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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란 주머니
김현주
다인숲(아꿈)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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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마천령을 넘어 07
얼굴 없는 바람 23
함부로 다룰 수 없는 41
붉은 모란 주머니 69
전라감사 87
정경부인의 그릇 109
양반댁 마님이 되어 137
토사구팽 157
붉은 비단 치마 177
노비로 살지 않겠다 195
붕당의 조짐 223
본심 241
소용돌이 257
귀거래의 꿈 275
해남사람 289
이만하면 좋다 315
소나무와 잣나무 325
높고 푸른 꿈 347
부칠 곳 없는 편지 363
작가의 말 388

저자 소개 1

1998년 계간 《문학과 사회》 단편소설 「미완의 도형」 당선. 송순문학상 수상. 광일문학상 수상. 광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 『메리 골드』 출간, 장편소설 『붉은 모란 주머니』, 『얼굴 없는 아침』,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 평전 『지석영 평전』 출간. 현 광주전남작가회의 『작가』 편집장. 현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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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135*200*30mm
ISBN13
9791198257222

책 속으로

달빛이 사방에 환했다. 적막한 바다를 휘몰아치는 바람이 뼈에 사무치게 찼다. 눈바람이 이는 초겨울이었다. 굿덕은 마천령 고개를 넘고 있었다. 춥다고 징징대는 딸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르고 달랬다. 몰아치는 겨울 북풍을 온몸으로 받으며 무릎이 자꾸 꺾어지는 것을 겨우 추스르면서 걸었다. 목울대에 가득 울음이 차올랐다.
-이제, 소첩이 떠나야겠지요?
굿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감마님이 서안 위에 내려놓은 정실부인의 편지를 본 후였다. 편지를 손에 쥔 영감마님의 얼굴은 감격이 벅차오르는 듯 표정이 환했다. 무슨 내용일까, 굿덕은 앞이 캄캄해 뜻을 캐어 물었다.
-어찌 떠날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영감마님이 간곡하게 물었다.
-마님이 오셔서 우리 딸들을 보시면 질색팔색하실 텐데, 그때 쇤네는 어떡합니까.
-그동안 고생한 네 공이 큰데 무어라 하시겠느냐.
그 말로는 굿덕의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어요.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딸 넷은 선산유씨의 핏줄이지요? 제 자식들 속량을 꼭 해주신다면 본가 옆에서 죽은 듯이 살 것입니다. 영감마님이 해배되는 날만 기다리고 살 것입니다. 굿덕은 그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 pp.9~10

곱다. 참으로 곱다. 굿덕은 짙은 홍색으로 비단 주머니를 새로 만들어보고 싶었
다. 문득, 여지껏 간직한 붉은 모란 주머니를 생각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마님의 것. 낡고 헤진 비단 주머니. 연한 다홍색 비단이 색이 바랬고, 붉은 모란꽃과 한 쌍의 나비 자수는 실이 낡아 군데군데 풀어져 버렸다. 다만 온전한 것은 끈 두 개에 매달린 녹두알보다 조금 큰 비취색 옥이었다. 이제 새것을 갖고 싶었다. 붉은 모란 한 송이를 수놓은 주머니. 둥근 수틀에 비단을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모란꽃을 촘촘히 새길 것이다. 양반댁 마님이 되어.
“무명과 명주는 다르다. 명심해야 할 게야. 이 밑물은 연지로 쓰인단다. 해복이 혼사 때 쓰일 연지 말이야.”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고 혼인할 때, 친정어머니는 당부한다. 현숙한 부인으로 내조를 잘해야 한다.
“마님, 이제 다 되었사옵니다. 오미자 국물도 준비했으니….”
해복이 다듬이질해서 곱게 펴낸 명주천에 오미자 우린 물을 걸렀다. 홍화 물이 얼마나 곱게 들 것인가. 굿덕은 가슴이 뛰었다.

--- p.153

출판사 리뷰

■ 작가의 말

어느 겨울, 우연히 『미암일기』를 발견했다. 희열을 느꼈다. 눈 내리는 밤, 틈틈이 미암 선생의 일기를 읽는 일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담양 대덕을 가끔 찾았다. 연계정 뒤로는 대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맑은 시내가 흐르고, 초록 언덕에는 노랑 상사화가 드문드문 피어 아련했다. 그 풍경을 보고 떠올린 첫 구상의 주된 인물은 송덕봉이었다. 담양송순문학상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렸을 때, 방굿덕을 살리면 더욱 좋겠다는 소설가 문순태 선생님의 귀한 말씀이 숙제처럼 오래 남았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다. 다시 담양을 찾게 되었다. 미암 선생과 덕봉 선생의 쌍봉에는 청명한 하늘 아래 빛나는 햇살이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아래,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가난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풀이 성글게 돋아있어 쓸쓸했다. 평생, 사랑을 믿었던 여성 방씨의 묘지였다. 해남읍 해리, 바다가 보였던 산마을을 물어물어 찾았다. 높고 푸른 곳 금강산. 미암바위는 눈썹을 가늘게 뜨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서 바다 안개처럼 멀고 아득한 사랑을 했던 굿덕이 말한다. 기어이 영감마님의 곁에 잠들 것입니다. 이것만은 이룰 수 있겠지요. 기필코 되겠지요.

붉은 모란 방굿덕이 치열하게 살았던 건, 다만 욕망이었을까. 그녀의 행복은 순간순간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었다. 불가능은 관념이었을 뿐이다. 함께, 문학을 살고 있는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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