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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13 작은 이야기 23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31 무기여 잘 있거라 41 욥의 위로자들 49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59 애도의 순간 69 바보 같은 사랑 노래 77 예쁜 것과 약한 것, 그리고 슬픈 것 85 당신은 모른다 95 저는 이 글을 12월에 씁니다 105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 113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123 우리는 일어나 일하러 간다 131 마음을 읽는 일 141 상처를 기억하다 151 뒷모습은 외롭다 161 선한 것만 보지는 않겠다는 다짐 169 들은 대로 연주하세요 179 어긋난 시간의 지층 189 내려놓으며 명료해지는 것 197 작은 이야기의 힘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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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니,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일입니다.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 힘든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점이라 믿습니다.
---「책머리에, 8쪽」중에서 타인의 고통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발견되지 않은 땅, 가닿지 못한 미답지로 남습니다. 사람 사이 건널 수 없는 간극은 모든 인간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조금씩 실패하는 것은 우리의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패하고도 실패한 줄을 모르고 남의 고통을 안다고 함부로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탓입니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17쪽」중에서 ‘너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정작 공감의 말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려면, 타인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야 합니다. 타인이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섬세하게 봐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원래 그런 슬픔’은 없는 거니까요.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20쪽」중에서 아이히만은 주어진 생각을 주어진 방식으로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주어진 생각을 주어진 방식으로 반복하는 사람에게 성찰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성찰은 주어진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다른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이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언어의 부재는 성찰의 부재로 이어지고, 성찰의 부재는 죄책감 없는 폭력을 낳습니다.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63쪽」중에서 어찌 문학만의 일이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모호함을 피하려 하면 온통 잘못 읽고 맙니다. 특히 슬픔에 잠긴 마음은 언어가 사라진 텍스트라서 읽기가 더 힘들지요. 언어가 사라진 곳에 펼쳐진 드넓은 행간,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인 불편하고 모호한 감정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이 불편하고 모호한 순간을 견뎌야 합니다. ---「애도의 순간, 75쪽」중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고, 하느님은 침묵하는 순간의 짙은 슬픔 말입니다. 그 순간에는 하느님께라도 따져야 합니다. 하느님이라도 원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에게, 신심 깊은 마음만 가지고 늘어놓는 종교적 위안은 슬퍼하는 사람의 마지막 숨통을 막아 버립니다. ---「당신은 모른다, 99~100쪽」중에서 아바의 새해 노래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노래입니다. 말하자면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을 보여 주는 노래입니다. 희망은 여지없이 절망이 되고, 절망은 우리가 다시 희망을 찾을 이유가 됩니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지요. 희망이 물러나면 절망이 다가오고, 낙관이 지나가면 비관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과 절망은 같은 순간, 같은 곳에서 서로를 단단히 붙들고 있습니다.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 118~119쪽」중에서 온 세상이 정치적 담론으로만 채워져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설명하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 큰 이야기가 담지 못하는 작은 이야기도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면, 그것은 큰 이야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라, 큰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으려 힘겹게 버티는 작은 이야기들의 분투가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또 연대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129쪽」중에서 기억은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입니다. 기억이 폭력을 직접 막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같은 폭력이 역사 안에서 조금씩이라도 줄어든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선해져서가 아니라, 어떤 폭력은 잊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의식해서일 겁니다. 어떤 폭력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고, 어떤 폭력은 끝끝내 기억될 것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 앞에서, 가해자들은 같은 폭력을 저지르는 데 조금이라도 망설이게 될 겁니다. ---「상처를 기억하다, 157~158쪽」중에서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외로운 것은 당신의 뒷모습이 아니라,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이 있다는 것을 쓸쓸하게 인정하는 것이 외로움의 본령이라면, 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외롭고 싶습니다. 차라리 외롭고 말지, 당신을 속속들이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뒷모습은 외롭다, 167쪽」중에서 커트 보니것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나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안타까워합니다. 이렇게 되어 버려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악은 알지만 선한 것만 보는 사람보다, 악한 것에 눈감지 않고, 악한 것이 망쳐 놓은 세상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커트 보니것 같은 할아버지가 저는 더 좋습니다. ---「선한 것만 보지는 않겠다는 다짐, 175~176쪽」중에서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하고 선과 악을 선명히 가르는 것이 신앙 언어의 본령은 아닐 것입니다. 남의 말을 천천히 듣고, 말할 때는 충분히 고민한 후에 겸손하게 말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앙을 말하는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외운 대로가 아니라 들은 대로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들처럼, 우리도 신앙을 말할 때 우선 듣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동료 연주자의 틀린 음도 맞는 음으로 만들어 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연성이 신앙의 언어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들은 대로 연주하세요, 185~186쪽」중에서 ‘가을 낙엽Autumn Leaves’ 에서 들려주는 쳇 베이커의 노래와 연주도 그러합니다. 음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의 음을 간단히 떠나보내는 연주, 거기에 가을 나무의 모습을 겹쳐 봅니다. 내려놓으면서 명료해지는 것은 쳇 베이커의 연주만이 아니겠지요. 가을 나무도 그렇고, 어쩌면 사람도 그럴 겁니다. 빛바랜 나뭇잎을 떨궈야 하는 계절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내려놓고 떠나보내는 것이 무언가가 점점 선명해지고 명료해지는 과정이라면요. ---「내려놓으며 명료해지는 것, 204쪽」중에서 그냥 ‘마음이 많이 풀렸다.’고 말하며 서로의 손을 꼬옥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습니다. 그런 흐릿한 공감의 순간이 말과 글이 가닿을 수 있는 최선의 지점이라 믿었습니다. 공감을 만들어 내는 작은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이야기의 힘, 214쪽」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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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사회,
그러나 진정한 ‘공감’이 없는… 오늘날 우리는 한 번의 클릭으로 친구, 가족, 동료, 심지어 유명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 온 세계가 촘촘히 연결된 사회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면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슬픔, 고통, 애도 등의 감정은 그 누구와도 온전히 ‘공감’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세상이다. 이러한 감정은 누구나 겪게 된다는 일종의 보편성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슬픔, 고통, 애도의 감정을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을 느끼고 표현하고 치유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 고유한 것이기에 쉽사리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이런 우리에게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종교 철학자(신학 박사)인 허찬욱 신부가 문학,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통해 슬픔을 다르게 경험하고 이해하여 진정한 ‘공감’을 학습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책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를 생활성서사에서 펴냈다. 문학과 음악, 영화로 녹여낸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성찰을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영화 이야기로 녹여 낸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케테 콜비츠의 판화에서 인간이 느끼는 슬픔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를 가지는지 읽어 내고, 비틀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서는 신앙 언어의 문제를, 아바와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셀린 시아마의 영화 『쁘띠 마망』과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에서는 서로 어긋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낸다. 종교 철학자가 쓴 22편의 인문 에세이 저자 허찬욱 신부는 종교 철학자로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지만, 그들이 철학만 공부하길 바라진 않는다. 철학이라는 큰 이야기가 들려주지 못하는 작은 이야기를 문학과 음악, 영화에서 읽어 내길 바란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어쩌면 이러한 그의 바람에서 나온 에세이일지도 모른다. 그는 읽고 보고 듣고 느끼는 행위, 생각한 것을 말하고 쓰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공부라고 강조한다. 허찬욱 신부는 이 행위를 놀이라 불러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좋은 공부는 좋은 놀이와 언제나 맞닿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 타인 이해의 시작점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에는 특히 슬픔을 다룬 글이 많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욥의 위로자들」, 「애도의 순간」, 「예쁜 것과 약한 것, 그리고 슬픈 것」, 「당신은 모른다」,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 「상처를 기억하다」, 「뒷모습은 외롭다」, 「선한 것만 보지 않겠다는 다짐」 등이 타인의 슬픔과 고통, 애도를 다룬 글이다. 책 제목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에서 가져왔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는 롤랑 바르트에게 한 친구가 ‘원래 슬픔은 그런 거’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롤랑 바르트는 분노하며, 모든 이에게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고, 어떤 슬픔도 일반화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제목은 “원래 슬픔은 그런 거라”는 롤랑 바르트 친구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저자 허찬욱 신부는 책머리에서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 힘든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이, 그리고 지금 슬퍼하는 이에게 작은 위로가 될 책 문학과 음악, 영화와 미술이라는 다양한 우물에서 길어 올린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에 담긴 22편의 글은 유연하고 넓은 사유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달래 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무심코 받아들이거나 지나쳐가는 것들을 저자는 예리한 눈길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밝히며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특히 슬픔과 고통에 관한 성찰을 담은 그의 글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이에게 도움이 되고, 그리고 슬퍼하는 이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무기들의 열병식 속 안식처가 되어 줄 책 서점을 들러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 인문 서적 분야를 둘러보면 지식을 통해 삶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구를 가진 책이 많다. 지식을 통해 삶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책을 보고 저자는 책들이 열병식을 한다고 표현한다. 취업난 속 혹은 사람과의 유대 관계가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요즘 무기가 될 만한 지식을 가지고 서로를 지키는 형국이다. 이러한 시대 속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여러 지식을 그저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