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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물속의 아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 두유전쟁 해설|소설 이전, 혹은 이후의 소설_김형중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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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인가? 『자정의 픽션』은 우리에게 묻는다, 대답하기는 힘들다
당신이 정말로 알아두어야 할 건 없다. 당신이 모르는, 몰랐다간 큰일 날 일이란 세상에 없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때문에 모두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삶의 중심이 아닌, 이 세계 언저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당신도 나와 함께 알아두면 좋을 것들을 중얼거릴 뿐이다. 그러다 당신에게 알려도 괜찮겠다 싶으면 글로 옮기는 것이다. ‘노동’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기에 그렇게 나온 글을 남에게 팔아먹으려면 좀 쑥스럽지만, 그 외엔 별다른 벌이가 없으므로 무료로 배포하는 건 곤란하다. _박형서 박형서에게 있어 소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가 아니다. 그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다. 『문학과사회』 2006년 겨울호에 실리는 ‘작가의 편지’에서 직접 밝히듯이 박형서는 ‘정말로 알아두어야 할 건 없’고 우리가 ‘모르는, 몰랐다간 큰일 날 일이란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개콘’보다 웃기는 소설이라는 평(한겨레)을 받은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웃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는 웃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구논문의 형식을 이용하여 소설을 쓰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논쟁의 기술」에 나오는 ‘은근히 겁주기’ ‘무시하기’ ‘얄밉게 웃기’ ‘정신없이 들이대기’ ‘막나가기’ 등의 소제목 또한 순수하게 웃음만을 유발할 뿐 문학작품이 통상 갖는 교훈이나 함의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소설의 내용이 아닌 소설의 존재 형식, 소설 그 자체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여덟 편의 단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소설’이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소설’은 왜, 어떻게 씌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고민하기 위해 모든 소설적 정의로부터 달아난 것이다. 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