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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刊の?
임만호(任?浩) 한국 측 회장(韓? 側 ?長) 柴崎 聰(시바시카 사토시) 일본측 대표(日本 側 代表) 시·詩 東 延江(아즈마 노부에) 私の罪 他 1篇 / 나의 죄 외 1편 服部 剛(핫토리 고) 旅人 他 2篇 / 여행자 외 2편 本多 ?(혼다 히사시) 聖夢譚?拾遺(1) 他 1篇 / 거룩한 꿈 이야기 습유(1) 외 1편 임만호(任?浩) 꿈꾸는 달팽이 외 2편 / 夢見る蝸牛 他 2篇 김봉군(金奉郡) 길갈의 빛 외 2편 / ギルガルの光 他 2篇 김철교(金喆敎) 수도원의 빛 외 2편 / 修道院の光 他 2篇 김응교(金應?) 성(聖)지린 외 1편 / 聖しょうべんくさい 他 1篇 김 석(金汐) 어린 딸 성경 편 채 잠들다 외 1편 / 幼い娘 聖書を?げたまま眠りに付く 他 1篇 木村 淳子(기무라 준코) あなたはともにおられる 他 1篇 / 당신은 함께 계십니다 외 1편 권은영(權恩永) 갈릴리바다 외 1편 / ガリラヤ湖 他 1篇 권택명(?宅明) 영혼의 목수 외 2편 / ?魂の大工 他 2篇 이계설(李啓卨) 하나님의 손짓 외 2편 / 神?の手ぶり 他 2篇 이향아(李?莪) 이 세상 후미진 곳에서 외 2편 / この世の?まったところで 他 2篇 민영진(閔泳珍) 성탄 외 2편 / 聖誕 他 2篇 中山 直子(나카야마 나오코) 枕もとの座布? / 머리맡의 방석 坂井 信夫(사카이 노부오) イエスは / 예수님은 柴崎 聰(시바사키 사토시) ?? 他 1篇 / 설교 외 1편 송정우(宋廷宇) 눈물 II 외 2편 / ? II 他 2篇 양효원(楊孝婉) 신뢰에 대하여 외 2편 / 信?について 他 2篇 산문·散文 백성기(白聖基) 얼어붙은 눈물 / 凍り付いた? 古橋 昌?(후루하시 마사나오) 神道、儒?、??、諸文化のなかのイエス / 신도, 유교, 불교, 여러 문화 속의 예수 市川 ?紀(이치카와 마키) イエスと息子と私と / 예수님과 아들과 나와 長? 拓磨(나가하마 다쿠마) 日本近代文?とキリスト? ―文?者における 「イエス」 について / 일본 근대문학과 기독교 ? 문학자의 「예수」에 대하여 남금희(南錦熙) 나를 인내하시는 그분 / 私を我慢してくださる方 ?野 正元(오쿠노 마사모토) 神の子イエス / 하나님의 아들 예수 佐藤 ゆかり(사토 유카리) 子供の?美歌を通して / 「어린이찬송가」를 통해 芹川 哲世(세리카와 데쓰요) 主イエスと私 ― 私の信仰告白 / 주 예수님과 나 ? 나의 신앙고백 양왕용(梁汪容) 나의 시, 나의 신앙 / 私の詩、私の信仰 〈동북아기독교작가회의〉 소개 東北アジアキリスト者文??議 紹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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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던 어느 날
항구 거리에 그해 첫눈이 내렸다 10월 25일 아침 태어난 지 단 하루가 된 내 어린아이는 호흡을 멈췄다 단 하루 단 하루만의 어미와 자식의 이별 작은 상자 속의 뼛가루가 된 생명 신선하고 부드러운 눈이 내 눈물을 감싼다 긴 겨울의 끝 민들레가 봄을 알리고 부드러운 햇살이 나를 거리로 이끌어 냈다 건어물 가게에서 풍겨나는 바다 냄새 케이크 가게의 달콤한 시간 라면집의 포렴(布簾)이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내 발이 갑자기 멈췄다 가게 앞 좁고 긴 의자에 앉아 마주 미소 짓고 있는 모자(母子) 그 병실에서 나와 같은 날에 엄마가 된 그 사람이 있다 그때의 갓난아기가 엄마에게 안겨 웃고 있었다 그때 나의 속삭이는, 목소리 왜 내 아이만 하나님이 데려가셨는가 모자의 영상은 그 아이의 죽음까지 원했던 잔혹한 한 순간 가을바람이 거리도 사람들도 덮기 시작했다 아침 펼친 신문의 한 구석 그 갓난아기의 죽음이 검은 테두리 안에 보도되어 있었다 경직된 내 뺨이 떨렸다 순간 그 아이의 죽음까지 떠올렸던 나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주먹이 내려쳐졌다, 라고, 예수님께 구해 달라고 한 내 염치없음에 텅 빈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용서받지 못해도 좋다 꾸짖음의 말씀을 구했다 나의 예수님은 가만히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당신의 응답 당신의 나에 대한 말씀 그날의 모자의 미소는 평생 내 속에 산다. ---「나의 죄 / 아즈마 노부에」중에서 나는 지금 다시 잠들려고 합니다 일몰의 그늘에서 깃발을 내리듯이 순순한 육신을 꽃가지처럼 드리우고 활개쳐 갈 수 없는 요요한 꿈속으로 새털같이 즐겁게 떠나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 다시 잠들지 않아도 나는 사철 잠들어 있었습니다 눈뜬 자의 지혜에 불을 켜지 못하고 산 자의 고요가 독약보다 슬프게 퍼지는 것을 장승처럼 그냥 서서 보았습니다 이제 새삼 잠든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이제 다시 잠든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 절정의 죄짓는 나를 흔들어 주십시오 제발 이 막판의 어리석은 나를 매질하여 주십시오 ---「나는 지금 다시 / 이향아」중에서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이었다. 하나님을 본 이사야는 말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인가? 육체의 고통, 제자들로부터도 버림 받은 고독, 무능력 그 자체였던 인내와 순종, 일찍이 아무도 맛본 적이 없는, 비참함의 극치 그 자체, 그것이 십자가상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다. 플라톤은 『국가』 제2권 5에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대하여, “그는 채찍에 맞고, 고문을 당하고, 결박되어, 두 눈이 뽑히고 불에 태워지고, 끝내는 모든 고난을 당한 끝에 책형(?刑)을 당하리라”[후지사와 노리오(藤? 令夫)역,이와나미(岩波)문고, 113페이지]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것 같은 말을 하며,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할 것이라고 글라우콘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상의 예수는 비참함의 극치 그대로 지금도 그곳에 계속 서 있다. 비참함의 극치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비참함인 한, 이 세상의 여하한 비참함보다 앞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는 비참함의 극치를, 그 누구보다 완전히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고 하는 사실, 십자가의 예수야말로 지워 버릴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비참함을 아는 사람만이, 비참함 속에 있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다가가며,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죽음이었다고 한다면, 신약성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맨몸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비참함을 지켜보며 계속 치유함으로써, 이 세상을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 오쿠노 마사모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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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한일 문학을 가까이 배워 온 것은 둘도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일본어와 한국어이기 때문에, 깨닫게 된 것도 많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타자(他者)를 배우지 않고서 자신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한일의 차이를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제18회 회의는 다시 연기되었습니다만, 창조문예사의 사주이며 한국 측 회장이신 임만호 시인의 배려에 의해, 이 회의와 관계가 깊은 분들의 투고를 모아, 산문과 시를 기고(寄稿) 받았습니다. 한일의 생각을 한 권의 앤솔로지에 담아 발간하는 것은, 저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한국 측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바사키 사토시(柴崎 聰) (동북아기독교작가회의 일본 측 대표) 발간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