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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만 있고 필요 없는 것은 사라진 세상에서 처음으로 생활에 필요도 없는 이상한 소리를 박사님이 들었던 거야.
--- p.16 쓸모 있는 게 있으면 쓸모없는 것도 있어야 해. 그것이 쓸모없는 것의 쓸모인 거야. --- p.51 방귀는 빠르게 전염되었어. 전염된 사람들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지. 그건 정말 쓸데없는 소리였는데 말이야. --- p.69 마침내 방귀 연주회가 열렸지. 연주자들의 연미복 뒤쪽에는 모두 구멍이 펑 뚫려 있었어. 엉덩이에서 톡 쏘는 향과 함께 소리가 울려 퍼졌어. --- 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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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있는 세상에선 밥 대신 알약을 먹고 걸음은 무빙워크로 걷고 사랑은 성격 매치 프로그램으로, 미움은 간단한 클릭으로 해결합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예의 없는 행동은 금물이어서 방귀, 코골이, 기침과 트림은 진작에 퇴출당했습니다. 슬프고 짜증 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물론 웃음이나 설렘, 기쁨의 감정도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없어졌죠. 그런데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자 삶을 기쁘게 하는 것들도 없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상대적인 것들이 있어야 의미가 생기는데 실패, 이별, 고통이 사라지니 성취, 사랑, 행복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박사님이 사는 세상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인생의 필요조건들을 모두 갖추었지만 그 자체로 삶 전체가 되는 충분조건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생활의 문제만 실용적으로 해결한다고 해서 삶이 완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류도 없고 불편도 없는 것은 기계의 매뉴얼이지 우리의 일상이 아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 피할 수 없는 불행, 알고리즘을 벗어나는 좌충우돌 속에서 삶은 매순간 더 확장되고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방귀가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이 되듯 하찮은 삶의 요소들 뒷면에 놀라운 가치들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있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정작 중요한 것은 없다’는 반어적인 메시지입니다. 완벽하다지만 부럽지 않은 책 속 세상을 여행하고 현실로 돌아오면 쓸모없다고 팽개쳐 둔 것들을 다시 집어 들어 살펴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 놓치고 있는 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 번 사라지면 되살려 내기 힘든 소중한 것들 매일의 생활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개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도에 따라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며 살아갑니다. 바로 이 우선순위가 점점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에 작가는 주목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합리와 효율이라는 우선순위는 생산력과 돈으로 연결됩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이라도 성사되기 어렵고 빠르게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세상이 점점 경제 논리로 돌아가자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들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철학과 문학, 예술과 자연, 자유과 휴식, 모험과 도전 등이 숫자로 당장 치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전이 된 현실을 작가는 웃프게 꼬집어 냅니다. 엉뚱한 박사님이 죽을힘을 다해 피워 올리는 방귀처럼 이런 가치들은 한 번 사라지고 나면 다시 불씨를 살려 내기 힘든 고귀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은 현실을 안정시키지만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기쁨과 감동, 행복감과 충만감 등 삶의 궁극적인 것들은 주로 무형의 가치들 너머로 날아옵니다. 경직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 김전한 작가는 특유의 입담으로 수많은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옛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가도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다시 역사 이야기를 읊는 듯하다가 과학적인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코믹한 상황들이 철학과 버무려지고 초자연적인 모티프가 사회의식으로 옮겨 가기도 하면서 방귀가 음악으로 탄생하는 이 엉뚱한 판타지는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술술 이어집니다. 작가는 방귀라는 원초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논리와 이성을 내세운 근엄한 현실에 통쾌한 균열을 냅니다. 마치 엄숙한 오케스트라 무대 위에서 연미복에 뚫린 엉덩이 구멍 사이로 톡 쏘는 향기와 함께 방귀 음악이 울려 퍼지듯 유쾌하고 시원합니다. 일러스트와 컷 만화, 카툰 형식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기발하게 펼쳐지는 경자 작가의 그림도 경직된 세상을 한 바퀴 뒤집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시선을 선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