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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평양에서 삼지연으로 12
02 베개봉호텔 18 03 백두산으로 24 04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 36 05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은 물 42 06 백두고원 58 07 첫 번째 취사와 야영 70 08 백두산의 해돋이 76 09 압록강의 시원, 사기문폭포 86 10 연지봉 92 11 백두산 밀영 110 12 밀영에서 지낸 하룻밤 118 13 울창한 숲길에서 만난 학생들 124 14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 130 15 리명수폭포 146 16 베개봉 전망대 160 17 삼지연 168 18 다시 베개봉호텔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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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동그란 창문으로 내다본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짙푸른 산하는 굴곡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졌다. 평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만인 12시 30분 삼지연공항에 도착했다.
--- p.13 숲길을 벗어나자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은회색 오르막이 완만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도로의 끝에 백두산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느낌보다는 용맹하고 웅장한 기백이 느껴졌다. --- p.24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비탈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것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바닥은 온통 우락부락하고 날카로운 돌 투성이였다. 두 다리로 걷는다기보다는 네 발로 기어간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였다. --- p.29 한반도의 자손인 내가 중국 땅인 장백산에서 천지를 보려 했던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 무례함이 죄송스러웠다.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여야 했다. 오천 년 세월 동안 우리 한민족의 자부심이었던 천지였다.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이내 글썽거리는 눈물을 매단 채 웃음이 터져 나왔다. --- p.37 천지가 눈앞에 있었다. 멀리 있는 물 위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렸고, 가까운 물에서는 햇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살랑살랑 물결을 만들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물은 투명하고 순수했다. 너무 순수해서 눈이 부셨다. 너무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났다. --- p.42 바람도 구름도 없는 최고의 날씨였다. 내내 마음을 졸였던 날씨조차 잊은 지 오래였다.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 p.52 길이 있을 리 없는 광야를 우리는 걸었다. 우리의 발자국이 지난 곳은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이 곧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다. --- p.66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흐르고, 천지에 물이 고이고, 돌무더기를 비집고 피어난 들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들꽃 앞에 멈춰 섰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신비롭고 신비로웠다. --- p.69 일행이 텐트를 치는 동안 안내원들은 아궁이를 만들어 가스불로 밥을 지었고, 다른 솥으로는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반찬들을 꺼내놓았다. --- p.71 해돋이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백두산의 해돋이는 나의 해돋이였고, 모두의 해돋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의 해돋이를 바라고 추운 밤을 견뎠다. 그래서 모두가 아침을 기다리고 해를 반겼던 것이다. --- p.77 아, 압록강! 압록강 역시 우리의 강산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폭포 아래에서 야전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 p.91 숲길을 빠져나오자 절묘한, 그야말로 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절묘한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 p.100 광장의 한쪽에는 건물 배치도가 그려진 안내판과 항일투쟁 당시의 전적을 기념하는 동상과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 p.111 무르익어가는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밀영 강사가 노래방 기계를 가져왔다. 축전지로 가동되는 기계였다. 모닥불 주위에서 환호성이 올랐다. 밀영 강사가 먼저 북의 가요를 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마이크가 돌았고, 각자 한 곡조씩 뽑았다. 나는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을 힘차게 불렀고, 안내원은 ‘아리랑’을 불렀다. 누군가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가만가만 따라불렀다. --- p.120 특히 백두산 밀영의 넓은 부지에는 현대식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전국에서 답사를 오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묵을 현대식 숙소와 회관, 사진관이며 지붕이 뾰족한 식당, 관리용 건물들이 계곡을 따라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 p.145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깨끗한 주택단지, 현대식 체육관과 운동장, 반듯한 학교와 규모가 있어 보이는 병원, 이리저리 구획된 도로, 그리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길과 다리들이 하나로 어울려서 완벽한 기능의 도시가 조성되어 있었다. --- p.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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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담은 최초의 백두고원
몇 해 전인가 강원도 고성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걸은 적이 있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12박 13일동안 337km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향로봉이었다. 남녘에서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있는 향로봉은 군사시설이기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도 향로봉을 밟지 못하고 미완의 백두대간 종주가 되곤 한다. 향로봉에서 보이는 금강산과 그 너머의 풍광들을 바라보며 철책이 걷히고 금강산도 걷고, 평양을 거쳐 백두고원과 백두산 장군봉도 오르고... 이러한 상상을 해보지만, 이제는 그 상상조차도 점점 더 멀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백두산은 중국을 통해 올라 만나는 백두산이다. 북녘땅을 통해 백두산을 오르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데, 그것을 해낸 한국인의 사진과 이야기를 여기에 선보인다. 오래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안영백 선생이 그 주인공인데, 백두산 천지에 발을 담그고 백두고원에서 야영을 하며 장군봉에서 삼지연까지 수백 리 겨레의 땅을 걸으며 그의 카메라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한국인이 담은 최초의 백두고원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우리가 가지 못한 그 길을 사진으로 선보인다. 민간인이 접하지 못하는 향로봉을 올랐을 때의 감격보다 수천 수만 배의 장엄한 용솟음이 몰아친다. 『백두고원 트레킹』은 점점 더 멀어져가는 평화의 통일의 염원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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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고픈 백두고원
20년 전 민족공동행사 참석을 위해 북을 방문했을 때, 처음 백두산 장군봉을 올라 천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장쾌하게 펼쳐진 백두산 일대의 끝없는 고원을 보면서 걷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그 길,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해 백두고원과 원시림 속에서 야영하며 삼지연까지 걸어서 내려온 과정을 안영백 선생이 사진과 글로 정리해 책으로 펴냈습니다. 백두산 트레킹은 남북해외의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꿈만 같은 여정입니다. 머지않아 그 길에서 여러분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 명진 ((사)평화의길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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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꿈을 만나다
2017년부터 해마다 여러 벗들과 어울려 〈통일걷기〉를 합니다.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350여km에 달하는 민통선을 따라 횡단합니다. 통일은 멀어지는 데 그저 넋 놓고 기다릴 수 없어 시작한 일 입니다. 바보같지만, 언젠가 평화를 만들면 한반도 종주의 길도 만들고 싶습니다. 금강산과 평양을 거쳐 백두산까지 내닫는 웅장한 꿈을 먼저 만났습니다. 안영백 선생의 『백두고원 트레킹』 이야기 때문입니다. 상상만 했던 백두산과 백두고원을 걸은 얘기 속에서, 그 아름답고 사연 많은 길 위에서 우리 겨레의 통일 걷기와 평화 만들기도 계속되길 소망합니다. -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