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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웃음이 파먹은 밥 ______ 12 물속의 축구 ______ 13 벚꽃 그늘 아래서 ______ 14 섬에서 쓴 편지 ______ 16 세발낙지 ______ 18 장물 종재기 같이 ______ 20 수제비 ______ 22 살구나무 아래서 ______ 23 온몸이 게처럼 빨개져 ______ 24 묶인 배 ______ 25 청맹과니 ______ 26 이런 여자 ______ 27 야성녀 ______ 28 하얀 수건의 체취 ______ 30 뒷모습 ______ 32 움트다 ______ 34 Ⅱ 그녀 ______ 36 샘 집 일화 ______ 38 겉절이 여자 ______ 40 참깨 다발 ______ 41 기차 앞에서 기차대 ______ 42 사냥꾼 ______ 45 뜸의 시간 ______ 46 슬도에 바람 불다 ______ 48 어느 역에서 내릴지 ______ 49 복사꽃 속에서 ______ 50 서리고 서리어 ______ 51 그 하루 ______ 52 캄캄할 때 ______ 54 삭이다 ______ 55 평상 ______ 56 에스프레소 ______ 58 잘 자 ______ 60 Ⅲ 저울질 ______ 62 복지사의 일기日記 ______ 64 봄날에 ______ 66 빈 까치집 ______ 67 거울 속의 여자 ______ 68 그 겨울 강가에서 ______ 70 가을은 바람에 휘날리고 ______ 72 고향길을 걷다 ______ 74 들뜬 것들 ______ 76 다 우네 ______ 77 허물 한 벌 ______ 78 이미테이션 ______ 79 국화빵 ______ 80 드라이플라워 ______ 82 눈동자 ______ 83 생각이 다른 하늘 ______ 84 사랑 ______ 85 비슬산 참꽃 축제 ______ 86 Ⅳ 노송 ______ 88 봄눈 ______ 89 콩이파리 ______ 90 웅덩이 ______ 91 갈대밭에서 1 ______ 92 그 후 ______ 93 매화 ______ 94 초승달 1 ______ 95 서식지 ______ 96 어항 ______ 97 맞받아치다 ______ 98 동백의 이별법 ______ 99 봄이 다 가겠다 ______ 100 산불 ______ 101 양파 ______ 102 큰 여자 ______ 103 │해설│이태수 분방한 해학과 사투리 구사의 묘미 ______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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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하고 발랄한 해학
사투리 구사의 시적 묘미 분방하고 발랄한 박숙이 시인의 시에는 해학과 희화적인 비유, 넘쳐나는 입담이 두드러진다. 빈발하는 토속적인 사투리와 다소 도발적인 듯한 관능적 언어 구사는 마력과도 같은 특유의 정서 공간을 빚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적잖은 일련의 시들은 진솔하면서도 거침없는 발상과 연상적인 상상력에 날개를 다는 한편으로는 사물에 감정을 이입해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의인화하는 비유법이 구사되고 있어 그만의 개성이 강화되고, 독특한 시적 묘미와 읽는 재미까지 북돋운다. 그런가 하면, 해학 속에도 그 저류에는 삶의 파토스와 이를 뛰어넘으려는 지혜와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려 하는 질박한 인간애가 관류하고 있다. 또한 일련의 시편들은 옛 추억과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에 주어지면서 연민과 회한의 서정을 애틋하게 떠올리고 있으며, 자성적 시각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한편 바라는 바의 시를 향한 열망과 고뇌, 자긍심과 결기들도 감칠맛 나게 시화해 보인다. 박숙이 시인의 시는 우선 재미있게 읽힌다. 구어체의 토속적인 사투리 구사가 향토적 정서를 감칠맛 나게 하는 데다 웃지만 못 할 특유의 해학을 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해학에는 삶의 애환과 지혜가 스미거나 저며 있으며, 보통 사람(서민)들의 인정과 인간애가 질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어 시인의 그런 마음자리를 엿보게 되기도 한다. “첫물은 사위도 안 준다는/애리애리한 봄 정구지 한 단을 사와가/이 친구 저 친구 생각하미 찌짐을 부친다”라고 시작되는 「장물 종재기 같이」는 부추전을 부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만의 감성과 언어 감각으로 빚어 보인다. 부추전이 노릇노릇하게 잘 굽히고 잘 뒤집히자 “아따, 인생도 이리 한 번 후딱 뒤집히져 봤시면”이라며, 삶이 녹록지 않은 한 친구 생각을 절절하게 떠올린다. 종재기에 찍어 먹을 초장을 만드는데 어인 일로 장물 종재기 같이 생이 짜라빠진 친구가 퍼뜩 떠오르는 기라 전화를 걸어 뜨실 때 먹거러 퍼뜩 뛰어온나 카이 비도 오고 해서 재미로 점 백 원짜리 화투 치고 자빠졌다 카네 야야, 화투판 뒤집고 퍼뜩 온나 캐놓고 전화를 끊고 가마이 생각해 보이끼내 새끼대이처럼 밸밸 꼬인 니 인생도 마 전 뒤집듯, 화투판 뒤집듯, 확 뒤집어엎어 버렸으면 안 좋것나 이 문디 팔자야 ―「장물 종재기 같이」 부분 ‘정구지’(부추), ‘생각하미’(생각하며), ‘사와가’(사 와서), ‘찌짐’(전), ‘봤시면’(봤으면), ‘종재기’(종지), ‘짜라빠진’(많이 찌들은), ‘퍼뜩’(빨리), ‘기라’(거라), ‘뜨실’(따뜻할), ‘뛰어온나’(뛰어오라), ‘자빠졌다’(넘어졌다), ‘카네’(하네), ‘캐놓고’(해놓고), ‘가마이’(가만이), ‘보이끼내’(보니까), ‘새끼대이’(새끼줄), ‘문디 팔자’(좋지 않은 팔자) 등 토속적인 경상도(의성) 사투리들이 그대로 구사돼 토속적인 시적 묘미가 돋보이는 이 시는 한 친구를 향한 삶의 비애와 그 반전을 바라는 심경의 극대화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 심경을 “짜라빠진 장물 종재기 같이 앞뒤가 희망 없이 까만기(까만 게)/생감자 씹은 듯 내 가심(가슴)에 아려 와서는/찌짐 한 쪼가리 입에 뚝 띠(떼어) 넣는데 고마(그만)/눈물을 뚝 뚝 뚝, 쏙 빼놓고 마는 기라(거라)”라고, 인정이 넘치는 휴머니티를 질박하게 쏟아낸다. ‘그녀=나’로 봐도 좋을 시 「그녀」도 사투리 구사와 해학의 묘미는 유사하지만, 자기 희화화를 통해 소탈하게 열린 마음으로 인정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속내를 은근하게 보여준다. 이 시 앞부분의 첫 연에서는 자신이 가진 게 많아서거나 예쁘지도 않은데 사람들이 따라붙는 까닭이 꾸미지 않고 활짝 열려 있는 마음이 호박범벅처럼 구수하기 때문이라고 자가 진단하고 있으며, 둘째 연에서는 음식 끝에 정 난다며 칼국수와 비빔밥으로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택(턱)도 없는 소리제(지)”, “구시하다 카이”(구스하다니까), “불러쌌지럴(자꾸 부르지)” 등 구어체 사투리의 친근한 어법과 지기들을 향한 인정 발산은 이 시인 특유의 정서가 아닐 수 없으며, 궂은날과 뜨끈한 칼국시(칼국수), “비빔밥에 숟가락 여럿 쿡 꽂아놓고”와 “여럿이 묵는(먹는) 기(게) 꿀맛이라미(이라며)”는 마음자리는 그런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준다. 더구나 그다음 문맥에서는 해학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오죽하면 서문시장 뻐스 안까지 꿀벌 한 마리가 따라붙어 무임승차 했다 아이가 후치고 올 것이제 벌을 달고 왔다며, 그녀를 흘겨보며 뻐스 안이 난리도 아니었는지 뭐, 더 배창시 곧춘 건 그저께 부녀회 모임 때 그러더라 내 입은 옷 몽땅 얼매인지 아나 꽃무늬 몸빼이 삼천 원에 냉장고 티싸스 삼천 원, 걸친 거 다 털어도 만 원도 안 되는 인생이라고, 밤에 빨아 툭 털어 널어도 아침이면 뽀송한 인생이라고, ―「그녀」 부분 서문시장으로 가는 버스 안까지 따라 들어온 꿀벌 한 마리를 두고도 무임승차라는 등 특유의 너스레를 떤다. 승객들이 쫓지 않은 채 달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힐난까지도 불사한다. 이 “배창시(창자) 곧춘”(크게 웃기는) 것보다도 더욱 웃기는 건 입고 있는 옷을 빗댄 몇 대목이다. 몸빼바지 삼천 원, 티셔츠 삼천 원 등 입은 옷의 값이 모두가 만 원도 안 되고 “밤에 빨아 툭 털어 널어도 아침이면 뽀송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활짝 열려 있고 구수한 마음만은 소중한 재산이라 ‘뽀송한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과장법이라 하더라도 특유의 유쾌한 과장법이다. 박숙이 시인의 시는 질퍽한 사투리 구사 못잖게 감각적인 묘사와 비유법, 다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듯한 발상과 상상력도 시적 묘미를 북돋운다. 시 「겉절이 여자」에서 시인은 “가을이 은은히 깔린/숲속 찻집에/나름대로 잘 숙성된 여자와/겉절이처럼 파닥파닥한 여자가/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다”면서, 마주 앉은 여자는 풍미가 깊지만 “그녀의 숙성 앞에서 나는 노란 배춧잎처럼 아삭거린다”고 자신을 ‘겉절이 여자’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과 마주 앉은 여자는 뭉게구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식초와 레몬에 갓 버무린 생각들이/숨죽지 않아 싱싱하다고 웃음의 한 접시로 리필한다”라고, 한 번 더 ‘숙성된 모습’과 상대를 배려하는 아량을 치켜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시인의 겸양지덕이 자리 잡은 마음자리를 엿볼 수 있다. 다소 도발적인 듯하면서도 역시 자신을 낮추어 성찰하는 「양파」는 어떠한가. 아, 잠깐만요 나를 벗기려고요? 속속들이 다 알고 나면 그대가 많은 눈물을 흘릴 텐데 그래도 괜찮은지요? 원망하지는 않을는지요 미안하네요 껍데기뿐인 삶에다가 맵찬 기질뿐이어서, ―「양파」 전문 양파와 자신의 동질성에 착안한 듯한 이 시는 양파의 속성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완곡하게 시사한다. 여자를 벗긴다는 다소 도발적인 발상을 하고, ‘껍데기뿐인 삶’이라는 삶의 파토스를 비유적인 어법으로 떠올리면서 기실은 ‘맵찬 기질’을 강조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맵찬 기질뿐’이어서 눈물을 흘리거나 원망할 수도 있어 미안하다거나 ‘껍데기뿐인 삶’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에 눈을 돌리기도 해 시인의 마음자리가 들여다보인다. 이 시는 감각적인 묘사와 다소 도발적인 발상과 상상력이 시적 묘미를 돋보이게 하고 매력 또한 증폭시키고 있으나 「살구나무 아래서」는 미각(감각)이 부르는 연상을 끌어들이고, 사물의 의인화나 비약적인 비유의 상상력을 구사해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살구나무 아래서」에서는 “발밤발밤 마실(마을)을 산책”한다거나 “내 발자국을 붙잡으며 축 늘어진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다 먹어 치웠다”라는 언어 감각이라든가 “만삭의 살구나무”나 “임부처럼 뱃살이 튼 노란 살구”라고 살구와 살구나무에 감정이입을 하는 의인화 기법, 살구 맛같이 “옛 생각을 새콤달콤하게 하”는 감각의 관념화와 연상의 묘미, 그 살구나무를 “훌쩍 장성한 내 아이만 같아서”라면서 아이를 잉태했을 때 살구를 스무 개나 먹던 때도 소환하면서 살구나무에 경배하듯 마냥 멈춰 서는 모습 등도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온몸이 게처럼 빨개져」에서는 남해의 개펄에서 게가 옆눈으로 자기를 보고 빠른 속도로 몸을 숨기는 걸 보면서 “첫 마음이었던 나도 그땐 그랬었지/저만치 좋아하는 이가 내 앞에 점점 다가왔을 때/온몸이 게처럼 빨개져/구멍 속으로 부리나케 숨어버렸지”라고 옛날의 자신을 떠올리며 “숨어 발소리 가만, 엿듣고 있었지”라고 속내를 내비쳐 보이기도 한다. 빨간 게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왔을 때의 자신 모습을 상기하면서 수줍음과 내숭을 색깔로 표현한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시인은 어떤 여자로 바뀌었을까. “몇 번이나 가본 길도 잘 모르는,/여직, 폰뱅킹도 할 줄 모르는,/만 원짜리 다발 돈 백만 원도 잘 못 세는,/주문 키보드도 눌려본 적이 없는,”(「이런 여자」) 아날로그적 여자이기도 하지만, “비슬산 참꽃처럼 본연의 색을 확연히 드러내는,/슬픔을 슬픔이라 말하지 않는”(같은 시) 활달하고 사리 판단을 지혜롭게 하는 여자다. 한자리에 앉아 새콤달콤한 홍옥 아홉 개를 바삭대는 암컷, 여린 살구 스무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암컷, 허리둘레 따위는 신경 써본 적이 없으며 비빔밥 한 양푼을 게걸스럽게 먹은 저녁 아이스크림 아홉 개를 후식으로 달콤히 먹어 치우는 암컷, ―「야성녀」 부분 이 시에서는 스스로 ‘암컷’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내숭을 아예 떨쳐버렸다고도 토로할 정도다. 그 연유는 거슬러 오르면 결혼을 앞두고 일어난 사건(?) 때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망보라며/결혼 앞둔 그 남자 발치에서 소피(소변)를 본 그날 밤/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철철거리는 그 소리에 젖어 그만/야성의 늑대에게 물려가/밤새도록 원초적으로 울부짖어야만 했던/아, 그 짙은 밀림 속의 야화여”(같은 시)라고도 노골적으로 당시 정황을 그려놓는다. 이 같은 야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으르렁거리는 정글에서/극적으로 살아남은 여자,/시퍼런 보리처럼,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여자가/왕성한 식욕을 다시며 거울 속에 서 있다”(「거울 속의 여자」)라거나 “누가 그래?/네 나이 희수라고,//황혼에 꽃바람을 접목한 여자가/거울 속에서 야생화처럼 활짝 웃고 있다”라고 그리는 바와 같이, 세월이 흘러도 야성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일련의 시는 고향을 무대와 배경으로 한 그리운 추억과 가난해도 오순도순 정겹게 살던 기억들, 어머니가 늘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옛적의 가족사에 상당 부분이 주어져 있다. 특히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난 사랑의 화신 같았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회한의 심경은 애틋하고 절절하게 묘사된다. 언제 가더라도 고향과 고향길은 지난날을 대동하고 다가오며, 그 때문에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는 품속과도 같이 친근하고 포근할 뿐 아니라 회귀하고 싶은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정서를 안겨주는지 모른다. 「고향길을 걷다」는 오랜 세월 너머의 체험과 추억의 반추가 어우러져 빚어지는 서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시다. 까칠한 들풀과 그리움이 발목을 스치는 길 잘 영근 곡식들이 고개를 착 숙이는 길 몸빼바지 아지매가 낫 한 자루 들고 수숫대 목을 댕강댕강 치는 길 뙤약볕에 익은 때글때글한 사투리가 찬물 한 사발 마시고 가라고 기어이 소매를 잡아당기는 길 풀냄새 맡으며 호젓이 걸어가는데 송아지 먼 울음이 찌든 먼지를 씻어내듯 가슴에 고요히 저미어들 때 웬 툭수바리 깨지는 목소리가 돌담을 넘어 들길 사이로 울려 퍼진다 호박잎 찌고 뒨장 한 뚝배기 끓이났으니 어여 들어와 저녁 먹고 가여어~ ―「고향길을 걷다」 전문 한편, 「샘 집 일화」에는 시인이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드물게 샘(우물)이 있어 ‘샘 집’이라고 불렸던 소도시 옛집에서의 추억 속 서사들이 다채롭게 각인돼 있다. 시인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 떠나고 딸 다섯과 아들 하나의 가장인 어머니가 농촌 가산을 정리한 뒤 이사했던 그 집의 샘물은 사시사철 “희망처럼 퐁퐁 솟아 올랐”으며, “엄마의 사랑처럼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의 어머니는 이웃 사람들이 물 뜨러 오면 마루에 앉혀 놓고 늘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쪄서 권하곤 했으며, 물 뜨러 온 한 총각에게는 올 때마다 귀한 소고깃국에다 기름기 찰찰 흐르는 찰밥을 지어 주더니 둘째 언니와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연애질을 한 뒤 형부가 됐는데 언니를 물고 간 늑대라는 생각이 치밀었다는 일화도 보태 놓았다. 두 사람이 방 아랫목에서 소곤거릴 때는 “살며시 바깥으로 나와/그 늑대의 구두 속에 샘물을 한 두레박 퍼부어 놓고/감나무 뒤에 숨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열 살배기 사춘기 손으로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다”고 순수했던 시절의 일화를 해학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시인의 기억 속의 어머니는 그렇게 베풀기를 좋아하면서도 홀로 육 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 같다. 「하얀 수건의 체취」에 묘사되고 있듯이, 검게 탄 얼굴에 “햇볕도 가리고 시름도 가리고,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처럼” 늘 하얀 수건을 쓰고 있었다고 연민의 시선으로 돌아보기도 한다. 농사일하고 어두워도 돌아오지 않아 찾아 나서니 더위 먹고 쓰러져 있었던 때를 애틋하게 상기하는가 하면,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그리움은 갈수록 살아오는 것일까/지금 나는, 그때의 어머니 나이보다 훨씬 더 많지만/그날 그 강가에서/서러움이 밴 어머니의 체취가 몹시도 그리워 멍하다”고 한다. 「그 겨울 강가에서」에서도 “그 엄마를 나는 왜, 나 필요할 때만 절실히 찾았던 걸까”라고 회한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으며, 「그 하루」의 경우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뼈저린 후회의 서사를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딸보고 싶을 때마다 천상 바라기한 어머니, 동구 밖에서 이제 오나 저제나 오나, 바람처럼 울면서 서성거렸다지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팥 송편 해 가지고 친정 갈 게 해 놓고선 그 약속 지키기 전에 산 너머로 훌쩍 떠나신 어머니, 당신이 목 놓아 울고 싶을 땐 곁에서 손잡아 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앞에 내 삶을, 봄볕처럼 화사하게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산그늘만큼 적막한 어머니께 하루만 할애할 걸, 그 하루가 뭐라고, 무엇이었기에 습기 찬 외로움만 막막히 지켜보게 했을까요 ―「그 하루」 부분 그런 시인에게 봄날 벚꽃 구경을 함께 하면서 “엄마, 아버지 없이 육 남매 키우느라/참 고생 많았제?”라고 했을 때 팔순의 어머니가 “야야, 니는 무슨 말을 그리 섭섭게 하노/지금에 와 생각해 보이께네/너그들 때문에 내가 산기라/새끼들 때문에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닐 때가/지금 생각하면 참 신났었제/〈중략〉//저 꽃도 이제 곧 다 지것제……!”라고 한 말이 딸로서는 어찌 잊힐 수 있겠는가. 또한 바닷가 횟집에서 도다리 눈동자와 마주치면서는 “감지 못하는 눈,/도저히 감을 수 없었던 눈,/아아, 새끼를 둔 엄마의 눈빛이,/죽어도 죽지 못하고/염하는 그 순간까지도/그리움을 눈 속에 품고 빤히 뜨고 있었다//어머니!”(「눈동자」)라는 대목도 회한의 극대화로 읽힌다. 「참깨 다발」은 출가한 뒤에도 언제나 자식 생각만 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잘살고 있다는 자랑(과장)하려 했던 때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오이무침을 하면서 시인이 “그 들뜬 것들을 어떻게든 제구실하며 융합하며 살라고/양념 개듯이 살살 달래던 엄마의 그 모습이/오늘 아침, 속 다 파내버린 숨죽어가는 오이 모습에서 눈시울이 뜨겁다”(「들뜬 것들」)라는 대목도 같은 맥락에 놓인 자성의 회한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시인을 중심으로도 이어진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남편이 자기를 사로잡던 시절의 사연을 희화화하면서 익살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낸 「기차 앞에서 기차대」, 사슴처럼 달라진 남편의 밤 인사를 기꺼워하는 「잘 자」, 무덤덤하고 느긋한 남편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사랑」, 딸이 국화빵을 사 왔을 때 어린 시절 자기가 사 온 국화빵을 어머니와 함께 먹던 추억까지 반추하는 「국화빵」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너그 아부지 제대 말년에 날 우예 꼬신 줄 아나”로 시작되는 「기차 앞에서 기차대」는 다른 사람과 펜팔 하는 걸 중간에 가로챈 군인에게 속아 그 사람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봐 귀대하는 열차역에 나갔다가 함락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씩씩한 군홧발소리가 앞장 서 가디만은 잽싸게 표를 끊어 오더라 묻기도 전에 한 장은 열차표, 한 장은 플랫폼까지의 입장권이라며 슬쩍 보이는 척하디만 열차 앞에서 한 5분쯤 뜸 들이도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안 해?, 하여 휙 돌아서는데 갑자기, 힘센 맹수 한 마리가 내 손을 번개같이 열차 위로 땡겨 올리는 거야, 기차 앞에서 그 속도 번개같이 기차대 손을 뿌리치려고 용을 써 봤지만 편지와 사진을 중간에서 낚아챈 그 순간부터 제대 말년까지 혼자 소설을 써댄 사나이한테 이길 수가 있겠어? 그 소설 각본대로 부산 용두산 공원으로 해운대 동백섬에 따개비처럼 붙어 앉았는디 햐, 총총한 별빛이 청춘의 가심팍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더라 거부하던 한쪽 맴은 파도에 어느새 씰려 가뿌리고 그 자리에서 그만, 사월의 동백꽃을 발갛게 피워대고 말았으니, ―「기차 앞에서 기차대」 부분 그 힘센 맹수(늑대) 같던 남편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슴처럼 바뀌어 잠자기 전에 함께 차를 마시고 거실로 나가며 ‘잘 자’라고 한 말 한마디를 시화한 「잘 자」는 “포근한 그 말을 이불로 끌어 덮은 나는/다시 새록새록 깊은 늪에 빠졌다//정글에서/이리저리 힘에 눌린 상처받은 하루를/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를 녹여준 말”이라고 행복해한다. 「사랑」은 남편을 ‘바다’, 자신을 ‘파도’에 비유해 남편의 그저 바라보며 깨닫기를 기다리고 지켜보며 이해하는 그 포용력이 ‘사랑’이라는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간결한 문맥 속에 다져놓았다. 가족에 대한 다른 시 「국화빵」은 딸이 전화로 “엄마가 좋아하는 국화빵 샀으니/다른 거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하는 말을 듣고 “그 기다림이 벌써부터 따끈해 온다”고 기꺼워하는가 하면, “입이 데도록 자르르 팥을 흘리며 먹”게 되며, 어머니와 얽힌 따뜻했던 옛 추억까지도 소환한다. 어머니와의 옛 추억까지 “눈빛으로 먹는”가 하면, 한판에서 나와 자기와 닮은 딸과는 “국화빵끼리 활짝 피어 앉아” 먹는다고도 특유의 해학까지 버무려 놓고 있다. 박숙이 시인은 시를 쓰는 과정, 그 지향이나 추구의 방향과 방법론, 시와 삶의 관계, 자신의 시에 가지는 자부심과 자긍심 등을 시로 형상화하기도 하고, 자연이나 사물들이 일깨우는 삶의 지혜에 대한 깨달음과 다짐 등을 진솔하면서도 개성적인 언어 감각이나 활달한 입담으로, 때로는 자성적인 내면 추구와 평정심 찾기의 시편들을 빚어 보이기도 한다. 시 쓰기를 사냥에 비유해 자신이 시를 쓰는 자세를 암시하는 「사냥꾼」에서 시인은 고수를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수의 사냥꾼이 누가 사냥해 놓은 먹잇감에 눈독 들이거나 탐내지 않고 평원과 산야를 온몸으로 뛰면서 붉은 살점에 이빨을 들이대듯이 그런 자존심이 포식자라며, 개성적인 시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밤새도록 눈이 시뻘겋도록 비릿한 시詩 한 마리 전광석화처럼 낚아챈 날에는 우리하도록 이쪽으로 물어뜯고 저쪽으로도 물어뜯는다 명치끝이 히죽히죽 웃거나 말거나, ―「사냥꾼」 부분 더구나 고심과 고행을 거듭한 끝에 날것 그대로의 시를 재빠르게 낚아채도 그 날것의 원형이 뜯겨나가든 말든 추고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시 쓰기에도 야성과 맹렬한 습성이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비릿한 시 한 마리’나 ‘물어뜯는다’는 어휘를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대목은 독창적인 시를 지향한다는 점과 왜 과작인지까지도 함께 짐작해 보게 한다. 시인은 「빈 까치집」에서 “달포쯤 고뇌해서/어젯밤 달무리 질 때 완성한 시 한 편”을 쓴 다음 그 앞에서 “까치처럼 훌 떠나고 싶다”(「빈 까치집」)라고 하는 심경을 까치들이 한 달 가까이 걸려 지은 둥지를 비우는 것에 견주고, 시 완성 뒤의 공허감을 그 빈 까치집에 비유한다. 다시 한 편의 시를 쓰려면 까치들이 새 둥지를 짓듯이 달포쯤 고뇌해야 가능하기 때문일 테다. 그 연장선상의 시로 보이는 「에스프레소」는 자신의 시작 과정을 비유법으로 에둘러 시사한다. 이 시에는 커피의 일종인 에스프레소같이 진하고 깊은 풍미를 내는 고혹적인 시를 쓰겠다는 결기가 도드라져 있으며, 호소력과 견인력을 지닌 속도감 있는 고온 추출의 시를 쓰는 과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시인은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하실래요?/농도와 밀도로 추출된/고혹적인 시詩 한잔!”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시를 ‘고혹적인 시’라는 명명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나르시시즘 같은 면도 없지 않으나 자기 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의 발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시에 대한 자긍심은 “나에게 시詩 말고는 다/이미테이션”(「이미테이션」)이라는 구절에도 천명돼 있다. 그와 다른 한편 「삭이다」에서는 삶의 자세에는 ‘삭임’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콩잎절임을 하는 과정을 통해 “들판에서 양껏 팔랑거리던 야성을/묵직한 돌덩이 하나로 눌려 놓습니다”라면서 “‘이제 너만의 시간을 견뎌야 해’”라고도 한다. 여기서 ‘너만의 시간’이라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가을 문득문득 고개 쳐드는 그리움 속에도 묵직한 돌덩이 하나 켜켜이 매달아 놓습니다 미련도 증오도 시간이 익으면 누렇게 삭아질 거라고, 너그럽게, 무색하게 곰삭아질 거라고 ―「삭이다」 부분 삶의 파토스를 부추기기도 하는 ‘그리움’, ‘미련’, ‘증오’ 등의 감정들도 통어하고 삭이려는 마음을 완곡하게 보여준다. ‘너그럽게, 무색하게’ 곰삭음은 흐르는 시간이 요구되듯이 오래 ‘너만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미덕을 스스로에게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그 모습 그대로인 연못을 “묵언의 도량이 괴어 있다”고 바라보는 데서 발화한 「서식지」도 ‘평정심’이라는 삶의 지혜를 떠올리고 있어 「삭이다」와 짝을 이루는 시로 읽힌다. “묵언의 도량이 괴어 있”는 “설렘의 서식지”인 연못과 “못가의 부유식물처럼 삶이 떠 있는 나”를 대비하면서도 ‘평정심’과 ‘고요의 깊이’로 끌어당기는 연못을 닮으려고 한다. 연못은 ‘고요’와 ‘설렘’, ‘평정심’의 서식지이면서 ‘나’를 훤히 들여다보이게 하는 ‘풍경’이자 ‘거울’이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도량이 되어 주고 있는 셈이다. 흐드러진 봄 속에서 밥을 먹습니다 보고 싶었던 알곡의 마음 밥에 섞여 찰집니다 돌미나리, 달래, 유채 나물, 청춘의 그녀처럼 야리야리한 생 속의 맛이 아삭거립니다 이심전심으로 간이 밴 몸 포갠 콩잎을 서로서로 떼어주며, 다른 데 가서는 절대 떼어주지 말라며, 맛있는 농담을 한 쌈 이쁘게도 쌉니다 햇살이 창가로 다가와 연인을 집중 비춥니다 밥 한 그릇을 웃음이 다 파먹도록 두 사람은 깔깔깔 아예 모르고 있습니다 ―「웃음이 파먹은 밥」 전문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려 있으며, 표제 시이기도 한 「웃음이 파먹은 밥」은 시인의 주된 시적 특성과 기법들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이 시집의 얼굴이면서 시인 자신이 가장 내세우고 싶은 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