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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개성상인 1 : 물의 도시로』
작가의 말 005 안토니오 코레아 011 칠천량 해전 015 사라미 030 사카이 078 신앙의 신비여 123 물의 도시로 146 델 로치 상사 159 천국의 열쇠 185 나폴리 왕립공작소 229 낙찰 263 푸거 가의 파산 285 성 조지의 깃발 305 고립 330 이스파한의 장미 373 『베니스의 개성상인 2 : 한복을 입은 남자』 작가의 말 005 신대륙으로 007 사르가소 해 059 사라미 030 무풍의 바다 084 프라하의 봄 131 전쟁 176 겨울왕 218 조선소 인수 249 네 장의 카드 282 겉보기 회전점 319 바사 호의 전복 352 한복을 입은 남자 3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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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원한 해풍이 안토니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끝없이 이어진 바다는 멀리 고국 조선에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란 하늘은 고향 송도에서 보던 것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안토니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조선을 떠난 게 정유년이니까 이곳 식으로는 1597년이다. 그렇다면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안토니오는 고향 생각이 날 때면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명이……. 무역선들은 돛 끝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갔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배들과 함께 안토니오의 기억도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안토니오 코레아」중에서 일본으로 끌려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굶주림과 고된 일에 시달리면서 지낸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조선인 포로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어려움을 견뎌왔는데,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점차 없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하루 지내기가 너무 힘들어서일까, 이제는 처음 끌려왔을 때와는 달리 서로를 시기하고 비방하는 분위기였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든 승업은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라미」중에서 “일본 땅을 벗어나니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군. 그래도 바람이 차니 조금 있다가 선실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네.” 담 대인이 승업의 옆에 나란히 섰다. 담 대인은 전쟁이 끝나면서 그동안 단절되었던 교역이 재개되자 상담차 일본에 들렀다가 서여스님을 통해 승업의 얘기를 듣고는 우에스키가 깜짝 놀랄 만한 금액을 주고 승업을 넘겨받았고, 도시오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승업은 나가사키로 옮겨진 후에 형식적으로 이탈리아 사람 안토니오 카를레티와 프란체스코 카를레티 부자(父子)의 노예가 되었고, 그의 배에 승선해서 마침내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신앙의 신비여」중에서 “앉게!” 안토니오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의 자태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다운 강인함이 절로 느껴졌다.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날카로운 눈매로 한참 동안 안토니오를 살폈다. ─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안토니오는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왜 호출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네가 작성한 것이냐?”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이 낙서로 가득한 종이를 집어들었다. 그제서야 안토니오는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안토니오는 사색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창고에서 혼자 지내는 안토니오는 밤이 몹시 지루했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랠 겸, 산 마르코 창고에 들고나는 물품들을 가지고 틈틈이 회계제표를 작성하곤 했다. “그렇습니다만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안토니오는 서둘러 변명했다. “하면 네가 작성한 것이 틀림없단 말이지?”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이 날카로운 눈매로 쏘아보았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심심함을 달래려고 장난삼아 작성해본 것입니다. 전부 파기 시켰는데 어쩌다 그만……. 실수는 인정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실거래 내역과는 상관이 없으며 또 절대로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상책이다. 안토니오는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밝혔다. 안토니오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장난 삼아 한 일이라는 해명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델 로치 상사의 장부기재 방식이 왠지 엉성해 보였기에 송상(松商)의 회계방식을 한번 도입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는 송상의 회계공원이었던 부친에게서 송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개치부법(四介置簿法)을 익혔던 바 있다. ─ 이것이 심심풀이 삼아 만든 것이라고?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어이가 없었다. 사실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안토니오를 처벌하려고 부른 게 아니고 강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낙서에 기재된 형식은 매우 정연하면서도 간편해서 한눈에 상사의 영업성적과 재무실태가 파악되었다. 여기에 실제 거래내역을 대입하면 델 로치 상사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날 판이다. 도대체 처음 보는 이 회계방식은 무엇이란 말인가. 동양에서 온 청년은 심심풀이 삼아 작성했다고 했다. “복식부기를 배웠느냐?”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궁금증을 누르며 안토니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코레아라는 먼 동양에서 온 이 젊은이는 분명히 몇 달 전에 베니스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복식부기를 배웠단 말인가. 아니, 베니스의 복식부기와는 다른, 아직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정교한 회계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의 부기방식은 모릅니다. 기재된 내역들은 제 고국에서 쓰고 있는 회계방식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간략하게 사개치부법의 원리를 설명했다. (...) 복식부기는 베니스에서도 전문 회계사 교육을 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는 정교한 기술이다. 그런데 코레아라는, 처음 들어본 동양에서 온 젊은이는 그보다 더 뛰어난 회계기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회계기법이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루셀라니 수석 부지배인은 안토니오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일말의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처음에는 의혹의 눈초리로, 나중에는 놀라움으로, 그리고 지금은 두려움마저 느끼면서 안토니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 코레아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냐? ---「델 로치 상사」중에서 2권 1618년, 마침내 안토니오는 델 로치 상사에서 부지배인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10년 동안에 델 로치 상사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주 루이지 델 로치는 완전히 은퇴해서 별장이 있는 무리노 섬으로 떠났고 상사는 아들 조르지오 델 로치가 뒤를 이어 운영하고 있었다. 본래부터 정계진출이 목표였던 카토 총지배인은 10인위원회의 보좌관이 되면서 베니스 정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토니오의 장인이 된 루셀라니 수석부지배인은 재작년에 은퇴를 했다. 안토니오와 줄리에타는 같이 살자고 간청했지만 루셀라니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남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알비로 떠났다. 그렇게 되면서 델 로치 상사는 조르지오 델 로치를 정점으로 총지배인으로 승진한 갈로와 수석부지배인이 된 알베르토가 경영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갈로 총지배인은 주로 대외 업무에 치중하고 실무는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과 동갑인 안토니오는 막 부지배인으로 승진해서 지배인단의 말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신대륙으로」중에서 안토니오의 말을 들은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일전에 말했던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게 신대륙과 직접 교역을 하겠다는 것이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안토니오는 갈릴레이와의 만남 이후로 신대륙 개척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계획서를 작성해서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에게 보고했다. 물론 사르가소 해를 횡단하겠다는 계획은 보고서에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금융부문 개선안을 올린 로토 부지배인이나 러시아 진출 계획을 올린 스트로치 부지배인의 경우는 그냥 넘어갔는데 안토니오는 호출을 받은 것이다. “당신이 기발한 착상을 잘하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직접 신대륙 교역에 나서겠다는 것은 무리 아닌가? 베니스 상사 중에서 대서양에 배를 띄운 곳은 없네. 지리적으로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잉글랜드에 비해서 불리하고.”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안토니오를 살폈다. (...)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델 로치 상사가 자꾸만 금융업에 치중하고, 과도하게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토니오가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전했다. “역시 빠르군. 바로 봤어. 이 기회에 북방무역부와 동방무역부의 업무 관장을 재조정할 생각이네.” 좀처럼 남을 칭찬하는 일이 없는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이 안토니오를 향해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출세를 하려면 앞에서 끌어주는 상사가 있어야 하지만 뒤에서 밀어주는 부하도 필요하다. 알베르토 수석부지배인은 진작부터 안토니오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신대륙으로」중에서 “오늘 총회에서 상사의 새 이름을 정하고, 공석 중인 부지배인을 선출 하는 것이 어떻겠소? 상사의 이름을 어떻게 정하면 좋겠소?” 여태 상사의 이름은 소유 가문의 성을 따랐다. 그렇지만 주식회사로 전환이 된 마당에 굳이 전례를 따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해야 하나. 처음 겪는 일이라 사람들은 선뜻 의견을 내지 못했다. “이제 가문의 성을 따서 상사명을 정하던 시대는 갔으니 새로운 방식으로 상사명을 정하도록 합시다.” 아무도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자 구스토디가 다시 발언하고 나섰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마당이오. 그렇다면 상사가 살아남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총지배인을 기념해서 코레아 캄파넬라 상사라고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코레아 캄파넬라 상사! 그 말을 듣는 순간 안토니오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혈혈단신으로 베니스로 와서 베니스 제일의 무역상사 총지배인이 되었고, 이제 자신의 성을 상사명으로 쓰게 된 것이다.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안토니오의 공은 컸고 영향력은 막강했다. “단지 고용인에 불과한, 더구나 이방인인 내 성을 상사명으로 쓰겠다니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습니다.” ---「한복을 입은 남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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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정의, 진정한 상도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오래된 현실’ 이야기 17세기 초반의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할거하고 활발했던 지중해 해상이 시들해지면서 황혼기를 맞고 있었다. 그들 중 선두주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으로 널리 알려진 베니스. 그리고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개성의 송상(松商)은 조선은 물론 명, 일본에도 잘 알려진 상인들이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과 단편적 사실의 바탕 위에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행간을 읽고, 도약을 하면서 창작된 이야기다. 개성상인의 아들 유승업은 임진왜란 중 왜군에게 부모와 여동생을 잃고 숙부 집에 맡겨진다. 5년 후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19세 청년 승업은 왜병에게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들로 편성된 분의복수군 일원으로 출전하지만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며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중, 일본에 귀화한 조선인 서여 스님과 명나라 상인 담신민의 주선으로 일본에 와 있던 이탈리아 사람 카를레티를 소개받고, 그의 노예 신분으로 일본을 떠나게 된다. 일단 명나라로 간 후 그곳에서 조선으로 갈 길을 모색해보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와 함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승업은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을 갖고 베니스의 콤파니아 델 로치(델 로치 상사)의 창고 서기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회계원이었던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배웠던 지식이 빛을 발해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안토니오는 델 로치 상사 회계부 서기로 발탁되고, 이어 교황청 유리 입찰 건에서 발군의 활약을 하면서 정식 대리인으로 승진한다. 이후 그는 한국인 특유의 타고난 성실성과 불굴의 열정으로 유럽 상권을 누비며 뛰어난 업적을 쌓고, 마침내 델 로치 상사 총지배인 자리에까지 오른다. 개성상인의 비범한 상재(商材)와 진정한 상도(商道)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지금 이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오래된 현실’ 이야기다. 삶과 정의, 진정한 상도에 대한 질문은 오늘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인 듯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는 “과연 ‘소설’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확실히 느끼게 하고 감탄케 하기에 충분하다.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 그림 속 인물을 이토록 현실감 있게 창조해낸 작가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