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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_07
들어가는 말 _13 1장 청년기 풍운이 감도는 동한 말기 _43 관우의 고향 중조산 _47 유가 집안에서 태어나다 _51 탁군으로 도망가다 _61 2장 도원결의 황숙을 따르다 _67 생사를 함께하자는 맹세 _69 동탁 토벌 _74 적토마 _78 3장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다 따뜻한 술로 위력을 과시하다 _85 세 영웅의 활약 _91 별부사마(別部司馬) _96 서주에 기반을 잡다 _98 4장 중원 쟁탈전 서주를 두 번 잃다 _103 허전(許田) 사냥 _108 흩어진 삼형제 _113 토산삼약(土山三約) _116 5장 허도 시기 춘추대의 _121 문무를 겸비한 장수 _129 안량을 베다 _133 괘인봉금(?印封金) _137 6장 재회의 천리길 파릉(?陵)에서 칼로 도포를 들어 올리다 _145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베다 _150 채양을 죽여 오해를 풀다 _154 7장 유비와 유표 박망(博望) 전투 _159 삼고초려 _163 당양 장판파 _167 하구로 도망쳐 훗날을 도모하다 _170 8장 적벽 대전 조조, 유비, 손권의 대결 _175 적벽의 횃불 _182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다 _188 강남에서 입지를 다지다 _191 9장 형주의 영웅 홀로 형주를 지키다 _199 드높아지는 관우의 명망 _203 단도부회(單刀赴會) _209 가절월(假節鉞)을 받다 _216 10장 중원에 위엄을 떨치다 칠군(七軍)을 수몰시키다 _225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다 _234 조조를 위협하다 _238 손권을 압박하다 _240 11장 맥성에서 최후를 맞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위기 _245 결전의 시간 _249 형주를 잃다 _254 관우의 최후 _260 12장 신이 된 관우 관우의 현성(顯聖) _271 관우의 시호 _276 신으로 숭배되다 _282 관묘와 제사 _285 부록 배송지가 주해한 《삼국지·촉서·관우전》 _294 후기 _303 |
馬寶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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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최후가 너무 비참했던 탓인지,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형초 지역에 관우와 관련된 전설이 등장했다. 초창기 전설에 등장하는 관우의 이미지는 훗날 이야기에 비해 훨씬 입체적이다. 백성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했다.
--- p.38 『삼국연의』에서 허구화한 이야기 중 일부는 전혀 근거 없는 상상이다. 유비 삼형제가 여포와 싸운 이야기, 관우가 조조에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는 내용, 관우가 다섯 관문을 통과하며 여섯 장수를 죽인 이야기, 유비와 조조의 장판파 전투, 제갈량과 오나라 모사들의 설전, 제갈량이 동풍을 불게 한 이야기, 제갈량이 주유를 세 번 화나게 한 이야기,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다. --- p.90 원나라 지치 연간(1321~1323년)에 간행한 『삼국지평화』에 관우가 포위된 후 장료가 투항을 권유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부터 관우의 투항이 미화되기 시작해 명나라에 이르러 당당하게 조건을 내걸고 투항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삼국연의』의 토산삼약은 결국 관우를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이다. --- p.118 애초에 관우는 유비가 하북에 있는 줄 알았으니 허도에서 곧장 북쪽으로 움직였어야 하는데 서북 방향으로 길을 돌아 황하 나루터에 도착했다. 관우는 왜 빠른 길을 두고 굳이 돌아갔을까? 사실 이것은 관우의 눈부신 활약을 통해 영웅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삼국연의』 저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삼국연의』의 관우는 애먼 길을 돌아간 것이다. --- p.152 『삼국지·촉서·선주전』은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을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는데 세 번째에 드디어 만났다.’라고 기록했다. 『삼국연의』는 이 짧은 기록에 ‘유현덕의 삼고초려’라는 제목을 붙여 멋진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특히 제갈량을 만나기 전 서서와 사마휘에게 추천받는 장면을 통해 와룡이라는 천재 이미지를 추가했다. --- p.166 관우는 홀로 형주를 지키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일평생 충성을 바친 촉나라를 위해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관우의 자신감과 기개는 이미 웬만한 군웅을 능가했고, 결과적으로 삼국 시대를 풍미한 영웅호걸의 수준을 뛰어넘어 중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영웅이 되었다. --- p.203 단도부회는 원래 노숙이 제안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 들어갔던 사람도 노숙이었다. 그가 직접 관우 진영에 가서 가진 회담이었다. 관우 쪽은 신세를 진 입장이니 할 말이 없었고 회담의 주도권은 노숙 쪽에 있었다. 노숙이 뛰어난 언변으로 시종일관 신랄하게 질책했고 관우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 p.214 칠군 수몰은 관우 일생에 가장 빛나는 전공이며, 조조군에게는 적벽 대전 이후 또 한 번의 뼈아픈 참패로 기록되었다. 이 전투로 조조군 사기는 크게 꺾였고 관우는 역사에 길이 남은 영웅이자 무성으로 거듭났다. --- p.231 형주를 잃은 가장 큰 책임은 확실히 관우에게 있었다. 부사인과 미방을 대한 태도나 방법을 비롯해 양양 전투를 위한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특히 육손의 속임수에 넘어가 모든 병력을 북쪽에 집중시켜 오나라 접경 지역 수비 전투력을 떨어뜨린 것이 관우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과한 성격이라 형주 방어의 문제점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p.259 관우가 죽은 후, 형초 사람들은 대단한 용맹과 위세를 떨쳤던 관우를 신으로 받들어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영혼이 자신의 평안을 지켜주길 원했다. 『당양현지』 기록에 따르면, 관우가 죽은 후 현지 사람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사당이 수차례 훼손되고 재건된 것을 보면 관우 숭배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 p.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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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촉나라 명장에서 당송 시대 이후 신적 존재가 된 관우!
두어 해 전에 인상 깊은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중국 호북성 형주시에서 초대형 관우 청동 조각상이 제작되었는데, 높이가 57m, 무게가 1억 200t, 제작비는 한화로 무려 300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조각상의 높이가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전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270억 원에 달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기사에 실린 관우상의 크기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중국소설과 역사인물에 관한 책을 읽거나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관제묘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동안은 그런 부분을 보면서도 관우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앙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서도 왜 동상을 그렇게까지 크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인들의 관우에 대한 믿음이나 신앙이 이 정도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이 된 영웅 관우』를 보면서 잊고 있던 그 의문이 풀렸다. 소설 『삼국지』의 영웅이자 중국 삼국 시대 명장 관우의 삶과 업적에 대한 기록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수천 년 역사를 지나는 동안 역대 왕조의 황제와 민중이 점점 그를 신격화했기 때문이다. 관우는 역사 영웅으로서 뛰어난 장군이었는다. 그런데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치면서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받드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후 민간 전설이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일화 등 역사적 사실로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료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내용을 정사(正史)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본래 관우의 삶과 업적은 크게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진실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졌다. 다시 말해 관우의 삶과 업적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부분과 사회에 널리 퍼진 신격화된 부분으로 나눠보아야 한다. 영웅화 된 관우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살펴본 인간 관우! 소설 『삼국지』의 경우 책을 정독하지 않아도 그 주요한 내용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도원결의라든가, 제갈량을 찾아가는 유비의 삼고초려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야기 속의 관우가 명장이며 의리와 충심이 강한 인물인 점은 십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서기 200년대의 실존인물 관우가 세월이 흐를수록 위상이 올라가 제후에 이어 급기야 신으로까지 숭배되는 일면을 확인하게 되면 유독 관우에 대한 평가만이 신앙으로 발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관우의 무용담이 사회에 널리 퍼지고, 관우의 영웅 이미지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신의와 용맹을 겸비한 관우가 대중의 본보기가 되면서 그는 우상으로 숭배 받았다. 그 결과 관우는 단순히 중국 삼국 시대를 빛낸 장수가 아니라, 사회정신에 기반한 문화 현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관우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만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수호신인 동시에 대중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통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로써 관우는 유, 불, 선을 아우르는 분야에서 종교이자 신앙이 됐다. 관우는 시대를 초월해 나라와 백성을 지켜주는 신이 되었고, 모든 근심 걱정을 없애는 특효약이 되었다. 이 책은 충의와 신의로 대표되는 관우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관우의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위의 두 가지 부분을 모두 살펴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관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한편 주요 민간 전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소설로 알고 있던 관우의 일화와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비교하며 오류를 바로 잡고 관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영웅화된 관우보다도 더 인간적인 공감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속의 실존인물 관우가 얼마나 명장이었는지, 그의 충의와 의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밤을 새워 『춘추』를 읽는 그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하게 된다. □ ‘관우’에 쏟아진 찬사! 관우 장군은 용맹함을 타고 났고, 지금도 그 의리와 용맹이 변치 않네 _당나라 시인 낭사원 관우는 동시대 사람에게 경외의 대상이었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_청나라 역사가 조익 □ 편집자의 말 관우는 한나라 황제가-실질적인 명령자는 조조였지만-한수정후에 봉했고, 이후 삼국 시대 촉나라의 대장군이 되어 두 나라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용감하고 전투력이 뛰어나 유비의 전략을 관철시켜 전략 성공률을 높이고, 유비의 정치 노선을 실현시켰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후 관우는 형주를 맡아 촉나라의 대문을 굳건히 지켰다. 후에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양양을 공격했지만 조조와 손권 연합군에게 당해 형주를 잃고 대패해 목숨까지 잃었다. 관우의 삶과 업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수천 년 역사를 지나는 동안 역대 왕조의 황제와 민중이 그를 신격화했기 때문이다. 관우는 보통의 역사 영웅처럼 그저 뛰어난 장군일 뿐이었지만 특히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치면서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받드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본서는 역사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충의와 신의로 대표되는 관우의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위의 두 가지 부분을 모두 살펴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관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한편 주요 민간 전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