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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自序)
느낌 11 만남 12 서해 13 금기 14 물고기 15 꽃피는 시절 16 두 개의 꽃나무 18 어두워지기 전에 1 19 어두워지기 전에 2 20 거리 21 바다 22 집 23 산 24 앞산 25 산길 1 26 산길 2 27 산길 3 28 산길 4 29 산길 5 30 숲속에서 31 숲 1 32 숲 2 33 숲 3 34 나무 1 35 나무 2 36 나무 3 37 강 1 38 강 2 39 강 3 40 물가에서 41 물 건너기 1 42 물 건너기 2 43 절벽 44 아주 흐린 날의 기억 45 혹 46 손 47 고양이 48 기차 49 당신 50 아이 51 소녀들 52 어머니 1 53 어머니 2 54 섬 55 별 56 벽 57 역전(驛傳) 1 58 역전(驛傳) 2 59 역전(驛傳) 3 60 야생화 61 낮은 노래 1 62 낮은 노래 2 63 낮은 노래 3 64 비단길 1 65 비단길 2 66 비단길 3 67 비단길 4 68 비단길 5 69 그대 가까이 1 70 그대 가까이 2 71 그대 가까이 3 72 그대 가까이 4 73 그대 가까이 5 74 강가에서 1 75 강가에서 2 76 강가에서 3 77 병든 이후 78 슬픔 79 사슬 80 노을 81 새 82 발 83 기다림 84 울음 85 사막 86 문신 87 앞날 88 거울 89 노래 1 90 노래 2 91 운명 92 비 1 93 비 2 94 눈물 95 이별 1 96 이별 2 97 길 1 98 길 2 99 애가 1 100 애가 2 101 붉은 돌 102 비린내 103 바람이 지나간 길 104 숨길 수 없는 노래 1 105 숨길 수 없는 노래 2 106 숨길 수 없는 노래 3 107 숨길 수 없는 노래 4 108 입술 109 늘 푸른 노래 110 샘가에서 111 편지 1 112 편지 2 113 편지 3 114 편지 4 115 편집 5 116 그 여름의 끝 117 해설| ‘길’ 위에서의 사랑 노래 · 박철화 118 |
李晟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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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은 언제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느낌」중에서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서해」중에서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이별 1」중에서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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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길 위에서
대칭과 역설로 일깨우는 삶의 비밀들 고통과 사랑의 통과제의가 남긴 ‘숨길 수 없는 노래’ 저마다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세파(世波) 속 우리에게 매 고비 뜨겁게 읽혀온 ‘이성복의 시’는 어떤 의미일까. 누구는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라는 그에게서 위로받았을 것이다. 누구는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남해 금산』, 1986)라는 고백에 희열로 뒤척이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생에 밀착한 명료하고 강렬한 그의 시적 진술들로(『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의 깊이를 맛보았을 테고, 또 어떤 이는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고 사물의 부피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정확한 언어를 짚어내는 시들로(『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남루한 생이 일순 아름답게 탈바꿈하는 비밀한 순간들을 목도했을 것이다. 어쩌면 외국어로 접한 수십 편의 시적 단상들(『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2012)을 읽어내며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삶의 허기가 함께했던 시간을 포개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하다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래여애반다라』, 2013)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그 누구도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기록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그리하여 생의 불가능성을 거듭 되씹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 역시 숱할 것이다. 이렇듯 생의 매 순간, 바라봄만으로 위안을 전하는, 실존의 고뇌와 감각의 깊이로 처연하게 빛나는 숱한 시를 노래한 이성복의 시-숲에서 『그 여름의 끝』(초판 1990)은 그의 세번째 시집이다. “치욕의 시적 변용”에서 지난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고민을 거쳐 시와 문학과 생의 문에 닿는 궁극의 열쇳말을 찾아 흔들리는 ‘이성복의 풍경’에서 중허리에 해당하는 이 시집은 서시 「느낌」에서 시집에 표제를 내어준 「그 여름의 끝」까지 시 총 106편이 묶여 있다. 사랑이라는 말과 타인이라는 말을 거듭 옮기면서 한없이 되살아나고 다시 한없이 되살아내는, 내가 맺는 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가뭇없이 확장해가는 그 경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겠다. 뒤표지 시인의 산문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유독 왜 슬픔만이 세상 끝까지 뻗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슬픔 뒤에 다시 슬픔이 남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슬픔은 범속한 나뿐만 아니라, 세상 이치에 대해 두루 통해 있는 성인들까지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성인의 슬픔은 온통 슬픔 전체일 뿐, 다른 무엇의 대대(對待)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에도 본래 짝지을 것이 없다고. 하늘이 천둥 번개를 친 다음 노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언제 시체가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더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지껏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던 슬픔은 한 장의 덮개 그림처럼 떨어져내렸다. 벽도, 덮개 그림도 허깨비일 뿐이며, 그것들이 비록 양파 껍질처럼 거죽이면서 동시에 속이 된다 할지라도 허깨비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허깨비가 온통 허깨비 전체라면, 허깨비 아닌 실체가 따로 있겠는가. 시인의 말 세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역시 나는 내 그릇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은 남은 시간 동안 불과 몇 밀리라도 비좁은 그릇을 넓혀가는 것이리라.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의 스승들께 부끄러운 책을 바친다. 1990년 5월 이성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