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PART 1 찬란한 봄, 그리고 벚꽃 아래 패트리엇 미사일 꽃샘추위 녹이는 희망 나가사키에서 봄날 단상 나만의 길을 걷는 행복 열린 생각, 겸손한 여행 세상의 중심, 세상의 끝 꿈꾸는 창고, 영화 운명의 파두(Fado) 아르헨티나의 혼, 메르세데스 소사 “다시는 군주의 개가 되지 않겠다”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평화의 메신저, 존 바에즈 PART 2 마음을 열고 한 걸음 별이 된 누이 봄바람 속 해후를 기다리며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돌배’도 뒤집는 민심 강대국 무릎 꿇린 베트남 우리 안의 편견 관용 잃어버린 북유럽 오만과 편견 ‘인터걸’ 자존심까지 가난하지 않다 편견과 차별로 쌓은 바벨탑 결혼 이주여성의 눈물 PART 3 생각을 담는 그릇, 문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흥미로운 목욕 문화사 안데르센의 연인, 인어공주 같은 듯 다른 듯 ‘반도국가’ 해외에서 만나는 ‘식객’ 목각인형, 마트료시카 여자는 립스틱, 남자는 칼 브라질 삼바 축구 몽골에선 겨울비도 축복 공정하다는 착각, 아이비리그 사랑의 흔적, 비비하님 모스크 PART 4 희망을 걷는 사람, 사람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낭트에 닻 내린 민선식 박사 마에스트로 방이 부르는 〈고향무정〉 피맺힌 고려인 강제 이주 카레이스키 전설, 김병화 노무현과 베레고보와 수상 별이 된 이름, 고흐 발렌베리와 이건희 컬렉션 기억 저편 옛 친구, 타이완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PART 5 제국의 그늘, 라틴아메리카 미국과 가까워 불행한 땅 ‘발견’ 아닌 ‘도착’ 콜럼버스는 재앙의 시작 미국 말씀이 앞서는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굿바이보이, 잘 지내지? 신의 도시에 버려진 아이들 마리아치 선율에 스민 슬픔 황금박물관과 간송미술관 나스카 수호 여신, 마리아 라이헤 브라질에 날리는 벚꽃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 PART 6 혼돈과 증오의 땅 중동, 이슬람, 그리고 아랍 분노와 비탄의 가자지구 바람 잘 날 없는 ‘성묘교회’ ‘쌀람’과 ‘살롬’ 사이에서 파트리샤는 아흐메드를 사랑해 분리 장벽을 넘는 양심의 소리 흔들리는 신정국가 테헤란 ‘서울로’와 서울 ‘테헤란로’ 잔혹한 돌팔매질 사형 ‘히잡’은 이슬람 여성에게 혼돈의 도시 카이로 새벽잠 깨우는 ‘아잔’ PART 7 경계에서, 일본 끊임없이 출렁이는 현해탄 40년 시간의 강 건너 느림의 미학, 유후인 유신의 고향, 가고시마 조작된 애국 ‘치란평화회관’ 짬뽕과 카스텔라, 그리고 고흐 예술 섬으로 부활, 나오시마 우동 천국, 다카마쓰 사카모토 료마와 고치 사랑스러운 여인, 에히메 시민이 지킨 우치코 |
임병식의 다른 상품
|
우리는 미국 문화권에서 교육받고 성장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만든 창에 의지해 바라보는 데 길들여져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자신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 이슬람 문화권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리 없다. 편견과 왜곡, 적대감은 필연적이다. 나 또한 미국이 만든 관점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열린 생각, 겸손한 여행」중에서 지구는 둥글기에 어느 곳이나 중심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세 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곳인들 소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상의 중심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구촌 어디든 한국이 우뚝 선다면 그곳이 중심이다. 미국 소설가 헨리 베스톤(Henry Beston)은 매사 추세츠주 케이프코드(Cape Cod)를 세상의 끝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세상 끝의 집』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결국 ‘세상의 중심’과 ‘세상의 끝’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자 끝이다. ---「세상의 중심, 세상의 끝」중에서 착한 부자 워런 버핏이나 헤지펀드 거물 조지 소로스는 눈덩이처럼 탐욕을 확장하는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에 옐로카드(yellow card)를 꺼내 든 셈이다. 최초 시위는 30여 명에서 시작됐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시위는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고, 급기야 대한민국 젊은이들까지 동참했다. 우리 청년들도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탐욕과 부도덕에 분노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소수에 의한 금융 지배는 자본주의 속성이다. 월스트리트 시위는 막을 내렸지만 불평등 구조를 방치하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내재돼 있다. 극심한 양극화와 계층 갈등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공동체 유지와 불평등 해소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시위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은 1% 대 99%가 아니라 20% 대 80% 대결을 고민해야 한다. 소수 1%가 아니라 20%에 집중된 부를 상식에 맞게 분배하는 사회정의 실현이 보다 합리적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중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동양에 대한 오랜 편견과 오만이 어떻게 학문과 이론으로 확립돼 왔는지를 파헤쳤다. 그는 동서 문학과 문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문헌 조사를 통해 제국(백인 문명) 작가들과 그들의 저술이 어떻게 동양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이데올로그나 정치 담론으로 이용되어 왔는지를 명료하게 밝혔다. 결론은 편견에서 시작된 사소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식 체계나 진리로 굳어지고, 이는 다시 상대를 깔아뭉개는 오만으로 확대 재생산됐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 ‘인터걸’」중에서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이기에 우리 삶과는 뗄 수 없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본능을 넘어선 문화적 행위다. 우리는 습관처럼 “밥 먹자”는 인사를 건넨다. 연인은 물론이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파, 또는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다. 물론 정말로 밥을 먹자는 뜻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인사치레인 경우가 많다. 해외여행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도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음식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만나는 ‘식객’」중에서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이기에 우리 삶과는 뗄 수 없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본능을 넘어선 문화적 행위다. 우리는 습관처럼 “밥 먹자”는 인사를 건넨다. 연인은 물론이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파, 또는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다. 물론 정말로 밥을 먹자는 뜻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인사치레인 경우가 많다. 해외여행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도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음식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만나는 ‘식객’」중에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능력의 결과로 착각한다. 김누리 교수(중앙대학교) 역시 “승자는 끝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굴욕감을 내면화한다”며 ‘능력주의 폐해’를 주장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승자는 승리를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낸 당연한 보상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다른 측면에서 공정을 바라보길 제안했다. KAIST와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들은 샌델 교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이로 인해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능력주의가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또 ‘공정은 정의’라는 등식은 합당한 명제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아이비리그」중에서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왓츠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 의지를 그림으로 남겼다. 작품 〈희망, 1886년〉은 대표적이다. 그림에서 한 여인은 지구본에 앉아 수금(하프 일종)을 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상한 게 한둘 아니다. 앞을 볼 수 없고 하늘은 어둡고 수금은 모두 끊어진 채 한 줄만 남았다. 모든 게 암담하고 위태롭다. 그런데도 화가는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버리지 말아야할 가치가 있다면 희망임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꿈이다.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다. 험난한 시대, 꿈을 잃지 말라고 한다면 현실감 없는 말일까. 그래도 희망을 떠올리고, 시작해야 하는 건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남루할지라도, 꺼지지 않는 희망이 있기에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중에서 결정 1428-326cc’(1937년 8월 21일) 문서 한 장이 시작이었다. 소련 인민위원회와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던 고려인 강제 이주를 결정했다. 고려인 17만 명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실어 나르는 계획이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일본인과 외모가 비슷하기에 첩자 활동을 방지한다는 게 첫째였다. 고려인들은 한순간 장기판 졸 신세가 됐다. 먹고살기 위해, 일제 압제를 피해 연해주에 정착했던 그들은 모든 걸 버려둔 채 황망히 떠나야 했다. 기차에 오른 1937년 10월, 누구도 기약 없는 디아스포라(이산)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종착지까지 6700~6800㎞에 이르는 거리를 40여 일 동안 달렸다. 지금 세대들에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로망이자 버킷 리스트다. 하지만 85년 전, 고려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은 목숨과 맞바꾼 고난의 행로였다. ---「피맺힌 고려인 이주 역사」중에서 |
|
독서와 대화, 여행은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유효한 수단이다.
이 가운데 여행만한 게 없다. 여행은 직접적이며 가슴 뛰는 경험이다. 굿바이보이, 잘 지내지? 마추픽추 인디오 소년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디오 소년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인디오 소년은 버스가 산 아래 도착할 때까지 “굿바이~”를 외쳤다. 다녀온 이들을 통해 들었던 ‘굿바이보이’였다. 처음에는 같은 복장을 한 여러 명을 모퉁이마다 배치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 명이 정상부터 산 아래까지 버스를 따라 달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했는데 의문은 풀렸다. 인디오 소년은 자동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직선으로 달려 다음 모퉁이에서 버스를 따라잡았던 것이다. 소년은 8자를 그리며 달리는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가쁜 숨을 내몰며 뛰었다. 이렇게 13굽이를 거듭해 달리면서 인디오 소년은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물했다. 관광객들에게 굿바이보이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good-bye”가 거듭될 때마다 관광객들은 이번에는 어디서 나타날까 궁금해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또 인디오 소년을 촬영하며 즐거워했다. 버스는 마지막 굽이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차했고 ‘굿바이보이’가 차에 올랐다. 관광객들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인디오 소년에게 2~3달러씩 팁을 건넸다. 결국 인디오 소년은 몇 달러를 손에 쥐기 위해 2,400여 미터의 산을 오르내린 것이다. 인디오 소년이 마추픽추 산길을 목숨을 걸고 뛴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겪었던 불운한 역사가 수백 년을 지나 대물림되는 현장이다. ‘굿바이보이’는 가슴 아픈 라틴아메리카를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마추픽추를 다녀온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때 만났던 인디오 소년은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지, 무릎은 무탈한지 궁금하다. 그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잉카 후예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기를 바라지만 희박한 기대라는 걸 안다. 지금도 마추픽추에서 다른 굿바이보이가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인디오 소년을 떠올리며, 소년에게 건넨 푼돈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존심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라는 피에르 신부의 말을 떠올리며 ‘굿바이보이’ 안부를 묻는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