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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기에 가뿐한 - 시인 김선오
단단하고 귀여운 각오 - 래퍼 슬릭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울타리에서 - 배우 유이든 사랑과 추억을 간직하는 몸 - 비건 식당 운영자 단지앙 나를 돌보는 불꽃 - 작가 홍승은 내 몸을 보호하는 나만의 부적 - 무당 홍칼리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는 연습 - 시인 계미현 타투의 영원함에 진 기분 - 사진가 황예지 과거의 나와 화해하기 - 상담심리사 임부영 예쁜 죄를 새기는 의식 - 타투이스트 박카로 에필로그 추천의 글 - 요조(뮤지션,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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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의미가 없는 타투는 나에게 그냥 표면적으로 머무르게 되고, 의미가 안 좋은 쪽으로 침몰할 가능성도 적다. 많은 사람이 어떤 의미를 몸에 지니려고 타투를 하는데, 나에게 타투는 의미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의미가 억압으로 작용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 p.20 그 전에는 내가 어딘가를 스쳐 지나가는 존재 같았는데, 이제는 어떤 지점에 확실히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 내가 있을 새로운 좌표를 타투로 새긴 것 같다. 진짜 자신을 찾으려면 길을 잃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p.53 내게 기대되는 역할을 전부 벗어던지고 싶어졌다. 시작은 화장 안 하기, 여성적인 옷 버리기, 하이힐 신지 않기 등이었다. 왜 여성스럽게 행동하지 않는지 묻는 시선이 항상 주변에 맴돌았는데, 타투를 하니까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생겼다. --- p.72 나이가 들수록 잊어버리는 게 많아지니까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계속 새기려고 한다. 사진을 찍어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할 수도 있겠지만 몸에 새기면 좀 더 각별하지 않을까. --- p.84 나는 규범에 저항하는 한편 규범을 욕망하는 모순 속에서 계속 분투한다. 타투를 새김으로써 규범적 아름다움에서 조금은 벗어난 몸이 된다. 타투에는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할지 스스로 선택한다는 의미도 있다. --- p.103 난 이제 죽었구나, 모든 게 끝났다,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까 살아 있더라. 깨어나자마자 본 게 이 타투였다. 타투가 내 몸에 여전히 있으니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 존재가 맞구나 실감했다.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부적 같았다. --- p.124 나는 자주 다시 태어나고 싶다. 엄마의 다리 사이로 처음 나온 날처럼 완전히 새로워지고 싶다. 이 소망에 강렬하게 사로잡힐 때마다 몸에 타투를 새긴다. 타투라는 행위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에 가깝다. 생일마다 받는 선물이나 매번 같은 곳에 찍히는 도장 같다고도 생각한다. --- p.162 통증으로 내 몸에 노크하듯 타투를 해왔다. 합리적 자학이랄까? 몸을 깨우고 싶은데 나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바늘로 나를 찌르는 행위를 ‘깨어 있음, 살아 있음’으로 느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타투를 새긴 시기를 돌아보면 대체로 괴로울 때다. --- p.175 타투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예쁘다, 이 타투가 내 몸에 있으면 좋겠다, 같은 욕구 외에는 별다른 동기가 없었다. 악어와 낙타, 거북이 타투가 있으니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내면을 파고들면 뭐가 더 나오기야 하겠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 힘든 만큼 자유를 열망했던 마음과도 연결이 되려나 싶다. --- p.203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몸에 상해를 입히려면 각오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뭔가를 절대 잊지 않으려는 각오. 타투를 새기려는 열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달라는 간절함과 맞닿아 있다. --- 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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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에 임하는 태도 각각의 내부로 들어간 다음 거꾸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거기엔 어떤 트랙 하나가 동일하게 나타날 것 같다. 죽고 싶은 마음과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하는 트랙이. 트랙에서 경합하는 두 마음은 사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막상막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트랙에서는 죽고 싶은 마음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과 같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죽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두 마음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더욱더 힘을 내서,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려고 한다. _‘추천의 글(요조)’에서
“타투는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무의미와 의미, 귀여움과 비장함 사이에서 나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일 타투이스트 박카로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몸에 상해를 입히려면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투는 “누가 시켜서 새길 수는 없으니까 엄청난 능동성이 필요”(작가 홍승은)하며 한번 새기면 지우기 어려우므로 신중함과 책임이 뒤따른다. 바늘로 살갗을 찌르는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타투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타투의 속성에 매료된 사람들이 있다. “그저 예쁘다, 이 타투가 내 몸에 있으면 좋겠다, 같은 욕구 외에는 별다른 동기”(상담심리사 임부영) 없이 타투를 “의미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시인 김선오)으로 여기는가 하면, 자기만의 상징으로 피부를 가득 채워 몸과 마음을 보호하거나 “나이가 들수록 잊어버리는 게 많아지니까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계속 새기”(비건 식당 운영자 단지앙)기도 한다. 타투는 때로 삶과 창작의 무한한 영감이 되어준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는 “조카에게 그림 구경시켜주듯”(래퍼 슬릭) 보여줄 수 있는 알록달록 귀여운 타투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달라는 간절함”(박카로)과 자유를 향한 열망,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가 속속들이 담긴 비장한 타투를 모두 아우른다. 타투의 스타일과 내력은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나답게 살아보려는 결심’만큼은 공통적이다. “고유한 자신을 받아들”(홍승은)여 새 삶을 시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타투는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원하다. 통증으로 내 몸에 노크하듯 타투를 해왔다. 합리적 자학이랄까? 몸을 깨우고 싶은데 나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바늘로 나를 찌르는 행위를 ‘깨어 있음, 살아 있음’으로 느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타투를 새긴 시기를 돌아보면 대체로 괴로울 때다. 우연찮게도 손가락에 라디오헤드의 〈Airbag〉 가사 한 구절인 “I am born again”을 새겼다. _본문에서 『가장 밝은 검정으로』는 빛과 그늘, 다채로운 공간의 질감을 머금은 타투가 주인공이며, 타투에 깃든 삶과 몸의 서사를 조명하는 사진집이다. 류한경 작가는 학교, 숲, 스튜디오, 성곽길, 집, 박물관 등 인터뷰이의 직업적 특성 및 타투 스타일에 어울리는 장소를 골라 타투를 찍었다. 촬영이 이루어지는 시간과 공간, 타투의 위치와 개수, 인터뷰이의 표정과 포즈, 촬영 기법에 따라 톤과 질감, 구도가 전혀 다른 사진이 만들어졌다. 타투와 몸이 주인공인 만큼, 프롤로그와 인터뷰어의 질문을 덜어내고 인터뷰이의 내밀한 목소리를 산문 형식으로 다듬어 인터뷰이가 직접 자신의 타투를 소개하는 느낌이 나도록 했다. 타투의 이미지와 해당 타투와 관련한 산문을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배치해 두 요소의 긴장감을 유지하려 했고, 사진 사이에 이따금 공백을 두어 사진 감상의 호흡을 조절했다. 사진과 사진이 연결되어 사진집이 되듯, 타투와 타투를 잇다 보면 타투를 새긴 사람이, 그들이 몸을 가진 존재로서 경험한 차별과 억압, 사랑이 보일 것이다. 카메라에 비친 타투는 강렬한 빛으로 생긴 실루엣 같기도 했다. 그 빛은 어디서 왔고, 그들 몸에 드리운 무늬는 무엇의 그림자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빛은 그들의 삶이고, 그림자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하중이었다. 타투는 그들이 경험한 억압을 들려줬다. 타투 이야기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_‘에필로그’에서 지금 우리에게 타투는 어떤 의미인가, 139컷의 사진으로 바라본 한국 타투의 위상과 아름다움 한국 타투는 2008년 세밀하고 예술적인 ‘파인 타투’라는 장르가 생긴 후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각국의 유명인들이 타투 시술을 받으러 한국을 찾을 정도로, 한국이 타투 산업의 중심지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들은 직업코드도 있고 세금도 내야 하지만 의사가 아닌 이상 타투를 할 때마다 법을 어기게 된다. 1992년 대법원이 타투를 ‘의료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투유니온 김도윤 사무장은 2019년 타투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실이 이러하니 2021년 6월 타투업법이 발의되었고, 현재 타투 관련 법안은 총 8개다. 소비자가 감염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타투이스트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타투업법 도입의 핵심 목표다. 2018년 집계된 타투 피술자의 수가 300만 명이므로 현재는 훨씬 많은 이들의 몸에 타투가 새겨져 있을 것이고, 타투를 새기게 된 사연 또한 타투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에 참여한 인터뷰이 10인의 타투에 얽힌 이야기 또한 저마다 특별하고 고유하다. 그들은 타투이스트에게 타투 시술을 받거나 때때로 직접 타투를 새기는 소비자이기도, 타투로 생계를 유지하는 숙련된 타투이스트이기도 하다. 오늘날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창작자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일수록 타투를 자기표현으로 생각해 타투가 이미 있거나 타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타투는 이미 2, 30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2021년 6월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응답자의 81퍼센트가 비의료인의 타투를 합법화하는 법안에 찬성을 표했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가 한국 타투를 둘러싼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뮤지션이자 작가 요조는 ‘추천의 글’에서 타투는 “연약함을 보호하려는 갑각의 일종”이며 “용감해서가 아니라 겁이 많아서 한다”고 말한다. 타투가 많은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기억을 잃을까 봐, 자아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타투로 자신의 취향과 지향점을 표현하는 짜릿함과 타투 자체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길 기대한다. 타투 시술은 너무 오랫동안 불법이었다. 단순히 예술이니까 타투 행위를 허가해달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시술에 대한 규제를 확립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투가 법제화되면 손님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고, 타투이스트는 권리를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다. 납세의 의무에도 충실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해야 소비자와 타투이스트 모두가 만족할지 고민해야 한다. _본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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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는 영원하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은 타투가 새겨진 주체에게 허락된 생의 시간에 좌우되는 한정적 영원이다. 엄밀히 따지면 ‘평생’이라고 쓰는 게 정확하겠으나 나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고집하고 싶다.) 사진가 황예지는 이 영원함이라는 속성에 자신이 ‘졌다’고 말한다.
나는 최근 들어 친구 덕분에 격투기 경기를 보면서 ‘졌다’는 말을 다시 배우고 있다. 짐작하기도 어려운 긴 시간 동안 몸을 갈고닦아온 두 사람이 링 위에서 맞붙어 이기거나 지고, 그것으로 구경꾼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돈을 버는 세계. 그 세계에서 지는 일이란 이기는 일의 우위에 설 수 없는 것으로 일단 통용되지만, 나는 몇 경기만 보고도, 지는 일 역시 이기는 일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획득임을 알 수 있었다. 진 선수의 표정 때문이다. 그의 표정은 ‘졌다’보다 ‘질 수 있었다’에 가까웠다. 이기는 일도 그렇지만 지는 일 역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선수들의 몸과 몸이 위험천만하게 격돌할 때마다 덩달아 내 몸을 움찔거리면서 배웠다. 사람들이 내 타투를 가리키며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이거 영원히 안 지워지는 거잖아” 하고 말할 때 의아한 기분이 든다. 언제나 영원한 뭔가를 열렬히 갈구하는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은근히 영원한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타투이스트 박카로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몸에 상해를 입히려면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카로와 황예지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면, 우리의 타투는 ‘각오’로 ‘지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테지만, 애초에 이해라는 것은 타투가 없다고 가능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타투를 하며 질 수 있다. 조금씩 죽고, 조금씩 새로 태어나면서. 영원히. - 요조 (뮤지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