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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무는 오래도록 기억을 따랐다
2부 나무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다 3부 나무는 하늘이 쓰는 詩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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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 Dahm-작은 고장의 나무 이야기
전라남도 담양군은 천년 신화에 가까운 귀한 당산과 보호수가 있다. 담양문화를 위하여 오래도록 활동해온 시인 심진숙은 나무의 사랑을 시로 노래하였고 사진작가 김정한의 시선이 부합되었다. 당산은 사람과 함께 하였다. 사람의 생은 짧았고, 나무는 오랜 시간 너그럽게 다음 세대를 맞이하였고, 그 다음 세대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지난 사연의 나눔 천년세월 담양은 인문학과 나무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마다 사철 푸른 바람이 부는 대나무의 고장,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열어주는 아련한 길과 수수 백 년 사연 깊은 관방제림이 맞이해주는 목신의 고장이 담양이다. 시절의 변화 속에서 사람의 기억에서 감춰진 오래된 나무의 신화를 시적 노래와 카메라의 시선으로 독자들과 사연을 나누는데 그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Dam Dahm은 작은 고장 담양의 큰 나무 이야기이다. 전체 3권의 기획으로 그 첫 번째 사연이 출간되었다. 제1권의 주제는 지수화풍(知 壽 化 風)이다 ‘知壽’는 사람의 한 생을 의미하며 ‘化風’은 사람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나무와 자연의 변화를 말하고자 하였다. 제1부 ‘바람은 오래도록 기억을 따랐다.’ 오랜 세월 이어온 ‘당산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사람은 흩어졌어도 바람만은 해마다 돌아왔다. 마을마다 정월이면 나무에 대한 감사와 그해 안녕을 빌었는데 이제는 마을마다 멈춰가는 시간에 살고 있다. 사라져가는 풍습이 안타까워 시인 심진숙은 바람에 순응하는 나무의 성품과 사람과 나무의 아픈 시간을 노래로 위로하였다. 나무의 기억 속에는 사람의 마을이 살고 있습니다/ 큰 나무 옆에서 나고 늙어가는 사람과 길 떠나 돌아오지 못한 이의 저문 마음도 보입니다/ 바람의 길이 마을에 닿으면 나무는 먼 신화를 불러들이고 하늘의 새와 물의 노래에 귀가 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詩 지수화풍 가운데 이제는 좋은 일만 있으라고 눈부신 손수건을 자꾸만 꺼내어 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그만한 이유가 달려 있지요/ 일곱 그루나 되었던 당산목이 그 해 조선목으로 베어지고/ 그중 작아서 남겨진 느티나무 한 그루 당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죽을 뻔하다 살아난 은행나무는 당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도끼에 찍힌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새 가지를 내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옆구리를 사람들이 안쓰럽게 어루만집니다 여기 움푹 패인 디가 도끼 자국이제/ 여그서 피가 철철 흘렀다여~/ 왜놈들이 혼비백산을 혀갖고 달아나부렀대/ 그놈들 아마 뒈졌을 거여~ -詩 ‘상처로 아름다워지는 나무’ 가운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젊은 과수댁이 봄밤 나무를 부여잡고 앉아 있던 곳/ 지친 경운기가 녹슨 몸을 부리고 쉬는 곳/ 몰락의 계절을 수없이 건너 다시 기원을 향해 자라는 버드나무/ 당신은 사랑하는 법을 압니다/ 계절이 순환하는 논둑에 서서 무논에 벼를 심는 어머니처럼 -詩 ‘버드나무 마을’ 가운데 제2부 나무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다 당산은 한 번도 누워 본 적이 없다 천년세월 마을에 서서 기운을 주었고 사람의 둥지가 되었다. 그리고 시인은 작은 고장의 당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의 노래가 인생의 함축이라면 사진은 시선을 담아두는 풍경의 창이다. 시를 읽는 나무, 나무와 의자, 나무와 사람, 나무들의 노래, 시인은 천년 당산 기둥에서 시를 긁었다. 그러자 나무는 시가 되었고 의자가 되었고 마을이 되었고 사람이 되었다. 카메라는 그러한 나무의 변신에 시선을 주었다. 현상은 가고 없어도 시는 기억을 불러오고 사진은 찰나를 열어주었다. 이곳은 밤마다 목신의 음덕이 내려앉는 시가 있는 마을이다. 양지바른 노랑골에 집 한 채 앉혀놓고/ 남은 생은 헤어지지 말자던 언약/ 삼짇날이면 진달래 따서 두견주 담고/ 중양절이면 구절초 꺾어 국화주 담아/ 맑은 계곡 정자 올라 소반 앞두고/ 술 한잔 시 한 수 주고받고 살자던 꿈/ 다시 못 온 미암의 마지막 길/ 서둘러 따라간 덕봉의 눈물처럼/ 호수 하나 남모르게 깊었습니다/ 다하지 못한 옛시인의 노래 잠겼습니다/ 연계정 호수 꽃물결 속에는 시를 읽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詩 ‘시를 읽는 나무들’ 전문 나무는 앉을 수가 없고, 의자는 앉은 듯 서 있습니다/ 자신의 내일이기도 한 의자, 죽어서도 서 있는 의자를 위해/ 느티나무가 단풍 몇 잎을 가만히 떨궈줍니다/ 한때 나무였던 날의 기억을 소환하는지/ 빈 의자는 이리저리 단풍잎을 굴려봅니다 만남재를 지나 바람재를 넘어 사라진 것들은 낡은 바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산그늘에서 먼 그리움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번져 내려오는 가을날 오후/ 수북천은 메마른 가슴을 드러낸 채/ 뒤채일 힘도 없이 길게 누워버렸습니다 -詩 나무와 의자 가운데 바람이 내게 답했습니다 나는 나무라고/ 오백 년을 살아도 뿌리내린 자리 떠나지 못하는/ 그루터기 하나로 남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이곳이 나의 자리라고/ 서서 잠들어야 하는 밤들이 지나고/ 잠들지 못하는 바람의 이야기에도 귀가 열렸습니다/ 어느새 나는 마을의 당산이 되었습니다 한때는 내가 남몰래 우는 것이/ 바람에 떨어진 꽃잎 탓인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별보다 먼 그리움에 잎새가 흔들리지만/ 이제는 바람처럼 큰 자유를 압니다 -詩 비구니 당산 이야기 가운데 제3부 나무는 하늘이 쓰는 詩다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에는 우주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의 중심이자 지구의 배꼽인 옴파로스Omphaios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 세계축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그 나무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태양계의 별들이 공전한다. 그것은 변화, 운동, 운행의 중심축이다. 그 우주목은 모든 종교 탄생의 중심에 서 있고, 나라마다 한 그루씩 상징목으로 서 있다.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술지마을의 당산 역할을 하는 은행나무처럼 마을 마다에도 그 중심에 꼭 우주목 한 그루씩이 서 있다. 나무는 그 뿌리를 땅속에 둔다. 그 뿌리가 어둠 속에서 끌어올린 자양분으로 잎들은 하늘과 교신을 한다. 그래서 나무는 삼계 곧 지하, 지상, 천상으로 모두 연결되며 죽음, 삶, 영원을 하나로 잇고 있다. 그래서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그 직관으로 나무에게서 우주라는 거대한 노래를 듣는다. 나무는 지상의 피뢰침, 하늘과의 교신이 이루어지는 안테나, 삼계를 잇는 무선 기지국 역할을 한다. 자크브로스는 그런 나무를 사실상 전 우주적 몽상의 가장 적합한 기반이라 한다. 나무는 인간 의식을 포착할 수 있는 길이요, 우주에 생기를 부여하는 생명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대립 되는 두 개의 무한을 서로 연결하는 동시에 상반되는 의미를 지닌 대칭적인 두 심연인,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두운 지하의 물질과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에테르가 서로 결합하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꿈을 꾼다. 묵묵히 서 있는 나무줄기에 몸을 기대면 인간은 나무에 동화되어 그 내적인 움직임을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고재종 시인의 글 ‘나무, 삶의 영속성을 현시하는 구도자’ 가운데 나무는 오래도록 바람에 기대어 과거의 기억을 지금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시간을 거슬러 견뎌온 상처뿐인 나무,?상처마저 아름다워지는 나무,?역사의 재앙이 올 때는 사람을 대신해 쓰러지기도 하였고 뿌리 채 뽑히기도 하였다.?나무는 한결같았고 변한 것은 사람의 시간이었다.?나무의 시간은 밤하늘에 외로이 목을 세웠고 뜨거운 햇살에는 어깨를 벌려 그늘이 되어 주었다.?단 한 번도 누워 본 적이 없는 나무는 오래도록 마을 앞에 의연히 서 있었다. “Dam Dahm Ⅰ_?작은 고장의 나무 이야기”?그 첫 번째?詩와 사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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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과 사진작가의 찰나적 진심이 융합된 사진 시집 『Dam Dahm Ⅰ』
시는 문학의 장르로서 정서에 의존한다. 개인 정서의 표현이기도 하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진실을 은유하기도 한다. 시가 우주의 모방이든 주관적 상상의 표현이든 인간 체험의 특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깊은 내면, 즉 인간의 본질을 더듬는 시적 행위는 그러므로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 응답한다. 시는 소설이나 산문과는 다른 운문이다. 운문은 리듬이고 그것은 마음을 전하는 교감의 원리를 추구한다. 시인 심진숙은 시의 정서로 만물의 교감으로 이르는 길목을 부유하는 감성의 흐름을 포착하는 시인이다. 만물의 교감이란 인간의 삶이 신과 인간, 우주와 만물의 공존이라는 지극히 근원적인 형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이러한 세계정신은 무변하리라는 믿음에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진숙은 세상을 향하여 이에 대한 답을 조심스럽게 찾는다, 심진숙이 이번에 내놓은 시집 『Dam Dahm Ⅰ』은 나와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의 공존과 교감이라는 정서의 형체를 시인만의 정교하고 독특한 시어로 녹여낸다. 시는 난해하지 않고 친근하면서 의미는 명확하고, 시어는 어렵지 않으면서 서정적이며, 리듬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Dam Dahm Ⅰ』은 부제에서 말했듯이 '나무 이야기(The Story of Trees)'다. 시인은 인간의 이야기를 나무로 이야기로 현현 시킨다. 나무는 상징이지만 시적 은유를 고집하지 않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지기로서 나무는 인간의 영혼으로 담지 되어 부끄러운 인간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에 담아 날 것으로 토해낸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선은 나무에 머물지만, 영혼으로 교감하면서 우리의 삶을 들려준다. 사연 깊은 지실 마을은 인간이 살고 살아갈 마을이지만 ‘시인도 소리꾼도 매화마저 떠나버린 마을’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정서와 노래와 향기가 사라진 것은 내 영혼의 황폐함을 의미한다. 시인은 아픈 상처를 보듬는다. 내가, 네가 외면했던 고향 같은 곳, 인간의 영혼을 피워 올리는 소중한 터에 오롯이 서 있는 나무의 기억으로 그 순한 감성을 찾아간다. ‘상처로 아름다워지는 나무, 아직 검은 울음이 숨어 있기는 하지만 기억하는 상처로 희망의 조각들을 만들어내는’ 나무에게 시인은 어깨를 기댄다. 그리하여 『Dam Dahm Ⅰ』의 모티프는 ‘나무는 마을의 기억을 품는다’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인간과 나무의 관계는 신의 상징을 통하여 인간과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화두가 된다. 많은 시인들이 나무를 체화시켜 믿음과 진리의 재현을 시도했고, 존재와 윤리의 보편적 근원을 추구했다. 시인들은 나무는 근원적으로 수용의 의미를 포괄하면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 회귀적인 무한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나무의 결을 따라 흐르는 시간의 언어를 여성성으로 보는 김혜순 시인의 경우 이와 같은 남성 중심의 억압을 외세에 대한 항거로 읽을 수도 하고, 시인 나희덕은 생태적인 자연 친화적 성질과 자기 내면 속에 있는 타자로 비유하는데 이는 오랜 마을 당산을 지키며 인간의 영욕과 교류하는 나무로부터 인간의 질긴 생명력과 삶의 숭고함을 의미화할 수 있으며, 나무와 바람의 욕망을 생명의 근원으로 승화시켜 구속을 초탈하는 자유인의 상징으로 묘파한 황인숙의 시 세계로부터는 삶의 향기를 끌어내는 나무의 깊고 진한 속내를 반추할 수 있다. 『Dam Dahm Ⅰ』에서 심진숙 시인은 ‘시를 읽는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다하지 못한 시인의 노래’를 이어간다. 전남 담양은 옛 마한의 땅이다. ‘천 년의 바람이 될 모든 것들을 위하여’ 원시의 땅으로부터 옛사람들의 마음을 찾는다. 그곳은 물이 시작되는 곳으로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시인은 ‘물이 시작되는 숲은 신화로 무성하다’고 노래하면서, 물의 역사를 따라 나무는 흐르고 그 ‘나무의 그늘은 물의 기억’이라고 읊조린다. 『Dam Dahm Ⅰ』은 나무의 기억을 소환하여 나와 이웃의 삶을 객관적 시각으로 조형하고 그 실루엣을 시인의 주관적 정서로 채색한다. 무채색의 기억의 그림자, 나무의 그늘이 시인의 영혼을 통하여 세상의 파노라마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심진숙의 시는 청각적이고 회화적이다. 시인의 미묘한 감성의 흐름을 포착되는 시점마다 윤색되지 않은 우리의 삶의 행태는 슬프고 또 아름답게 펼쳐진다. 마을과 사람들의 고난사, 외세 침략의 항전사, 고향 지킴의 신화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우리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과정들이 시인의 담백한 시어로 재현된다. 마을의 당산에는 나무가 있다. 한국 샤머니즘에서 당산나무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으로 우주목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당산나무는 신성하고 신과 인간의 교감을 이루는 매개를 상징한다. 『Dam Dahm Ⅰ』의 당산나무는 시인의 손길로 안내되어 우리의 분신이 되고 영혼이 된다. ‘속이 다 타서 거죽만 남은 몸통에서도 잎새들을 피워낼 수 있는’ 느티나무는 ‘나무들의 향기를 찾아서 오래 헤매던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신목이 되었다. 기억의 새는 ‘눈부시게 떨리는 정자나무 한오백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면서 비구니의 슬픈 노래를 전해준다. ‘내가 몰래 우는 것이 바람에 떨어진 꽃잎 탓인 줄 알았는데’, ‘오백년을 살아도 뿌리내린 자리 떠나지 못하는 나무’의 그늘과 침묵으로부터 신화는 탄생한다. 저 유럽 나라 그리스의 월계수는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고픈 사랑을 모르던 다포네의 변신이었다. 나무는 인간을 품고 인간의 기억을 후세에 전한다. 인심을 낳고 노래하며, 꿈을 사랑했던 꽃과 바람의 이야기, 한 생애 설움으로 굳어버린 몸의 언어를 토해낸다. 시인은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또 다른 생명을 예감하면서 나무 이야기를 끝맺는다. 심진숙 시인은 『Dam Dahm Ⅰ』에서 그저 머물고 있다. 무엇이 삶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나무의 정령을 만나고 바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할 뿐이다. 시인은 세상의 소리에 오염된 자신의 귀를 원망하며 나 아닌 누군가의 노래로 나무 이야기가 퍼져나가길 염원한다. 시는 이런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모든 감성으로 하나 된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Dam Dahm Ⅰ』의 모든 시는 어렵지 않고 담담하게 익히지만 타고 남은 재에서 불씨를 지피게 한다. 영혼의 정화까지는 욕심부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시를 읽은 시간만큼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Dam Dahm Ⅰ』은 차별화된 사진 시집이다. 심진숙 시인의 감성과 김정한 사진작가의 찰나적 진심이 융합된 보기 드문 수작으로 보인다. 더 많은 분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마음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추천사는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 - 신용성 (소설가,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