점과 그가 문학 전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업을 했기에 총체적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가로서보다는 아동문학가로서의 활동이 부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소설문학과 아동문학 그리고 희곡문학에 영향을 끼친 거목이다. 평생 그가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가 남긴 아동문학의 현장성과 현실성이 지닌 교육적 가치는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최근 논의가 일기 시작한 해양인문학은 새롭게 모색해 나가야 할 영역이다. 육지 중심의 사유가 남긴 갈등과 문제를 바다가 지니고 있는 원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를 모색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양인문학을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고려하고, 논의의 중심에 놓아야 할 요소의 하나가 해양문학이다. 바다에서 혹은 바다와 관련된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삶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인지 사유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 향파 이주홍 선생이다. 향파 이주홍 선생은 1949년 이후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바다로 나아가 일할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방 이후 일차산업도 제대로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시절에 수산업에 종사할 전문 인재들을 교육하면서 문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가슴에 꿈과 비전을 심어주었다. 해양인문학에 지대한 영향 그러므로 향파 선생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학 활동을 하는 문인으로서 해향문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웠다. 학위 없는 대학교수 향파 선생은 190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향파 선생은 192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며 고학을 하고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난과 사랑」이 입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로 귀환해 동화, 시, 소설, 시나리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부산 동래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1949년에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 학사학위도 없는 향파 선생이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가 지닌 문화예술에 대한 역량 때문이었다. 특히 향파 선생은 문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교양수업을 진행하면서 문학이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며, 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들려주고, 보여주었다. 이 학생들이 대부분 바다와 관련된 영역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향파 선생은 바다문학에 대한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주홍문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남송우 부경대학교 명예교수가 200여 편의 향파 작품 중 50여 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해양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향파 문학에 대한 평론을 하고 있다. 현대해양과 이주홍문학재단이 공동기획하고 약 4년간에 걸쳐 집필했다. |
|
향파 이주홍 선생은 이 시대 진정한 해양인문학의 창시자이자 지휘자였다. 그의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에 등장하는 바다는 매우 다양하다. 향파의 바다는 새우부터 고래까지, 수평선에서 방파제까지, 섬과 갯마을에서 항구도시 부두까지, 행진곡에서 연가(갈매기처녀: 이미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남송우 교수가 그 동안 《현대해양》에 연재한 향파의 해양인문학에 대한 글들을 재구성하여 『향파 이주홍 선생의 다양한 편모』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를 매개로 향파 선생이 남긴 해양인문학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되길 기대해본다. 이와 함께 아직도 여전히 깊이 묻혀있는 향파 선생이 남긴 다양한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함께 기원한다. - 류청로 (이주홍문학재단 이사장·부경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