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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 과거의 심장으로 내일을 사는 우리에게
Ⅰ. 행복은 저편 쇼윈도에 행복을 보장하는 시간 속으로 간다 쇼핑 구경한다, 고로 존재한다 구경거리 사냥꾼 어디론가 쉬러 떠난다는 특권 바캉스 밤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물랭루주 서랍 속에 넣어둔 열망의 다른 이름 순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진실 그 밖에 있다 불완전한 진실 우연히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다 행운 Ⅱ. 평이한 나날들이 더 불안한 이유 속마음 털어놓을 곳 없는 세상에서 식물인간 도시인들을 위한 유토피아 전원로망 변하는 세상, 부유하는 자아 댄디 환상을 좇는 창가의 여자 마담 보바리들 타락한 세계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바보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회귀 욕구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키스 신사도 말할 수 없지만, 말해지는 것들 낯선 욕망 Ⅲ. 원칙을 벗어난 게임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하다 자전거 흔해빠진 사랑, 대체가능한 상대 일탈적 사랑 달과 6펜스, 사람을 지배하는 두 가지 현실과 환상 희망이 산산이 해체되는 누구나의 고통 모순된 감정 뚜렷한 꿈도 없이 이리저리 쏠리는 사람들 군중심리 지루한 아름다움, 우아한 일그러짐 미와 추 모험하는 바다, 머무르는 연못 양면성 Ⅳ. 내일이면 사라질 텐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전환기 미라보 다리 위에서 그대를 기다리네 옛사랑 매혹적인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덮다 유행하는 불치병 봄이 오면 당신께 제비꽃을 보냅니다 소망 이제 그녀에게서 발길을 돌려도 됩니다 뮤즈 상투적인 일상 속에 잠자는 미래 비전 움켜잡아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살 야생의 삶 마치며 … 아버지의 예언 그림목록 * 더 읽어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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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의 세기 전환기에는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로 인하여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변화의 속도가 과거의 리듬을 깰 만큼 대단해서, 사람들이 시대적 변화를 체감할 정도였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되는 단계에 있다고 자각하게 되었으며, 지난날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고대했던 것이다. 빠르고 편리해진 삶이 한편으로는 즐겁고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문명화되지 않는 아스라한 과거의 몽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심정, 그것이 바로 세기 전환기의 정서를 대표한다.--- p.6 「시작하며」
세기말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커져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과거를 간직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을 고르라면 19세기의 발명품 두 가지를 들게 된다. 바로 카메라와 녹음기다. 순간을 지나쳐 흘려보내는 대신 멈추게 해놓고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을 수 있게 된 셈이니까. 하지만 한 번 놓친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카메라와 녹음기는 잔인하게도 그 사실을 자꾸만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p.53 「서랍 속에 넣어둔 열망의 다른 이름」 서구의 세기말은 데카당스라고 불리는 문화적 흐름이 나타난 시기였다. 데카당스는 몰락을 의미하는데, 모든 것의 몰락이라기보다는 서구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유일한 축에 가까운 진리, 즉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세계의 몰락을 의미한다. (중략)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고, 사람들은 미몽에서 깨어났다. 믿음에 대한 의심과 반성이 이루어졌으며, 그동안 꼭꼭 은폐되었던 많은 은밀한 영역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장미십자회나 황금새벽회, 빛의 형제단과 같은 신비주의 비밀 집단들이 표면에 등장하는가 하면, 예술에서도 상징주의와 라파엘전파의 작품이 이러한 흐름을 탔다. 사람들은 더이상 신의 아들딸로 살지 않았다. 전지전능한 창조주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불완전한 자신의 의지와 기억에 의존하여 진실에 다가가야 했던 것이다.--- p.61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진실 그 밖에 있다」 문명의 진보와 혁신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성향 배후에는 과거로의 노스탤지어, 자연으로의 회귀, 몽상, 쇠락 등의 역방향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인지 벨 에포크 문학과 예술에서 제시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차라리 과거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기말의 사람들에게 시골은 문명화되지 않은 어리고 순박한 여인으로 비유되었고, 동시에 언젠가는 돌아가 안기고 싶은 꿋꿋한 고향 어머니로서의 비전을 머금은 곳이기도 했다.--- p.89 「도시인들을 위한 유토피아」 세기말의 불안한 자아를 대변하던 남자들, 댄디.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중략) 군중은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를 맹목적으로 찬양한다. 하지만 댄디는 무작정 ‘와, 세상 편리해졌네’라고만 반응하기엔 무언가 잃은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예민한 자들이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에는 항상 그 배후에 슬며시 잊히고 버려지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겪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옛 기억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상실감이 아닐까.--- p.94 「변하는 세상, 부유하는 자아」 기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이런 상황이었다. 불쾌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라이프스타일 속에 잘 스며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의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기차는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된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거대한 변화를 상징했다. 1878년에 단행본으로 발표된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달리는 기차와 철길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중략) 기차역은 19세기에 증기기관차의 발명과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장소였다. 오래도록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 아니라, 오는 사람들이 늘 바뀌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었다. 스쳐지나가듯 이루어진 어떤 만남이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안나의 생애를 휩쓸어버렸다.--- p.121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이 와해되고 심지 없이 초조해진 삶 속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전운이 감도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세기말의 사람들은 사랑과 가정만큼은 종교처럼 유일하고 성스럽고 영원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른 것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산만했으며, 이기적이었다. 사랑은 자신을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는 쓰라린 아픔을 맛보게 해주었고,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자에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자에게는 수치심을 느끼게 해주었고, 자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허무함을 숙제로 남겨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런 사랑으로 구원받는다.--- p.163 「흔해빠진 사랑, 대체가능한 상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1895년에 저술한 『군중심리』가 그에 대해 기술한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다. 르봉은 군중 속에서 개인은 평소와는 다르게 감정에 휩싸여 맹목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의 암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병균이 옮기듯 삽시간에 모두가 그 암시를 공유하면서 열광의 상태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비전을 상실한 군중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들은 불안한 가운데 그저 의미 없이 말만 퍼뜨리는 소란스러운 집단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짙다. 세기말은 이렇듯 갑작스럽게 사회의 주인이 되어 뚜렷한 꿈도 없이 우르르 이리 몰렸다가 저리로 몰려가는 변덕스런 군중과 더불어 조마조마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p.187 「뚜렷한 꿈도 없이 이리저리 쏠리는 사람들」 무기력한 징후가 있다고 해서 사회가 정말로 병든 것은 아니다. 어쩌면 건강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사회가 훨씬 더 위험한지도 모른다. (중략) 무기력을 탈피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마지막 사랑을 불태우고 죽음을 맞는 플롯이 세기말 미학의 중심을 이룬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수잔 손탁은 19세기에는 질병이 인물의 성품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고 설명한다. 폐결핵은 영적으로 섬세하고 성격이 조용하며,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처럼 내적인 열정으로 인하여 서서히 자신을 불태우며 오직 한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이라고 믿어졌다. 그 시절엔 드세지 않고 순종적인 이른바 ‘연약한 여인femme fragile’이 바람직한 여인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혹적인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덮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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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진보하고 있을까?
100년 전으로 타임 슬립! 지금 우리의 원형을 만나다 2013년 지금 세상은 사람들이 각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해하거나 주변이나 뒤를 살필 겨를조차 없을 때가 많다. 이주은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 스스로 우리가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그 진보의 방향이 선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댄디, 마담 보바리들, 쇼퍼, 구경거리 사냥꾼, 이리저리 쏠리는 군중들…… 벨 에포크에서 만나는 다양한 군상들은 100년 전 유럽이라는 시공의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와 닮아 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사람들은 마치 지금 우리의 원형인양 지금 겪고 있는 일상적 불안과, 상실감, 공허를 그대로 안고 있다. 마치 우리의 정신적 방랑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듯이. 저자는 약 100년 전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우리 시대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21세기의 거리를 초조한 마음으로 내딛고 있는 우리 자신의 원형을 찾아보려 한다. 세상의 불완전한 것, 완결되지 않은 가치들에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가 조금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현재’를 머물 수 있지 않을까. 벨 에포크를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대로 기억하게 만든 화가, 소설가 등의 작품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불안하고 뿌옇게만 보였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희미하게나마 가늠하게될 것이다. 매번 따뜻한 글과 그림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은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향한 위로이자, 무기력과 불확실성에 빠진 개인들을 일깨우는 놀라운 환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