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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중추절에 자유를 생각하며고산의 죽각에서 진술고를 전송하며 江城子(翠蛾羞黛怯人看)밀주로 가는 길에 말 위에서 자유에게 沁園春(孤館燈靑)을묘년 정월 스무날 밤의 꿈 江城子(十年生死兩茫茫)병진년 중추절에 자유를 생각하며 水調歌頭(明月幾時有)자유에게 ?堂春(柳花飛處麥搖波)늦봄에 이공택과 작별하며 蝶戀花(??無風花自墮)팽문에서 작별하며 減字木蘭花(玉觴無味)칠석날 황주 조천문 위에서 菩薩蠻(??初掛彎彎月)취옹의 노래 醉翁操(琅然)원풍 7년 4월 1일 설당의 송별연에서 이중람에게 滿庭芳(歸去來兮)자유를 그리며 滿江紅(淸潁東流)서호를 노래한 구양공의 사에 차운하여 木蘭花令(霜餘已失長淮闊)여름 풍경 賀新郎(乳燕飛華屋)술 깨면 또 그리운 걸 어찌하겠나 雨中花慢(嫩?羞蛾因甚)어촌의 저녁나절밀주의 대보름 蝶戀花(燈火錢塘三五夜)늦봄 望江南(春已老)서주의 농촌 1 浣溪沙(照日深紅暖見魚)서주의 농촌 2 浣溪沙(旋抹紅?看使君)서주의 농촌 3 浣溪沙(麻葉層層?葉光)서주의 농촌 4 浣溪沙(??衣巾落棗花)어부 1 漁父(漁父飮)어부 2 漁父(漁父醉)어부 3 漁父(漁父醒)어촌의 저녁나절 調笑令(漁父)입춘 減字木蘭花(春牛春杖)8월 18일에 조수를 구경하며봄을 찾아 나섰더니 浪淘沙(昨日出東城)칠리탄을 지나며 行香子(一葉舟輕)조수를 구경하며 瑞??(碧山影裏小紅旗)풍수동에서 臨江仙(四大從來都遍滿)양원소에게 화답하는 매화사 南鄕子(寒雀滿疏籬)황주의 정혜원에 우거하며 卜算子(缺月掛疏桐)황주의 임고정에서 南鄕子(晩景落瓊杯)버들개지를 노래한 장질부의 사에 차운하여 水龍吟(似花還似非花)거문고 소리 水調歌頭(??兒女語)홍매 定風波(好睡?開莫厭遲)8월 18일에 조수를 구경하며 南歌子(海上乘?侶)춘경 蝶戀花(花褪殘紅靑杏小)어느 봄밤의 노숙경구에서 고향편지를 받고 蝶戀花(雨過春容淸更麗)경구를 떠나면서 醉落魄(輕雲微月)팽성에서 자유의 사에 화답하여 水調歌頭(安石在東海)이것 역시 사천에서의 야유회로다 江城子(夢中了了醉中醒)어느 봄밤의 노숙 西江月(照野??淺浪)본래부터 호숫가의 모랫길이 좋았던 건 南歌子(帶酒衝山雨)〈완계사〉로 개작한 현진자의 〈어부사〉 浣溪沙(西塞山邊白鷺飛)지팡이 짚고 어슬렁어슬렁 ??天(林斷山明竹隱牆)유유자적 浣溪沙(傾蓋相逢勝白頭)초여름 阮郎歸(綠槐高柳咽新蟬)양선에서 살게 되어 滿庭芳(歸去來兮)의흥에서 늙고 지고 菩薩蠻(買田陽羨吾將老)참료자에게 八聲甘州(有情風萬里捲潮來)풀 근심이 아예 없네연회석에서 양원소에게 醉落魄(分?如昨)중추절 陽關曲(暮雲收盡溢淸寒)사호로 가는 길에 비를 만나 定風波(莫聽穿林打葉聲)난계가 서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浣溪沙(山下蘭芽短浸溪)달팽이 뿔에서 다투는 허망한 명예 滿庭芳(蝸角虛名)밤에 임고정으로 돌아가 臨江仙(夜飮東坡醒復醉)늦가을에 十拍子(白酒新開九?)풀 근심이 아예 없네 無愁可解(光景百年)평산당 西江月(三過平山堂下)술회 行香子(淸夜無塵)어느 때에 마시려고 기다리는가 虞美人(持杯遙勸天邊月)적벽에서의 옛날 생각사냥 江城子(老夫聊發少年狂)장계원에게 陽關曲(受降城下紫髥郎)적벽에서의 옛날 생각 念奴嬌(大江東去)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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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東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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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種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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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사선집이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라고 할 정도로 소동파는 우리 문단에도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인이었다. 시문(詩文)은 물론이고 사 방면에서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쳐 당시 고려인들 사이에서 그의 사가 널리 향유되었다. 이에 소동파의 사 중 〈행향자(行香子)〉(淸夜無塵)가 『고려사·악지(樂志)』에 수록되기도 했다.사는 기존의 곡조에 맞추어 써넣은 일종의 대중가요 가사로, 시문을 중시하는 정통 문인들에게 천시당하는 경향이 많았다. 소동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문집이나 시집에 사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소동파의 사는 시문 못지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인정되어 별도의 사집이 간행되었다.사는 대개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해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작품 이해에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곡조의 이름, 즉 사패(詞牌)를 작품의 명칭으로 삼았는데 소동파는 그의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사를 지었으므로 사의 제목을 따로 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로부터 사에 제목을 붙이는 기풍이 생겼으니 이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소동파의 공로라 하겠다.중국문학사에서 시를 짓듯이 사를 짓는 이러한 소동파의 작사 태도를 ‘이시위사(以詩爲詞)’라고 불렀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동파는 불가피하게 사를 지으며 사의 음악적 측면을 경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소동파가 나와서 호방파(豪放派)를 엶으로써 사가 쇠퇴하고 말았다”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지식인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를 서정시의 대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소동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곡조가 없어진 지 오래인 오늘날까지도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사의 창작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다 소동파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이 책은 현존하는 소동파의 사 작품 약 350수 가운데 대표적인 것 64수를 선정해 역주한 것이다. 엄선된 작품을 여섯 개의 범주로 나누고 다시 창작 시기순으로 배열했다.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는 역자 류종목이 원작을 충실하면서도 역문으로도 한 편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글자 수. 압운 등과 같은 역문의 시적 운율도 최대한으로 고려해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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