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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1부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공터 그늘에 들다 길 위의 길 유채꽃 필 때 새참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찔레꽃 설렁탕 앞에서 몸살에 대하여 감잎 떨어지는 소리 미늘, 그 환한 아픔 2부 위대한 유산 생, 바람 같은 거 위대한 유산 유년의 들목 장날의 삽화 표정 나누기 바위, 선생이 되다 지니펫 시 밭 할머니의 눈물 소음과 소통 사이 따개비 사랑 3부 꽃이 꽃을 보다 은둔 그리운 유산 가버린 가을의 꽃 자목련 필 때면 김 여사, 미수에 그치다 꽃이 꽃을 보다 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 도도도 봉동 이장 꿈꾸게 하는 섬, 위도 어머니께, 지구별에서 4부 숨은 그림 초록빛 선명한 그 노트 보이지 않는 꽃 비계 낭만적 관용과 이해 퇴짜 숨은 그림 그리움 쪽에서 겨울이 오면 진지 장터 국밥 인연 내가 나를 보듬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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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삶일지라도 내가 내딛는 곳이 길이 되었듯 기억이 아프고 쇠한들 어쩌랴. 한 포기의 풀도 그대로 있지 않고 계절 또한 똑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 것이거늘, 나는 어디서 무엇을 찾아 헤맸고 또 보려 했는가. 오늘처럼 굳이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일여一如이며 길인 것을.
--- p.26 볼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이천여 년 전 예수의 호흡을 느끼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치는 풀 한 포기 속에서 신을 보지 못한다면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 집 울타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감나무가 이파리 하나를 톡 떨어트린다. 자연의 소리이며 사람 사는 소리다. --- p.61 사람은 살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하면, 살아가면서 표정 관리만 하다 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 없도록 가슴을 잘 들여다보며 살아야 할 일이다. 얼굴이란 그 사람의 얼이 배어 있기 때문에 얼굴이다. 얼굴이 곧 마음이고 얼굴은 마음에 따라 표정을 만들어낸다 --- p.93 사는 동안 짓는 허물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므로 사는 사람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허물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수단이 금강경이고 산상수훈이며 이 경전 속에 숨겨진 의미를 토대로 신을 발견해 내는 것이 신앙이며 종교일진대 무엇을 회개하며 울어야 한단 말인가. --- p.111 위로할 다른 방법이 없어 들어와 잠을 청했지만 생전의 부모님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골목에 숨어 바라봐야만 했던 봉인된 서러움이 물밀어 온다. 뜬 눈으로 맞은 아침, 자목련 아래 울음의 흔적이 아버지의 기억처럼 붉게 떨어져 있다. --- p.138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말과 함께 한마디 덧붙였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는 아프지 않는다고. 아플 수가 없다고. 때문에 습작기 동안 아파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뱃속에서 힘들다고 어떻게 포기할 것이며, 뱃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엄살을 피우겠는가. 닥치고 문학이라는 배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조언을 마쳤다. --- p.160 구약을 벗어난 예수도 한 손에는 개혁과 변화를, 다른 손에는 관용과 이해에 따른 사랑을 들고 이 땅에 왔다. 하면, 작금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해의 부재와 분열된 국론은 생동이며 과정일 것이다. 필경 그곳에는 낭만적 잔바람과 잔물결이 인다. 가을이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 이유이다. 구획되고 획일된 것으로부터의 일탈, 그것은 곧 낭만주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깊게 물들어가는 가을, 벤치에 앉아 우리 모두 관용과 이해를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 p.191 사랑은 모름지기 먹히는 것이고 기억되는 것이라 했던 내 다짐을 잊지 않았는지 소시지만을 좋아하는 아들이 눈치를 보며 콩자반으로 젓가락을 옮긴다.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밥상 위 생명들을 사랑하는 것은 먹는 것이고 어쩌면 이 과정은 인간이 먹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어려서부터 했었다. ---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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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의 진폭을 키우는 언어의 물질성
그리움이 깊게 서린 삶의 디양한 서사 배귀선 수필을 읽는 것은 언어의 역동적 변용을 만나는 과정이다. 상황 묘사에서는 섬세한 감각과 기발한 상상력이, 어휘 연결과 문장 구성에서는 시적인 압축이, 어휘에서는 토속어와 기층어의 도발적 사용이 독자를 매료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언어 운용이 상호 하모니를 이루면서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언어의 물질성이 메시지의 진폭을 키우고 독자의 능동적 사유를 자극한다. 수필가 배귀선은 세상을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보듬는다. 내면의 목소리를 담은 문장들은 문득 비유의 집을 짓고 그곳에 삶을 깃들여 어느덧 긴 여운을 남긴다. 삶의 서사에는 가슴 아픈 그리움이 서려 있고 허전한 외로움이 묻어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힘겹게 느껴질 때, 이 한 권의 수필집을 꺼내 들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