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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7
기억 ─ 13 유체 이탈 ─ 25 몸 ─ 43 회복 ─ 65 위로 ─ 99 관계 ─ 121 재활 ─ 143 후유증 ─ 177 완치 ─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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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할 때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시간의 틈에서 나는 왜인지 호랑이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옛말을 떠올렸다. 머리를 다치지 않게 허리를 수그리면서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텅’ 하면서 왼쪽 팔꿈치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왼발에서는 부러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난생처음인 통증이 숨통을 조였다.
--- p.23 미뤄둔 후회와 수치심, 죄책감이 매서운 목소리가 되어 나를 덮쳤다. 이리저리 멋대로 굴려서 쓰더니 결국에는 몸의 반을 부쉈구나.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염치도 없지. 이제 만족하니? 다시는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잖아. 부끄러운 일이야. 탓할 곳도 없고, 숨을 수도 없으니. 이제 와 머리 굴려봐야 아무 소용없어. --- p.41 이제 너를 마주하기로 했으니까 더는 두고 가지 않는 연습을 할게. 괴로워도 같이 느끼도록 해볼게. 순간을 함께 몰입하고 느껴볼게. 힘들다고 너에게 고통을 던지고 도망치지 않을게. 누구보다 네 편이 될게. 외로웠지? 늦어서 미안해. --- p.63 살면서 팔꿈치를 인식한 적은 중고등학생 시절 때밀이 수건으로 거뭇거뭇한 팔꿈치를 빡빡 밀 때 말고는 없었다. 이렇게나 자세히 들여다본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 팔꿈치는 종일 움직여 펴지는 각도를 5도 정도 늘려놓아도 자는 동안 다시 굳어 아침에는 7도가 줄어 있었다. 사우나를 가거나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 씻기 전보다 인대가 이완되어서 훨씬 더 펴졌다. 대신 추우면 반대로 굳었다. 팔꿈치 안에는 정말 인대가 있었다. --- p.157 후유증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과거를 인정하는 방식과 닮았다.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미련 없이 현재를 받아들이고 다가올 일에 집중하는, 결국에는 자유로워지는 여정이었다. 묘한 감각도, 폭력의 기억도 결국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이다. 나에게 더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미 소화한 문제가 주는 관성에 더는 밀리고 싶지 않다. 관성에 쓸 힘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고통을 위해 기꺼이 아끼겠다. 이건 남은 삶을 기가 막히게 잘 살아보겠다는 거창한 선언이다. --- pp.195-196 글을 쓰면서 나는 볼더링 스튜디오에 누워 비명을 지르는 내 옆에 누웠다. 수술대에 누워서 몸을 떨며 두려워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트람 바닥에 넘어져 발버둥 치는 나를 안았다. 감각이 없는 새끼손가락을 깨물며 불안에 떨던 나를 달랬다. 가끔은 본의 아니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잊고 있던 나와 만나기도 했다. 모두 두고 온 나를 데리고 오기 위함이었다. --- p.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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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신이 나갔나 봐”, “정신이 하나도 없네”.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에서든 학업에서든 실력 이상의 정신력을 강조하고는 했다. 전성진 작가도 그랬다. 작가는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몸은 죽어도 정신만 남아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믿음은 실제 몸이 부서지는 사고 후에 온전할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홀드에 도전했던 실내 암벽등반에서 몸은 정신이 알아차릴 새도 없이 추락해버렸다.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고 발목이 부러졌다. 사고의 순간에도 작가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지만, 그를 덮친 건 난생처음 느끼는 통증이었다. 작가의 회복기는 곧 몸에게 말을 거는 일이었다. 몸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작가는 몸을 생의 곳곳에 두고 왔음을 깨닫는다. 그곳에 방치되었던 몸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을까? 몸과 정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몸을 두고 왔나 봐》는 어딘가를 다치고 무언가에 상처받은 모두가 품었을 법한 질문에 찬찬히 다가선다. 거기, 몸이 있었나 봐 《몸을 두고 왔나 봐》의 시작은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였다. 전성진 작가가 출연해 사고 후 생긴 농담을 말한 회차는 그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에피소드’ 2위에 올랐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능력은 많은 이에게 공감받고 사랑받았다. 작가의 전작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에서도 작가만의 탁월한 유머는 빛을 발한다. 그는 책 곳곳에 웃음보따리를 꾸려놓고 독자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만난 독자와 작가는 함께 웃었고, 웃음 뒤에 코끝이 시큰한 경험을 했다. 이번 책에서 전성진 작가는 한 걸음, 아니 여러 걸음 더 나아간다. 웃음만으로는 닿지 못할 이야기에 용감하게 진입한다. 이 책은 그리하여 작가가 풀어놓은 농담의 뒷면이자, 속에 남은 딱딱한 돌덩이다. 책에 쓰인 경험은 작가에게 분명 크나큰 사고였고 기나긴 치료였으며 더딘 회복이었다. 그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을 글로 쓰지 못한다면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몸을 두고 왔나 봐》는 이렇듯 회복기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글쓰기의 단단한 사례가 되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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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는데, 두 번째 읽고서야 알았다. 아프고 속상해서 그랬다는 걸. 직시가 주는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전성진 작가는 농담을 시작했을 것이다. 세 번째 읽었을 때 나는 책이 주는 웃음뿐 아니라 속상함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유체 이탈 농담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작가가 유체 귀환을 시작했다. 웃음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했던 곳에 가닿고 있다는 뜻이다. 웃긴데 진지한 얘기까지 잘하면 반칙 아닌가? 누군가 글을 왜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이 책을 건네고 싶다. -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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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전성진 작가님의 새 책.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통해 눈물이 날 만큼 깔깔거리며 즐겁게 들었던 작가님의 사고 후일담은, 이 글에 이르러 그 웃음과 농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짜 감정과 생각과 고민들을 한껏 길어 올리는 깊은 통찰의 기록으로 변한다. 오래오래 들여다보면서 내 것으로 삼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 윤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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