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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_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
PART 1 여기, 뉴욕 This is New York 이곳은 뉴욕 My Home Atelier 내가 살던 그곳 Roommates 뉴욕의 동거인 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dward Hopper 창밖의 고독, 에드워드 호퍼 Dance Dance Dance 몸치여도 괜찮아 My Albrecht 1 나의 알브레히트 My Albrecht 2 오늘의 뒤러 They are Collectors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PART 2 독립 의지 I’m not lonely 청년 쇼팽 조성진의 따뜻한 위로 Tables For Ladies 여자들을 위한 테이블 Fifth Avenue 물러서지 않아 Have a good day 미국이라는 환상 Chop Suey 차이나타운 프리덤 A free human being with an independent will 프로 놀러 Live and let live 카리브의 자유 영혼 A Woman Who Reads 뉴욕의 서점 On the Way to a friend 어릴 적 그 책, 메트에서 PART 3 삶은 공부 Looking for a better life 이민자들의 나라 Sex And The City 그리니치빌리지 Memorial 월 스트리트 트리니티교회 그리고 9.11 Woman in a Loge 공연 공부 All men are created equal 할렘에서 My night is more beautiful than your day 브루클린의 조지아 오키프 New York Interior 뉴욕의 실내 What compels us to travel? 기차 여행 인용문 출처 및 참고 자료 작품 크레디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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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영화 「정글북」을 봤다.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늑대라 여기는 모글리에게 호랑이 시어칸이 말한다. “너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마(Do not run away from who you are).” 나처럼 살지 않기 위해 뉴욕에 왔는데, 나는 이곳에서도 정말 나처럼 살고 있었다. 낯선 곳에 오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잘 보이는 것만 같았다.
--- pp.27~28 이 그림(「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호퍼는 말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으로부터 고독한 공간을 끄집어내 화면에 재현하고, 무의식 속 외로운 인물들을 그 공간에 배치했다. 심상을 읊어내는 시인처럼, 호퍼는 마음속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그래서 그림 속 식당은 어디에든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환영(幻影) 같지만, 실재(實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는 고독한 공간의 이미지가 가라앉아 있고, 호퍼의 식당도 그중 하나이니까. --- p.56 소년의 자취를 따라 꽤 많이 걸었다. 그가 10대 때 일했던 아버지의 잡화점은 재활용품 가게가 되어 있었다. 그가 다녔던 교회, 그가 그렸던 집들, 그가 쭈그리고 앉아 들고 나는 배들을 보며 그림 그리던 강가의 부두. 그리고 그가 묻힌 묘지. 수많은 무덤 속에서 나는 그의 무덤을 찾지 못했지만 그가 묻혔다는 언덕 꼭대기에서 바다처럼 넓은 허드슨강과, 그 위를 오가는 흰 돛단배들을 볼 수 있었다. 예술가에게 걸맞은 묘지라 생각하면서 언덕을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 자그마하고 어여쁜 동네, 뉴욕주 나이액에서 나고 자란 화가의 이름은 에드워드 호퍼다. --- p.59 호퍼를 마주친 것이 뉴욕의 거리에서라면 뒤러를 만난 것은 뉴욕의 학교에서였다. 나의 알브레히트.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그렇게 불렀다.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던 NYU IFA에서 몇몇 미술사 과목을 청강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봄 학기에 들었던 알브레히트 뒤러에 대한 수업이다. 독일 출신 화가 뒤러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주자다. --- p.81 연수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들이 숱하게 많지만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충족의 순간은 메트에서, 모건라이브러리에서, 강의실에서 15~16세기 독일로 돌아가 뒤러를 논하던 금요일 오전의 그 수업시간이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기억날 소중한 시간이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의 뒤러’라는 제목의 일기로 그 수업을 매번 기록해두었다. 학점을 받아야 하는 것도 학위를 따야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있는 그 상황이 내가 뉴욕에서 누리는 궁극의 사치가 아닌가 생각했다. --- p.98 내가 산 그림은 초상화 판화가 인쇄된 엽서였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에 우뚝한 코를 지닌 샬럿,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에서 총명함과 동시에 예민함이 느껴진다. (……) 미로 같은 뉴욕 생활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초상화를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았다. 침대에 누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벽에 붙은 샬럿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죽은 그 여자가 자유롭게 네 맘대로 살아보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 p.174 자식의 고통스러운 삶을 예견하는 거창한 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내게도 독서란 일종의 제의(祭儀)적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읽기란 오래전부터 내게 또다른 세계와의 만남, 일종의 접신(接神)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1년간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곳은 내게 이미 ‘다른 세계’여서 굳이 책읽기를 통해 또다른 세계를 꿈꿀 이유가 없었다. 대신 나는 뉴욕 구석구석을, 서점을, 낡은 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을 탐험하며 내면의 성채를 쌓아올릴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책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다녔다. --- p.204 ‘뉴욕의 기록자’라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슬론은 워싱턴스퀘어파크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젖은 밤, 워싱턴 스퀘어」 역시 사진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든 워싱턴스퀘어아치와 그 앞의 분수, 그리고 아치 뒤에 늠름하게 서 있는 아르데코양식의 빌딩 원피프스애비뉴……. 비 오는 밤, 가로등 빛에 비친 젖은 거리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격조 있는 도회적 애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풍경은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 모습이지만 현재의 워싱턴스퀘어파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짧은 뉴요커 시절 나는 워싱턴스퀘어파크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오늘의 워싱턴스퀘어파크’라는 제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 공원의 아름다운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슬론에게 동류의식을 느꼈다. --- p.239 뉴욕을 떠나던 날 그 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 역시 혼자였지만 목선이 애잔한 호퍼의 여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햇볕에 잔뜩 그을린 건장하고 퉁퉁한 여자가 사진 속에 있었다.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그렇게 으르렁대고 다퉜던 예나였다. (……) 다음날 예나는 절뚝거리면서도 아래층까지 짐 옮기는 걸 도와주었고, 마지막에는 서로 뜨겁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예나 때문에 여러 가지로 속을 썩었지만 뉴욕이라는 거친 환경에서 20대 초반 유학생이 홀로 버티기 위해 택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으리라 이해해볼까, 하는 마음이 마지막에는 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휴대전화를 켰더니 예나가 보낸 메시지가 사진 한 장과 함께 와 있었다. “언니, 밥해줘서 고마워요. 짐 다 빠진 언니 방.” 침대도 테이블도 사라지고 휑하게 빈, ‘뉴욕의 실내’였다. --- pp.295~296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나라와 도시만 정해 연수를 오면서, 가장 자주 생각한 인물이 괴테였다. 그는 37세에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떠난다. 더 큰 세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쓴 이탈리아 체류기 『이탈리아 기행』은 세계적인 명저로 꼽힌다. 나 역시 비슷한 나이에 해외로 왔기 때문에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예술가들에게 여행은 자극이다. 샬럿 브론테는 벨기에에 다녀왔다. 보스턴 파인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미국 화가 윌리엄 메릿 체이스는 뮌헨에 머물렀다.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자기 안의 세계에 또다른 문을 열어주는 일인 걸까. --- p.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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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
그 수련의 여정 “뉴욕에서의 매 순간이 내겐 수업이었다. 학교도 다니고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과정도 밟았지만, 교실 밖에서도 많은 걸 배웠다. 오페라를 보고, 여행을 하고, 혼자 사는 생활을 잠시 멈춰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고, 미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숙고하고,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면서 결국은 ‘나란 어떤 인간인가’를 배웠다.”(12쪽) 지은이가 뉴욕으로 떠날 때 마음속에 품은 이미지는 독일 화가 티슈바인이 그린 「창가의 괴테」였다.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로마에 막 도착했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에 순수하게 몰입한 모습을 티슈바인이 화폭으로 옮긴 그림이다. 지은이 역시 자기 자신을 교육하겠다는 의지로 떠나온 해외연수에서 괴테를 롤모델 삼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몰두해 낯선 환경에 적응해간다. 그 모습은 분명 「창가의 괴테」와 닮아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괴테처럼 되겠다고 결심하고 머무른 뉴욕에서 정작 만난 건 괴테보다는 호퍼였다고 지은이는 훗날 고백한다. 매일 써내려간 일기 속 자신의 모습이 점점 호퍼의 그림을 닮아갔노라고, 그것은 마치 뉴욕 특유의 풍경 속을 거닐고 정지하는 그림 속 얼굴들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다. 대도시의 고독, 어쩔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이 자주 어깨를 움츠러들게 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매일 온몸으로 마주하는 그러한 생경함이 글을 쓰도록 추동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재료 삼아 써내려간 뉴욕 일기는 자신을 위한 훈련이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뉴욕에서의 1년 동안 나는 매일 썼다. 낯선 환경,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을, 모조리 붙들어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 ‘나’를 재료로 한 그 집필의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은 점점 또렷해졌다.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내 것이 되었다.”(12쪽) 난생처음 해외에서 살며 모든 계급장을 떼고 뉴욕이라는 거친 도시와, 그리고 스스로와 한판 붙으며 겪은 좌충우돌의 견문록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듯 미술관을 거닐며 그림 속 얼굴들을 만나다 소련의 한 미학자가 말했다. “아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건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고. 책에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일간지에서 미술 담당 기자를 맡기도 한 지은이의 이력답게 일상 속에 침투한 미술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특히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특별해진 호퍼의 그림 이야기와 호퍼의 자취를 따라가는 시간의 기록은 매일 보는 풍경, 매일 다니는 길을 다르게 보이게 했다. 가끔은 호퍼의 그림이 보고 싶어 아침 일찍부터 미술관으로 달려갔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소리 없는 위로를 전해주는 호퍼의 그림 속 얼굴들, 풍경들,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일상으로 스며든 호퍼의 자취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한다. 현대미술의 중심지라 일컬어지는 뉴욕의 미술 세계를 경험하고 기록한 내용 또한 흥미롭다. 뉴욕대학교 인스티튜트 오브 파인 아츠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작품을 보며 연구하고, 세계 굴지의 미술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산하 교육기관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에서 아트 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수강하면서 체험한 아트 비즈니스의 현장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밖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모건라이브러리, 뉴욕현대미술관, 브루클린미술관 등 도시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들을 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체화한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뉴욕을 그림처럼 그려보게 한다. 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 더욱 선명해진 ‘나’를 만나고 돌아오다 낯선 세계를 경험한다는 건 내 안의 또다른 문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쥐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문을 열면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잠시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문 너머 웅크리고 있던 ‘나’와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 자꾸 떠남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더욱 선명해질 나 자신과 조우하기 위해.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뉴욕에서 혼자 외롭지 않았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나는 나를 좀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다닌 1년 이었다.”(9쪽) 곽아람은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는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아등바등하며 살았고, 항상 남의 시선, 타인의 눈뿐 아니라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감시하는 존재를 두고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뉴욕에서 돌아온 후에는 더이상 그러지 않는다. 내가 되기를 공부한 이후에는 그저 나답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내 안의 강한 나를 탐색하고 기록한 『나의 뉴욕 수업』은, 그리하여 호퍼의 작품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이자, 혼자만의 이야기이지만 독자와 함께하면 더 좋을 이야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