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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
약어표 서론 1장 데살로니가전서 1-3장의 구조 및 기능과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술 동기 및 목적 2장 복음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살전 1:9-10, 롬 1:3-4) 3장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전한 복음: 데살로니가전서와 바울의 후기 서신들에서의 바울 복음의 연속성과 통일성 4장 바울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복음을 위한 기초로서의 예수의 인자 말씀들(살전 1:9-10, 롬 1:3-4) 5장 데살로니가전서와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반영된 예수의 대속물 말씀(막 10:45//마 20:28)과 성만찬 말씀(막 14:21-25과 그 병행 구절들) 6장 데살로니가전서 4:13-5:11에서의 예수 전승 7장 어떤 데살로니가인들의 게으름 8장 바울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으로서의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2:19-20): 행위를 따른 심판과 선한 행위에 대한 상급, 혹은 바울의 칭의 교리의 구조 9장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반제국적 복음을 전하는가? 10장 바울과 로마 제국 11장 바울의 공통적인 권면(살전 4-5장; 빌 2-4장; 롬 12-13장)과 롬 1:18-32과 12:1-2 사 이의 상응 및 롬 12-13장의 통일성 12장 데살로니가후서 1-2장에서의 바울의 칭의 교리와 그 교리의 바울 신학과 데살로니 가후서에 대한 함의들 13장 “무/불법자”를 “막고 있는 것”(τ? κατ?χον)과 “막고 있는 자”(? κατ?χων)(살후 2:1-12) 14장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 참고. 살후 1:5-7): 사도 바울과 동해형법(lex talionis) 15장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 (고전 11:1):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룰 때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가(고전 8-10장) 16장 종말의 전령으로서의 바울 17장 목회자 바울: 그의 설교와 사역 18장 바울과 폭력 부록 예수와 성전 본서 논문들의 최초 출판 정보 참고문헌 저자 색인 주제별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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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3장은 서신의 감사 부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서신의 감사 부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긴데다 세 개의 감사기도(1:2- 5 혹은 1:2-101 ; 2:13; 3:9-10)와 그 사이에 두세 개의 이야기들([1:6-10]; 2:1-12; 2:17-3:8)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더욱이 복음의 유효성(혹은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과 바울이 선교사로서 데살로니가에 들어감(ε?σοδο?) 을 다섯 번이나 연관 짓는 표현들이 마치 붉은 실과도 같이 감사 부분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감사 부분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부분과 데살로니가전서의 나머지 두 장들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그 저술 동기와 바울의 저술 목적을 명확히 규정 하기 위해 중요하다.
--- p.28 살전 1:9b-10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처음 선교사역을 하는 동안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을 반영한다. 이 구절은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자신의 복음 선포의 핵심 요소로 삼았음을 시사하는데 이 점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그의 증언(갈 1:16 참고. 행 9:20)과 다른 곳에서 그가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로 정의하는 것과 잘 부합된다(롬 1:1-4, 9; 고후 1:18-20). 마틴 헹엘(Martin Hengel) 교수와 함께 이 놀라운 사실을 관찰하면서 필자는 왜 바울이 자신이 비교적 드물게 사용하는 이 기독론적 칭호를 자신의 복음의, 바로 그 정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 가지 핵심 요소로 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살전 1:9b-10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빛을 비춰주는가? 헹엘이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넘겨지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라는 하나의 절(clause)에서 수난설화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필자는 살전 1:9b-10을 가지고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의 전체 모양을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바울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왜 복음 설교에서 바울이 이 칭호를 핵심 개념으로 삼았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배우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pp.86~87 데살로니가전서에 바울의 칭의 교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은 이 서신에 칭의 교리의 핵심 용어인 δικαιοσ?νη/δικαιο?ν이 없다는 점 역시 가리킨다. 하지만 율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이 사실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이 1:9b-10; 4:14; 5:9- 10에서 자신의 복음을 요약하여 제시할 뿐(또한 참고. 2:12; 3:12-13) 그 복음을 (혹은 자신의 구원론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위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진짜 문제는 비평적 학자들이 그 세 가지 형식들에 포함된 단어 몇 가지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선교를 하는 동안 했던 복음 설교의 짧은 요약으로 보기보다는 바울이 복음 설교에서 실제로 말하거나 반복했던 것의 전부인 양 그 형식들을 구원 사건에 대해 단지 뼈대 같은 언급 정도로 원자론적으로 취급하는 것 말고는 그 형식들의 함의들을 밝히려는 진지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1:10의 “장래의 노하심에서 건지심”이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셔서 주 예수의 파루시아 때 하나님 [곧 그의 심판석]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심”(3:13)이 칭의가 아니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구원을 얻게 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5:9- 10)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칭의를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해주심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질문하지 않는다. --- pp.134~135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예수의 대속물 말씀과 그와 관련된 성만찬 말씀을 암시하거나 반영한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을 설명할 때(살전 2:5-9; 고전 9:19, 22; 10:33-11:1)와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한 행실에 대해 권면할 때(고전 10:33-11:1) 대속물 말씀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이 바울의 기독교 윤리를 위한 기초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핵심적인 구원론적 형식들에서 대속물 말씀과 성만찬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말씀들이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구원론적 의미를 이해하는 토대가 됨을 말해준다. --- p.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