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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 같은 가계도
새로운 시작 나쁜 기억 금요일의 선택 윽, 방과 후 수업이라니! 제발 모른 척해 줘 지우고 싶은 시간 평범한 가족 최악의 밤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는 건 명백한 증거 세미콜론 ; 내 인생 최고의 날 작가의 말 |
Kimberly Brubaker Brad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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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빚진 거 있잖아!” : 보호자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루밍 성범죄
델라는 올해 열두 살이고, 언니 수키는 열일곱 살이다. 델라가 다섯 살일 때 엄마는 필로폰으로 문제를 일으켜 구속된 뒤 줄곧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런 데다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어서 델라와 수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다. 갈 곳이 없던 두 자매는 엄마와 함께 동거하던 클리프턴 아저씨네 집을 떠나지 못하고 쭉 같이 지낸다. 그러다 일주일 전, 델라와 수키가 클리프턴 아저씨 집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오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일로 클리프턴 아저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앞두고 있고, 델라와 수키는 사회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프란시스 아줌마 집에서 생활한다. 델라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고, 수키는 독립을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무책임한 엄마 대신 델라를 돌봐 온 수키는 클리프턴 아저씨 이야기만 나오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한편, 델라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트레버란 남자애가 날마다 문제를 일으키면서 담임 선생님의 눈총을 받는다. 여자아이들의 등을 꼬집으면서 ‘아기’라고 놀려 대는데, 여자아이들은 이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묵묵히 감내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수키는 날마다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면서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깬 델라는 거실로 나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는데……. 이 작품은 델라와 수키가 위탁모인 프란시스 아줌마의 집으로 들어간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에 왜 엄마의 동거남이었던 클리프턴 아저씨 집에서 둘이 도망쳐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타래에서 실을 풀 듯 조금씩 조금씩 들려준다. 델라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이 이야기는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긴장감을 드높이며 가슴을 조여 온다. 클리프턴 아저씨는 수키에게 경제력이 없다는 점과 동생인 델라를 끔찍이 아낀다는 점을 이용해 수년간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다. 자신이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도록 조장한 뒤 오랜 세월 동안 성폭력을 가해 온 것이다. 작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겪고도 누군가에게 드러내놓고 도움을 청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리려 노력한다. 또한 주변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연거푸 강조한다. 그래서 성범죄가 일어나는 정황에 집중해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런 사건이 일어난 후 두 자매가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처음에는 델라와 수키 역시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이 모든 일이 자신들 때문에 생겨난 거라고 자책하면서 죄책감에 빠진다. 특히나 델라는 수키의 자살 시도를 목격하면서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언니의 아픔을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자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기도하며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주변 사람들, 즉 프란시스 아줌마와 사회 복지사, 그리고 심리 상담사는 그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며 끊임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나쁜 거라고, 그런 사람 때문에 너희의 미래를 망쳐선 안 된다고,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고……. “어, 아직 아기잖아?” : 장난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아이들 사이의 성희롱 이 작품에서는 델라와 수키가 겪는 그루밍 성폭력 외에 다른 한 줄기의 이야기가 더 있다. 바로 델라의 반 친구들이 트레버라는 남자아이에게 겪게 되는 성희롱이다. 트레버는 같은 반 여자애들의 등을 꼬집어 보고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을 땐 바로 “아기구나!” 하고 큰 소리로 놀린다. 여자애들은 트레버의 그런 행동이 끔찍하게 싫으면서도 그저 제풀에 꺾이길 바라며 저항하기보다는 무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트레버 엄마로 대변되는 어른들 역시 잘못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보다는 ‘아이들끼리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수선을 피우냐’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델라는 생각이 다르다. 허락 없이 남의 몸을 만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에, 트레버와 끝까지 싸워서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델라의 끈질긴 노력 끝에 트레버는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되고, 델라네 반 아이들은 이런 일일수록 드러내놓고 맞서 싸워야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줄기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피해를 입었을 땐 쉬쉬하지 말고 안전한 상황에 놓일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원제가 ‘Fighting Words’인 듯.) 거꾸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는다면, 불편해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 말을 믿어 주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 작품은 성폭력, 자살, 필로폰, 문신 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거칠거나 폭력적인 단어나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델라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언행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수키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나쁜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한 말에 따라 욕이 나오는 대목을 ‘눈’이나 ‘눈송이’, ‘눈사람’ 같은 말로 바꾸어 나타낸다. (욕을 내뱉고 싶을 때 ‘눈’이라고 하는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화난 마음이 누그러지는 예상 밖의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욕을 ‘눈’으로 귀엽게 표현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이야기를 결코 교훈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주제가 풍기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열두 살 델라의 시선으로 통통 튀는 어법을 구사한다. 아이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기에 읽는 재미 또한 아주 쏠쏠하다는 게 이 작품의 아주 큰 매력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델라와 수키 곁에는 프란시스 아줌마와 티나네 가족, 델라의 반 친구들, 또 수키의 직장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시선과 말들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만큼 타인을 향한 ‘선한 영향력’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나쁜 어른에게 상처받는 델라와 수키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다. 세상에는 나쁜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덤으로 얹어 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당당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델라와 수키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뿐 아니라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읽고서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