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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포도 ______ 12 계속 가고 있어야 합니다 ______ 13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______ 15 이상의 시가 재워주는 잠 ______ 17 거미와 블루스 ______ 19 줄 ______ 21 목련 ______ 23 산책 ______ 25 파꽃환상 ______ 28 벽돌을 쌓듯이 ______ 30 토병土兵 ______ 32 하늘이의 하늘 ______ 34 광장 ______ 36 올가미 ______ 38 해후 ______ 40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______ 42 2. 나비의 시간 장마 끝나고 ______ 44 나비의 시간 ______ 46 한없이 개방적인 ______ 48 내가 가진 건 감정뿐이에요 ______ 50 연단鍊鍛 ______ 52 목숨을 거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______ 54 안부 ______ 56 잿빛 언어 ______ 58 사순절 ______ 60 화해 ______ 62 뒷모습 ______ 64 작두를 타다 ______ 66 오늘 또 오늘 ______ 68 텔레비전을 보다가 ______ 69 마음 고개 ______ 71 마음의 몸 ______ 72 3. 아포리즘적으로 바람 소리 ______ 76 낮달 ______ 78 가을 단상 ______ 80 소한 ______ 82 바람 부네 ______ 84 거푸집과 날개와 ______ 86 미열 ______ 88 샐비어 ______ 90 데인 자국이 ______ 92 휘경동 ______ 93 아포리즘적으로 ______ 95 비 ______ 97 비겁 ______ 99 종적 ______ 101 영자의 사막 건너기 ______ 103 호남선 ______ 105 4. 그립고 그립지 않은 애인을 구합니다 ______ 108 꽃을 심는 당신 ______ 109 꽃잎으로 몸을 씻고 ______ 110 나라는 허구 ______ 112 기침 좀 합시다 ______ 113 그립고 그립지 않은 ______ 115 당산나무 ______ 117 잔상들은 왜 멀리 있을 때 더 커지는가 ______ 119 겨울바다 ______ 121 누수 ______ 123 노래 ______ 125 행복론 ______ 127 없는 딸이 ______ 129 심부름 ______ 131 라일락 필 때 ______ 133 ┃해설┃전해수 ‘당신’에 대하여2 ______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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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별을 인정한 자에게 주는 위로와 극복 의지
나뭇가지에서 바람이 레퀴엠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하늘에서 헤엄치고 그 사람이 떠났다고 합니다 함께 걷던 길도 따라갔다고 합니다 막 도착한 기차처럼 빗소리가 말합니다 새의 깃털이 귀를 막아 못 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별이라고 얘기했던 것들은 어디 있습니까 곁에 머물고 스치던 익숙한 손길은 그림자로 머뭇거립니다 그림자는 피가 도는 손이 없어 내가 내 손을 만지고 내 볼을 만지고 어깨를 껴안습니다 당신이 간 그곳에는 어떤 숲이 있습니까 하얀 숲이 머리 풀고 흐느낍니까 머리 긴 유령이 모르는 이름을 부르며 달려갑니까 당신, 하얀 숲에 들어가서 새의 울음으로 있습니까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길을 가고 있습니까 백 년처럼 가고 있습니까 당신을 지나 계속 가고 있습니까 ─「계속 가고 있어야 합니다」 전문 이별을 겪는 생生은 죽음과 삶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연성을 지닌 일이다. 예컨대 죽은 이는 삶이 멈춘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나 계속 가고 있는 것”이니, 시인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위로하는 레퀴엠을 연주하듯 이러한 삶 가운데에 이별의 길을 “하얀 숲”에서 들리는 “새의 울음”쯤으로 여기며 극복하려 하고, 이 이별이 “백 년”이 지나도 잊히지는 않는 아픈 일임을 확인하려 한다. 무릇 이별 이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이별을 인정한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토로된다. 결국 ‘당신’과 ‘나’ 사이, 지금의 그 거리로 인한 그리움은 원망이 전제된 용서의 말로 이어진다. “계속 가고 있어야 합니다”라는 시제詩題에서 느껴지는 자기 다짐과 물음표가 떨어져 나간 질문형의 문장들이 반복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답을 요구하는 질문태가 아니라 자기 확인을 대리하는 표현이자 시인의 간절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길을 놓친 자에게 노래하는 안식의 시 밖에는 모래바람이 불고 안에도 찬바람이 불었어요 눈을 비비고 돌아서면 거친 세월도 지나가지요 모래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모랜들 날리고 싶겠어요 사막의 등뼈라도 되고 싶겠죠 우리 집 베란다엔 그늘만 먹는 식물이 있어요 햇빛을 양보하는 식물이라 내가 고백을 많이 하죠 어떤 식물은 창문을 열어놓으면 입을 벌리고 모래를 먹어버리는데요 나는 그게 싫어요 내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니까요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가족은 그런 건가 봐요 모래바람을 먼저 마셔버리는 것 그걸 보는 사람은 어쩌라고요 무늬뿐인 잠자리 날개나 구멍뿐인 새의 가슴뼈는 가벼워서 좋을까요 누군가를 바라보다 다 닳아서 그렇겠죠 그러면 영혼까지 가벼울까요 그래서 우리 엄만 꿈에 안 오시나 봐요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전문 생이 “눈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눈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면, “대신 울어주는” 자도 필요하다 할 것이다. 물론 “대신 울어주는” 위로는 눈물의 양을 줄여주진 않지만, 눈물의 의미를 알아주기 때문이다. 위 시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는 이번 시집의 제목으로 안착하였는데, 대신 울어주는 행위를 통해 대신 울어줄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위 시에 드러난 바처럼,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족일 것이다. 사랑의 색깔이 다르다 하지만, 가족이 무한대로 쏟는 사랑의 크기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여 가족은 “대신 울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욱 아픈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족은 눈물을 나누면 더욱 뼈저린 감정에 이르니, 대신 울어주는 일은 고통이 수반된다. 마주 보던 마음 잃고 갈 수도 올 수도 없어 안부만 묻고 돌아서는 길 바람의 정강이에 걸려 넘어진 적 있네 이제 더 이상 서로를 가둘 일 없지없지 하며 마음의 창틀 뜯어낸 적 있네 풀벌레 울고 울어 쉰 목구멍에 대해 걱정하는 일 한쪽 날개 잃어버린 왜가리처럼 기우뚱기우뚱 허당을 짚으며 가시덩굴 위에 똬리 튼 배암의 쓰린 등 같은 어느 오후 비는 내리고 당신의 안부도 떠내려갔을 것 같고, 상처 난 살갗 같은 가을이 슬몃슬몃 옆구리를 열고 들어와서 때아닌 서리 내리고 벗다 만 허물 다시 걸치고 숲으로 들어가는 배암처럼 나는 어느 풀벌레 울음 자리를 더듬으며 부서진 창틀을 더듬고 있으리 끝내 네 안부는 새처럼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나는 마음의 빈 무덤만 더듬는가 우는가 ─「안부」 전문 위 시는 ‘안부를 묻는 일이 어려운 대상’에 대해 그리고 있다. 안부를 묻기 어려운 대상이란 아마도 부재不在한 대상일 터이다. “마주 보던 마음 잃고/갈 수도/올 수도 없”으니 한때는 당신이 마음이 오간 사이였지만 지금은 잠시 이별을 했거나 어쩌면 죽음처럼 긴 이별로 인해 ‘당신’의 안부를 묻는 일은 “끝내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스스로를 위안하듯 “이제 더 이상 서로를 가둘 일(은) 없지없지” 자위하면서 되뇌기도 하지만 “한쪽 날개/잃어버린 왜가리처럼”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기우뚱 허당을 짚”기도 하니 화자에게 ‘안부’는 안부 이상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위 시에서 “마음의 빈 무덤”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울고 울어 목이 쉰 풀벌레의 “목구멍”을 걱정하는 일만큼 “마음의 빈 무덤”을 더듬는 일은 쓸모없는 일이지만 화자는 “마음의 창틀”이 뜯겨 나간 서러움을 텅 “빈” 마음의 자리에서 느끼고 있다. 위 시는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황과 더 이상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처지를 연관하면서 사랑의 방식은 안부를 묻는 일에서 더욱 소중한 것임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유안나의 이번 시집은 ‘당신’에 의해 마음의 길을 놓친 화자가 위안과 용서를 자기 다짐으로 도모하면서 떠난 자를 잊으려는 레퀴엠을 노래하는 시편들이 엿보인다. 레퀴엠이 진혼곡으로 불리기 이전에 ‘안식’이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것은 유안나 시의 저변에 침잠한 (슬픔의) 자기감정이 ‘안식’과도 지향점이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여 유안나의 이번 시편들은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여전히 ‘당신’을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